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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통일의 물꼬를 트며 남북한 문화교류 전망> 꾸준한 문화적 정보교류 통해 문화공동체 건설해야 김병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세계가 온통 정보화를 통하여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불행히도 남과 북은 여전히 서로 소통하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정보화에 진력해 왔다. 이러한 우리의 경험과 자산을 북한과 공유하고, 북한에서도 이에 동참한다면, 정보화를 통해서도 새로운 통일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한글의 정보화 분야에서 남북 교류 협력 사업에 참여한 바 있는데, 그 경험의 일단을 밝혀 앞으로의 남북 문화 교류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정보화는 문화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 구약성경에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로 인간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인간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때, 문화가 발전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감정을 화해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단일한 언어, 즉 표준적인 언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흔히 남북관계를 비관적으로 보아 그 문화적 이질화 문제가 거론되곤 한다. 이를 실감하는 쪽은 특히 연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다. 양쪽과 교류하면서(사실은 남쪽과 교류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가령 맞춤법 같은 것을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남북 교류의 현장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쪽의관계자들에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언어의 면에서 남북의 차이는 있으나, 그것이 우리 민족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방언적 차이를 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말과 평양말은, 서울말과 경상도말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말에 차이가 나더라도, 또는 표기가 다르더라도 우리에게는 능히 이를 해소할 능력이 있다. 설혹 저쪽에서 ‘호상간에’라고 말하더라도, 이쪽에서 ‘상호간에’로 바꾸어 듣는다. 자꾸 만나게 되면 더러는 이쪽에서 ‘호상간에’라고 말하게 되고, 저쪽에서는 되레 ‘상호간에’라고 말하게 된다. 이것은 필자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그러다가 아예 그런 말 쓰지 말고 더 좋은 말 ‘서로’를 쓰자고 할지도 모른다. 즉 현재의 차이점을 자꾸만 노출한다든지, 표준화를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보다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한 교류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더라도 서로 편히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더 필요한 것이다. 남북한 컴퓨터 부호 통합 급선무 정보화의 기반이 되는 컴퓨터 부호의 경우는 어떠할까? 코드가 다르면 정보를 손쉽게 공유할 수 없으며, 의사소통에도 지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기술은 이러한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위 코드 변환 프로그램은 이미 상식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며,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컴퓨터에 의한 자동 번역 시스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남북간에 자료를 교류한다 할 때 저쪽 코드체계를 이쪽 코드체계로 바꾸어 주는 변환 프로그램이 중간에 들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혹자는 그것마저 없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쪽의 사정만 보더라도, 흔히 유니코드라고 불리는 KSC 5700 코드체계가 등장하면서, 코드의 혼란이 뻔히 예상되고 있다. 즉 우리 내부에 전라도, 경상도 방언이 있듯이, 그래서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듯이 코드계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합형/완성형 논쟁 때 있었던 혼란을 상기해 보면, 남북간의 현재의 표준 코드 변환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양쪽의 코드를 서로 알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남북 교류를 통해서 그쪽의 체계를 알게 되었고, 따라서 변환 프로그램도 이미 만들어져 있다. 한편 코드 문제에는 묘하게도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즉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제정한 한글 코드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쪽에서 제출한 안이 채택되어 표준화되어 있으며, 장차 모든 컴퓨터들이 이 코드 체계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체계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서만 인정한다면, 국제표준 코드는 남북의 통합 코드 혹은 중간 코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화 분야의 교류, 무엇을 이루었나 우리 국어정보학회는 보기 드물게도 어문학자와 전산학자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학회이다. 양쪽의 공통 관심사는 컴퓨터에서의 한글 처리, 한글 문장의 처리,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자체를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 등이다. 특히 국어정보학회는 남북한의 한글 컴퓨터 처리의 원리와 기술 등의 교류와 표준화에 관심을 두고, 지난 94년, 95년, 96년 세 차례에 걸쳐 중국 연변에서 ‘Korean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96년의 세 번째 학술대회에서는 한글 자모순 분야, 한글 코드 분야, 자판 분야에서의 단일안, 혹은 단일안 제정 원칙에 합의하였다. 그 단일안이 실제로 사용될 수 있겠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남과 북이 여러 차례의 민간 교류를 통해 학술적인 입장에서 어떠한 합의에 이르렀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전산용어 통일이 중요 사업으로 대두된 것은 국어정보학회가 당시 문화체육부의 용역을 받아 전산 용어의 순화 작업을 벌인 바 있고, 그 결과로 『우리말 전산용어 사전』(정음문화사)을 출판한 것을 계기로 한다. 필자는 그 대표 집필을 맡은 경력을 바탕으로 전산 용어 통일 작업에 참여했다. 필자의 북한측 상대자는 조선컴퓨터센터의 허주 박사였다. 이분은 북한에서는 정보처리 분야의 용어 표준화 분야에 있어 권위를 인정받은 분이었는데, 학문적인 성실함과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 우리쪽 참여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분이다(허주 박사는 97년에 아쉽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양쪽은 정보처리 분야 용어의 국제표준인 ISO 2382의 제 규정을 바탕으로 통일 작업을 시도했다. 우리의 경우에는 문체부 용역으로 수행된 전산 순화 용어와 KS 표준의 용어를 제안했고, 북한에서는 허주 박사가 ISO 2382에 근거하여 작성한 안을 제시하였다. 각측에서 일차적으로 자기들의 용어를 제시했고, 같으면 당연히 합의안에 올랐고, 다를 경우에는 단일 용어 제정을 시도해 보았다. 1996년 8월에 연길시의 한 호텔방에서,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의 관계자가 참여한 용어팀은 꼬박 사흘밤을 새우면서 1,800여 개의 용어 단일화를 시도했다. 기본적으로 양쪽은 우선 국제 규정에 합당한 의미를 가진 용어가 무엇인지를 찾았고,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각 용어가 가진 사회 문화적 내포를 진지하게 청취하였다. 그 뒤로 한두 차례 양쪽의 단일화안이 오고가면서 조정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우선 1,200개 정도의 용어는 표기까지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차이를 보이는 용어 중에도 맞춤법의 차이에 따라 표기를 달리한 것, 영어식 발음을 우선하는 우리의 외래어 표기와 러시아어식 발음을 따르던 북한의 외래어 표기의 차이만 드러나는 것, 표기의 관습만 다른 것 등이 대부분이고, 완전히 다른 것은 단지 80개에 불과했다. 그 중에도 calculator가 특히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이를 ‘계산기’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수산기’라 하였다. 계산기라는 말은 북한에서는 computer를 지칭하며, 수산기의 경우에는 북한의 유력인사가 명명 작업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 양쪽은 도무지 합일점을 찾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일찍부터 고유어에 의한 순화작업을 시도했었고, 우리의 경우에는 외래어를 그대로 쓰거나, 일본식 한자어에 의한 표준화가 이루어진 바 있었으며, 문체부의 순화작업의 결과로 얻어진 고유어 표기는 오히려 북한 것보다 더 진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적지 않은 용어의 경우 남과 북의 용어가 동시에 표준이 되는, 즉 복수 표준이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용어 단일화 작업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북한에서는 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국가표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는 차후의 용어 표준 개편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다. 한글 정보화의 미래와 전망 정보화 분야에서 남북이 함께 힘써야 할 일은 적지 않다. 남북이 공동으로 지명 조사 작업을 벌여 이를 정보화한다든지,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실행한 지명 조사의 결과를 전산화하는 데 참여한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한편 북한의 민족고전연구소에서 번역한 고려사를 남한의 출판사에서 CD-ROM으로 만든 일과 같은 민족문화 유산의 전산화 작업을 실행하는 일도 필요하다. 또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남북한 정보처리용어 표준사전』을 출판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표준만 우선하면 서로 부딪치게 된다. 서로의 관습과 사용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무시하거나 바꾸어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효율성과 합리성이 인정된 분야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타결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의 사용 상황을 무시한 채 이상적인 것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은 민간차원에서 남북간에 문화적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다. 그리고 양쪽의 정부 당국에서는 이러한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다. 교류가 먼저 이루어지면, 관습의 차이가 오히려 문화적 풍성함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정보화를 통한 문화적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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