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걷어내고 이 시대를 구원할 문학으로 거듭나야　
 
 

유례없는 경제난국을 맞아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고 문화계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대형 서적 도매상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름있는 출판사들이 몇 억씩 손해를 보게 되었다. 종이값이 50% 오르고 책을 인쇄하는 데 필요한 필름값이 100%나 올라 출판비가 많이 드는데다가 어음거래가 관행이 되어오던 출판계에 종이는 현금으로 지불해야 납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서점에서 몇 달치 어음으로 대금을 받아온 중소형 출판사들은 문을 닫아야 될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는 곳은 문학 월간지와 계간지를 내던 출판사다.우리나라에서 문학지를 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문학지를 내다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문을 닫는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출판사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문학지를 내온 것은 문학창작을 활성화해서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표면적인 명분과 좋은 작가를 확보해서 출판사업에 도움을 받겠다는 이면적인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나가는 책도 제대로 내기 힘들 정도로 출판 사정이 어려운 판국에 출혈을 계속하면서 문학지를 내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각 출판사들은 문학지 발행을 당분간 멈추고 휴간하거나 지면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한국문학』과 『리뷰』가 휴간에 들어갔고 계간 『포에티카』는 반년간으로 전환했다. 월간 『문학사상』과 『현대문학』은 신년호부터 지면을 80쪽에서 50쪽 정도 축소하였다. 2월 말에 간행될 계간지들도 어쩔 수 없이 지면을 줄여서 적자 폭을 줄여갈 예정이다. 종합문예지보다 사 정이 더 어려운 것은 시 전문지들이다. 『현대시학』은 종이값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1월호가 20일이 넘어서야 나왔고 2월호 역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월간 『현대시』나 계간 『시와 시학』 역시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결국은 지면을 줄이고 원고료를 정기구독료로 돌리는 방법 등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창작과 비평』 처럼 책값 인상을 선언한 출판사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러한 문학지의 상황은 문인들의 발표지면이 축소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전에는 백매가 훨씬 넘어서 이백매에 육박하는 단편들이 자유롭게 문학지에 실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적은 지면을 서로 나누어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인기있는 작가라 하더라도 혼자서 긴 작품을 내서 지면을 독차지하는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시의 경우도 신작특집이라는 명목으로 한 시인이 열 편 가까운 작품을 싣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문학지에서 기획특집으로 평론가들에게 특정 주제의 글을 쓰게 하던 것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작가들의 발표지면이 줄어드는 판에 사람들이 잘 읽지도 않는 평론을 장황하게 싣는 일은 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월 평은 문인과 독자들의 공통 관심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대로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한정된 지면을 어떻게 안배하여 좋은 작품을 싣는가 하는 점이 앞으로 문학지 에디터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문학지에서 지면이 축소되는 것은 곧바로 창작집 출간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장편 대하소설의 출간은 출판비 부담 때문에 당분간 어려울 것이고 장편도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의 얄팍한 장편이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 진지하기는 하지만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출판 순위가 밀려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을 수 있는 통속적인 작품이 우선적으로 출간될 것이다. 잘 팔리지 않는 시의 경우는 차별이 더욱 심해서 대중적 인기가 없는 시인의 작품은 자비 출판의 경우로도 제때 시집을 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시집을 정기적으로 내던 출판사들도 현재의 위기 상황 때문에 시집 출간은 전부 하반기로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창작의 위축을 가져 올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난경 앞에 우리 문인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소설가 이문열은 최근의 불황과 사람들의 세태를 다룬 소설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 소설의 내용이 어떠할 것인지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우리 문인들이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우선적으로 검토되어 야 할 것이다. 요즘 경제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사실 문학의 거품도 걷어낼 필요가 있다. 화려한 수사학, 과장된 감정,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스토리 등이 모두 문학의 거품에 해당한다. 거품을 걷어낸 곳에 현실의 진실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은 경제 난국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위안을 주는 문학의 위업으로 남을 것이다. 간결하고 명석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이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