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산업 어떻게 할 것인가·총론  

문화산업 육성지원,일관성있게 추진되어야  임희섭·고려대 교수  

정보화와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문화산업은 단순히 문화의 상업화현상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된다. 문화산업을 단순히 문화의 상업적 이용이라고만 볼 경우에는 문화산업이 문화의 평준화와 저질화를 초래하는 주범으로서의 부정적 결과만이 과장되어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문화의 창조와 향수에서 다같이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넓혀 주기도 하는 문화의 신개척지, 즉 문화적 프론티어로서의 중요성을지닌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화산업은 현대사회에서 문화와 경제 및 기술이 서로 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성된 새로운 문화현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산업화가 경제와 과학기술이 융합되어 일어난 현상이었던 것처럼, 문화의 산업화는 경제와 과학, 그리고 문화가 융합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탐구활동에 종사하는 목적은 물론 자연현상에서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려는데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과학적 발견discovery은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해 주는 기술적 발명technological invention`으로 이어지고, 발명된 기술은 다시 경제적인 산업활동에 응용되는 과정을 통해 과학과 경제의 융합이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원리의 발견과 기술의 발명에 종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몫이지만, 그와같은 과학적 지식이 인류의 삶을 위해 널리 이용되게 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들에 의해 촉진되어 왔던 것이다. 심지어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군사적 이용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촉진되어 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활동에 종사하는 것도 그 목적은 기본적으로 인식적, 평가적, 심미적 상징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를 창조하는데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은 그들이 창조적 활동을 수행함에 있어 다양한 도구와 기술적 산물들을 활용한다. 또한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창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향수되기 위해서는 도시, 음반, 비디오, 방송, 통신 등과 같은 대중매체를 필요로 하며, 그와같은 매체의 발달은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서 문화예술 창작물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향수되기 위해서는 출판, 방송, 화랑, 극장, 유통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의 활동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문화예술인, 과학기술자, 사업가들의 활동이 서로 깊이 연계되어 일어나고 있는 일종의 현대적인 문화현상인 것이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문화와 과학과 경제가 융합되어 생성된 것이 문화산업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문화산업을 단순히 문화를 상품화하고 상업화하므로서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반문화적인 현상이라고만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산업에서 보편적 가치의 창조라고 하는 문화적 논리와 경제적 이윤추구라고 하는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우려하는 문화의 저질화는 바로 자본의 논리가 문화적 논리를 지배하고 종속시키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의 사업가들은 그들에게 경제적 이윤을 가져다 주는 문화상품의 경제적 가치가 문화상품의 질과 창조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점차로 인식해 가고 있다. 또한 문화산업을 통해서 문화적 가치를 향수할 수밖에 없는 문화향수자들도 점차로 문화상품의 질적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가고 있다. 다시말해서 문화의 창조자와 전달자와 향수자의 관계는 문화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의 조화속에서만 서로 수혜적이 될 수 있는 관계로 정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개별국가들의 문화와 문화산업에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화산업의 세계시장이 통합되어감에 따라, 즉 자본과 기술 및 상품의 흐름이 국가간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워짐에 따라 이른바 선진국의 문화상품이 문화산업의 세계시장에서도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후진국들은 문화산업에서의 무역 역조와 적자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고, 장기간에 걸친 문화산업의 무역역조는 개별국가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큰 위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개별국가의 문화산업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에 봉착하고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생산된 공산품을 사용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일상적으로 외래의 문화상품을 사용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문화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은 근본적으로 문화의 창조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의 창조성은 그 문화의 독자적인 개성individuality과 보편적 가치universality의 조화에 의해 규정된다. 개별국가들의 문화는 그 국민들의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농축된 문화적 전통을 지닌다. 그러나 그와같은 개별국가의 문화적 전통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의해서 문화적 가치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단지 독특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는 특수적인 문화양식만이 이른바 지구촌 문화global culture의 향상에 기여하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흔히 의미의 체계라고도 정의되지만, 특정한 문화양식은 비록 그 문화양식의 원산지가 낯선 외국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의미있는 문화양식이라고 인식될 때는 수용되고 향수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지역의 민족이 의미있는 문화양식으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문화양식은 문화산업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편적 가치라고 하는 것은 물론 서구문화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사랑이나 정의, 평화, 자유, 평등 등과 같이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지 못한 문화양식, 특히 선진국의 문화양식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문화양식은 문화산업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이미 세계 정상급에 오른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공연이라면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서구문화의 모방이나 아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화상품이라면 세계의 문화 수용자들이 굳이 우리나라의 문화상품을 쫓으려 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가치의 요소와 문화적 개별성을 지닌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문화양식일수록 세계시장에서의 높은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문화산업의 특성은 정부의 문화정책에 의해 문화산업이 육성되고 지원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해 준다.

문화산업이 창조적인 문화를 위축시키고 문화를 경제논리와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킬 위험과 국제적인 문화산업시장에서의 장기적인 무역역조가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약화시킬 위험성 등은 문화산업이 정부의 문화정책에 의해 보호되고 육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말해 준다. 더구나 산업화의 수준이 매우 낮아 아직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앞으로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정책차원에서 문화산업이 육성되고 지원되지 않고서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길러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문화산업 육성정책은 문화전통의 계승과 근본적인 문화 창조력의 제고에서부터 시작해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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