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출판

사이버 서점 시대, 그리고 실크로드의 서정


이창경·신구전문대 출판학과 교수

무한한 사이버 공간 인터넷 서점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잘 팔리는 좋은 책’ 만들기를 원한다. 문화적 가치에 충실한 잘 만든 책, 경제적 가치 추구에 충실한 잘 팔리는 책, 그 경계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책은 아직도 정신을 깨우는 지적 활동의 지표임에 틀림없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단일화하고 출판업계의 특성에 맞는 금융지원제도가 자리잡기 전에는 좋은 책 만들기보다는 잘 팔리는 책 만들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명감을 말하기 이전에 생존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구조 개선이 수없이 논의되는 가운데, 서울의 대형 서점이 일제히 인터넷 서점을 열어 사이버 서점시대를 맞고 있다. 아직은 출발 단계에 있지만 이 무한한 사이버 공간은 급속한 영향력을 가지고 독자 시장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현재 인터넷에는 약 5백여개에 이르는 사이버 서점이 떠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인터넷 서점을 통한 도서 판매가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995년 미국의 아마존사가 ‘Amazon com of Seattle’이란 인터넷 서점을 개설한 것이 인터넷 서점의 처음이다. 뒤이어 ‘북 스텍스 언리미티드’사가 ‘Books.com’을, ‘캘리포니아 그라나다힐’사가 ‘Expressbooks.com’을 개설하고 책에 따라 20~40% 할인하여 판매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도서판매사업의 연간 총 매출액은 전 세계적으로 약 3억3천달러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중 1천만달러 정도를 ‘아마존’사가 차지하고 있다. ‘지구상의 가장 큰 서점’이라고 불리는 ‘아마존’은 현재 2백50만종에 달하는 서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마루젠 온라인 네트워크’가 일본내 1백여 개의 출판사 인터넷과 연결되어 출판정보는 물론 도서판 매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종로, 영풍, 교보, 서울문고가 지난 해 차례로 인터넷 서점의 문을 열었다. 각기 손쉬운 검색, 다양한 정보, 편리한 배달 서비스 등을 내세우며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저명, 저자, 출판사, 주제별 검색뿐만 아니라, 신간정보, 분야별 주요도시 초록, 서평, 목차, 표지사진 등을 실어 서점에서 직접 책을 고르는 느낌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련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인터넷 서점이 현재 출판계의 가장 절실한 문제인 도서 유통의 문제, 독서 인구 확산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는 재고도서 할인판매, 우송료 부담을 비롯한 발송체제 확립 등 제도적인 문제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절실한가 하는 문제는 계속 연구 개발되어야 할 사항이다. ‘아마존’은 최근 고객들을 위한 추천 센터를 대폭 확대하고, 단순히 베스트셀러나 장르별 추천도서가 아니라,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세분화된 추진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책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고객의 성향을 분석, 좋아할 만한 책의 리스트를 즉석에서 뽑아주기도 하고, 독자 자신의 취향을 등록할 수도 있게 하고 있다.

한국 인터넷 서점의 가장 큰 취약점은 관련 도서 정보의 부실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서점이 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독서문화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편리함과 유용성, 그 이상의 것을 소비자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즉 단순히 책을 검색하고 주문할 수 있는 기능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도서 정보 축적, 유용한 부가 서비스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음으로 읽는 실크로드

중국의 한(漢)과 고대 로마를 잇는 교역로를 우리는 실크로드라 부른다. 이는 중앙아시아의 끝없는 사막지대를 지나 아스탄불과 로마로이어지는 장장 1만2천킬로미터에 달하는 험난한 길이다.실크로드를 답사하고 쓴 책은 고고학·문학·종교·미술 등 학술서를 비롯하여 기행문, 사진집 등 여러 종류가 간행된 바 있다. 최근 박찬 시인이 실크로드를 기행하고 쓴 『우는 낙타의 푸른 눈썹을 보았는가』(해냄 간)는 현장감과 역사성, 여기에 서정성을 더하고 있어 기행서의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줄기차게 필자의 곁을 따라다니게 하고,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독자도 함께 시선을 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서정성 때문이다. 더욱이 인문지리에 관련한 최근 자료와 역사적 문헌이 뒷받침되어 무게를 더어주고 있다.

이 책의 실크로드 기행 대상은 출발점 서안을 비롯하여 신강 자치구를 중심으로 한 고비사막이나 타클라마칸사막, 파미르고원 등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지역이다. 1992년 12월의 첫 답사 이래, 1995년 10월 네번째 답사까지 3년에 걸친 4번의 답사기록이다.무엇엔가 홀린 듯,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를 험난한 여행의 길로 네번씩이나 내몰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구법(求法)을 향한 구도승과의 동일성, 그 강한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정제된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의 유발은 천년의 세월을 격하여 이 지역 을 걸어갔을 그들과의 동일시에서 비롯된다.

원측, 혜초, 장보고, 고선지를 실크로드에서 만난다.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돈황의 어느 석굴에서 청정한 혜초의 정신을 만나고, 파미르고원에서 서역 제국을 굴복시키던 고선지의 기개를 다시 만난다. 또 키질석굴 앞에서 조선족 동포화가 한락연의 열정을 만난다.기행의 대장정은 어둠이 내리는 파미르고원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 쿤자랍고개에서 막을 내린다. 국경 초소를 지키고 있는 파키스탄 병사에게 다가가 국산 담배를 건넨다. 초병은 대신 호도를 준다. 그랬을 것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오갔던 대상들의 교역도. 파미르고원의 차가운 하늘에 쨍그렁쨍그렁 별들이 부딪치는 소리… 기행의 대장정을 마감하고 파미르고원을 내려오는 길도 역시 진한 서정,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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