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우리나라 국제예술제의 의미와 발전방향. 국제영화제의 정착을 위하여

의미있는 국제영화제들이 활발하고 다양하게 개최되길…




이충직 / 중앙대 영화학과 교수

한국 영화의 위상 높일 수 있는 기회

작년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던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해서 국내에서도 국제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올해 들어 각종 국제영화제가 봇물 터지듯이 개최되고 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 버금가는 규모의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무사히 치뤄졌고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10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 외의 여성영화제, 가족영화제, 인권영화제, 애니메이션영화제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야말로 국제영화제의 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간혹 국제영화제가 많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들리고 있으며 부실 운영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제대로 된 국제영화제가 한번도 개최된 적이 없던 처지에 이렇듯 각종 국제영화제가 다양하게 열리게 되다 보니 운영에 다소 차질이 있을 수도 있고 국제영화제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각종 국제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국제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현재 개최되고 있는 국제영화제의 숫자를외국과 비교해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동경영화제, 야마가타도큐멘터리영화제, 나가노 영화제, 히로시마 애니메이션영화제 등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제가 허다하며 유럽의 경우를 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직은 국제영화제가 많다 적다를 논할 단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현재 개최되고 있는 각종 영화제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제영화제로 인해 야기되는 역기능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지방문화의 활성화와 영화문화 상승의 기회제공

우선은 국제영화제를 통해 수준 높은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접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영화관객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처럼 헐리우드 영화가 극장과 TV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국제영화제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세계영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에 문화적인 차원에서 영화 관계자뿐만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도 좋은 기회라 하겠다.

산업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우리 영화를 외국에 소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기대된다. 흔히 국제영화제라면 외국의 영화들을 초청해서 우리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점도 국제영화제 개최의 중요한 목적이 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외국의 유명 영화제 관계자들이나 기자, 평론가들을 초청하여 우리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소개함으로써 외국에 우리 영화를 내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작년의 예를 보더라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외국의 영화제 관계자들이 영화제에서 상영된 우리 작품들을 보고 감독과 대화도 나눈 다음에 여러 영화제에서 초청했었던 점을 상기하면 앞으로 국제영화제들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이러한 사례가 더욱 빈번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제가 개최되는 지역주민이나 특정한 영화제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관객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풀어주고 영화문화를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우리와 같이 문화적 행사가 서울에 편중되어 있으며 지방과 서울의 문화적 편차가 심한 경우에 이러한 영화제를 통해서 지방문화를 활성화시키며 지방 영화관객들의 좋은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국제 영화제의 걸림돌들

영화제의 성공여부는 우선 관객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아울러 선정된 작품의 종류와 질, 그리고 초청된 인사들의 면면과 그들의 역할, 개최되는 지역의 주민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그리고 재정을 비롯한 운영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는지도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현재까지 개최된 국제영화제를 보면 적어도 관객의 참여도와 선정된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하겠다. 작년과 올해 개최된 어느 영화제든 예상 관객을 웃도는 많은 관객들이 몰렸고 상영된 영화들에 대한 평가도 좋아서 국제영화제에 대한 관객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국제영화제가 정상적으로 활성화되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아직도 산재해 있으며 운영 면에서도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데서 야기되는 미숙함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국제영화제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심의문제라 하겠다. 국제적인 관례를 볼 때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의 경우 심의를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인정되고 있다. 그것은 각 나라의 기준과 심의에 관한 관례가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 각국의 영화들이 모이는 국제영화제에서 특정한 국가의 기준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견본시와 같은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을 심의한다는 것 자체를 외국의 감독들과 영화 관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남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크래쉬」의 경우 제한상영조치가 내려지자 영화사 측에서 임의로 필름을 잘라내고 상영해서 물의를 빚었고 올해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심의가 나오지 않은 작품을 상영하여 관계 당국에 사유서를 제출하는 헤프닝이 있었다. 큐어영화제의 경우 아예 모든 작품에 제한상영조치가 내려져 필름으로 상영하지 못하고 비디오로 불법 상영하다 중단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영화제가 개최되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영화제의 순수한 지원자로 남아서 봉사해야 하는 데 우리의 경우 아직은 이런 행사에 익숙지 않고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영화제를 자칫 관료적인 행사로 딱딱하게 몰고 갈 염려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국제영화제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영화제에는 조직위와 집행위가 있고 특히 집행위의 경우 영화와 페스티벌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행사의 기획과 운영을 전적으로 맡기고 자치단체는 지원과 대민봉사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역주민과 결합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영화제 자체의 문제로는 각 영화제가 아직도 영화제의 성격과 목표, 그에 걸맞는 규모 및 부대행사를 정립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의 국제영화제,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그렇게 많은 영화제들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것은 각 영화제마다 지역적인 특성과 결합된 그 영화제만의 성격을 구축하고 그에 걸맞는 규모를 유지하며 지역 전체가 영화축제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아보리아즈 판타스틱영화제'의 경우 스키장과 휴양도시인 작은 산악도시 아보리아스에서 관광증진을 목표로 판타스틱영화제를 기획하였고 휴양도시라는 성격과 판타스틱이라는 특성이 결합되어 도시 전체가 영화제 기간 동안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창조해 내며 영화제 관객과 주민, 관광객이 아울러 즐길 수 있으며 영화제 자체의 규모도 도시 규모에 맞게 그다지 크게 잡지 않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일단 외형적으로는 국제적으로 손색없는 규모로 치뤄졌지만 판타스틱을 영화제의 성격으로 내세우고 있는 부천의 경우 초청, 상영된 영화들 중 일부는 과연 판타스틱이라는 성격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며 영화제와 상관없는 부대행사가 지나치게 비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아직도 지향하고 있는 성격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영화제가 많이 열리다 보니 특정 장르의 경우 시기적으로나 작품면에서 중복되는 경우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영화제의 경우 지난 여름에만 3번의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가 개최되어 영화제의 명칭과 작품, 장소가 혼동될 정도로 중복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중복은 영화제를 준비하는 조직이나 언론매체들이 정보교환이나 시기적인 고려없이 학생들의 방학만 생각하고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행사를 치뤘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 3번의 동일한 영화제가 개최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으며 영화제의 차별화에도 실패하였다. 결국 자체적으로 정리가 되겠지만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서 좀더 알찬 행사로 치루는 것이 한국의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영화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제언

그 동안 헐리우드 일변도의 영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 관객을 위해서나 해외진출이 미미한 우리 영화계를 위해서 국제영화제가 활발하고 다양하게 열리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오히려 좀더 다양하게 개최될 필요가 있다. 다만 좀더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국제영화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서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장애가 되는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부산, 부천이나 그 외의 영화제들의 경우에도 모두 심의문제가 가장 큰 딜레마로 남아있다. 3회 이상 개최된 영화제에 한해서 심의를 면제한다는 조항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 국제영화제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괄심의나 서류심사 등 편법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불법으로 영화제를 개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를 문제 투성이로 만들어 우리 스스로 3류 영화제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전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행정적인 결단을 내려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모든 영화제의 심의를 면제하는 조치를 내려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주측들이 영화제의 성격과 규모를 자신들의 역량이나 특성에 맞게 규정하고 그에 맞추어 행사규모를 조정해서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각 영화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규모 키우기에 열중하기보다는 규모는 작더라도 자신들만의 특성이 부각되고 실속 있는 행사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작품의 선정에서도 유명한 영화라 하더라도 자신의 영화제와 성격이 맞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포기하는 정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저 반가워서 많은 관객들이 몰리고 있지만 이 거품이 빠지고 나면 현재와 같은 전폭적인 호응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규모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보완을 해서 외국의 권위 있는 감독들과 영화관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영화제를 개최하는 도시의 기반시설을 보완해야 한다. 영화제를 계기로 해서 극장이나 부대행사장의 시설을 보완한다면 그 시설을 활용하여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행사 주최와 기획이 가능해질 것이며 영화제도 한층 수준 높게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국제영화제에 열광하는 관객들과 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의 영화관계자들, 국제영화제가 개최된 도시의 시민으로서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된 지역 주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제영화제를 통해 자신의 장식물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영화창작자들을 위해서 국제영화제는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