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프로그램 / 대학로 소극장의 실태 조사

대학로를 문화 인프라로




최선중 / 공연기획가

■ 80 / 90년대 대학로 거리 정체성 변화



거리도 인간처럼 '이름'과 '이력'에 따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대학로 =문화 거리라는 등식이 일반인들에게 각인 되어 있지만, 대학로가 현재의 정체성을 가진 역사는 의외로 짧다. 대학로를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로 만든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역시 연극 무대인데,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바는 대학로에 본격적으로 극단과 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주로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표1) 그렇다면 이전의 대학로의 성격은 어떠했고 또 지금과 같은 문화거리로 바뀌게 된 사회적 계기는 무엇일까 ?

대학로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거리로 떠오르게 된 시점을 필자는 80년대로 본다. 이전까지도 대학로는 인근이 대학 밀집지역이라 그 영향을 받던 거리이기는 했지만(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자리인 마로니에 공원과 학림다방은 6∼70년대 대학가의 문화 공간의 상징이기도 했다), 거리 자체의 사회적 정체성을 논할 뚜렷한 특성은 없었다. 대학로가 문화거리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부터인데, 당시 군사정권은 정권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일련의 문화적 조치들을 취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교복자율화', '국풍81'과 함께 대학로의 주말 축제 거리 조성이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지금의 산업디자인포장센터가 있는 곳까지 당시 대학로 거리는 주말마다 교통이 통제되어 그 갇힌 공간 안쪽은 거리 축제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이 조치가 비록 정권의 자유주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조치이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대학로는 축제의 거리, 문화의 거리, 자유 공간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즈음 대학로의 주말은 학교 울타리를 빠져 나온 고등학생과 제한되었지만 유일한 거리의 자유 공간을 즐기려는 대학생들, 그리고 인근의 젊은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무정형의 놀이 공간을 형성했다. 거리에 펼쳐진 술판과 이름도 없는 아마추어들의 거리 공연이 대학로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대학로는 1987년을 전환점으로 또 한번의 정체성을 변화를 경험하고, 주말 거리 통제도 이즈음 해제되어 버리는데, 이는 당시의 정치적 흐름의 영향 때문이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대학로는 신촌의 백양로, 종로 파고다 공원과 함께 몇 안 되는 '거리 정치의 공간', 데모의 거리로 변했다. 모여들기 용이한 공간적 특성과 공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미지를 가진 대학로의 상징성, 그리고 인근 주요 대학의 밀집 등이 자연스럽게 대학로의 기능을 시대적으로 변용 시킨 것이다. 1987년 백기완씨의 대통령 후보 출마와 1991년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전국적 저항의 시위의 진원지가 되었던 곳이 대학로였다. 그러나 시대의 파고가 임의적으로 대학로를 변형시켰듯 정치운동 시대의 쇠퇴는, 이 당시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던 소극장들의 밀집과 맞물려 90년대 문화 인프라로서의 대학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로에 소극장이 본격적으로 밀집되기 시작한 것은 <표 1>에 나타나듯 1992∼1993년경인데, 이 시기는 연극뿐 아니라 문화의 전 영역이 사회적으로 그 위상이 제고되던 때이다.

표 1 설립 시기

설 립 시 기

분 포

a 1 : 1980-1985

b 2 : 1986-1990

c 3 : 1991-1996

10%

20%

70%


1980년대를 '정치의 시대'라 한다면 90년대는 '문화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념 대립의 붕괴 및 사회주의의 몰락, 국내 정치운동의 쇠퇴가 작용했고 직접적으로는 국내 문화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 집단의 관심 영역의 이동이 작용했다. 정치에서 문화로의 관심 영역의 이동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때 전체적인 사회 활동이 이슈 중심에서 일상생활 중심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문화 전 영역을 급속히 활성화시켜 대중음악, 영화 등의 장르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향유의 폭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소극장의 밀집 시기가 이 때에 맞춰진 것은 연극 역시 이러한 시대 흐름에 무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이전 시기부터 연극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현재의 대학로 형성의 기본적인 동력이다. 그러나 연극이 우리 사회 일부의 향유물에서 본격적인 대중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때는 이 때로 추정해도 무방할 것이며 그 근저에는 문화 전체의 사회적 위상 변화가 동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성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문화계에서 이전에도 현재도 타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자-마이너러티이며, 이런 위치는 연극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대학로 형성이 기업이나 정부의 투자 없이 거의 연극인들의 개인적 노력에 의존케 했다. 이것은 90년대 이후 극장들이 대극장은 없고 모두 영세한 소극장으로 나타난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다(표 2 참조). 표에서도 확인되는 바와 같이 90년대 형성된 소극장들은 80년대 생긴

극장들에 비해 시설과 규모에서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수적으로는 90년대에 생긴 소극장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들의 영세성은 다음에 논할 것과 같이 작품과 공연문화 관행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영세성과 그 효과

대학로 극장들의 규모는 실무대 공간으로 보았을 때 최소 7평부터 최대 60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10평에서 20평 사이가 대부분이다. 좌석은 1백∼2백 석이 많은데 대부분은 1백 석을 전후로 분포돼 있다(표 2참조). 이러한 무대공간과 좌석의 협소함은 작품의 표현 한계를 직접적으로 제약할 뿐 아니라 제작비와 가용 인원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극단 운영의 영세성이 악순환 되도록 하는 요인이다. (대관료=표3 참조).

무대공간평수/평균좌석수

분포

a: 1:7평 -20평/100석

50%

b: 2:21평 -30평 /130석

20%

c: 3:31평-이상/130석 이상

30%

따라서 연극의 대중성을 직접 제약하는 물질적 조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품과 연출에 따라 필요한 무대 공간은 다를 것이므로 이 문제는 일괄적인 기준으로 잴 수 없지만 역동적인 동선과 웅장한 스펙터클을 연출하기에 10여 평의 공간이 주는 한계는 명약관화하다. 아직 대극장의 이용이 이런저런 이유로 문턱이 높고 대부분의 극단이 소극장을 이용해야 하는 실태임을 생각하면 소극장의 영세성은 연극계 전체의 영세성과 무관하지 않다.

위 조사를 토대로 한 작품에 드는 비용/수익을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 작품의 공연 기간을 두 달로 잡고 대관료를 일 30만원으로 보았을 때 대관료 총액은 약 1,650만원이다. (일주1일 휴식 일은 일반적으로 대관료의 50퍼센트를 지불하는 것이 관행이다). 거기에 배우 및 스태프를 합하여 10명의 인력을 기준으로 연습기간 및 공연 기간 동안의 식비와 베테랑 배우의 캐스팅비를 합하면 3천만 원은 쉽게 넘긴다. (무대에서 직접 공연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베테랑을 제외한 일반 단원들과 스텝들에게는 개런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극히 소액이다). 여기에 다시 무대 장치와 소품을 알뜰하게 생각해서 1천만 원 이하로 잡아도 여타 포스터 제작과 홍보에 드는 경비와 함께 볼 때 약 4천만 원 이상은 가장 기본적인 비용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한달 25일간 1일 1회, 주말 2회 공연할 때 총 공연 횟수는 66회가 되는데 1백여 석 남짓한 좌석에서 전회 매진이 된다면 수익은 6,600만원이 된다,(일반 유료관객은 1만 5천 원이 보통이지만 초대권 및 할인권이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하면 1만원으로 보아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 없다. 평균적으로 좌석의 70퍼센트가 찬다면, 이 정도도 대성공인 경우일 텐데, 이 경우 수익은 4,600여 만 원이 된다. 한마디로 흥행에 대성공을 했을 경우에 제작비만을 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비용 대비 수익률이 이처럼 저조하기 때문에, 공연 기간이 두 달 이하면 계산상으로 제작비도 충당하기가 힘들게 된다. 이 같은 수익 구조는 자연히 공연 기간을 장기화시키며 이 장기화로 두 달 공연을 위해 두 달 연습을 한다고 해도 일년에 한 극단이 정상적으로 2편 이상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힘들게 된다. 결국 일반인들에게 연극 관람료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인식되면서도 정작 연극인들의 경제적 여건은 별반 나아지는 것이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실태는 극장의 소유 형태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다. 극단이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경비 중 가장 큰 부분인 대관료가 다른 극단과는 달리 낮게 계산될 수밖에 없으므로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극단과 극장이 분리되어 있고 극단은 매번 공연 때 대관의 형태로 공연을 가진다. 이 경우 쉽게 극장의 상업적 고려 때문에 대관료가 치솟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쉬운데 사정은 그렇지만도 않다. 극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극장측에서도 상주인원이 급여와 여타 경비를 합한 월 유지비가 적게는 수 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므로, 대관료 대비 극장측의 수익구조도 극히 영세한 편이다. 결국 영세한 소극장을 둘러싼 어떤 관련 주체도 영세성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연극이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해도 주체들의 최소한의 생활과 제작비도 충당치 못할 구조에서 어떤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배고픈 예술로서의 연극이 어제오늘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것이 미덕이 될 수는 없고 오히려 시급한 해결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해결이 오직 개개 극단의 노력에만 달려있다면 그 역시 요원한 일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예술성과 상업성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딜레마가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은 지금 현재도 이미 대학로 깊숙이 침잠 되어 가고 있다. 즉, 극장이나 극단들이 생존의 자구책으로 상업성에대한 고려를 상대적으로 더욱 비중을 두어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 같은 고려는 말 그대로 의미에서 작품의 통속성이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근래 대학로 소극장가에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한 포르노 연극이라 할 수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점차 기존 극단들 사이에도 가벼운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과 볼거리로서의 '성'이라는 소품에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 새로운 흐름과 새로운 소외: 포르노와 대학로

1일 대관료

분 포

a 1:10-15만원

a 2:15-20만원

a 3:20-25만원

a 4:25-30만원

a 5:기타(30만원이상)

5%

10%

10%

25%

50%

표 3 대관료


근년 들어 대학로의 가장 큰 가시적 변화를 들라면 단연 소위 '포르노 연극'의 성행과 기성 연예인들, 특히 코미디언들의 대학로로의 활발한 진출일 것이다. 이들의 흥행성과는 기존 극단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 모 극단이 일련의 포르노 연극을 통해 소극장 수 개를 인수한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닐 정도다(일반적인 극단들의 공연이 1일 1회. 주말 2회 공연인데 반해 포르노 연극의 경우 보통 1일 6회를 상회한다). 진지함을 기피하는 다수 관객들이 취향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직접적인 영향도 있을 터인데. 기존 극단들 속에서도 조금은 '벗기고', 조금은 '웃기지' 않고는 작품이 안 된다는 묵시적 동조와 강박관념이 퍼져 가는 듯 하다. '벗기고 웃기는 것' 자에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이 자리는 아니므로 그런 내용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의 관심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작품 내적인 요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작품 외적 여건에 의해 강제되거나 혹은 조성된 것인지는 문제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포르노 연극은 포르노 연극이 아니다. 과장되게 야한 선전문구와는 달리 실제 공연 내용은 포르노를 기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연이 성행하는 것은 포르노에 대한 관객들의 음성적 기대 심리와 그에 영합한 적절한 홍보 전략의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음성화되었을 때 문제는 더 커지기 마련인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음성적일수록, 그리고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매스컴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그 흥행은 더 신장되고 있다. 오히려 포르노 연극을 공연하는 이들은 사회적 혹은 연극계 내에서의 질타를 적절한 선전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연극들의 '공공연한 음성적 성격'(?)은 그 공간성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들이 상영관이 대로 주변의 극장인 경우는 없다. 바탕골소극장과 문예회관 소극장을 잇는 골목을 중심으로 그 뒤편들 대학로에서도 상대적으로, 후미지고 영세한 공간이 이들의 공간이다. 낮에 포르노 공연을 관람하고 싶은 관객들을 생각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 공간들이 상대적으로 보다 영세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상업적으로만 본다면 극장측에서는 이들이 반가운 손님이다. 기존 극단에 비해 임대 기간과 수익이 모두 높은 우량 임차인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학로 소극장들의 영세성 문제의 효과는 '배고픈 예술가'의 이미지 양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정체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르노 공연의 흥행 성공이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이 이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성인문화에 대한 수요는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에 따라 필연적으로 고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연극의 '라이브'라는 성격이 복제매체문화에 물린 이들의 잠재적 수요를 더욱 고양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성인문화의 확산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이 글의 관심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문화의 확산 필연성을 인정하더라도 문화 거리로서의 대학로의 정체성 역시 이와는 별도로 인정되고 보존될 가치가 있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기왕에 포르노를 포함한 성인문화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대학로 정체성을 창출했던 연극계 역시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임을 인정한다면, 이들을 무제한의 시장경제원리에 맡겨두는 것은 양측의 내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영세한 구조에 의한 생존경쟁이 거리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이 구조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지원 및 양문화의 구별과 공존을 위한 고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현실적으로는 이미 등장한 포르노 전용관의 양성화 방안도 차제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포르노 연극의 등장과 성행은 기존 연극계에 대한 창조적 자극이 되기보다는 상호간의 소외 요인이 되고 있다. 영세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내재적 갈등 중 하나가 형태화 되어 나타난 모습이다.

표 4 대관료

소유 형태

분 포

극장주 소유 6

극장주 임대 8

극단 소유 1

극단 임대 6

5%

10%

10%

25%


정책적 지원 아끼지 말아야

대학로의 전체적인 대 사회적 이미지는 아직 문화의 거리다. 여기 오면 사람들은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고, 거리의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언제나 풍성한 연극 무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격렬한 갈등이 이 거리의 내부에 있다. 자정 이후의 대학로는 심야 폭주족들의 새로운 메카이고 대낮의 이 거리는 라이브 포르노에 대한 기대 심리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어디나 형성되기 마련인 유흥업소의 확장도 눈부실 정도다. 어린 삐끼들(술집 호객 점원)은 대학로 심야 문화의 새로운 주체들이다

대학로는 인사동과 더불어 서울에서는 드물게 문화거리로 그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는 공간이다. 문화적 저력이 한 사회의 근본적인 자산임이 인정된다면 대학로도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인프라로 먼저 인식되어야 한다. 많은 예술가들의 자생적 노력으로 어렵게 형성된 대학로라는 문화 공간이 사회적 무관심과 상업적 경쟁 속에서 그 정체성이 해체되어 간다면 이는 사회전체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학로의 소극장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 공간의 성격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 오히려 고집스럽게 예술성을 견지해왔던 주체들에게서는 탈대학로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비단 문화예술만이 아니라 여타 영역에서도 이제까지 기초와 토대가 되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반이 튼튼하지 못하면 어떤 화려한 건축물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연극은 모든 연행 예술의 기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대학로는 연극뿐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많은 예술인들의 노력에 의해 다양한 장르들이 교차하는 종합적인 예술공간이다. 대학로의 문화 특구 지정은 그런 의미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시도다. 그러나 이 지정이 전시행정의 또 다른 예가 되어서는 안되며, 명실상부하게 그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오늘의 대학로를 있게 한 주체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특정 주체뿐 아니라 거리 환경 자체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몇 년 후 대학로가 어디에나 흔한 또 하나의 유흥가가 될 것인지 현재의 정체성을 확대 발전시켜 우리 사회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될 것인지는 대학로 거리의 각 당사자 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관심에도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