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국민의 문화권(文化圈)을 찾자. 문화권과 도시문화환경 조성
문화친화적 도시정책으로 문화복지 실현을…
임학순 /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문화친화적 도시정책의 이념과 가치
최근들어 문화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자는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 사업은 문화시설의 설치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으며, 도시정책과 문화정책의 연계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신도시 개발지역에는 사람과 주택은 늘어났으나 이에 걸맞는 문화생활 여건은 조성되지 못하였다.
이 글에서는 문화친화적인 도시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접근 방법을 살펴보고, 앞으로 도시의 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문화친화적인 도시정책이란 도시의 제반 정책을 문화적 시각 cultural perspective에서 접근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도시의 개성과 역사를 살리고, 도시민의 문화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며, 아름답고 여유있는 도시 공간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그동안 기능과 경제 중심의 도시개발 방식을 지양하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인간주의적 도시개발 방식을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 Franco, Bianchini가 사용하는 'Cultural Planning Approach' 개념이나 일본도시의 '종합적인 도시 만들기 사업'가 '행정의 문화화' 개념도 기본적으로는 문화와 도시의 제반정책을 연계한 통합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친화적 도시정책은 크게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는 문화복지적 관점이다. 이것은 공공재로서의 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주민들의 문화권 Cultural Right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복지 서비스는 지역이나 계층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문화적 형평성을 추구한다.
둘째는 도시활성화 관점이다. 이것은 문화친화적 도시건설로 '지속 가능한 도시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도시환경은 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이미지 및 정체성을 높여 도시마케팅 요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지역내로의 투자 유도, 고용 및 직업 창출, 소득 효과, 관광자원 효과 등으로 인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창조성을 높여 도시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62일의 전시행사 기간 동안 입장객이 165만 명에 달했고, 행사 경비는 77억 원이 소요된 데 비해 수입은 91억 원으로 흑자운영을 하였으며, 생산유발 2,288억 원, 소득유발 251억 원, 고용유발 6,104명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에는 주로 도시민의 문화활동에 초점을 두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정책을 경제발전과 도시활성화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도시 사례로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독일의 루르와 프랑크푸르트, 프랑스의 렌느와 몽펠리아, 영국의 글래스고우 등을 들 수 있다. 뉴욕, 볼티모어,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달라스 등 미국의 도시들로 도시정책을 문화정책과 연계하여 추진함으로써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도시개발과 문화시설 설치 연계 방안
문화시설을 포함한 복합개발 전략
문화시설은 근린생활권 단위의 문화복지 수요와 이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설치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이 보다 쉽고 가까이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생활권 단위에서 문화시설이 설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택지개발, 도시재개발, 주택단지 건설사업 등 도시개발 사업에 문화시설 설치계획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계획 단계에서 토지이용 계획을 수립할 때 문화시설 용지를 별도로 책정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도시계획이 시설의 설치 기준 및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는 도시계획 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여 문화시설의 설치 및 결정기준을 적극적인 개념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문화친화적 복합 개발방식 the mixed-use development 이란 일정한 지역을 개발할 경우 상업시설이나 주거시설 외에도 문화시설에 관한 계획을 포함하는 접근 전략이다. 이 경우 문화시설은 지역주민의 문화생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지역의 상업시설과 연계되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예술을 포함한 복합개발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 정부, 문화예술조직, 개발업자, 기업들 상호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발 사례로는 일본의 후쿠오카 해안 모모치 개발 사례, 로꼬 아일랜드 사례, 동경의 타마 뉴타운 사례, 미국의 볼티모어 개발 사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개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후쿠오카 시는 해안 모모치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989년에 새로 작성한 토지이용 계획에 문화시설 설치계획을 포함시켰다. 이 계획은 국제화, 정보화의 진전과 시민의식의 다양화 등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삶, 정보, 문화가 연계된 도시를 만들고자 하였다. 신토지이용계획을 살펴보면, 전체 개발면적 1,383(천㎥)은 주택용지(21%), 교육시설 용지(8%), 정보문화시설용지(9%), 정보업무시설용지(6%), 스포츠 및 레크레이션 시설용지(12%), 공공용지(31%), 기타 시설용지(3%)로 구성되어 있다. 정보문화시설 용지에는 후쿠오카 시 종합도서관, 박물관 후쿠오카 기념탑, 국제교류시설, 방송관련 시설이 들어서고 있는데 후쿠오카 시립종합도서관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문화복지 복합공간으로 현대 도서관의 새로운 상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볼티모어 시도 문화, 레크레이션 기능과 상업 및 주거기능을 연계하여 항만재개발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시도 해변 지역을 개발할 때 해양박물관, '전통항구의 재건', '아이맥스 영상극장', '일류호텔' 등이 포함하였으며, 패션과 디자인 상점을 유치하려고 하였다. 심지어는 레스토랑의 유형과 실내장식, 메뉴, 개업시간까지도 조정하였다. 또한 로테르담 시는 현대예술박물관, 새로운 예술전시관, 새로운 국립건축원 등의 주변지역을 '문화의 트라이앵글'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문화지구 도시개발 전략
도시개발과 문화시설의 연계방안의 하나로 문화지구 혹은 예술지구를 통한 도시환경 조성전략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지구'라는 개념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로서 아직 그 개념과 모델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며, 법적으로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문화지구는 문화적인 환경을 보호 육성하고 문화적 특성을 창출하기 위한 도시개발 방식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지구는 도시의 '특정지역'에 문화시설과 문화업종을 집중 육성, 적극적으로 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정책적인 지원을 강화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특정 지역'이란 문화자원이 집적되어 있는 기존의 도시지역과 새로 신도시를 개발할 경우 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계획한 지역 모두를 의미한다. 신도시 개발의 경우, 토지이용 계획에 문화시설용지를 일정비율 포함시켜 조성할 수 있다.
문화지구를 조성하는 데는 인센티브 접근과 규제 접근 방법이 모두 활용된다. 인센티브 접근은 문화지구 조성 목적에 적합한 시설이 들어설 경우에는 행정적·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문화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건축규제 완화, 재정 지원, 세제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규제적 접근이란 문화지역의 문화적 환경과 예술적 경관을 유지·조성하기 위하여 문화환경을 저해하는 시설이나 업소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특정 개발행위를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도시들은 예술시설이 집적되어 있는 도시 지역을 활성화 revitalize 하기 위하여 예술지구를 조성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예술지구를 예술과 경제를 연계하여 조성하였으며, 예술지구내 상업시설에서 나온 수익금을 문화환경을 조성하는 데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 South Street Sea, 달라스 Dallas Arts District, 클리블랜드 Playhouse Square, 피츠버그 Downtown Cultural District 등은 특정지역을 문화지구 Cultural or art districts로 지정, 토지이용, 세제혜택, 건축규제 완화, 재정지원 등 각종 정책적인 인센티브와 규제를 통하여도 도시의 문화환경을 조성한 바 있다.
이러한 문화지구 도시개발 접근은 다음 몇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문화도시'라는 강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도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의 경우에는 30개 이상의 박물관을 건립하여 'Museum Quarter'를 개발함으로써 폭력, 돈 포르노, 병든 도시 이미지에서 문화센터로의 이미지로 바뀌었으며, 역사적으로 알려진 Romerberg 지역을 재개발하여 22개의 박물관, 80개의 갤러리, 17개의 공연장, 4개의 콘서트 공연장 등 문화빌딩군을 형성했다. 둘째, 문화지구 지역에 문화시설과 문화산업이 집적됨에 따라 지역 주민에게 문화복지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력요소로 작용한다. 셋째, 문화지역은 그 지역의 매력을 증대시켜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지가상승, 투자 유도, 주민소득 향상, 고용창출 등 지역에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넷째, 도시공간의 문화적, 예술적 공간을 조성하여 도시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창출한다.
이러한 문화지구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지구에 관한 사항을 법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가칭 '문화환경조성조례'를 만들어 각종 정책적, 재정적 지원 근거와 문화지구 조성계획 및 방법에 관한 사항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문화특구 지정 및 조성계획 수립 시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전문가, 이용자, 개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상을 통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지향적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
문화지구는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사업과의 연계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문화지구 지역에 문화시설이 건립되고, 거리공간이 예술적으로 조성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기획 프로그램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획 프로그램은 문화특구 지역을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거리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역의 개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특성을 살린 문화지구를 조성함으로써 도시의 이미지 형성 프로그램 C.I.P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도심에 이러한 문화지구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문화지구 조성에 따른 문화적, 경제 사회적 파급효과를 분석하여 그 타당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지구위원회를 구성하여 문화지구 조성 기본계획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 기본계획안에는 문화지구 조성목적, 기본구상, 실태분석, 토지이용계획, 거리계획, 시설설치 계획, 광장 등 오픈 스페이스 계획, 문화산업 진흥계획, 문화지구 운영계획, 문화경관계획, 건축물에 대한 계획, 재원조달계획, 재정 지원 등 인센티브 계획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 인사들의 도시정책 과정 참여
지역주민의 문화복지 수요가 커지고 문화예술의 가치가 확대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 사업을 문화적인 시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부문의 인사들이 도시정책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문화계획을 지속적으로 수립하고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화시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환경 조성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며, 지역주민과 문화예술 부문, 그리고 민간기업 등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문화 친화적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할 경우에는 문화예술과 경제를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