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 한국의 문화이미지를 논한다

한국의 문화이미지 창출을 위한 노력




일 시 : 1996년 6월 17일

장 소 : 문예진흥원 회의실

사 회 : 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 본지편집위원)

토론자 : 김순규(문화체육부 문화정책국장), 조흥윤(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유한태(숙명 여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이중한 : 먼저 이 좌담을 마련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인 추세로 보자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한 나라의 '문화이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경제를 포함한 모든 상품의 해외 진출에는 그 나라의 문화이미지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중시하여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해외홍보위원회'를 설립한 바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서 그 성과가 미미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소로망이라는 외국의 저명한 학자가 쓴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책이 범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인들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한국의 경제 발전은 한계를 맞았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문화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기로소망은 그 저서를 통해 한국의 문화이미지 부재론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사례들을 예시했더군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반응입니다. 이미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로 전세계에 퍼져 있는 그 책의 한국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박도, 해명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여지껏 우리 국민 스스로가 문화이미지를 방치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해서 이번에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부처인 문체부 관계자와 또 이 방면에 식견이 있는 권위있는 학자들을 모시고 과연 한국의 문화이미지를 창출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문화체육부(이하 문체부)의 김순규 국장님부터 한 말씀하시죠.

김순규 : 사실 우리나라의 뚜렷한 문화적 이미지가 없다는 현실에 대하여 이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 국민은 다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연상시킬 만한 특징적 문화이미지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문화 선진국의 경우 어떤 특정한 상징물로 기억되는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지요. 가령 일본의 벚꽃, 후지산, 파리의 에펠탑, 미국의 자유여신상 등, 외국인들에게 상징적으로 부각되는 것이 많을수록 그 국가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집니다. 우리가 아프리카나 중동의 어떤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 나라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뤄왔고 88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지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에 비해 그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것일 뿐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1993년도의 해외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응답자의 30퍼센트, 유럽인은 33퍼센트가 한국을 잘 모른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중국, 일본은 물론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대만이나 싱가폴보다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결과였습니다. 더욱이 호감도에 있어서는 한국을 살기좋은 나라, 친절한 나라, 가고 싶은 나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조사대상 국가중 하위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조사에 응한 외국인들의 상당수가 우리나라를 상당히 폐쇄적이고 경제적 목적에 치중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전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우리나라는 산업이나 경제면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올림픽 개최 등 긍정적인 이미지도 있으나 한국전쟁, 과거 독재정치, 격렬한 학생시위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외국 언론에 너무 많이 비쳐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서 상품 경쟁력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는 '메이드인 저팬'보다 10퍼센트 이상 뒤지는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 제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각적인 문화홍보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례로 문체부에서 지난 3월 발표한 21세기 국가 이미지 일류화를 위한 CI작업도 같은 맥락이지요. 시각적 표현 형식인 CI Corporate identity는 주로 기업의 홍보전략으로 쓰여왔는데 문체부에서는 그것을 국가 이미지 홍보 양식으로 활용하려는 것이지요. CI로 양식화할 수 있는 국가 이미지로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문체부에서는 우리 고유의 특징적인 것을 선정, 집중적으로 반복 홍보함으로써 외국인들에게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중한 : 국가 이미지 홍보라는 것이 그 범위가 워낙 방대한 것이라서 접근이 쉽진 않겠군요. 국가 이미지란 첫째, 국민적인 차원에서 국민 모두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일 텐데요. 관광지에서의 불친절도 국가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둘째, 우리나라는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쇄국주의, 6·25, 독재정권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경제 발전이 값싼 상품, 값싼 노동력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은 워낙 잘 잊어버리는 습성을 지닌 민족이라서 그런지 88올림픽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잘 치렀으면서도 그것을 국가 이미지의 하나로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겠지요.

셋째, 전통문화를 얼마나 잘 지켜왔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전통을 지키고 보존해 나가는 것은 결국 국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동안 전통을 무한정 훼손하고 외면해 왔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에 관해선 상당히 많은 부분을 외국인들이 우리 국민보다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죠.

넷째, 새로 만들어내는 이미지, 새로운 국가적 홍보물의 필요성입니다. 예컨대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문화유산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과도 같이 현대도시로서의 이미지, 중소도시로서의 이미지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문체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만, 문체부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문체부 영역 내의 일이고 보다 더 본질적이고 국민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흥윤 교수께서 이 문제를 좀더 새롭게 정리해 주시죠.

조흥윤 : 한 나라의 문화 이미지를 정해서 알린다는 것은 무척 방대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첫째,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과연 어떠한 문화이미지를 찾아내야 하는가에 대해선 몇 가지 역동적인 관련을 지어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 문화 요소는 대개 종교적인 것이나 민속적인 것, 혹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조합되고 생성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에겐 아직 누구나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문화이미지가 정리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기도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이해 부족이나 공감대 형성의 문제로 인해 그간 문화이미지를 저해해 온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사항들을 감안한 상태에서 정리작업을 해야 할 텐데, 결국 홍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학술적인 문제로 귀착됩니다.

이중한 : 두 분께서 이제 다소나마 길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유한태 교수께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유한태 : 오늘의 주제가 한국의 문화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하는 것인데, 사실 이 문제는 무척 광범위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는 서양의 문물과 혼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진 못했던 게 사실이지요. 예술이란 개념을 정리하자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또한 문화이미지를 논할 때에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까지 포장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범위가 훨씬 더 방대해지겠지요.

중요한 것은 문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가시적인 문화이미지를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방법론에 있어서 갑론을박의 소지가 상당히 많겠지만 오늘 토론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이중한 : 마침 의미있는 정리를 해주셨군요.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국가의 문화이미지에 관한 공개토론의 자리가 전혀 마련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나마 이번 좌담회가 최초의 시도라고나 할까요? 워낙 막중한 사안이니 만큼 좌담회 한번 개최되었다고 해서 당장 어떤 명쾌한 해답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각계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관점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문제를 되짚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보다 발전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은 추후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도출되리라 봅니다.

우선은 한 사람의 외국인에게라도 우리 한국을 좀더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금년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 관광을 오면 서비스도 서비스이지만 무엇보다도 볼 게 없다는 겁니다. 관광객들의 주장은 이러한데 국내 여행사들 입장에선 그들을 서울에서 3일만 가이드할 수 있다면 두 배의 외화를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3일을 안내할 만한 관광소재가 없다는 한탄이지요. 서울에선 덕수궁, 비원, 남산 등 하루만 안내를 해주면 더 이상 소개할 곳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이것은 이미지 이전에 구체적인 경제 손실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순규 : 그렇습니다. 한 국가의 이미지에는 기술, 경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문화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그 문화이미지가 설득력을 가져야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고, 또 호감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산업현장에서의 국가 경쟁력 확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 한국의 문화는 5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것입니다. 가령 사물놀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양식입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 우리 사물놀이의 진정한 가치를 알릴만한 수단이 제대로 강구되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이면서도 서양인들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2천년 시드니올림픽 종목으로 태권도가 채택된 마당에 우리가 태권도를 어떻게 이미지화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가령 중국의 소림사와 같은 태권도 사원을 세운다든가 해서 태권도의 정신과 무도를 체계적으로 알리고 문화상품화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요.

조흥윤 :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 저는 김국장님과 조금 의견이 다릅니다.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어떤 것을 내놓아야 하는가가 막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지만 사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혼란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이 한국문화의 특징입니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전란을 겪어오면서 우리 민족이 꿋꿋이 버텨온 것도 국가적으로 위기가 닥치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국민적 응집력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88올림픽을 잘 치른 것은 당시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발산해내는 신명과 조화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일단 어떤 계기가 생기면 엄청난 응집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영구적으로 끌어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거지요.

오늘 토론에서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중한 : 무질서의 추진력이 곧 신명이 될 수 있는데 요는 그 신명을 한국의 문화이미지와 과연 어떻게 연결짓느냐 하는 것이지요.

김순규 : 조교수 말씀은 신명과 조화, 역동성, 그 이미지를 비주얼화하는 데 있어서 그 대상을 무엇으로 하느냐 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대상을 우리 한국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령 문묘제례악이 있습니다. 원래 문묘제례악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소멸되었고 지금은 한국의 유교문화가 정착시킨 세계 유일의 의식입니다. 이 문묘제례악이 공연물로 지정되면 충분히 한국의 문화이미지의 품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문화에는 세계에서 고유한 독창성을 띠고 있는 것, 그리고 호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조흥윤 : 문묘제례악도 좋지만 우리 농악도 문화이미지 상품으로는 적합한 것 같습니다. 농악의 이미지는 미래적이고 단합적입니다. 조화와 신명도 있지요. 우리 문화의 특성을 찾으면 얼마든지 훌륭한 게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차원적으로 엮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우리나라에 데려와서 보여줄 게 없다고 하지만 사실 보여줄 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서울만 해도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둘러보는 데 하루가 걸리고 남대문, 동대문시장만 둘러보더라도 이틀 정도는 걸립니다. 그만큼 반응도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중한 : 저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가령 한국의 시장 이미지를 과연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물론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순규 : 그런 점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은 다섯 가지를 가지고도 열 가지로 포장해서 세일을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 가지를 가지고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의 특성과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몇 가지를 지정해서 집중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문묘제례악이 지정된다면 공연물, 비주얼화, 비디오화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방법을 들 수 있겠지요. 이 과정에서 문묘제례악에 쓰이는 각종 복장, 제례도구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 문화의 깊이를 해외에 알리는 간접효과도 볼 수 있겠지요.

유한태 : 한 나라의 국가 이미지를 얼마나 알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문체부에서는 기업의 경영전략인 CI라는 용어를 썼는데, 그것을 정부 부처에서 차용했다는 것 자체가 큰 발전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가시적 이미지를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가. 어떻게 시각화시킬 것인가 하는 방법적 측면에서 저는 태극의 모티프를 활용했으면 합니다. 차별화란 과연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상품의 질은 점점 평준화돼 가고 있습니다. 부가가치는 결국 디자인이 결정합니다. 또한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미적 가치입니다.

문화를 포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양한 아이템이 있을 수 있겠지요.

이중한 : 그러면 문화 포장의 아이디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흥윤 : 한 가지 전략만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다변화된 전략을 세워야겠지요.

김국장님이 말씀하신 문묘제례악은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신기하겠지만 지속성이 있는 것은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명을 좋아한다지만 무당이 우리나라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무속은 문화의 한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지극히 낮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신토불이를 주장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령 우물가에서 정한 수를 떠놓고 기도하면 푸닥거리한다고 비난하기 일쑤지만 외국 종교가 들어오면 그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일본의 문화는 구심,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민족성이 있습니다. 가령 한을 푼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풀어버린다, 던진다 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우리 국민들의 독특한 기질로 인해서 문화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내세우기에는 용이하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이중한 : 70, 80년대초 일본이 영국시장으로 진출하려 했는데 저항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재계가 돈을 모아 영국에 '일본 주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가 중심 블록을 모조리 빌려 일본 시장을 구미고 거기에서 상품문화 페스티벌을 연일 개최했다고 합니다. 그 효과가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이런 대담한 행동프로그램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 절실한 것으로 느껴지는데 우리는 아직 그 내용이 빈약하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들은 어떠십니까?

조흥윤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는 하나하나 다 훌륭합니다.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들 가운데 한국문화의 특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답변해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축제, 잔치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명나게 잘 논다는 뜻이지요. 물론 우리는 음주가무라고 해서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외국인들 눈에는 특이하고도 좋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이중한 : 외국인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도 있습니다. 가령 굿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는데 독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굿을 한국의 이미지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서로 내세우는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요.

조흥윤 : 앞서 언급했던 문화이미지를 저해하는 요소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광문제만 하더라도 현장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이념이나 가치관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편파적인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주된 가치관이 없다는 것이지요.

김순규 : 한국문화의 실체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견이 엇갈립니다. 우리 문화 요소에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며 역동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자학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것을 이미지화 한다는 차원에서는 남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급적이면 좋게 보여지는 것, 국가라는 총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 보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5천년 한국문화가 이어져 오는 동안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 문화의 특성이나 장점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문자문명은 세계적으로 우수합니다. 한글, 팔만대장경, 왕조실록, 금속활자 등, 이 네 가지는 올림픽으로 치자면 금메달감입니다. 세계문명사에서 우리나라는 훌륭한 문자문명을 소유한 나라입니다. 그것을 잘 정리하면 한국문명의 깊이나 폭을 알리는 이미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가진 것들 중에서 국제사회에 내놓을 만한 품목을 골라 현대적 기법으로 포장해서 내보내는 것이 곧 문화이미지가 되겠지요.

이중한 : 이제 상당한 접근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방법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이미지 구축에 있어서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홍보전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할 터인데 과연 문화이미지 홍보 예산이 배정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고, 배정된다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예산 낭비만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금속활자는 우리가 전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인정받는 단 한 가지로 세계 인쇄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자신은 금속활자에 대한 이미지는 개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문체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김순규 : 사실상 기업의 CI작업에도 상당한 돈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문화의 CI에도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이미지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령 전통공연에서 창극 중 어떤 특정 작품을 지정할 때 대표성이라든가, 작품의 완성도, 공연단의 수준 등에 세계일류급으로 높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중한 : 국가 상징물인 태극기를 이미지물로 설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기본색은 빨강과 파랑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빨강과 파랑은 무당색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색을 무엇으로 정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여기에 세련성이 또 하나의 문제로 등장합니다. 태극의 빨강과 파랑색도 다 같은 색이 아니고 찍을 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련성 문제가 부각되는 것입니다.

유한태 : 색깔에 대해 조사해보니 청홍(靑紅)은 태극 문양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왔습니다. 무당색이라는 건 편견입니다. 색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조흥윤 : 외국인이 본 한국문화의 특징을 조사해서 문화이미지 작업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김순규 : 그 문제는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한 외국인이라든가 각국의 인사 중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중한 : 대상이 되는 견본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김순규 : 그렇습니다. 올해 중 대표적인 것을 선정하고 시각화 작업에 따른 색상이나 디자인, 이미지 등 각론적인 것은 별도로 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중한 :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각디자인 관련 기관으로 디자인포장센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문화이미지 상품 창출에 대해서 특별히 진행되는 사항이 없습니까?

유한태 : 지금으로선 특별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아무것이든 응용할 기본소재만 있으면 활용해서 쓰고 있는데 우리는 태극기를 너무 신성시만 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 등지에선 국기 문양으로 침대도 만든다고 하고, 모자 , 바지, 티셔츠 등 온갖 이미지가 만들어지지만 우리는 민족정서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본 한국문화의 특징에 태극기는 빼놓을 수 없는 모티프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것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신성시해왔습니다. 문화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것을 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의 관점에도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조흥윤 : 우리 문화를 체계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소재가 너무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농악이나 국악, 사물놀이 등을 빼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공연도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공연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농악이나 국악, 사물놀이 등의 공연장에서 소리와 율동이 어우러지며 우리 전통음식의 소개도 곁들여진다면 보다 효과적이겠지요.

이중한 : 이제 대충 접근이 이루어진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한 분씩 오늘 토론의 결론을 정리해 주십시오.

김순규 :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국가 이미지라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적 역량이 충분하면서도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월드컵을 단기 목표로 해서 우리문화의 특징적인 면을 골라 체계적으로 알려야 할 것입니다. 88올림픽에서는 경제적 성장을 보여줬지만 월드컵에선 우리문화의 잠재력을 내외에 천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문화이미지가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문체부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입니다.

유한태 : 이런 좌담회가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오늘 최초로 국가의 문화이미지 문제를 공론화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경제 여건이 평준화되면 결국 최후의 경쟁력은 정신적인 것, 즉 문화가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을 최대한 개발, 확대,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문화이미지는 계승, 발전되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의 다양성 중에서 세계와 조화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노력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것에 자부심을 갖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것을 재발견할 줄 아는 안목도 갖춰야 합니다. 이 모든 걸 가장 앞서 선도해야 할 분야가 교육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흥윤 : 문화란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를 대하는 시각이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문화계는 사람도 많고 필요한 역할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흩어져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뜻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중지를 모아서 목소리를 높여나갔으면 합니다.

이중한 : 정보사회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문화의 특수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우리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공감하고 있을 줄 압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문화에 대한 비하적 요소가 많은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야 합니다. 그 힘이 모여서 한국의 문화이미지가 세계문화 속에 우뚝 자리잡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오늘 토론에 참석해 좋은 의견들을 들려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