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현장을 찾아서

일반화된 전통자기로 세계화의 발판을 ...

- 전통도자기의 맥을 잇는 이천 수광리




이장섭 /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선임연구원

흔히 여주. 이천이라고 부른다. 서울에서 보면 이천. 여주라야 맞는 말인데도 말이다. 해서 어떤 서울 사람이 이천을 가려고 여주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남한강과 그 지류를 끼고 넓은 들을 사이에 둔 이 두 지역은 전래로 질 놓은 경기미의 산지로 유명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 자채(紫彩)쌀' 이라 불리는 이곳의 특산 쌀은 왕조시대 진상미로서 유명했다.

경기미의 전통과 함께 이천. 여주지방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이곳이 조선시대이래 도자기 생산지의 한 굿으로 알려졌고, 현재 그 명성을 이어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자기 생산업체가 밀집된 지역이란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서 인접한 경기도 광주( 廣州)가 원래의 도자기 고장이었다. '광주분원 사기방아, 여주이천 자체방아'라는 전래 노랫말 속에 이곳 지역특성이 담겨져 전해 온다.

광주는 조선시대 관청에서 경영하던 가마인 관요 (官窯)가 있었고, 이천을 위시한 인근지역은 도자기의 원료로 쓰이는 도토(陶土)가 널리 깔려 있어 광주에 도토의 공급처 역할만 하였다. 조선백자의 산실이었던 광주관요는 조선말기 1883년에 폐쇄되고 민영화되었다고 하나 이후 일제에 의해 조선백자의 맥은 끊겨지게 된다.

이천과 여주지방에서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의 우수한 도자기문화를 새로이 꽃피우게 된 것은 시대적으로 보면 극히 최근 의 일이다 특히 광복 후 해강(海剛) 유근형(柳根瀅), 도암(陶庵) 지순택(地順택), 광호(廣湖) 조소수(趙小守)와 같은 도예가들의 공이 남달랐다. 이들 도예가 1세대들은 대부분 일제 때 익힌 기술을 가지고 독립한 분들이다. 이 점은 현재 일본 도예의 가계가 과거 조선시대 왜에 강제로 끌려간 우리 선조 들임을 상기할 때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이 도예 1세대들의 공헌은 후대에 이어져 1981년에는 한국전승도예협화가 발족되어 도예문화의 전승에 경주하고 있으며,「전승도예지」라는 협회 잡지도 발간한다. 이천의 수광리에는 수십여 개의 도자기 생산업체가 밀집하여 도자기 생산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업체의 판매전시장이 수광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보다 큰 업체는 자체 생산품과 유물 가치가 있는 도자기를 전시하는 공간으 따로 보유하기도 한다. 예컨대 해강도자미술관은 해강의 작품을 위시하여 수집된 전래의 도자기를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도자기(陶瓷器)는 도기(陶器)와 자기(瓷器)가 합해져 사용되는 일상어지만 본래의 뜻에서 보면 자기만을 지칭하고 있다. 특히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과거의 자기나 그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 생산되는 도예품을 말할 때 사용된다. 도기는 우리말로 오지그릇을 일컫고, 이는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린 뒤에 오짓물(흙으로 만든 그릇에 우리어 구우면 윤이 나는 잿물)을 입혀 구운 질그릇을 말한다. 질그릇은 흙만으로 구워 만들고, 잿물을 덮지 않은 그릇으로 겉면이 테석테석하고 윤이 없는 특징을 가진다. 오지그릇과 질그릇을 총칭하는 또 다른 말로는 옹기(甕器)가 있다.

그리고 자기(瓷器)는 사기그릇을 말하며, 사기(沙器)또는 사기그릇은 흔히 규산 질과 장석 질이 함유된 사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흡수성이 없는 까닭에 예로부터 식기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전래로 도자기를 만드는 곳을 '사기막골'이라 하고, 도자기를 굽는 흙가마를 '사기굴'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스테인레스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동절기의 식기가 대개 놋그릇이라면 하절기의 그릇은 사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사기그릇 또는 사발그릇은 그 진흙의 성분과 성질이 도자기의 그것에 비해 도토의 섬세성, 점성, 내화성 면에서 떨어지고, 제작기법과 문양 따위가 단순하다.

이천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과거 전통도자기의 청자. 분청. 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다시 말해 전통도자기가 이곳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도자기를 용도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나는 작품성을 가진 도자기이고, 실생활에 사용되는 생활도자기가 다른 하나이다. 그래서 전자를 작품자기로 부르고 후자를 생활자기라 한다. 작품으로서 도자기는 흔히 감상용의 가치를 가지고 고가의 예술품으로 인정되어 그 작가는 도예가라 일컬어진다. 한 사람의 도예가가 흙을 섞어 성형을 하고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문양을 넣고 가마에서 구워내는 전과정을 모두 이뤄냈을 때 도자기는 예술품으로 인정된다. 도자기에 그 작가의 낙관이 찍히는 것도 예술성의 가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이천 수광리 도자기 단지의 두 가지 시대적 발전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는 70년대 일본인의 수요에 의한 도자기 업의 부흥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공예품 도자기 소장 붐이 일면서 일본 상인들에 의해 '한국도자기'라는 신소재가 개발되고 여기에 '아무개'라는 작가 명이 필요하였다. 그 결과 일본자본이 투자되어 한국의 가마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자기가 구워져 나왔다. 그러나 유행이 그러하듯 그러한 수요가 한계에 달하자 이곳의 도자기 업체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국내의 '소장품' 도자기 수요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지게 된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의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작가 중심, 달리 말해 감상품 위주의 도예품 생산이 갖는 한계이다. 옛 도록의 복제나 다름없는 생산으로 말미암아 창의와 시장성의 한계를 스스로 안게 되기 때문이다. 단지 예술로서의 사회적 위치만 인정될 뿐 상품으로의 가치는 현대사회의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전통도 자기의 공정과도 일면 배치된다. 도공(陶工), 화공(畵工), 화공(火工), 그리고 자연의 조건이 어우러진 협업에 의한 도자기 생산이 우리의 전통방식이라면 오늘의 도예는 한 작가에 의해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사회 생활 속의 도자기만이 전통을 잇고 현대의 경제성도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이 생활도자기로의 전환이다. 이는 물론 과거의 사발처럼 질흙의 성분과 성질이 열악하거나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옛 청자와 백자의 재질과 기법을 계승하되 용도만을 현대생활에 맞게 접목한 것이다. 여기에는 도자기문화의 생활화에 사운을 걸고 매진한 선구자적 기업주의 노력을 간파할 수 없다.

우리가 방문한 광주요(光州窯)는 생활도자기를 전통적인 기법으로 생산하는 대표적인 곳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광주관요의 전통을 이어받고자 '광주요'란 명칭을 삼았고 전통의 현대화를 생활 속에서 실현코자 하는 곳이다.

광주요의 생활도기 생산과정의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전통도자기 중 분청사기의 생산을 이어받은 것으로 문양의 경우 박지(剝地)의 기법과 진사의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자기의 사례이다.

1. 태토(胎土)작업 : 도자기의 원료로 쓰이는 흙을 도토(陶土 Kaolin)라 하며 여러 가지가 있고 이는 전국 각지에서 공급된다. 장석, 점토, 규석, 도석, 석회석 따위가 사용된다. 여러 재료를 혼합하여 도자기를 만들 도토를 만든다. 도토는 그 자체가 원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제작업인 수비(水飛)를 거쳐 침전된 고운 '질흙'이 원료가 된다.

2. 성형. 정형작업 : 그릇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으로 현재 물레를 돌려 만드는 법외에 손으로 덩어리째 만드는 법과 흙가래를 감아 올려 만드는 법, 석고형에 주입하거나 눌러 넣는 방법 따위가 있다.

3. 백체 : 여러 가지 원료로 섞어 만든 하얀 색의 안료를 그릇에 입힌다.

4. 조각 : 백체가 된 그릇에, 완성 후에 그림으로 나타나게 될 문양을 그리는 작업으로 전문가의 손으로 이뤄진다.

5. 박지작업 : 예리한 도구로 그림을 제외한 필요 없는 바탕부분의 흰색을 깎아내는 작업이다. 긁어 낸 부분은 다시 태토의 색으로 된다. 박지작업이 끝나면 약 3∼4일 정도 자연상태에서 건조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로써 자기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여 구울 때 그릇이 깨지는 것을 방지한다.

6. 초벌구이 : 건조가 끝난 그릇은 섭씨 약 800∼900도의 온도로 10∼12시간 동안 구워낸다. 지금은 가스를 열재료로 하는 가마를 소용하고 또한 여기에는 온도 게이지가 있기 때문에 온도조절이 가능하다. 장작을 때는 재래식 가마의 경험에 의한 '감'으로 온도조절을 하는 경우에 비하면 기계화에 의한 합리성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다.

7. 진사칠 : 진사칠은 문양의 색을 내기 위해 칠하는 것이다. 광석의 하나인 진사는 산화동 CUO의 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가마에서 구울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자기의 색을 나타낸다. 불완전 연소시에는 붉은 색이, 완전 연소시에 는 녹색이 나타난다.

8. 시유 : 유약을 바르는 작업이다. 유약은 과거 '잿물'이라 했고 광물질계 유약을 사용한다.

9. 재벌구이 : 섭씨 약 1300도의 온도 아래서 13∼15시간 정도로 그릇을 다시 구워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마지막으로 도자기는 완성된다. 과거 흙가마에서는 성공률이 20∼30% 정도였으나 현재 온도조절이 가능한 가스가마에서는 실패율이 거의 없다고 전한다.

과거에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제작 공정이 지금은 성형단계부터 수작업이 이루어진다. 태토의 선별과 반죽은 기계로 작업하고 있다. 도자기의 디자인이나 문양은 전통 도록을 참조하여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과거의 것을 모방하거나 약간 변형하는 수준이다. 전문 디자이너가 없이 제작 기술자가 디자인까지 직접 하는 경우 현대적 감각을 살린 작품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생산직 기술자들은 모두가 도제관계를 통해 기술을 전수 받은 사람들로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 '광주요'는 총 1백여 명의 직원 중 약 40명이 생산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도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도제관계를 통해 기술자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4년제 대학의 도예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실무능력이 현재 근무 중인 기술자보다 떨어지는 데도 임금은 더 많이 지급해야 하므로 업체들은 이들의 채용을 꺼리고 있다. 또한 당사자들도 보조 기술자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을 기피하여 생산 기술직으로 입사하는 이이 매우 적다.

도자기 유통은 주문생산과 판매의 경우로 나누어지고, 판매의 경우 다시 생산업체가 직판점을 설치하여 직접 판매하는 경우와 전문판매업소를 통하여 판매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이천 수광리의 도자기단지는 일본관광객이 도자기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단체로 방문하여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동시에 일본은 주요 수출대상국이다. 일본인은 주요 수출대상국이다. 일본인은 청자를 많이 찾는데, 작은 크기의 고가품을 장식이나 감상용으로 구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광주요'의 경우도 주요 수출시장이 일본이다. 일본 수출로 인해 내수에 공급을 맞추기 어려울 만큼 일본 시장의 수요가 많다고 한다. 또 미국 LA에 지사를 설립하여 교포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내수의 경우, 중산층 이상이 주고객이며 직영 대리점과 백화점을 통하여 판매하고 있다.'광주요'의 생활도자기 가격은 도예 작가의 작품 도자기를 제외하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시켜 생활도자기로 사용하게 하는데 운영 목표가 있는 회사의 제품답게 실생활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시판되고 있는 도자기는 청자. 분청. 백자로 구분되며 이 중 수요가 가장 많은 것은 백자이다. 백자는 청자나 분청에 비해 가격이 낮을 뿐 아니라 흰색이 주는 깨끗한 느낌 때문에 생활도자기로 많이 이용된다. 청자는 제작과정이 다른 것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옛날 유물의 모방에 치중하여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 이용정도가 적다. 분청은 장식용으로 많이 이용되는데 최근 들어 수요가 늘고 있다. 청자에 비해 제작이 쉽고, 변용이 용이하기 때문에 도예작가들의 작품이 많으며, 디자인이 현대적이어서 아파트에 잘 어울리는 장점이 있으므로 30, 40대의 주수요층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

도자기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도자기 업계들은 현대 생활에 맞게 응용한 생활도자기들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식기, 다기, 커피잔 외에 최근에 수요가 늘고 있다는 백자 실내 분수대나 탁자 Tea Table 그러한 예다.

우리나라 생활도자기의 현재 수요 현황을 보면 명절에 집중되어 있다. 설보다 추석에 수요가 많고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혼수용으로 도자기를 구입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으며, 결혼 답례품이나 기념품으로 주문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후자의 경우는 1인용 다기나 컵과 같은 저렴하고 간단한 종류가 많이 판매된다고 한다.

도자기는 그것이 지니는 품위나 보온성 때문에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비싼 가격에 비해 깨지기 쉬운 단점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소비자의 욕구가 고급화되면서 생활도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중 음식점에서조차 이러한 욕구에 맞추어 도자기 식기 사용이 늘고 있다. 많이 이용하는 종류는 가격이 무난히 백자이며 그 디자인은 대개 비슷한 것들이다.

해강도자미술관은 도자기 문화공간으로서 그 특성을 살린 인테리어에 도자기를 이용하였다. 유리로 된 출입문의 손잡이를 청자 소재로 하였는가 하면, 벽의 전기 스위치도 같은 식으로 응용하였다. 그리고 전시실 로비의 한 벽면을 청자 타일로 모자이크 장식을 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는 반듯이 수납이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소품으로서도 이용이 가능함을 제시해 주는 예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롭고 개성 있는 것을 원하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는 생활도자기도 디자인의 다양화와 새로운 용도의 품목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기술자들을 재교육하고 전문적인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생활도자기의 수요 증가는 생산업체의 의도는 물론 우리 사회의 사회. 문화적 변동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후반이래 경제적 풍요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일상문화가 다방면에서 변화를 겪게 된다. 식생활문화의 예로 본다면, '이밥에 고깃국'이 꿈이었던 시대가 아직도 생생한 세대가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제 잡곡밥과 채식이 선호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기도 고급화되어 음식을 담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그릇은 음식의 옷'으로서 음식의 시각적 효과를 내는 식문화의 부분으로 인정받게 된다. 과거에는 가격이 비싸서 쉽게 사용하지 못했던 도자기가 식기로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그것을 반영한다. 한때 일반 가정에서 보편적이었던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 그릇은 이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음식의 맛과 영양소를 따지는 것과 함께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양을 중시하는 새로운 식생활 문화가 식기로서 생활도자기의 수요를 증가시킨 것이다.

또한 오늘날 커피와 차는 일상생활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면서 소위 '커피와 차는 일상 생활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면서 '커피세트'와 다기(茶器)의 수요와 도자기는 직결된다. 우리의 전통에서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문화가 일상적이지는 않았다. 숭늉을 제외한 일상적 음료는 보편화된 것이 없었고 차(茶)문화는 절 집 등 특수층에 한정되었다. 오늘날 숭늉은 더 이상 구경할 수 없게 되었고 식사 후에도 으레 커피나 차를 마신다. 이러한 서구음료는 기실 중동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갔었고 다시 되돌아 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 차이나'란 이름을 가지고 다시 아시아로 되돌아온 서구의 도자기도 사실은 중국 도예기술이 되돌아온 것이다.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이 무색한 역사적 과정이다.

우리는 여러 곳의 전통상품 생산지를 다니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과 자부심이 가득함을 공통적으로 보아 왔고 이곳에서도 그 열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통과 연결된 문화상품의 생산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장인정신이 바로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세계화의 기조와 일치함을 보았다. 미국의 콜라, 불루진, 맥도널드 등 미국문화의 세계적 확산은 잠재적인 미국소비자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 것을 지키는 노력은 내적으로 국경 없는 경쟁의 시대에 민족 정체성을 확고히 하여 외래문화의 잠식을 막아주고, 동시에 우리 것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전통문화 보존. 육성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제 그것을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전통으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이 요구된다. 마치 우리 선조들이 찬란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우리에게 남겼듯이......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 세기 」의 저자 기 소르망이 '한국자본주의 에는 한국문화의 이미지가 없다'고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한국문화의 이미지를 고양시키지 못하면.......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할 것' 이라고 판단하면서, 동시에 '한국은 복합적 문화를 보유하고 있고 또한 그 복합성을 기반으로 보편성을 도출할 수 있는 몇 안돼는 나라 중의 하나'라고 미래의 가능성을 점친다.

우리 문화의 창조적 계승은 그 보존. 전승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문화적 이미지 및 상징적 가치로써 '문화적 부가가치'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그야말로 세계화시대의 무한경쟁에서 국가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