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행. 10 / 잉카문명·마추피추

잊혀진 공중도시




이희수 / 한양대 문화인류학자 교수

마추피추는 남미에서 잉카문명의 모습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에서 아마존 저지대로 우루밤바 강을 따라 114km를 달려 마추피추를 만나는 것은 현대인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2300m의 정상에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숨어 있는 요새도시 마추피추가 현대세계와 처음 상면한 때는 1911년, 탐험을 좋아하는 미국 청년 하이람빙검에 의해서였다. 그는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비루카밤바라는 환상적인 잉카도시가 있다는 고전 기록을 쫓다가 마추피추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추피추야말로 잉카의 마지막 금은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던 신비의 도시 비트코스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숨겨진 황금은 찾을 수 없었지만, 340년간이나 잊혀졌던 신비의 공중도시가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자 잉카건축의 우수성과 그 문화의 장대함에 세계는 탄복하였다. 어쩌면 전설의 도시 바루카밤바나 비트코스는 아직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좀더 많은 시간을 다양한 잉카와 호흡하기 위해 아침 일찍 쿠스코에서 버스를 역참도시인 오얀타이탐보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고산열차로 마추피추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쿠스코 시내를 붉은 빛으로 채우는 아도베가 막 떠오른 햇살에 비춰지자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떠나는 나그네를 아쉽게 한다. 아도베는 햇볕에 말린 붉은 벽돌로 잉카시대의 주요 건축자재인데, 지금도 쿠스코에는 아도베의 붉은 빛이 감싸는 잉카의 영화와 정취가 가득하다. 그런 쿠스코를 멀리하고 두 시간을 달려 오얀타이탐보에 도착하였다. 45도 경사의 산허리에 계산이 있고 '태양의 거울'이라 불리는 6개의 거석이 각각 6개의 동굴을 이루고 있다. 잉카시대의 주요한 역참도시로 마추피추로 향하는 마지막 보급도시였다고 전해진다. 그 기능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이곳에서 식량과 물을 보급 받아 마추피추로 트래킹을 계속하는 수백명의 유럽 젊은이들이 물건을 팔려는 인디오 여인들과 뒤섞여 북적대고 있었다.

마추피추행 열차는 두 칸으로, 비싼 요금 때문인지 승객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예쁜 인디오차장이 마추피추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고산열차에서 놓쳐서는 안돼는 바깥 경치 감상법에 관한 약간은 건방진 부연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설명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까막득히 내려다 보이는 아슬아슬한 계곡 사이를 곡예하듯이 달려가는 열차 속에서는 머리털이 쭈빗 솟는 긴장감과 감동의 탄성이 쉴새없이 교차되었다. 몰아치는 격랑의 우루밤바 강줄기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방금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바위 밑을 달려서 불도 없는 동굴 속을 나오자 사막 같은 황량한 벌판에 무수히 많은 선인장이 우리를 반긴다. 여름 만년설의 안데스는 여행 내내 잠시도 나그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신화와 전설을 들려준다. 철길과 나란히 산허리에는 수백년전 인디오들이 교역과 연락을 위해 넘나들던 잉카로드가 지금도 선연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날씨 만큼이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길의 막 다른 곳에서 '늙은 봉우리'인 마추피추가 시험을 견뎌 낸 나그네를 극진히 환영한다.

조그만 미니버스로 몇 겹으로 꼬불꼬불 난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산정상에 오르니 인구 2만을 수용했다는 거대한 요새의 공중도시가 자태를 드러낸다. 이럴 수가!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리고 놀라고 또 놀랐다. 이토록 험난하고 지각으로 솟아오른 높은 산정상에 어떻게 이러한 대도시가 숨겨져 있었을까? 도시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두텁게 둘러싸인 요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도시 전체는 중앙 대광장을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로 크게 구분되어 설계되었는데, 현대 도시에 못지 않은 종합적인 기능이 정연하게 살아 있었다. 궁전과 신전, 의례품 저장소, 학교와 공장, 계층에 따른 주거지와 묘지, 17개에 달하는 취수장과 수로들, 옥수수와 약초의 경작지, 천체 관측을 위한 건축물 등등, 민가의 형태가 특히 관심을 끌었는데, 안데스 고원지대의 둥근 가옥과는 달리 벽돌로 쌓은 양쪽 벽을 토대로 V자형으로 초가지붕을 얹어놓은 잉카의 특유한 옛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왕의 궁전이라 불리는 석실 밑은 감옥으로 사용된 것 같은데, 문 입구에 나 있는 두 개의 구멍은 손을 넣어 채워둔 곳으로 밝혀졌다. 잉카 사회의 주요 범죄는 도둑질과 거짓, 그리고 게으름이었는데, 생활조건이 가혹한 마추피추에서의 직무태만과 나태는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죄로 다루어졌을 것이다. 높은 산꼭대기에 과학적으로 정비된 수로와 17군데의 양수장도 보인다. 사람이 마시고 경작을 위해 물을 흘려보내면서 한 방울의 물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도록 고안된 그들의 지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또한 상부의 대신전 앞에는 네모진 돌기둥 위에 해시계가 서 있다. 돌기둥 모서리를 잇는 대각선 위로 6월의 동지에 태양이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신전 주위에는 산의 형상을 본 뜬 돌조각들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바로 뒤로 보이는 와이나비추를 비롯한 주변 산의 축소판임을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수십 톤은 됨직한 석재들을 어디서 어떻게 옮겨왔으며, 1만의 인구가 척박한 산간에서 무엇을 경작해서 먹고 살았는지? 명색이 문화사를 전공한다는 나에게도 온통 수수께끼의 세계이다. 그래서 마추피추가 외계인의 지상기기였다는 이론이 한때 널리 성행하기도 했었다. 금속기를 사용하지 않은 잉카건축물의 정교함은 종종 외계인이 레이저로 바위를 전달했다는 추론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마추피추가 주는 또 하나의 의문은 그곳에서 발굴된 100여 구의 미라 모두가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남성들은 '공중도시'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전사하고, 선택된 순혈의 여성들인 '태양의 처녀'들만이 마추파추와 운명을 같이 한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잉카에서는 '아클라'라 불리는 특별히 선택된 처녀들이 전문 교육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잉카 전통과 태양신 의례를 이수받았다. 잉카제국 전역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그들은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는 잉카의 불문율을 전승하는 주체였고, 직조작업에 참여해서 라마털로 된 우수한 직물을 생산해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일정한 시점이 되면 결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결혼을 포기하고 여생을 태양신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성처녀들은 '후아마크'라 불리며 하얀 드레스에 황금 머리띠를 두르고 신전의 여사제로 남았다. 한때 전성기의 쿠스코에는 약 3천 명의 성처녀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와 함께 태양신에게 활력이 부족했을 때는 기꺼이 인신공양에 바쳐지기도 했다. 해가 뜰 때 불을 피우고 옥수수 열매를 던지며, 잉카인들은 성처녀를 태양신에게 올리며 이렇게 희원했다. "이걸 잡수시고 우리를 구하소서. 태양신이여! 우리가 당신의 자식임을 당신은 알리라."

스페인 군의 침입은 아클라와 후와마크 모두에게도 커다란 재앙이었다. 겁탈을 피한 성처녀들은 비밀의 잉키문화를 전승해 갔고, 문명의 굴레에 잡힌 이들은 후일 개종하여 카톨릭의 수녀로 신을 향한 성스러운 임무를 이어 갔다.

마추피추의 정상 언저리에는 아직도 잉카식으로 살아가는 케추아족의 민가 한두 채와 계단식 경작지가 보인다. 자신의 먼 친척이 될지도 모르는 동양의 나그네에게 '차차' 한 잔을 권한다. 옥수수로 빚은 막걸리 같은 차차는 이곳 고산의 추위를 이기는데 없어서는 안돼는 필수품이다. 차차를 잘 빚는 일은 좋은 신부의 조건으로 으뜸이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페루의 풍요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차차를 마시고, 코카잎을 씹으며 마취되어 있지 않고는 그 억울한 과거를 잊기 어려울 것이다.

산허리 케추아족의 마을에는 군데군데 유아카라 불리는 성소가 보인다. 카톨릭이 보편화된 페루에서도 이곳 케추아족 사회에서는 그 옛날 잉카의 정신이 물씬물씬 묻어난다. 이제 점술사들은 기괴한 의상을 걸치고, 잉카의 비밀처방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잉카의 후예인 케추아족들은 오늘도 밭갈이를 마친 귀로에, 또는 제삿날이나 장례식 때, 이 유아카에서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린다. 라마를 앗아간 정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고, 쌓아올린 돌무지를 향하여 돌을 던지거나 정령도 어찌할 수 없는 약효를 지닌 코카잎을 놓기도 한다.

파차마마는 케추아족의 마음의 기둥이다. 새로운 기둥 성모 마리아가 그들을 위로해 주어도 피차마마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성모 마리아에 케추아족의 모습을 한 검은 얼굴의 파차마마를 기묘하게 융합시키고 말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며, 마추피추와 작별을 한다. 산아래역에서 기다리는 쿠스코행 열차의 출발시간이 촉박했다. 미니버스로 구곡양장의 길을 내려올 때 한 인디오 소년이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며 타잔 같은 괴성을 질러 자신을 확인시킨다. 몇 구비를 돌아온 다음 어느새 그 소년이 샛길로 가로질러 버스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또 몇 구비를 돈 다음에도 그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맨발의 인디오 소년이 험준한 산줄기에서 펼치는 곡예는 옛 잉카인들이 다음 역참을 향해 최단거리를 질주하던 모습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13구비의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산아래에 버스가 도착하자 이미 그 소년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의 돈으로 그 곡예를 치하했지만, 그에게는 가족의 생계를 꾸미는 일상의 방편이 된 셈이다. 차장은 승차를 재촉한다. 올려다 본 마추피추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잉카의 신비와 빗물은 어둠과 함께 다시 베일로 가리고, 내일 아침 태양이 뜨면 다시 살아 꿈틀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