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이야기⑨
용호성 / 음악평론가
CDP 이야기
CD가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이다. CD보급 초기에는 소리가 차갑고 음악적 여운이 없다는 식의 비판적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CDP보급 초기에 열렬한 LP예찬론을 펼치던 사람들이 어느새 하나둘씩 자기가 가지고 있는 LP를 내다 팔고 CD로 돌아서게 되었다. LP는 어느새 불쌍한 골동품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LP플레이어를 연결할 수 있는 포노단마저 없애버린 앰프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CD가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LP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CD의 음질을 결정하는 핵심기술들이 급속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D/A컨버터의 방식은 16비트, 20비트 등 멀티 비트 방식이 각광을 받다가 이제는 싱글 비트 기술을 이용한 비트스트림 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새로운 방식은 처음에는 기존의 멀티 비트 방식을 몰아낼 만큼 획기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원음재생력이 우수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형성하는 반면에 강렬한 리듬의 재생에는 약간 아쉬운 감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따라서 현재 비트스트림 방식은 비용절감을 고려하는 중급 이하의 제품에 주로 사용되며 하이엔드 제품들은 대부분 20비트 방식 등, 원음재생력이 비트스트림 방식만큼 우수하면서도 박력 있는 음감을 재생하는 멀티 비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CDP의 내부는 크게 트랜스포트 부와 D/A컨버터로 구분된다. 트랜스포트는 CD를 물리적으로 구동하고 픽업장치를 이용해 CD로부터 디지털 신호를 읽어내는 부분이다. D/A컨버터는 CD에서 읽어낸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어 주는 부분이다. 앰프와 마찬가지로 CDP의 경우도 고급 기종으로 갈수록 트랜스포트와 D/A 컨버터가 분리되어 각각 별도의 제품으로 판매된다. 일체형 CDP는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00만 원 이내의 보급형이 주종을 이룬다.
CDP에 대해서는 우선 한 가지 버려야 할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CD기 디지털 방식으로 음을 기록하고 읽기 때문에 가격 대에 따른 음질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선입견이다. 물론 오디오에 처음 입문하면서 듣기에는 CDP의 차이가 스피커의 차이 만한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 대에 따라 음역별 표현력이나 에너지 감, 음상의 재현력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울러 하이엔드 급이 아니고는 회사별 음질 차보다는 가격별 음질 차가 더 뚜렷하다.
가격대별로 분류해 보면 20만 원 미만의 보급형 CDP들간에는 음질사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트레이의 여닫음, 스위치의 견고성, 전면패널의 디자인 등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가격 대에서는 기능성의 차이가 많이 나는데 어느 오디오 기기나 마찬가지지만 잡다한 기능이 많아질수록 순수하게 음질 향상을 위해 투자한 부분은 적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20∼50만 원 정도의 모델 군에는 일부 국내 제품과 보급형 수입제품들이 포함되는데 그 하위 군에 비해 기기 적인 완성도가 뛰어나고 음질 역시 한 단계 위의 소형 수입 CDP들이 50∼100만 원 사이의 가격 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상은 주로 분리형이므로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
여기서는 50∼100만 원대의 제품들 가운데 국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제품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필립스의 931(39만원)과 951(59만원)이다. 850MK2의 후속으로 나온 이 모델들은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품 CDP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이 크게 높지 않으면서도 리모콘에 의한 볼륨 조정 등 여러 편리한 기능들이 있다. 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편이며 고역의 소리가 귀에 거슬림 없이 깨끗하지만, 반면에 다이내믹한 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팝 음악보다는 클래식을 대편성보다는 소편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기종이다. 쿼드의 67 CD는 이전의 66 CD를 마이너체인지한 모델로써 외형이 예쁘고 리모콘에 의한 조작이 간편하다. 66 CD 때는 소리가 부드러운 대신 조금 둔한 느낌이 있었는데 67 CD에 와서는 소리가 한층 명확해지고 디테일한 음상의 표현력이 좋아졌다. 오라 CD 50(85만 원)은 기왕에 인기를 모으던 오라의 앰프와 마찬가지로 크롬패널의 디자인이 멋지고 기능을 극히 단순화시켜 주로 음질향상에 투자한 제품이다. 세밀한 표현력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에너지 감이 뛰어나지 않은 편이어서 팝보다는 클래식에 어울린다. 뮤지컬 피텔리티의 CDT(80만원)는 같은 가격 대의 모델 가운데 가장 유니크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비슷한 가격대의 CDP 가운데서는 중저역이 가장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회사의 A1이나 A100 앰프와 좋은 매칭이 이루어진다. 데논의 DCD 595(40만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보급 기이면서도 음이 선명하고 사운드 스테이지 감이 뛰어나다. 가격대 성능 비를 고려한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CDP이지만 그 절반 가격의 국산과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몇 가지 기능을 늘리는 등 마이너체인지한 695, 895모델도 나와있다. 티악은 CDP보다는 카세트 데크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최근에는 여타의 보급형 일본제품들과는 달리 음질을 우선하여 설계하고 기기 적인 안정성과 편의성을 높인 제품을 만들어 사용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P3500(35만 원)과 CD-5(60만 원)가 그 대표적인 기종이다. 마이크로메가의 스테이지 1(70만 원)은 듀오나 트리오 등 상위 기종의 후광을 업고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그밖에도 CALIFORNIA AUDIO LAB의 DX-1(70만원)같은 제품은 음상의 표현이 세밀하고 질감이 우수하여 100만 원대의 제품들과 견주어도 음질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켈에서는 D-103 이후 이렇다 할 기종이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 최근 단품으로 인기를 모은 기종으로 CD 5010G(25만 원)과 8010G가 있는데 두 제품 모두 금장 패널의 디자인이 독특하고 비트스트림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음색이 유연하고 섬세한 편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봐야 할 것은 국산 CDP에 대한 선입견이다. 민족이기주의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더라도 실제로 일제 보급형 CDP의 경우 그 절반 가격의 국내 제품과 별반 음질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일부 평자의 견해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흔히 오디오 잡지의 신제품 소개란에 열거되는 CDP의 음질에 관한 화려한 미사여구들은 실제 음감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실 60만 원 짜리 기계의 수입 가격이 20∼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응 수긍할 만한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따를 경우 50만 원 내외의 중간 가격대 CDP는 코스트포퍼먼스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하위 국산 기종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한 등급 위의 기종을 구입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 구입을 위해서는 자주 듣는 CD 몇 장을 들고 용산전자상가 같은 곳에 나가 집적 들어보는 게 상책이다. 잡지의 기기 평이나 명성만 믿고 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CDP는 스피커 같은 기종과는 달리 기술발달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오래된 중고품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다.
*표시된 가격은 권장소비자가격이기 때문에 실구입가격은 구입 장소와 흥정에 따라 10∼20%정도 낮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