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이야기 ⑧
용호성 / 음악평론가
오디오를 즐기는 방식
얼마 전인가. 모 음악잡지에 오디오 매니아 탐방기를 정기적으로 기고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매달 오디오 매니아 한 사람을 선정해 그가 갖춘 오디오 시스템을 시청해 보고 그간의 오디오나 음악에 관련된 이력을 이야기한 후 이것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품은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시스템을 접하는 즐거움이 꽤 컸다. 당시에 독특하게 느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오디오 애호가보다는 음악애호가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오디오에는 관심이 없고 음악에만 열중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어떻게 말한다 해도 그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간 오디오에 온갖 정력과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 온 엄연한 오디오 매니아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오디오 애호가보다는 음악 애호가라는 말이 좀 더 고상하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음악보다는 음반을 즐기는 오디오 애호가라는 게 어딘지 모르게 단세포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 엄연한 오디오 애호가들이 오디오를 즐기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몇 가지고 유형화해 볼 수 잇다. 먼저 오디오 자체의 매력에 무한히 빠지는 방식이다. '빠진 이'들은 무엇보다도 오디오와 관련된 모든 소비적인 일들을 즐긴다. 이들은 기꺼이 오디오와 더불어 주말의 황금 같은 시간을 전자랜드나 세운상가 같은 곳에서 보내며, 가장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도 집에 일찍 들어와 오디오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즐거워했다. 오디오에 관해 이야기하라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하고 다른 데 돈 쓰는 건 아까워하면서도 오디오에 투자하는 건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디오 업그레이드에 관한 견해도 남다르다. 예를 들자면 자신은 굳이 남들이 베스트매칭이라고 추천하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애호가들이 많다. 그 이유는 이것저것 조합해가면서 들어보고 하나씩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베스트 매칭에 접근해 가는 게 바로 오디오를 취미로 즐거움인데 어째서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추천해 준 오디오를 구입함으로써 스스로 포기 하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빠진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들인 공과 수고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의 오디오 시스템의 소리는 어떠어떠하게 좋으며 이제 곧 이러이러한 점을 개선해 저러저러한 소리를 만들려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빠진 이'들은 영원히 베스트 매칭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대국의 입자에서 음악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는 애호가들도 있다. '음악사랑'들은 대개 음반 수집에 열중한다. 한번은 어느 유명한 음반수집가 한 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분명 훌륭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오디오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굳이 강조하며 다만 음악에 대한 사랑만은 남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오디오가 전혀 내세울 게 없는 시스템은 전혀 아니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당연히 부러워할 만한 그런 시스템이었다. 다만 그 사람은 자신이 오디오에 매몰되어 음에만 천착하지 않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임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통신방 안의 오디오 관련 동호회 게시판을 살펴보면 조회수가 몇 백을 헤아리는 글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일간지에까지 오디오 고정란이 생겼다. 그만큼 오디오 애호 인구가 많아 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디오가 각 개인에게 주는 만족감은 제각각인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와 달리 오디오를 사치적이거나 과시적인 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보다는 오디오 자체에 매력을 느껴 빠져드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얼마전인가 나의 오디오 생활을 한 번 돌아보려고 시도해 본적이 있다. 그리하여 지난 1년간 내가 오디오에 들인 수고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앰프를 두 번 바꾸었고 스피커 케이블을 한 번 바꾸었고, 인터커넥터를 두 번 바꾸었고, CDP를 한 번 바꾸었다. 생각해 보면 두 달에 한 번씩은 오디오에 관해 무언가를 시도해 본 셈이다. 하지만 오디오에 들인 돈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주로 중고시장을 이용했고, 시스템의 메인 이라 할 수 있는 스피커는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 바꿀 때마다 한 일주일씩은 오디오 시스템과 즐거이 씨름한 것을 생각하면 이제 나의 애호 대상도 음악에서 오디오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오디오를 즐기는 방식은 대략 이렇다. 나름대로 완성된 소리를 두 달 정도 들으면 대개 실증이 난다. 그러면 우선 액세서리를 바꾼다. 대개는 케이블을 교체하게 된다. 케이블이라는 게 기계에 따라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동안 듣다 이제는 수년간 교체하지 않은 기기의 업그레이드를 생각하다. 그 경우 우선 중고시장에서 업그레이드 대상 기기가 나왔는지를 꾸준히 살핀다. 그 모색 기간은 대개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것 같다. 오디오를 구입할 때는 기기에 대한 모색기간이 길수록 좋다는 것은 체험으로 터득한 진리이다. 그리하여 통신망이나 오디오 전문지의 중고 시장 난을 주의 깊게 살핀다. 이 무렵이 나에 대한 아내의 경계가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디오를 좋아하는 많은 애호가들이 느끼는 오디오 구입을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길은 배우자를 오디오 애호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내 경우는 아내가 나보다 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리하여 소득과 여가시간의 일부를 오디오 시스템을 다듬는 데 기꺼이 소비한다. 물론 오디오를 통해 그날 음악을 듣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많다.
오디오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은 다른 사람의 오디오 생활을 대리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스포츠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즐기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현재 혹은 장래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80년대 중반 이후 새로 발간되기 시작한 오디오 잡지에서는 「나의 오디오 이야기」같은 난이 큰 인기를 끌었고, 스테레오 사운드 같은 일본 오디오 전문지 역시 오디오 애호가의 삶과 그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정보 소스를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시스템을 만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궁극의 소리를 내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애호가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오디오에 정답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정답을 찾기 힘들고 누구도 자신 있게 자신의 오디오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고자 오디오에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