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문화관광 시대를 연다

문화관광, 내용에 충실해야 된 시점




임영숙 / 서울신문 문화부장

관광산업의 중요성

후기 산업사회를 전망하는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육성해야 할 산업의 하나로 관광산업을 꼽는다. 다가오는 21세기의 최대산업은 환경산업·첨단과학산업과 함께 관광산업이라는 것이다. 기능적인 일들은 모두 컴퓨터에 맡겨버릴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보다 많아지는 여가시간을 삶의 충실화에 쓰게 되는데 이 충실화 프로그램의 첫 번째가 여행이라는 점에서 관광산업이 미래의 3대 주요산업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미래학자들의 이 같은 전망이 아니어도 관광산업은 현재도 이미 주요산업으로 각국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총알 없는 전쟁터'로 불리는 세계무역시장에서 별다른 규제 없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산업이 관광산업이기 때문이다.

세계관광기구(WTO)에 의하면 전세계 관광산업의 총생산액은 무려 3조 달러(한국의 1995년 한 해 예산은 그 50분의 1정도인 약 6백87억 달러)에 이르며 12명 중 1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원가 중 재료비의 비율이 제조업의 3분의 1에 불과한 반면 부가가치는 제조업의 2배를 훨씬 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교통개발연구원의 분석(1993년)에 따르면 외국관광객 1명을 한국에 불러들이는 것이 컬러 TV 11대나 신발 1백 켤레를 수출하는 것보다 낫다. 자동차 1대를 수출하는 것 보다 외국관광객 6명을 유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자원빈국인 우리가 살길은 '굴뚝 없는 공장' '무공해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 결과 교통부가 관장하던 관광업무가 문화체육부로 넘어 왔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교통부의 관광업무가 사람들의 '이동'에 따른 교통과 숙박시설에 중심을 둔 것이었다면 문화체육부의 관광업무는 관광이 지닌 '문화적 의미'에 중심을 둔 창의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교통과 숙박시설 등 관광산업의 하드웨어 못지 않게 관광의 내용, 즉 소프트웨어의 충실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광정책이 교통과 숙박시설에 머물러 있는 한 향락적인 관광 행태가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지만 관광산업이 문화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면 관광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따라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 동안 정부가 주관해 온 관광개발은 자연자원이나 특정한 종류의 유형문화자원(문화재)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국내 관광상품은 반나절 혹은 당일의 시내관광과 1박 2일의 설악산 또는 경주 코스, 2박 3일의 경주·부산 또는 제주 코스가 고작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태평양아시아관광협회(PATA)의 락시만 라트나팔라 회장은 "외국관광객들이 한국에서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새로운 관광지를 개발하는 관광산업 육성을 게을리 하는 것 같다"고 한국 관광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4년 '한국방문의 해'가 구호로 그치고 만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던 셈이다.

문화관광의 의미

관광산업의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관광 개발이 필수적이다. 문화관광의 사전적 의미는 '유적·유물·전통공예·예술 등이 보존되거나 스며있는 지역 또는 사람의 풍요로웠던 과거에 초점을 두고 관광하는 행위'이다. 세계관광기구는 보다 구체적으로 문화관광을 정의하고 있다. '문화 관광이란 협의로는 연구여행, 예술문화여행, 축제 및 기타 문화행사 참여, 유적지 및 기념비 방문, 자연·민속 예술 연구여행, 성지순례 등 본질적으로 문화적 동기에 의한 인간들의 이동이고, 광의로는 개인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지식 ·경험·만남을 증가시키는 등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라고.

따라서 문화관광의 대상은 역사적 건물이나 기념물 등 유적과 사적 및 사적지, 박물관, 영화관, 미술관 등, 유형의 구조물은 물론이고 세시풍속, 민속 음악, 무용, 종교, 언어 생활양식 등 무형의 요소까지 포함된다. 결국 문화관광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외국의 문화관광 상품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문화 관광 코스의 개발은 흩어진 구슬을 찾아 꿰는 작업이다. 구슬 꿰기의 방법을 우리는 관광선진국에서 빌어 올 수도 있다. 그런 나라들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유·무형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그들의 출중한 솜씨'에 감탄하곤 한다. 외국의 문화관광 상품개발의 사례들을 한번 살펴보자.

독일에는 '로만틱 가도'라는 게 있다. 독일 관광의 대표적 코스의 하나인 로만틱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의 동남쪽 1백km 지점에 있는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되어 로텐부르크 딩켈스뷜 아우스부르크를 거쳐 독일 알프스산 기슭에 있는 퓌센에 이르는 3백50km의 길이다. 원래 이 길이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에 이르는 통상로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중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들을 한 줄에 꿰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다.

첫 유럽여행에서 이곳을 찾은 비 유럽지역 관광객들은 '주옥같은 도시들의 낭만적인 모습'에 넋을 빼앗긴다. 이곳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중세도시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도 많다. 그러나 그 도시들은 하나의 도시로써만 관광객들을 부르는데 비해 로만틱 가도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도시가 아님에도 여러 개의 도시를 묶어 놓고 멋진 이름을 붙여 관광코스로 개발함으로써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로만틱 가도와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진 관광코스로 독일에는 '고성가도'가 있고 또 '동화의 길'도 있다.

독일 중부의 카셀은 인구가 20만 명도 못되는 작은 도시다. 이 도시가 지난 1992년 1백일 동안에만 50만 명의 관광객들을 끌어 들였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쌍벽을 이루는 국제미술제 '카셀 도쿠멘타' 기간 동안의 일이다. 그 관광객 가운데는 유럽의 왕족과 각국의 각료 급의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올해로 1백주년을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비해 '카셀 도쿠멘타'는 이제 40년의 역사밖에 지니지 않았다. 카셀 출신의 한 화가가 1955년 나치독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문화적 변방에 위치한 독일을 국제미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창설한 것으로 4∼5년에 한번씩 열리는데 70년대이래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웃의 대도시 프랑크푸르트가 이 미술제를 끌어가기 위해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카셀 시 는 거절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분단 후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도서 전을 프랑크푸르트 도서 전으로 탈바꿈시켜 짭짤한 재미를 본 도시이다. 독일통일 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제자리인 라이프치히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의도 물론 제기된 바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18세기에 지은 것이다. 이 궁전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현장 안내인의 가이드를 받아야 하는데 안내인은 당시의 왕족들이 쓰던 가구며 집기 등이 그대로 재현 된 방들을 안내하며 그 방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설명해 준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16명의 딸 중 하나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쓰던 방이며 동양의 진귀한 도자기들로 장식된 푸른 방들을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나면 어느새 오스트리아 역사의 한 부분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건축 적인 아름다움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해 떨어지지만 이런 안내방식 때문에 쇤브른 궁전은 관광객의 잡답(雜畓)에도 왕궁의 품위를 지닌 채 아름다운 궁전으로 기억된다.

영국의 런던은 탐정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를 관광상품으로 팔며 영국에 유난히 많다는 귀신 나오는 집도 관광코스 화하고 있다. 심지어 영어사용 국가의 종주국으로써 조상 찾기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공항이나 호텔, 기차역 층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관광안내 팜플렛 등에도 이런 문화관광 코스가 자세히 소개돼 있는데 조상 찾기의 경우 어딜 가면 이른바 호적등본을 찾을 수 있는지 각종 기록보관소의 전화번호를 수록해 놓고 영국 체류일 정이 짧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의뢰인을 구하는 방안까지 안내하고 있다.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인 마사 그레이엄은 자신의 무용단이 유럽공연을 떠날 때 함께 갈 관광단을 모집한 바 있다. 유럽에서의 공연과 각종 행사에 참석 할 수 있는 기회를 참가자들에게 주면서 고액의 후원금을 받아 낸 것이다.

한국 문화관광 상품의 개발

외국의 경우를 그대로 본뜬다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문화관광 상품을 개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도자기의 길'을 이천에서부터 강진까지 만들어 볼 만하며 올해 처음 열리는 광주비엔날레가 카셀 도쿠멘타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자수박물관, 김치박물관 등 독특한 성격의 박물관을 연결하는 코스의 개발도 가능하고 '서편제 코스', '토지 코스' '태백산맥 코스'도 만들어 볼 만 하다. 경복궁도 텅 빈 건물만 단조롭게 보여 줄 일이 아니라 조선조 왕실의 모습을 재현하여 살아 있는 역사의 장소로 되살려 볼일이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백제문화 관광코스 개발, 지난해 시작된 김치축제를 관광 상품화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만하다. 외국의 경우에 우리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덧붙여진다면 문화관광 상품개발은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문화관광 상품의 개발과 함께 그 상품을 파는 데 있어서도 문화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남태평양의 발리섬과 한국의 제주도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울까 ? 발리섬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곳이 제주도보다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화「남태평양」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관광지가 발리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광만으로 따진다면 제주도가 발리섬보다 훨씬 아름답다. 바닷물도 제주도 쪽이 발리섬 쪽 보다 맑다. 제주 바다 속은 깨끗한 모래인데 비해 발리 바다 속은 끈끈한 뻘이 많다.

그런데도 발리섬이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은 고유의 민속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관광상품화 한데다 영화라는 문화의 옷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결과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제주도는 특유의 관광상품의 하나인 화산석 돌을 팔아 지역개발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겠다는 발상이 나왔을 만큼 문화적 포장이 거의 안된 자연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관광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와 로마도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로 관광객 유치에 큰 덕을 보았다.

지난해부터 출판 가에 계속되고 있는「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신드롬도 문화관광 진흥에 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유홍준 교수(영남대)가 쓴 이 책이 그토록 많은 독자를 감명 시키고 그 독자들을 문화유산 답사에 나서도록 만든 힘은 저자 자신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인간은 아는 대로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사실에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번쯤 가 보았던 곳에 대해서도 새롭게 느끼고 다시 찾아본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유려한 문장으로 알기 쉽게 우리 문화유산(국토박물관)의 충실한 '길눈이' 역할을 해냄으로써 이 책은 국내 문화관광에 불을 지폈다.

따라서 문화관광 정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광 대상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안도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