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세계 고도들의 옛모습 보존과 현대건축물 수용에의 변화와 조화

세계의 고도 / 프랑스의 쌍볼(Saint-Paul)

- 프랑스의 남촌 마을




김영섭 / 건축가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이 있는 아름다운 중세의 산성도시

쪽빛 지중해 연안과 맞닿은 해안선이 이탈리아의 리보르노에서 상레모를 거쳐 프랑스의 상트로페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 쪽의 해안을 '리비에라'라 하고 프랑스 쪽을 꼬따쥐르(Côte d'Azur)라 부르는데 청출어람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나오는 쪽빛의 바닷가를 말한다. 사시사철 풍광 좋기로 소문난 이 해안의 중간쯤 어딘가에 쌍뽈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이 있는 남불(南佛)의 휴양지 니스와 영화제와 음반 견본시로 유명한 깐느 사이의 깐느 쉬르메르(Cannes Sur Mer)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약 15km 남짓 올라가노라면 남불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시야에 전개되기 시작한다.

한참 이리저리 구불대다보면 갑자기 꿈 속에서 나타난 것 같은 작은 중세의 산성도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샤갈과 마티스, 피카소와 브라끄, 보나르와 유뜨릴로가 그들 예술의 근거지로 삼았던 쌍뽈(Saint-Paul) 마을이다.

쌍뽈은 중세의 시간이 바로 그 자리에서 마법의 지팡이로 멈추어 버린 듯한 동화 속의 마을이다. 조약돌 하나하나를 꽃 문양으로 장식한 길과 계단들, 조그만 샘터와 가로등 그리고 작고 앙징맞은면서도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간판과 문패들,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이곳은 프랑스 사람들이 눈에 넣고 싶어하는 프랑스의 남촌(南村) 마을로 불리우고 있는 까닭에 일년내내 이 마을은 교양있는 자국민을 방문객으로 주로 맞이하고 있다. 정말 이 쌍뽈 마을의 낮은 성문 안으로 한발짝 들여놓는 사람이면(비록 관광버스를 타고 떠들썩하게 단체여행을 왔다 하더라도) 정갈한 포도와 계단을 밟는 순간, 역사의 문턱을 넘는 것 같은 숙연한 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관광객 특유의 자유분방함이나 거들먹거리는 상스러움을 모두 털어버리고 이 마을의 문안으로 들어와 정말 품위있는 방문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잘 살펴보려면 건축가라는 전문가 특유의 감각을 발동시켜야 한다. 결론부터 내려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이 지키고 가꾼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었기에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600여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쌍뽈마을 시청(우리나라 같으면 읍사무소 정도)에 가보면 이 마을의 역사를 설명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전시관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무심코 돌아나오다 보면 흑백사진을 아무렇게나 커다란 액자에 무질서하게 진열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는 사람마다 점점 눈이 커진다. 옴 B.B., M.M.(물론 브리짓드 발도, 마릴린 몬로), 지나 롤로브리지다, 지스카르 데스탱, 퐁피두, 존 F. 케네디까지....... 아니 이건 드골 아니야........ 끝없는 명사들의 방문록과 사인들이 들어있는 사진들이 쌍뽈 마을 청사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것이다.

쌍뽈을 유명하게 만드는 곳 꼴롱브 되르와 메그재단 미술관

쌍뽈 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음식점이 있는데 각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 그리고 명사들의 사진은 바로 이 La Colombe D'or(황금 비둘기)라는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 사진기(Camera Obsecura)에 잡힌 것이다. 방문객에게 이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는 문자 그대로 황금처럼 빛나는 예술의 만찬이 될 수도 있다.

이 카페는 현대회화의 시조격인 시냑, 모딜리아니, 미로와 마티스, 칼더, 보나로와 피카소, 브라끄와 레제뿐만 아니라 카임 수틴, 세자르와 아르망 등의 전후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회화와 조각이 벽면을 차지한 레스토랑으로 유명한데 그 유래는 금세기 초에 현명한 이 카페 주인이 쌍뽈과 방스 등지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여러 화가들에게 밀린 숙박비 대신에 그들의 그림이나 조각을 받아 식당 벽에 장식하는 높은 예술 감상의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명사들이 이 지역을 방문할 때면 반드시 '꼴롱브 되르'를 찾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쌍뽈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마을 입구의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메그재단 미술관(Foundation-Maeght)이 있다. 파리에서 유명한 화랑경영자였던 메그(Aime, Maeght) 부부는 아들 베르나르가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자 아이의 영혼을 베르나르 성인께 봉헌하고자 기념 성당을 이곳에 짓기로 하고 죠르쥬 브라끄에게 디자인을 의뢰하였는데 나중에는 파리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아들 곁에 미술관과 이와 연관된 도서관, 판화공방, 미술관계 서적센터 등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이 확장되었다. 건축가는 금세기 최대의 거장 르꼬르뷔지에의 도제였으며 발터 그로피우스에게도 수학한 까딸로니아 출신의 호세 루이스 써트(Jose Luis Sert)를 선정하였다. 미술관은 설립 때부터 브라끄와 샤갈 그리고 후안 미로와 알베르토 자코메티, 바실리 간딘스키 등의 다섯 거장들이 거들고 나섰는데 이들이 만든 옥외 조형물들은 이 작은 미술관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관의 하나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건축학도들이 보고 싶어하는 타틀린(W. Tatlin)의 제 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 모델도 바로 이곳에 있다.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과 함께 건물 입구에 있는 인공 연못의 바닥 타일도 자세히 보면 범상치가 않은데 바로 죠르쥬 브라끄의 것이다. 베르나르 성당은 미술관 진입로와 나란히 있는 아주 작은 건물이다. 그러나 예수 수난을 그리고 있는 성당 내부의 십사처와 스테인드글라스는 성 미술의 매우 희소한 브라끄의 몇 안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제 이와 같이 중세의 도시 쌍뽈은 그 앞자락에 현대미술을 가득 늘어놓고 있으면서도 마을 내부에는 어떠한 현대건축이나 도로를 허용치 않고 있는 이유를 알아보아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아무리 낡은 것이라도 옛것은 보존하고 지키려는 마을

조약돌로 박아놓은 포도와 계단들은 장인의 솜씨이다(독일 프라이브르그의 경우 파손된 포도의 수선과 교체는 반드시 Meister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하게 되어 있다. 가로수의 전지도 마찬가지다). 담벽에 올린 덩굴 꽃들과 창가에 늘어뜨린 화분들은 집집마다 특색있는 작은 간판들과 완벽하게 어울리고 있다. 대부분의 문자는 고어체(古語體)를 사용하고 있다. 가로등의 장식 또한 대부분 옛스러운 것이어서 밤의 쌍뽈을 찾는 사람들 모두를 더욱 오래된 시간 속으로 몰고 간다. 작은 분수 언저리에 대한 처리, 아니 그보다도 벽을 기어가는 전선들과 창가에 늘어져 있는 빨랫줄 또는 지붕의 처마와 선홈통 같은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시설물을 설치할 때도 가능한 중세의 건물, 중세의 벽과 창에 조화되도록 부산을 떨지 않고 처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지속적인 보존과 가꿈에 대한 섬세함이, 주민과 행정관청의 섬세하고 자상한 손길이 해마다 이 도시 인구의 2, 30배가 넘는 방문객이 찾아와도 그 기품을 조금도 훼손당하지 않고 지켜내는 비결일 것이다. 아무리 낡은 것이라도 옛것이라는 그 자체, 시간의 흔적이 스쳐간 것이면 그 모든 것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프랑스 남쪽의 작은 마을에 비하면 정도 600년을 맞는 우리 서울의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는 북촌마을의 운명은 얼마나 비참한가.

쌍뽈마을 못지않은 북촌마을 가회동과 계동 한옥의 미래는

절대 쌍뽈마을 못지 않은 문화자원과 무엇보다도 선인들이 남기고 간 귀중한 선물-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가회동과 계동의 한옥 동네들의 내일은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포클레인이 납작한 한옥의 기와장 위로 그 흉칙한 팔을 올릴 때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우리의 모진 환경과 이 나라의 문화정책에 몸서리쳐 왔다.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서 쌍뽈을 소개하면서 나는 마지막 남은 우리 옛 선인들의 숨과 결이 배어있는 한옥들을, 얼이 담겨있는 한옥동리들을 다시 가꾸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마을로 내놓고 싶고 이것을 실행 가능토록 뒷받침 할 제도마련부터 해야 한다고 이 정부에 간곡히 요청하고 싶다.

일찍이 한옥보존지역고시라는 미명하에 주민들이 집을 보존하거나 수리조차 할 수 없도록 한 20여 년을 방치해오다가 갑자기 지역구 선거에 따른 민원해소 방안으로 대책없이 보존지역을 해체해 버리고 난 이제 우리의 북촌마을은 한 10년도 못되어 그 자취도 없이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아아 어찌하여 우리는 조상이 물려준 유산 하나 지키지 못하고 아름다운 가문의 기둥과 석가래를 뽑아서 시멘트 부스러기와 같은 다세대 주택의 천박함과 맞바꾸려 하는가. 경복궁 복원이다 중앙박물관 이전이다 하는 허우대좋은 문화사업일랑 제발 뒤로 미루고 그 예산의 10분의 1이라도 투자하여 당장 집장수들의 험악한 손에 난장맞을 위기에 있는 우리의 어여쁜 한옥들을 정부와 서울시가 사들여 한옥에 살고자 하는 우리 전통문화의 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임대케 하여 당장의 위기를 우선 모면하였으면 하는 것이 과연 나 혼자만의 공상일까…… 그 다음에 한옥의 쓰임새를 외관 변경없이 내부만 오늘의 살림살이에 맞도록 잘 궁리하여 하나하나 고쳐서 보존해 나가면서 동리의 골목골목을 정성껏 단장한다면 정말 어떤 현대 건축물보다도 가치있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터인데..........

시간의 축적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바로 우리의 유산이고 역사인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잃거나 부수게 되면 아무리 경제성장이 되어 소득 높은 선진국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문화적 선진국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집에 오는 외국의 친구들(대부분 예술가들이다)은 한옥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나머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한옥인 우리집에서 재워달라고 떼를 쓴다. 우리 부부를 안방에서 몰아낸 뒤 깊은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왜 이 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을 벽안의 손님들이 내게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쉰다.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고향을 그리게 해주는 고도

잠시 현실을 뒤로 하고 다시 쌍뽈마을로 돌아가자. 마을을 한바퀴 도는 데는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랑과 상점 그리고 호텔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일례로 Hotel St.Paul은 객실이 14개밖에 되지 않지만 그 수준은 우리나라 어느 특급호텔이 이에 견주지 못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체인인 를레 에샤또(Relais & Chateux)에 가입되어 있지만 그 섬세한 손님맞이와 배웅을 한번 맞본 사람은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다.

쌍뽈은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Heimatlosigkeiter)에게 돌아갈 고향을 그리게 해주는 고도이다. 쌍뽈 마을을 돌아나오며 샤갈이 살던 집을 담너머로 보게 된다. 유태인의 혈통으로 백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난 그는 페테르스브르크에서 수학하였고 프랑스로 망명, 파리에서 활동하고 노년에는 쌍뽈에서 여생을 보낸 무국적자. 그 자신은 세상의 에뜨랑제였지만 고향상실자인 현대인을 위한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그의 예술은 항상 짙은 향수를 담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꿈과 추상으로 우리 모두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였다. 고향을 그려 보이고, 외양간과 송아지를, 거리의 악사들과 아름답게 성장한 신부와 신랑을 만나게 하고 천사들과 성모 마리아,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보여주며 꿈에도 그리운 어머니를 우리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과 함께 우리 앞에 내어놓았던 그의 그림처럼...........

언제나 쌍뽈은 늘 그 언저리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