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지 못한 책들
― 체코 현대지하문학의 흐름과 과도기적 현상
김경옥 / 한국외국어대 강사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체제붕괴는 산업혁명 이후 시장경제와 맞서오던 계획경제의 패배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대개혁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적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체제를 포기하고 이룬 민주화 개혁에 있어서 인간의 기본 의지인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간과되거나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이러한 자유의 고귀한 가치를 박해와 고초 속에서 꿋꿋이 지켜왔던 문학예술인의 노력과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발전을 주의깊게 살펴 나가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체고(발음상 '체크(Cech)'가 정확하나 본고에서는 그 동안 우리에게 통용되어 왔던 '체코'로 표기하기로 한다)의 공산화 기간 동안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체코의 문학을 지켜온 문학인들의 활동을 통하여 현대 체코 문학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그 유산으로서 개방 이후 체코 문학의 과도기적 현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체코는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민주화 혁명으로 알려진 두브체크, 하벨 등의 이름으로 그렇게 낯설지 않다. 그래도 우리에게 아직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체코의 역사에서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어려운 시기에 언제나 작가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것인데, 198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야로슬라프 싸이페르트(Jaroslav Seifert)를 배출할 정도로 문학수준에 깊이를 갖고 있다.
탄압 속에 맥이어온 문학 지성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
역사적으로 볼 때 체코 현대문학은 순조로운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현대 체코 문학은 코스모폴리탄적 입장에서 아방가르드 문화, 즉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세 번이나 무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중단되게 되었다. 첫번째는 1939년 독일민족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인데 많은 지성인들이 그들의 고향을 떠나거나 출판금지를 당하고 수용소에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거나(Josef Čapek) 처형당하는 (Vladislav Vančura) 수난을 겪어야 했다.
두번째는 전쟁이 끝나고 짧은 체코 문화의 자유기간을 지나, 1948년 다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작가들, 특히 카톨릭 작가들과 민주적 경향의 지성인들이 투옥되거나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 그중에는 탁월한 서정시인들과 소설가들이 포함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망명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을 겪기도 하였다(Ivan Blatný, Jan Čep). 세번째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대의 무력진압에 좌초된 후 당시의 정상화정책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작가들을 '없는 자들'로 취급하고 '허락되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금지되었다'라는 강력한 조치로 금지작가들의 작품은 '없는 책들'로 간주되어 공공서가에서 사라졌으며 새로이 출판되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역사적 탄압은 모든 체코 문화의 황폐화와 정신적 생활전통의 말살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숨쉬기를 멈추지 못하듯 지성인들은 이념의 장벽 속에서 충실히 맥을 이어왔으며 현재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이데올로기에 의한 탄압에 대항한 경우는 두번째와 세번째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공산당 정부수립 이후 모든 문화는 공산주의 사상과 정치의 도구가 되어 체코 문학이 깊은 수렁을 맞이하게 되었다. 50년대 초는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 주어졌다. 이때 많은 지성인들은 당의 문화정책에 대항하여 예술의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당 지도부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는 문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부문을 획일적인 사고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 노력으로, 잡지와 예술가 단체들의 모임과 회의를 통하여 활발한 의견교환과 자유와 예술창조의 관계를 자각하기 위한 역할을 주도하였다. 이 영향으로 탄압 속에 침묵하고 있던 많은 작가들이 다시 문학활동에 돌아왔으며 독창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주도와 화합에 의한 활동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고 계속 발전하여 예술적인 아방가르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즉 탄압 속에서도 나름대로 역할과 활동을 펴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들은 1968년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무력침략과 그에 따른 전체주의적 정부에 짓밟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새 정부는 '정상화'와 위기극복이란 명목하에 예술과 학문에 있어서 재능있는 많은 사람들을 말살하였다. 행정적 조치를 통해 체코 작가협회에 속한 작가들의 활동을 엄격히 금지시켰는데, 그 대표자로는 198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야로슬라프 싸이페르트를 들 수 있다. 그리고는 정상화라는 이름의 정책에 충실한 도구가 될 새로운 어용협회를 조직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였다.
정권의 도구로서의 문학과 망명출판사, 지하출판문학
이로 인해 저명한 작가들은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국내에 남아 저항을 하게 되는 작가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그들이 어떤 책이나 잡지에도 출판 또는 발표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문화단체에서도 활동할 수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일당노동자(창문닦기, 야간경비원 등)로서 생계비를 벌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상황형성으로 체코문학은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뉘게 되는데 국내의 공식적인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공산정권의 도구로서의 문학, 1969년 이후 생겨나기 시작한 국외의 망명출판사에서 출판되어지는 작품들, 그리고 국내의 소위 지하출판문학(samizdat)이다.
국내의 공식적인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소위 공인 작가들의 작품들은 권력의 총애 속에 물질적 보장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사상적으로 소련에 의한 이념의 통제에 따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른 작품활동을 하도록 요구되어졌다. 따라서 작가들은 독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피하고 국가의 운명에 대해서 환기시키며 인간존재의 불안정을 피해 일상생활이 주는 작은 위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외국으로 망명하게 되는 작가들은 고국에서 소련 모델의 맹목적인 모방을 요구하는 자유에 대한 제한을 피해 외국에서 그들의 작품활동을 계속해나가며 망명출판사를 설립하여 작품을 출판하였다. 그 대표적 출판사는 캐나다의 토론토에 설립된 출판사 Sixty-Eight-Publishers이다. 또한 망명출판사들은 국내와도 은밀한 접촉을 시도하여 국내에 남아 지하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의 [책이 되지 못한 책들]을 입수하여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모양을 갖추게 된 작품들을 다시 국내 독자들이 접하게 되는 기회는 아주 드물었다.
체코의 지하출판문학, 즉 사미즈다트(samizdat) 문학은 1970년 주요 문학잡지들에 대한 폐간 조치가 취해지게 되고 경찰의 단속, 감시가 심해지자 비공식적 문학활동인 소규모의 출판소가 등장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출판금지 조치에 묶여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출판하였는데 그 실상은 열악하였다. 출판은 질이 좋지 않은 얇은 종이에 타자기로 찍어 비밀리에 돌려 읽혀지는 수준으로, 출판부수도 많아야 20∼30권 정도 찍어내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출판되어진 작품들은 독자의 손에서 다시 복사되어 재출판 되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제한된 출판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단순히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관심 있는 독자들을 얻게 되는 최소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으며 그것으로 그들의 주어진 운명에 대처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지하로 추방되어진 문학은 독자와 비평가들로부터의 반응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미즈다트 작가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힘을 동원하여 스스로를 비평하여야 하는 노력이 요구되었다. 살아 있는 육체를 매장해야 했던 그들은 불리한 조건 아래 자신들의 사회적 통합과 내적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만 했다. 현재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되어 접하게 되는 두 명의 산문작가 밀란 꾼데라(Milan Kundera),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도 70년대 초 금지작가에 속하는데, 그들은 독자들로부터, 심지어는 검열에서조차 아무런 반응을 느끼지 못한 채 '오직 자신들을 위하여' 글을 써야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 내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창조적 힘을 자유롭게 하였고, 그때 이후로부터 그들의 작품은 독창적인 예술적 가치를 갖게 되었으나 동시에 논쟁이나 논박으로부터 제외된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체제가 명성이 있는 작가들의 존재를 영원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체코의 지하문학은 루드비크 바출리크(Ludvík Vaculík)로부터 그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그는 금지작가가 되어 생존의 기반을 빼앗긴 사람중의 하나로 [감옥 뒤의 출판소(Edice Petlice)]란 지하문학잡지를 창간하여 자신의 풍자적 소설을 실었으며 그 이후 출간되지 않았던 책과 번역서 그리고 망명작가들의 작품들을 인쇄하였다. 인쇄부수는 계속 늘어 2,000∼3,000권에 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차츰 복권되는 작가들이 생겨났으며(흐라발, 싸이페르트 등), 이때는 이미 억압적인 문화정책이 실패였음을 시인하게 되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수정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공적 출판물에 실리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속죄의 노력은 1989년 11월 전체주의의 파산으로 무의미하게 되었다. 민주화 혁명의 승리는 지하작가와 그들의 [책이 되지 못한 책들]에게 드디어 밝은 빛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책이 되지 못한 책들]은 제대로 된 얼굴을 갖고 독자와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적 변혁 맞았지만, 재정적 기술적 문제는 과제로 남아
이렇게 현대 동구권의 개혁을 서방의 자본주의적 성향에서 출발한 인간의 경제적 측면에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를 확고하게 뒷받침한 정신적 지주로서의 문학이 자유와 인간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을 유지 발전시켰다는 역사적 사실도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하문학의 공식적 출판은 역사적 변혁을 맞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해결할 문제점이 남겨져 있다. 우선은 분산되어진 체코문학을 통합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동시에 20여년 동안 쓰여진 많은 책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한 재정적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지기를 기다리며 긴 행렬로 서 있지만 지금 체코는 어려운 경제상황 중에 있어 인쇄소의 기계장비는 노후되었고, 출판사는 인플레이션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책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을 의미하며, 이로써 현재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책에 대한 갈증이 또한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도 불투명하다.
구체적으로 볼 때, 이 상황은 아직까지 사미즈다트와 망명문학 작품의 대부분은 책 형태로 출판 판매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루드비크 바출리크의 작품 [체코인의 백일몽(Český snář)]을 독자들은 조바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앞에 언급한 체코 사미즈다트 문학에 속하였던 사람으로, 1968년 [2천어]란 유명한 정치적 헌장의 저자이며 확신에 찬 독창적인 인물로 스스로를 풍자적 대상으로 삼아 평가하는 연대작가이다. 그는 이 일기식 소설에서 동료들을 따라 77헌장에 서명한 것과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특이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현재 체코의 대통령)의 수필들은 그의 인기 덕분에 신속하게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부수로 출판되고 있으며 그의 희곡작품들도 많이 상연되어지고 있는 예외적 현상도 보이고 있기는 하다.
또다른 문제로는 체코 독자들이 몇몇 망명 작가나 사미즈다트 작품들을 대하게 되면서 겪는 파라독스적 상황이다. 그것은 외국에서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 오히려 고국의 젊은 비평가들로부터 노골적인 실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심리적 비판 현상이다. 예를 들면 비평가들은 다른 사미즈다트에서 출판된 작품들에서처럼 공산주의를 화해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비평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반 끌리마(Ivan Klíma)의 소설 [사랑과 쓰레기(Láska a smetí)]를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실망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새로운 시대의 젊은 세대 감독들은 스스로 이러한 작품들을 읽는 것을 배워야만 하며 이를 통해서만이 그 작품들의 의미와 시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개혁 이후 체코 문학은 기대했던 것만큼 새로워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앞으로 그들이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 속에 뒤엉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실타래 같은 느낌마저 주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주의적 통치 20년 동안 그들의 정신 속에 살아 있는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충분히 그 동안의 제약과 문제를 잘 해결하고 발전시켜 나가리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에 있어서 한 방울의 피 흘림 없이 해결한 그들의 현명한 결정이 정신문화적 기반에 기인하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