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내림굿
황루시 / 관동대 교수
여름방학에 이어 지난 연말 다시 미얀마에 갔다. 왠지 애정이 가는 나라이다. 우리와 너무도 여러 면에서 비슷한 무속문화가 나를 이끌었음은 두말 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양군에 도착하자마자 역시 굿이 가장 많은 만달레이행 밤기차를 탔다. 워낙 열네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이번에는 가다서고 또 가면서 망치로 바퀴를 두드려 고치고 하면서 마냥 늑장을 부리더니 열여덟 시간이 걸리고야 만다. 그래도 아침엔 드넓은 평원에 해뜨는 모습이 아름다워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연상하면서 행복했다.
내림굿은 곧 신과의 결혼식, 정통 세습무 없이 모두 강신무
만달레이에서 열이틀 동안 있었는데 내림굿 하나와 닷새 동안 이어진 큰 재수굿, 그리고 아이들의 성인식을 보고 지난번 따운ꙷ축제 때 다하지 못한 인터뷰를 하느라고 정월 초하루 설날을 빼고는 잠시도 쉬지 못했다. 일부러 공부하러 간 사람으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다. 이번에는 그중 내림굿을 소개하기로 한다.
미얀마의 무당은 모두 강신무들이다. 하지만 집안을 무시할 수 는 없는 모양이다. 무당의 가계를 조사하면서 어머니나 가까운 친척 가운데 무당이 있는 집안에서 무당이 많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처럼 신들림없이 무당이 되는 정통 세습무는 없다. 낫카도 라고 불리우는 무당은 미얀마 사회에서 좀 천시되는 직업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신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흔히 37개로 알려진 미얀마의 신은 안팎으로 있어 (inside 37 nats, outside 37 nats) 실제로는 그 배가 된다. 게다가 마을마다 수호신과 또 그 지역 특유의 신들이 있기 때문에 숫자가 엄청난데 이 미얀마의 신들은 무당을 배우자로 삼는다. 낫카도들은 거의 모두 이들의 남편이나 아내로서 결혼식을 통해 무당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중 극히 일부는 신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수도 있다).
미얀마의 내림굿은 레탑웨라고 한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결혼식이라는 뜻이다. 93년 12월 29일, 만달레이 남쪽의 한 시골마을 에서 우리가 본 내림굿의 주인공은 더지라는 56세의 여인이었다.
더지는 고지죠라는 신의 아내가 되는 굿을 했다. 아무리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결혼을 하기에 너무 늙은 더지는 가난에 찌들은 모습이었으나 어딘지 품위가 있는 여인이었다. 더지에게 내림굿을 해주는 더덕은 더지보다 나이가 어린 48세였다. 하지만 이 굿이 끝나면 둘은 신어머니와 신딸의 관계를 맺어 호칭도 어머니와 딸로 부르게 된다.
고지죠는 우리나라의 대감 비슷한 신이다. 재수를 준다고 믿어지는 신이어서 가장 인기가 있는데 술과 여자와 도박을 좋아한다. 고지죠는 처음 망웨당이란 여자와 연애를 했으나 너무 술을 좋아한 나머지 술도가의 딸인 마보메와 정식으로 혼인하게 된다. 두 여자가 서로 고지죠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자 고지죠는 둘다 가버려라, 여자는 얼마든지 있고 나는 다 귀찮으니 차라리 술과 결혼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지죠는 일명 우민죠, 빠캉죠라고도 하는데 이 신을 모시는 무당은 계속 술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말타는 흉내, 북치는 춤을 추고 이어 황금색 투계닭을 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돈을 걸게 한 다음 닭싸움을 한다. 이 춤은 양손에 닭과 돈을 넣은 주발을 들고 위아래로 놀리는 것인데, 이 주발에 돈을 넣은 사람들은 고지죠와 함께 도박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지죠는 후에 왕이 되는데 수많은 여자들과 술과 도박으로 일생을 보낸 후 죽어 신이 되었다.
더지는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는 땅을 갈던 농사꾼이었다. 3년전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국가에서 땅을 빼앗아 더지는 집과 땅을 졸지에 잃게 되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던 더지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더지는 더덕을 찾아가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는데, 이때 더덕은 고지죠의 신이 실렸으니 신과 결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지는 낫카도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3년을 어렵게 버텨왔다. 하지만 생활은 하루하루 더 곤란해지고 이제는 더 이상 살수가 없게 되어 이번에 내림굿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난한 덕지는 이웃의 도움으로 기본비용을 마련하고 더덕이 거의 돈을 받지 않고 굿을 해주어 간신히 큰일을 치룰 수가 있었다.
굿은 더지의 집 근처 공터에 천막을 치고 했다. 더덕의 집에 모셔놓았던 신상들이 옮겨지고 특별히 고지죠와 그의 하인인 보뇨의 신상은 앞에 따로 모셨다. 신상 맞은편에 악사들이 자리잡고 두 명의 가수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른다. 양옆은 아이들을 비롯한 구경꾼으로 빼곡하다. 굿은 신상앞에서 하되 절할 때를 빼고 낫카도는 주로 악사나 관객 쪽을 향해서서 춤춘다.
침상의 흰실 37가닥은 37개의 낫, 즉 신들 상징
첫날은 미얀마의 무속에서 모시는 모든 신들을 청하여 대접하는 의례로 일반 재수굿과 같다. 본격적인 내림굿, 즉 결혼식은 둘째날 이루어졌다. 먼저 무당은 침상을 마련한다. 하얀 실로 사방을 둘러 만드는데 이 실은 반드시 37가닥으로 한다. 미얀마에 모시는 37개의 낫, 즉 신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침상의 길이는 가로 세로 각각 7.5 피트라고 한다.
미얀마에는 각 요일마다 주관하는 동물들이 있다. 월요일은 호랑이, 화요일은 사자, 수요일은 코끼리, 목요일은 쥐, 금요일은 돼지, 토요일은 용이고 일요일은 그루다라는 날개달린 원숭이다. 그런데 수요일의 코끼리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뉘어 오전에 태어난 사람은 상아가 있는 코끼리에 매이고, 오후에 태어난 사람은 상아가 없는 코끼리에 매이게 된다. 누군가 아플 때에는 주로 절에 모셔놓은 동물상 앞에 가서 자신의 동물에게 빈다. 미얀마에서 점을 칠때는 반드시 태어난 요일을 묻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내림굿에서 침상의 길이를 7.5피트로 하는 것은 일주일과 코끼리가 한 마리 더 있는 것을 반으로 계산하여 모든 인간들을 포용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침상의 사방 주위에는 반드시 가톱웨를 하나씩 놓는다. 가톱웨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가운데 코코낫을 놓고 주위를 바나나로 두른 것이다. 미얀마의 신전에 가면 언제든 수많은 가톱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당이 한명씩 앉는다. 더지는 아무리 가난해도 이 네 명의 무당에게 사례를 해야 하는데 그 돈은 최소한 37쟈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1백37쟈트를 낼 수도 있고 5백37쟈트, 1천37쟈트를 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마지막 숫자는 37이어야 한다. 더지와 더덕은 악사를 등지고 침상의 발치에 앉아 있고 침상의 맨위에는 사야 더 민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앉는다. 이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의미로 이 신성한 결혼을 성립시키는 주례와 같은 사람이다.
침상 안에는 빨강과 하양의 이불을 깔고 베개를 두 개 놓았다. 그리고 약간의 음식과 술, 거울, 더빅(행운을 준다고 믿는 일종의 사철나무)을 놓고 우리가 바친 한국담배도 놓았다. 더지는 붉은 숄을 두르고 조용히 앉아 있다. 먼저 더덕은 신딸의 머리를 깨끗이 빗겨 올려주었다. 이는 더지의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씻어내는 의미이다. 일상적인 인간에서 신을 모시는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더지는 손에 신칼을 들고 앉아 있고 더덕은 그런 더지 뒤에서 더빅을 들고 춤추며 더지에게 신이 강림하기를 청한다. 갑자기 더지는 울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이 굿을 크게 하고 싶은데 너무도 가난하여 모든 것을 신어머니인 더덕에게 의지한 것이 미안하고 자신의 남편이 될 고지죠 신에게도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지죠 신이 실린 더지는 더덕과 함께 일어나 춤을 추었다.
사야 더 민지를 맡은 사람은 우뇨라는 60세의 남자무당이다. 그러나 입술을 붉게 바르고 얼굴도 무대화장처럼 하여 신의 마음에 들게끔 장식을 했다. 왕처럼 옷을 차려입은 우뇨는 침상 아래쪽에 앉아있는 더지에게 물었다. 어떤 신이 들어왔는가 신이 들린 더지는 나는 더지와 결혼하기 위해서 온 고지죠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사야 더 민지는 물었다. 너는 진정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가. 신(더지)은 정말로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사야 더 민지는 다시 말했다. 지금 그녀는 너무도 가난하다. 당신이 그녀의 손과 발의 털이 불에 데이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이는 불을 때서 밥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은 그러마고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자 사야 더 민지는 최종적으로 말했다. 좋다. 이제 당신은 더지와 결혼하여 남편이 될 수 있다.
결혼식을 축하하는 즐거운 음악과 춤의 잔치 벌어져
이렇게 결혼의 허락이 떨어지자, 더지는 더덕과 함께 침상 안으로 들어갔다. 더덕은 거울과더빅으로 더지의 가슴, 양겨드랑이, 등, 그리고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듯 대준다. 거울은 미얀마 말로 큁멍이라고 한다(미얀마의 단어는 아무래도 우리 글로 정확하게 옮길 수가 없다). 그런데 큁멍은 거울이라는 뜻 외에 바르게 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더지의 온몸에 거울을 대주는 이유는 신이 그녀 속으로 올바로 들어오게 함인 것이다. 거울은 반드 시 새것을 써야 하고 굿이 끝난 뒤에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 혹시 사용하는 경우라도 무당 외의 사람은 쓸 수 없다고 한다.
이어서 더덕은 고지죠의 신상에 걸어놓았던 실과 나뭇잎으로 목걸이와 양어깨에서 가슴을 가로질러 늘어뜨리는 장식띠, 그리고 팔목걸이와 발목걸이를 만들어 묶어준다. 일곱개의 실가닥을 하나로 해서 묶은 이 띠는 레잇 삐야빡라고 하는데 영혼의 끈이라는 의미이다. 즉 신과 결혼한 그녀의 영혼이 함부로 나다니지 않고 언제나 신에게 속박되어 있다는 내용을 갖는 것이다.
갑자기 무당 하나가 일어나 악사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이 즐거운 결혼식을 축하하려는 춤이다. 즐거운 음악과 춤으로 잔치가 벌어지는 가운데 더지는 결혼 음식을 먹었다. 음식은 기름을 넣어만든 밥, 튀긴 닭, 그리고 일곱 개의 마늘을 넣어 요리한 국 등인데 이는 보통 결혼식의 잔치음식과 같다. 더덕이 일일이 음식을 입에 넣어주면서 극진히 먹여준다. 이어서 더덕은 일곱 개의 바늘에 실을 꿰어 더지의 눈, 입, 머리에 대어주었다. 이것 역시 미얀마의 말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 바늘을 미얀마 말로 아(AIK)라고 하는데 이는 또한 준다(give)는 의미도 갖는다. 따라서 바늘로 더지의 눈을 대주는 것은 밝게 남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는 것이요, 귀에 대 주는 것은 신의 말을 듣는 새로운 귀를 주는 것이며, 입술에 대주는것은 신의 말씀을 옮기고 예언의 기능을 준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머리에 대주는 것은 정확한 판단력을 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더덕은 정성스레 더지의 옷을 갈아입혀 준다. 붉은 치마, 붉은 숄, 붉은 머리수건은 모두 고지죠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이제 더지는 신과 일체가 되어 신방에 드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자 다른무당과 주위 사람들에게 담배를 한대씩 나누어 준다. 나에게도 하나 주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돈을 내기에 아마도 축의금인듯하여 우리도 한 사람이 45쟈트씩 부주를 했다. 굿청 밖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소리지르고 춤을 추며 야단들이다. 원래 결혼식에서 신방에 들 때에는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바로 이 장면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소란스런 결혼 축하의 시간이 흐른 뒤, 더덕은 튀긴 닭을 들고 일어섰다. 지금까지 우리가 줄곧 터뜨리는 플래시에 기가 죽어 조용하던 사진기사가 자신의 구식 카메라를 쳐들고 준비를 한다. 그와 눈인사를 나눈 더덕은 앉아 있는 더지의 등뒤에서 닭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안으로 휘면서 마치 반으로 자르는 듯한 동작을 한다. 처음으로 사진기사의 플래시가 터졌다. 이 장면은 반드시 사진을 찍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행동의 의미는 신어머니인 더덕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능력을 신딸인 더지에게 온가슴을 내주듯 모두 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신딸과 신어머니가 하나씩 갖고 있으면서 서로의 관계를 잊지 않는 징표로 삼게 된다.
일주일간 신과 동침 후 한사람의 무당이 되어
이제 결혼식은 모두 끝났다. 더지는 거울과 더빅을 가슴에 안고 신방으로 들어갔다. 굿이 끝날 때까지는 신상을 모셔놓은 옆에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신과 동침을 하게 되는데 적어도 일주일은 그안에서 보내야 한다. 그 동안 아무도 더지를 만질 수 없다. 더지는 화장실을 가는 것을 빼고는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모든 일을 반드시 신방 안에서 해야 한다. 무당 하나가 더지에게 소속되어 밥먹는 일이며 옷을 입는 것, 빨래등의 심부름등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준다. 더지는 그동안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왕비처럼 지내는 것이다.
더지가 신상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더덕은 고지죠를 모시는 굿과 그 하인인 보뇨를 모시는 굿을 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더지 앞으로 다가가 행여 더지에게 닿을세라 조심하며 이것저것을 묻는다. 처음 신을 받으면 영험이 있다 하여 점을 치는 것이다. 매우 근엄한 얼굴을 한 더지는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다음 날 밤 더지의 신방을 보기 위해 더덕의 집으로 갔다. 당분간 신어머니의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첫날 밤 더지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고지죠가 꿈에 나타나 앞으로 고생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더덕도 처음 신과 결혼했을 때 자신의 신방에서 꾸었던 꿈이야기를 해주었다. 더덕의 남편은 따운ꙷ 형제신 중 동생인 스웨이핀레이다. 더덕은 꿈에 길에서 많은 돈을 주웠다. 너무 많아서 도저히 혼자 가져갈 수가 없어 가족들을 불렀다. 그러자 스웨이핀레이가 나타나 그 돈은 네 것이니 누구도 부르지 말고 혼자 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더덕은 온가슴과 손에 돈을 들고 집에 왔다. 처음 무당이 되었을 때 더덕은 몹시 가난했었다. 그러나 12년 동안 굿을 하면서 돈을 벌어 지금은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집에 딸 다섯과 사위, 남편, 손주까지 열두명이 함께살고 있다. 이제 일주일 동안 신과 동침하는 것이 끝나면 더지도 한 사람의 무당이 된다.
그러나 신을 받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굿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지는 더덕이 굿하는 것을 따라다니면서 심부름도 하고 굿도 배운다. 처음에는 간단히 집에 가서 비손해주는 것을 배운다고 하는데 제대로 굿을 하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린다고 한다.
신과의 동침 등 우리나라 내림굿과 상당히 비슷해
이상으로 미얀마의 내림굿 장면을 요약해 보았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내림굿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내림굿이 결혼식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밤에 신과 동침한다는 점쟁이나 강신무들은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림굿의 구조에서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첫번째로 머리를 새로 빗어 올려 주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내림굿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있어 신어머니가 머리를 빗겨 쪽을 지어준다. 우리나라에서 머리를 올리는 것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미얀마 역시 여자의 힘은 틀어올린 뒷머리에서 나온다는 신앙심이 있다. 이는 무당이 됨으로서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공통점을 찾는다면 사야가 무당이 되려는 사람에게 어떤 신이 들어왔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림굿에도 신어머니가 신입무에게 자신에게 실린 신을 묻는 내용이 있다. 이때 신입무는 자신이 평생 모셔야 할 신의 이름을 대고 그 신복을 찾아 바치게 된다. 그리고 무당으로 병든 사람 고쳐주고 가난한 사람 도와주고 신의 뜻대로 살겠다는 일종의 선서를 한다. 하지만 미얀마의 내림굿에서는 신의 아내(또는 남편)로서 무당이 되는 것은 곧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임이 강조되어 공인으로서의 면모가 축소되었다.
미얀마 굿에서 거울을 온몸 대주는 것은 이른바 허침굿과 같다. 우리나라의 내림굿에서 허침굿은 좁쌀이 든 광주리를 이고 춤추다가 뒤로 던져 광주리가 똑바로 설 때까지 계속하는 것인데 이는 뜬신을 풀어먹이고 올바른 신을 맞이하려는 의례이다. 즉 미얀마의 거울이 바르게 한다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거울은 우리나라의 강신무들이 항상 신의 징표로 모시고 다니는 명도(구리거울이다)와 유사하지만 기능이 달라 현재로서는 더 이상 연결시킬 수가 없다. 하지만 바늘을 눈, 귀, 입, 머리에 대어줌으로써 신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내림굿에서 신어머니가 신딸에게 부채와 방울등의 무구를 주어 점을 치고 예언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주는 것과 그 기능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리나라 내림굿의 최종 목표는 예언기능의 획득인데 이 역시 미얀마와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입무와 선생무당의 관계를 보면 역시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딸과 신어머니, 또는 신아들과 신어머니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번 굿에는 더덕의 신어머니인 더띤딘이 참가하여 궂은 일을 도와주고 굿을 한 거리 맡아서 하기도 했다. 더띤딘은 올해 여든셋이지만 신딸인 더덕의 굿에는 가능하면 참여하고 또 자신이 굿을 맡으면 반드시 더덕을 불러 함께 하는 협동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같은 신어머니를 모시는 경우, 우리는 신의 동기라는 말을 쓰는데 미얀마에서도 이를 자매 형제라고 불렀다. 신을 중심으로 가족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신어머리가 신딸을 굿에 데리고 다니면 독립된 무당이 될 때까지 교육을 시키는 것도 우리와 같다고 하겠다.
심각한 경제문제, 낫카도 되는 가장 큰 이유
이제 마지막으로 미얀마에서 낫카도가 되는 사회적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무당들은 대개 신병을 통해 강신하게 된다. 미얀마의 무당들 역시 꿈을 통해 선몽을 하고 신에 의해 선택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낫카도가 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을 보인다. 즉 의학적으로 해결이 안되는 병 때문에 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소될 전망이 없는 심각한 경계적 파탄이 낫카도의 길을 걷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당들이 신과 결혼하지도 않은 채 사람들의 돈만 뜯어간다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강신무들도 병보다는 경제적 어려움, 쉽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으로 무당이 되는 사람이 많다. 미얀마와 한국의 무당을 한사람씩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올해 예순이 된 더킨 떼인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인이다. 더킨 떼인의 어머니는 유명한 낫카도였다. 그녀는 불과 열여덟살에 따운ꙷ 형제신의 동생과 결혼했다. 그녀는 신을 아주 좋아했지만 낫카도의 일은 하지 않았다. 신을 믿고 또 그녀의 어머니도 믿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낫카도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활은 나날이 곤란해져 갔다. 어머니는 그 이유가 무당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8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었던 더킨 떼인은 비로소 신을 받아들이고 낫카도의 일을 시작했다. 굿을 하게되자 생활은 점점 나아져 지금은 상당히 형편이 좋아졌다. 더킨 떼인은 현제 35명의 신딸과 신아들을 두고 있다.
동김령의 당을 맡는 당매인 심방이 된 제주도의 여든어멍
제주도 동김령의 심방인 여든어멍은 이제 일흔이 넘어 딸인 순실에게 굿을 거의 넘겨준 상태이다. 4·3 사태 때 남편은 지붕 이으려고 풀을 하러 산에 갔다가 국군의 총격으로 죽었다. 무서워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아직 젊은 과수댁인 여든어멍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을 남의집에 맡기고 통영으로 물질하러 갔다. 거기서 물질하며 돈을 모으다가 남자를 만나 딸을 둘 낳았다. 알고보니 이미 처자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든어멍은 두 딸을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거지나 다름없었다. 씨다른 두딸을 데리고 손에 쥔 것도 없이 돌아온 여든어멍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 한 끼니를 때우기도 힘이 들었다. 어느날 사흘을 굶고 누워 있는데 얼핏 잠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여든어멍을 도둑이라면서 나무에 칭칭 동여매놓고 돌로 치려고 모여들었다. 공포에 찬 여든어멍은 어떻게 해서든지 모면해 보려고 했으나 묶여 있는 몸이어서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더욱 몰려들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점잖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저 여자는 내가 보호한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그리고는 다가와서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다시 말했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이제부터는 내가 배고프지 않게 해주겠다.
다음날 난데없이 이웃의 여자가 눈병이 났는데 혹시 처방을 알면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다. 여든어멍은 그때까지 한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조건 바가지에 소금을 조금 넣고 비비면서 태양을 향해 빌었다. 그러자 다음날 이웃집에서는 눈병이 다 나았다고 쌀을 조금 가져왔다. 그렇게 해서 여든어멍은 무당이 되었고, 후에 그 딸도 무당이 되어 동김령의 당을 맡은 당매인 신방이 되었다. 무당이 된 후 여든멍은 큰집을 사고 막내딸이 미장원을 내는 등 경제적으로 상당히 성공하였다. 미얀마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무속신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주의로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돈에 대한 열망이 사회 전체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굿판에 모여드는 그 많은 사람들, 그리고 고지죠에게 다투어 돈을 거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도박 한 탕하는 것이 더 쉽게 돈버는 길임을 믿는 신도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