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문화 행사와 현대미술
-'순환과 창조(리사이클링)전' 과 '테크노 아트전'을 보고
김재권 / 조형예술학 박사
원래 엑스포란 산업 구조적 착상에서 비롯된 상품의 선전이나 전시효과를 겨냥한 행사로,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 각국을 번갈아 가며 개최되어 온 국제 행사이다. 이러한 행사에 문화를 상품의 포장지처럼 도입하게 됨으로써 엑스포와 문화의 유착 관계가 성립된다.
이번 대전 엑스포에서도 4백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기획·연출되었거나 앞으로 연출되리라 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산업 구조와 생산, 그리고 판매는 문화예술의 그것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엑스포가 어차피 산업주의 체제의 쇼윈도이며 이것이 물질 환경의 이정표쯤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이슈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살펴보건대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산업화에 따른 병폐 즉 위험과 재해 그리고 공해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일, 그리고 인간과 환경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하나로 통합된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의미를 담은 '순환과 창조(리사이클링)전'과 자연과 테크놀로지를 예술적으로 통합하려는 의지를 내포한 '테크노 아트전'은 이러한 현안 문제에 매우 유사하게 접근하는 전시회라 평가된다.
순환과 창조(리사이클링)전
순환과 창조전은 단순한 차원의 자원의 재활용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통해 익숙하게 용해되어 온 '생활로서 거듭남'의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고 전시 기획자는 말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 다수는 물질적, 그것도 산업 폐기물을 매체로 사용하여 작업을 했다. 그러나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한국 작가 대부분은 서구 작가들의 물질적 변형으로서의 예술 작품과는 공공연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서구 작가들처럼 물질의 재생 효과(feed back)가 아닌 시간에 대한 재생 효과를 내보이는 듯하다. 이 점이 이 전시를 통해서 발견되어지는 동서양의 차이라면 차이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물질과 시간 속에 내포된 예술 현상은 각각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다.
뒤샹 이후 오늘의 서구 작가들이 붓이나 물감 대신 사용하고 있는 산업 폐기물과도 같은 매체들은 탈 물질화 현상으로서의 예술적 개념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매체에 대한 자발적인 발견과 기능적인 특성에 의해 새로운 예술적 규정을 찾으려는 데 그 본뜻이 있고 이러한 노력이 결국은 예술이 일상적인 삶을 반영한다는 데로 귀착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작가들의 경우 남북 분단이라든지, 일제시대의 낡은 가족 사진, 죄수들의 머리카락, 무덤에서 껌벅이는 눈 등 개인적인 관심사를 역사적이거나 시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보면 역사와 인간의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정신적 시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오늘의 예술 현상은 한 작가가 역사라고 하는 종적 라인에 서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보다 사회라고 하는 횡적 공간에 서서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추세라고 볼 때, 이러한 차이점을 단순히 동서양의 의식구조에 따른 예술 현상이라고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덧붙여 이러한 문제를 보다 선명하게 조명하기 위해서는 14명의 서구 작가와 1명의 일본 작가를 제외한 17명의 한국 작가들로만 참여 작가를 구성할 게 아니라 아시아권이나 동양권 국가 작가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야 했고, 여기에 '리사이클링'이라는 명제가 예술적 대상으로 작용, 매체로서의 다양한 물질이 동원되도록 유도되어 예술상의 새로운 문제제기 기능으로 놓여졌어야 했다.
백남준의 〈프랙탈(비정수) 거북선〉은 본인의 말처럼 역사 속에 있었던 '정당방위적 성전(聖戰)'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이 작품 역시 시간에 대한 재생 효과(feed back)위에 놓여진다. 그는 또 거북이 지니는 개념을 ① 이순신의 하이테크 무기 ② 세계 최초의 장갑선 ③ 생태학적 특수 표본 등으로 재해석하여, 비디오·네온·거북이 들어 있는 수족관 등을 결합, 대상과 주제가 동시에 그것도 복합적으로 작용케 함으로써 시간의 영속성을 획득하게 된다.
테크노 아트전
9월 15일부터 10월 3일까지 엑스포 문예전시관에서 열렸던 '테크노 아트전'의 주제는 '자연과 테크놀로지'였다. 다시 말해서 자연과 테크놀로지를 예술적으로 통합해 보려는 취지였다.
이 전시는 국내 테크놀로지 예술가들의 모임인 '아트테크 그룹' 구성원 8명에 의해서 집단적인 창조성(공동 작품)으로 꾸며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회의 명칭이 그러하듯 전시 작품은 비디오·컴퓨터·터치 스크린·레이저·홀로그램·네온·광섬유 등 첨단 매체를 흙·돌·나무·물 등 한국의 자연 요소와 결합하여 하나의 토탈 환경(Total Environment)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전체가 8개의 단위 작품으로 나누어지는데, ① 흙벽에 모니터를 결합시켜 만든 '비디오 창-환경 비디오' ② 여러 대의 멀티비전을 쌓고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보여준 '비디오 벽-이미지 비디오' ③ 돌·스테인레스로 된 조형물에 프랙탈 영상을 결합한 '테크놀로지 아트 모뉴멘트' ④ 관객이 작품에 침투, 이미지의 홍수를 체험할 수 있는 '매직 비주얼 터널' ⑤ 무수한 광섬유의 입자자를 사용하여 빛의 파동을 보여준 '빛의 우물' ⑥ 수십 개의 나무토막에 다양한 첨단 매체를 덧붙여 만든 '전자 정원' ⑦ 홀로그램이라는 매체를 예술적 유사주의에 적응시킨 '홀로그램 사과' ⑧ 빛과 물의 움직임을 통합하여 축조된 '인공 무지개' 등이다.
이러한 작업은 매체 사용이 같거나 연관성이 있는 작가 두세 명이 한 작품 또는 두 작품을 만든 다음 이것을 전시 공간에 상호 침투하는 재조합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그들이 바라는 공동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완전한 통합은 부분적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즉 이러한 작품들이 예술상의 문제제기 기능으로 놓여지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가 자연을 통합하기 위한 기능으로 작용케 함으로써 개념적·비평적·서술적·정보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들은 테크놀로지라는 매체만을 경쟁적으로 사용했지, 예술적 개념이 빈약하여 사고 시스템으로 놓여지지 못했다.
사실상 테크놀로지라는 매체는 중성적이어서 동일한 매체일지라도 작가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예술 형태도 달라지는 것이다. 백남준도 '컴퓨터를 쓰는 예술가와 예술을 하는 컴퓨터 전문가는 차이가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테크놀로지 예술가들은 테크놀로지 그 자체의 예속에서 벗어나 인간과 그 중심 영역을 확대 적용해서 얻어지는 하나의 프로세스로서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예술가들 자신의 상상력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예술적 접근이 가능하게 될 것이며, 그러지 못할 때 그 예술 작품은 용산전자상가의 진열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모든 예술 형태는 확실히 전통 개념을 뛰어넘어 성립된다. 다시 말해서 현대미술은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서 전개되는 이미지 집적(集積)이라든가 메시지 전달, 또는 이와 대등한 경험을 토대로 세워진다.
오늘날 현대 미술가들은 전통 예술에서의 천재적인 창조성을 외면하고 어쩌면 예술의 낙후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치 하나의 수행 목적과도 같이 사고되어져야 할 부분을 물질적 변형을 통해 다양화·복합화함으로써, 표현으로서의 자유와 경험으로서의 자유를 동시에 획득하려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원래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사고나 지각에 대한 전담 분야가 아닐지라도, 창조성에 대한 최종 책임은 작가들 자신이 져야 되는데 작품에 대한 책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작품이 대상보다 기능에 더 충실해야 된다.
백남준은 이번 〈비정수 거북선〉이라는 작품을 전문가나 성인을 위한 하이 아트(high art), 중·고등 학생의 교육 소재, 초등학생의 과학 오락과 같은 3가지 기능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 예술가들은 대상 생산으로서의 미학적이거나 테크닉적인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관객에 대한 거리·시간·농도를 재조정함으로써 새로운 개념과 방법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켜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