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뽀

문화의 달, 신명나는 한마당




황인숙 / 시인

이민섭 문화체육부 장관은 '문화란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지로부터 탄생한다'고 지난 10월 20일에 있었던 문화의 날 기념식사에서 강조했다.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들의 문화에의 갈증을 참여의 장으로 연결짓기 위한 방안과 문화행정 관계자들의 생각들이 합리적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앞에 산재한 현상들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계획되는 각종 문화예술 정책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문화발전을 통해서 민족의 정기를 확립해야 한다는 곳에 시발점을 두고 있다. 문화란, 특히 예술이란 그 특성상 온갖 계층이 함께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이루고 있는 문화는 근본적으로 한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개인의 특성을 넘고, 각 계층간의 벽을 허물고,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유도하며 확립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 공간에 대한 긍정적인 암시라고 할 수 있다.

'93 문화의 날 기념 잔치

자신이 택한 길을 두려움 없이 가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또한 그 길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 받고, 왜곡되고 황폐한 삶을 수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예술가의 예술적 삶이라면 더욱 위대하다. 그들을 격려하고 부추기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그들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이뤄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들의 업적을 가시화 시키는 수상 제도 역시 그들의 발자취 쪽으로 일반인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데는 한몫을 한다. 이 점이야말로 수상자들을 격려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날 기념 잔치는 '문화의 날' 노래(국립합창단)와 함께 슬라이드로 '이 달의 문화 인물'을 상영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시상' 및 '국제 영화제 수상자 서훈',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시상', '문화예술유공자 서훈' 등이 있었던 이 날 행사에서는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은관문화훈장을 정한숙씨와 김원룡씨가 수상했다.

원로 소설가인 정한숙씨는 다채로운 소재를 여러 가지 기법으로 재구성하는 등의 소설에의 구성적인 실험을 일관되게 시도해 왔다. 경성제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김원룡씨는 우리나라의 고고학 및 미술 사학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우리 민족 문화 유산의 발굴과 보존에 꾸준하게 기여해 왔다.

무엇보다도 문화의 날 기념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신경숙·임헌정·류인·김아라·박광수·전미숙씨 등의 젊은 예술가들이다. 각 분야에서 특출 나게 예술적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은 이미 이루어 놓은 예술적 성과로 미루어 훨씬 더 독보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이들의 예술적 진보를 밝게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예술 전체를 밝게 전망할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데 이는 든든하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학부문에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신경숙 씨는 첫 창작집 「겨울 우화」를 상재한 이후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내놓으며 더욱 원숙해진 문학적 세계를 인정받았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시적인 문체를 바탕으로 한 실존적인 고독감의 응시는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성적인 부드러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대변해 준다.

미술 부문의 수상자 류인씨는 미술대전 2회 및 목우회 특선이라는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후기산업사회가 야기하는 인간성 상실의 고뇌 등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한 그는 구상 계열 조각의 새로운 입체주의적 경향을 수용해서 한국화 하는 등 독창적 조형어법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휘자 임헌정씨는 지방 교향악단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끌면서 지방 교향악단의 한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그와 지방 교향악단과의 융화는 타지방 교향악단 발전의 한 모티프가 될 만하다. 그는 동아 음악 콩쿠르 작곡 부문의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부천 시립교향악단 지휘자·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극 부문의 수상자는 연출가 김아라씨이다. 30대의 현존하는 연출가 그룹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가장 의욕적인 연극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가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김아라씨는 현재 극단 무천의 대표이다. 동아연극상과 백상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 부문의 수상자 박광수 씨는 〈칠수와 만수〉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파리영화교육 특수학교에서 수학한 그의 수상 경력은 남달리 화려하다. 〈칠수와 만수〉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등의 많은 작품으로 우리와 더욱 가까워진 그는 현재 가장 촉망받는 젊은 영화감독 중 하나로서 독창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무용 부문의 수상자는 현대무용가 전미숙씨이다. 우수한 안무가이자 무용가로 평가를 받고 있는 전미숙씨는 '밤' 무용단 단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는 밀양 백중놀이 예능 보유자 하보경씨, 소설가 김주영씨, 산업미술가 한홍택씨, 국악인 안숙선씨, 영화 촬영감독 정일성씨이다. 밀양 백중놀이 원형 재현 및 밀양 민속놀이의 발굴과 보존에 많은 기여를 한 하보경씨는 북춤·양반춤·범부춤의 명인이기도 하다. 또한 김주영씨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작가이다. 과거 속에 묻힌 우리의 풍속과 우리말을 찾아내어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연결짓는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그의 문학적 발자취가 높이 평가받았다.

산업 디자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도안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한홍택씨와 안숙선씨(중견국악인, 국내의 활발한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공연을 통하여 우리의 판소리와 창극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기여했음), 영화 촬영감독 정일성씨(그 동안 1백 20여 편의 작품을 촬영하면서 〈서편제〉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의 무르익은 예술세계가 기대된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대통령 상장과 상금 6백만 원이 지급되었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국민문화 향상에 기여가 큰 문화예술인을 선정, 보관문화훈장(7명)과 옥관문화훈장(8명), 화관문화훈장(4명) 등의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각종 문화행사들

'93 문화축제 주간(10월 20일∼24일)의 문화행사들은 문화의 날인 20일을 중심으로 풍성하게 펼쳐졌다. 날짜별로 각각 다른 주제로 편성된 이번 축제 기간은 19일 전야제를 비롯하여, 20일 문화의 날, 21일 춤의 날, 22일 책의 날, 23일 국악의 날, 24일 예총의 날로 구분.

20일 문화의 날에 행해졌던 문화예술 행사들을 보면, 마로니에 야외 무대에서 있었던 금관 5중주단의 공연 및 사물놀이 한울림 30명이 참여한 비나리·지신밟기 외에도 전통혼례 등을 꼽을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 가설 무대에서 오후 1시 30분부터 행해졌던 전통혼례의 앞놀이인 '함진 애비놀이'에는 사물놀이 팀이 가세했으며 청사초롱 행렬 등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전통혼례식 후에 있었던 축하놀이에서는 사물놀이 거리꾼 팬터마임 등도 볼 수 있었다. 오후 2시 30분에 이어졌던 '시집가는 장면' 재현과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등의 공연도 특기할 만하다.

춤의 날인 21일에는 고적대 퍼레이드(오전 11시 30분)와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12시 30분), 마림 앙상블 연주(13시 30분) 등이 마로니에 공원과 가설무대, 야외무대 등에서 각각 있었다. 이어서 춤의 날을 기념하는 야외 춤잔치가 잇달아 16시 20분까지 계속되었다. 야외 춤잔치에서는 한국무용은 물론이거니와 발레·현대무용 등이 관람객들과의 거리를 좁히며 공연되었다. 야외 춤잔치는 무대와 관람객들과의 거리가 평소보다 가까웠기 때문인지 무대를 둘러싼 관람객들과 잘 융화되었다. 이어서 서종호씨가 지휘하는 강원 소년소녀교향악단이 가설 무대에서 공연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책의 날이었던 22일은 마로니에 주부 백일장이 개최되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주부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이 백일장을 통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사례가 있기 때문인지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하게 원고지에 쏠려있다. 또한 마로니에 야외 무대의 시 낭송 잇기(12시, 시 문화회관), 시 노래 부르기(종이연 그룹) 등도 책의 해이니 만큼 책과 일반 시민들과 구체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게 있는 행사의 아쉬움이 남았던 점도 짚어두고 싶다.

이밖에도 서현석씨가 지휘하는 서울윈드앙상블의 가설 무대에서의 연주회와 크로마하프 연주단의 공연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놓지 않았다.

23일인 토요일은 국악의 날이었다. 이날 마로니에 야외 무대에서는 '국악과 록과의 만남'이라는 주제의 무대가 펼쳐졌다. 가수 김수철씨 등을 포함한 대중가수와 국악인들이 참여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뿐만 아니라 송파 산대놀이와 시민들을 위한 가요 무대인 '예술인 큰잔치'와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공연 등이 잇달았다. 밤 9시의 '우수영화감상'에서는 〈장군의 아들 3〉이 상영되어 시민들이게 우수한 우리 영화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한번 더 제공되었다.

문화 축제주간 마지막 날인 24일은 '예총의 날'. 이 날에는 웅장한 규모의 사물놀이 퍼레이드가 펼쳐졌으며 국악 잔치인 〈뺑파전〉이 가설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책의 날과 마찬가지로 예총의 날에도 시민을 위한 가요 무대인 '예술인 큰잔치'가 있었으며, 저녁 9시의 우수영화 감상시간에는 〈사의 찬미〉가 상영되었다.

이 밖의 문화 축제 기간 공동 프로그램인 꿈나무 극장의 인형극, 사물체조 강습 및 시범, 팬터마임 등도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어린이들과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연주되었던 문화의 달 경음악 한마당 역시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았다. 경찰청 악대들의 10월 9일 청량리역 광장 공연, 국방부 군악대의 10월 16일 서울역 광장 공연,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10월 17일 용산가족공원 공연, 아카데미 윈드 오케스트라 공연(10월 18일 교보빌딩 앞 공연, 10월 19일 제일은행 본점 앞 공연, 10월 21일 종묘 앞 광장 공연, 10월 23일 국립중앙박물관 공연), 대원여고 브라스밴드의 10월 23일 올림픽공원 공연, 미림여고 관악대의 10월 24일 보라매공원 공연.

이외에도 생활문화 장터에는 바른손 팬시와 아트박스 등이 참여하여 문구류 등의 상품을 전시·판매했으며 문화재보호재단의 민속주와 한가류, 애지방의 지공예 소품전시 및 판매가 있었다. 또한 놀이사랑 문화가족과 한국차인연합회도 생활 문화 장터에 참여했으며, 한국종이접기협회의 종이 접기 시연·작품전시·강좌 등이 장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의 '책의 코너에서 작가와의 만남'과 낙화 및 혁필시연 등도 있어서 더욱 다채로웠다.

문화의 달을 갈무리하며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올해 문화의 달 축제기간 중의 성과라면 축제행렬이나 공연자들의 움직임을 일반 시민들이 뒤따르며 함께 어우러진 시민 참여의 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문화예술 행사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중의 하나가 관객과 예술작품과의 거리 좁히기에 있는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와 한계 등을 감안한 현실감 있는 문화 행정 및 축제 마당을 기대해 본다.

또한 이번 행사를 눈 여겨 본 사람이라면 축제 기간에 행해졌던 모든 행사들의 규모가 작년보다 커지기는커녕 오히려 작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 법했다. 문화의 발전이 한 나라의 발전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 정부 차원의 재원확보와 효율적인 재원의 운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