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보존이냐, 철거냐
서재환 / 영남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재
1910년대를 전후해 건립된 대구 시내의 근대 건축물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는 가운데 이들 건축물들의 보존대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 등으로 지정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서라도 보존해야한다는 쪽과, 일제 때의 유산인 만큼 철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완공된 대구시 신청사가 70년 전에 건축된 무덕회관을 헌 자리에 들어섰고, 보사국으로 사용되던 대구부립도서관(1924년 건립)이 곧 철거될 형편에 놓이게 됨에 따라 근대건축물의 보존 여부에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한말 이후 영남지역의 상업·문화·행정의 중심지였던 대구에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어느 대도시보다 많은 근대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일교회가 행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된 것처럼, 이들 건축물들을 보존하는데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내의 근대건축물에 대한 자료 중 가장 최근의 것은 1988년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가 대구시의 의뢰로 조사해 발간한 「대구지역 근대건축물 조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시내 근대 건축물 중 보존가치가 큰 84개중 29개가 이미 철거됐거나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변형돼 버렸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학계와 문화재 당국이 서둘러 보존대책을 마련해 건축사적·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들이 더 이상 철거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물 소유주와 건축업계 등에선 근대건축물의 보존에 지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근대건축물의 대부분이 일본인들에 의해 건립된 수치스런 역사의 산물로 전통건축과 융합될 수 없는 이질적인 유산에 불과하므로 도시개발을 위해서라면 철거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건물주들은 문화재 등으로 지정될 경우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보존 여론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일부 건축물들에서는 행정소송 등 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근대건축물의 보존 여부에 대한 마찰이 계속되는데도 대구시는 이에 대해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계의 주장과 건축업계의 반발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대구지역의 근대건축물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전인 1988년 이전에는 문화재 등으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인 계산 성당이 지난 1981년 사적으로 지정돼 있었다.
대구시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조사보고서가 나온 이후인 1989년부터 1992년 사이 기독교와 천주교 등 종교 관련 건물 7개를 유형문화재 또는 문화재 자료로 지정했다.
유형 문화재는 모두 5개로 △ 중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교구청의 성모상(1918년 건립) △ 제일교회 △ 현재 동산병원 사택으로 사용되는 스윗즈 주택 등 선교사들의 주택 3동이다. 또 문화재 자료는 △ 중구 남산동 구 대건 학교 건물인 성 유스티노 신학교(1914년 건립)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의 코에넷관(1915년 건립) 등 2개가 있다.
근대건축물의 보존대책으로는 문화재 등으로 지정하거나 철거가 불가피한 경우 이전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면 원형을 보존해야 하므로 거래는 가능한데도 살 사람이 없어 건물주의 재산권 행사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지난해 대구시가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자 행정소송으로 맞선 제일교회의 경우도 바로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건물주와의 마찰을 피하고 근대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당국인 대구시가 건물을 사들여 문화재로 지정, 관리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나, 대구시는 그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대구지역의 근대건축물은 종교·상업·공공건물 등 세 가지 용도로 분류되고 있는데 상업 공공건물은 속속 철거되고 있다. 최근 철거된 근대건축물은 중구 포정동 조선은행 대구지점(현재 서울신탁은행 대구지점, 1920년 건립)과 무덕회관 등이며 중구 포정동 조선 식산은행(현재 산업은행 대구지점,1918년 건립) 등 나머지 건물들도 곧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미술
전통적으로 하한기이던 7, 8월의 대구지역 화랑가가 붐비고 있다.
전시회가 뜸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대부분의 화랑들이 여름 기획전 개관시간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화랑운영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 화랑가에 하한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도 나오고 있다.
예년의 경우 화랑들은 피서철을 맞아 기획전을 외면한 채 상설전시로 대체하거나 아예 문을 닫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색 개인전이나 대형 단체전 등을 마련해 관심을 모은다. 이 같은 경향은 대구의 중추적인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연중 계속되는 기획전과 대관전시가 일반 화랑가로 파급되기 때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올 여름 볼 만했던 기획전으로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대구현대미술-오늘의 단층전(7월 7일∼8월 1일)'과 단공 갤러리에서 마련한 '파이오니아전(7월 26일∼8월 3일)', 송아당 기획 '정비파 판화전(7월 16∼7월 25일)', 동아전시관 기획 '루브르 박물관 걸작 예술작품전(7월 9일∼7월 24일)' 등이다. 또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중인 서양화가 이원희씨의 대구전(맥향 화랑과 동원화랑 공동기획, 7월 14일∼7월 23일)과 '박무웅·이정웅 2인전(중앙화랑, 7월 28일∼8월 10일)', '여름 속의 구상작가 초대전(대백 갤러리, 7월 4일까지)' 등은 시원한 풍경을 위주로 한 구상작가들의 여름전시로 꼽을 만했다.
개인전 중 정비파씨의 '우리시대 마직막 모습전'은 제주와 울릉 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시골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실제 모습 그대로를 실크스크린에 담은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이색 판화전.
'파이오니아전'은 서양화·한국화·판화·조각 등 모두 4부로 나눠 각 20여명씩 출품하는 신진 발표전이었다. '파이오니아전'을 기획한 단공 갤러리의 이경미씨는 "한가한 여름철이라 전국에서 작가를 선정, 참여시키기가 오히려 쉬웠다"며 "여름 전시동안 고객들을 편리한 시간대에 끌기 위해 개관시간을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름철 화랑의 다양한 기획전이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그 내용이 시원한 풍경 등 구상화에만 치중해 아쉽다는 지적이다. 이럴 때일수록 작업환경이 어렵거나 실험적인 작가에게 전시공간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랑대관이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 여름동안 무료대관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보다 알찬 기획으로 관례화 하면 하한기 전시가 오히려 지역미술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원화랑 손동환씨는 "8월말에 있는 서울 화랑미술제를 준비하다보니 해마다 7, 8월에 전시기획이 늘어났다"면서 "앞으로 이 기간을 잘 활용해 전시장을 비워 두지 않도록 매년 전시일정을 잡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