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 문학평론가
문학 잡지 난립의 배경
'문학 잡지가 너무 많다' 이런 말들이 심심지 않게 글판에서 오고 간다. 그 말은 단지 문학 잡지의 숫자가 많다는 뜻만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그 말속에는 알찬 내용을 보여 주지 못하는 잡지가 많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문학 잡지가 많다 보니까 그렇게 부실한 모양을 보이는 잡지들도 많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문학 잡지가 많아지게 된 까닭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학잡지가 많아지는 상황은 대략 198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던 1987년도 무렵에 출판 등록 자유화가 시행되자, 5공화국 초기에 폐간되었던 문학 잡지들이 복간되기도 하고 새로 창간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런 상황은 계간지를 중심으로 하여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다. 계간지 발행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3개월마다 발행되는 방식이 독창적이면서도 알차고 깊이 있는 내용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참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계간지 창간이나 복간이 매력 있는 일이 되었던 까닭은 1970년대에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 그리고 「세계의 문학」이 차지했던 위상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 계간지들은 서로 대비되는 강한 개성을 확립하면서 문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학술이나 문화, 심지어는 정치적으로도 당대의 현실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또한 계간지의 입장에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식구처럼 거느리면서 잡지와 연계된 단행본 출판을 통해서 상업적으로도 튼튼한 기반을 확립해 놓을 수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특히 문학 잡지 발간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 중의 하나로 문예진흥원에서 잡지사에 제공하는 원고료 지원 정책을 꼽아 볼 수도 있다. 2백 페이지 안팎의 시 전문 잡지를 발간하는 데 매 회마다 2백만 원 내외의 현금이, 그리고 3백 페이지가 넘는 종합 문학 잡지를 발간할 때에는 4백만 원이 넘는 현금이 원고료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문학 잡지사에 지급되고 있던 당시의 상황이 더 많은 문학 잡지들을 창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원고료 지원 정책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부실한 내용의 문학 잡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빌미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원고료를 거의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문예진흥원은 원고료 지원금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흑자 경영을 하는 시 전문지들도 있었던 바, 그런 현실을 감지한 사람들 중에서 잡지를 창간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간지의 경우에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원고료 지원 정책의 수혜자가 되면서 필자들에게 지원금을 돌려주는 방법으로 원고료를 인상하게 되었고, 계간지의 원고료가 월간지의 원고료 수준을 훨씬 능가하게 된 결과로 계간지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 들어서 문예진흥원의 원고료 지원 사업이 중단된 상황은 문학 잡지 간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우선 월간지의 경우에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겨다 준 것처럼 보인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는 종합 월간지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매달 적자 액수에 해당되는 3∼4백만 원을 문예진흥원의 원고료 지원사업에 의존하고 있었던 바, 지원 사업이 중단됨에 따라서 잡지를 내놓거나, 월간지에서 격월간지로 또는 계간지로의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문학사상」이 단행본을 제외하고 잡지만 내놓았다는 소문이 몇 차례나 문단에 나돌고 있는 형편이며, 「문학정신」은 주인이 바뀌었다가 발행이 중지된 상태이고, 「한국문학」은 주인이 바뀌었다가 격월간지라는 이상한(?) 형태의 발행을 하게 되었으며, 「동서문학」도 계간지로 바뀌어 발행되고 있다.
시 전문 월간지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종합 월간지에 비하여 책의 두께가 얇은 터라 제작비가 적게 들 뿐더러, 대부분의 시 전문 월간지들은 원고료 지원 사업의 대상자이던 시절부터 영리성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해도 거의 미미한 수준의 액수만을 지급했던 터라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되는 고통을 그다지 겪지 않았던 것이다. 계간지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원고료 지원 사업의 대상자가 아니었던 탓으로 심리적 부담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짧았던 수혜 기간 동안 받았던 지원금을 필자들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원고료를 인상시켜 버렸기 때문에 제작비의 적자폭이 한층 커지게 되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 문학 잡지의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되는 추세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그리고 그런 잡지들이 주로 계간지의 형태로 창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내가 알기에 1990년대 에 들어서 적자 경영을 이유로 폐간되거나 휴간된 잡지가 「현대소설」,「현대시세계」,「외국문학」 정도에 불과한 반면에 새로 창간된 계간지들은 「시와 시학」,「소설과 사상」,「시와 반시」,「오늘의 문예비평」 등을 비롯해서 서너 종이 더 있고, 지금 준비중인 계간지들도 서너 가지가 더 되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계간지의 형태로 문학 잡지가 꾸준히 증가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잡지 출판 자체에 뜻이 있다기 보다는 잡지를 통해서만 출판의 기득권이 유지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을 수용하는 방편으로 문학 잡지가 꾸준히 증가되고 있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계간지라는 발간 형태가 계속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1970년대 이래로 꾸준히 기득권이 유지되고 있는 출판 방식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그것을 모방해서 수용하려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 잡지사가 잡지 이외의 출판에 개입하려는 태도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장점은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주로 발휘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특정한 문학 잡지에서 작품의 개성과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 점을 부각시켜 널리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직접 출판에 개입하거나, 일관된 기획으로 다른 출판사와 중복이 되지 않는 분야의 저서들을 간행하는 경우이다. 그러한 출판 작업들은 잡지의 문학적 입장과 보조를 맞추거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가 있다.
잡지와 단행본 출판 병행의 문제점
반면에 문학 잡지사가 출판에 참여할 때 갖게 되는 단점은 주객이 전도되는 입장을 보여 줄 때 드러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입장이란 잡지 발행이 체면치레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리고, 오히려 출판에 주력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은 특히 문학의 참된 현실적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이 문학 잡지를 발행할 때에 갖게 되기가 쉽다.
적지 않은 문학 잡지의 발행인들이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학을 위한 희생 정신이 없이, 단지 문화 사업을 벌인다거나 문인들과의 교분을 통해 명예심을 충족시키려는 동기에서 문학 잡지를 창간하거나 인수하고 있으며, 그럴 경우 문학 잡지가 내세우고 추구하고자 했던 입장이나 취지가 희석되거나 변질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잡지의 편집 위원이나 주간이 자주 교체되는 이유도 그런 발행인과의 입장 대립에서 비롯되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문학 잡지를 발행함으로써 생겨나는 손실을 무리하게 단행본 출판을 통해서 메꾸려고 할 때, 출판의 일관성 있는 기획 방침이 존재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잡지의 지면마저도 들쑥날쑥한 성격을 보여 주기가 쉬운 법이다.
문학 잡지가 출판에 관여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또 다른 단점은 문학상의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오늘날 많은 문학 잡지들이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는 바, 그것의 운영 방침이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단행본 출판의 상업성과 결부되는 단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경우에는 문학상의 추천이나 심사 과정에서 잡지사의 입장이 강력하게 배려될 때가 많고 그럴 경우에 잡지사의 입장이란 대개 문학에 대한 주체적 입장이 아니라 상업적 입장일 때가 많다.
이러한 장단점과는 별도로 문학잡지에서 단행본을 간행하는 상황이 1990년대의 전반적인 출판 풍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문학 잡지들이 많아지고 잡지의 기득권을 바탕으로 너도나도 단행본 출판에 나서게 되자, 문학 잡지를 발간하지 않는 출판사들은 작가들을 교섭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잡지사에서는 특정한 작가에 대하여 잡지에 지면을 할애하여 그 작가를 조명해 줄뿐만 아니라, 잡지 원고료와 함께 단행본 출판에 따른 인세를 이중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계간지의 경우에는 장편소설을 집중 분재하고 원고료가 높은 수준에 있을 뿐더러, 빠른 시일 내에 단행본으로 출판해 버려서 작가에게는 적지 않은 혜택이 돌아가는 만큼, 일반 출판사들은 단행본 출간의 경쟁 조건에서 그만큼 불리한 입장을 감수해야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출판사들이 생각해 낸 해결책이 이른바 '전작 출판 방식'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의 인기 작가에게나 해당이 되었던 이 출판 계약 조건이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신인 작가나 심지어는 전혀 창작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어, 상당한 액수를 미리 계약금으로 받고 계약된 시일 안에 장편소설을 써 주는 출판 방식이 공공연한 관행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최근의 출판 방식이야말로 상업성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는 출판 방식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잡지를 갖지 못한 출판사들은 문학성에 치중하는 작가들의 창작집이나 장편소설을 교섭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점을 역이용하여 아예 문학성이라는 점 대신에 상업성이 배려될 수 있는 무명 작가들을 발굴해 내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 잡지들이 원고료와 인세를 이중으로 부담해가며 펴내는 단행본 출판 방식은 어쩔 수 없이 본격 문학 출판을 대표하는 방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무명 작가들을 발굴해서 통속적인 장편소설이나 전기소설로 재미를 본 일반 출판사들은 이제 더 이상 순수 창작집이나 장편소설 출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 잡지 자체의 운영상의 문제점
이제 잡지사의 단행본 출판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문학 잡지 자체의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때가 되었다.
문학 잡지의 운영에 있어서 문학잡지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 신인발굴이다.
새로운 문인을 발굴하고 키워 냄으로써 문학 잡지들은 자신들의 문학에 대한 역량을 대외적으로 공개평가 받게 되고 잡지의 미래를 예비하게 된다. 또한 신문의 신춘문예 제도가 뒷받침이 없다는 점에서 꾸준한 뒷받침을 해주는 문학 잡지로 등단하는 데 대한 문학 지망생들의 관심이 나날이 증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신인 발굴은 엄격하고 세심한 과정을 거쳐 실행되어야 할 터인데,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문학 잡지들이 시인추천이나 심사제도를 공정하지 못하게 운영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떤 잡지에서는 매번 10여 명이나 되는 신인들을 무더기로 등단시키고, 잡지를 강매하거나 기부금을 받아서 잡지의 운영 기금에 충당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 온다.
심사나 추천 과정이 공개되지 않고 추천이나 심사에 이름만 빌려주는 방식이 하나의 관행처럼 통용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문학잡지의 발행이 상업성이라는 측면과 조화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면, 그럴수록 문학의 참다운 속성에 대한 배려는 엄격하고도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하는 만큼, 잡지 스스로 품격을 낮추는 행동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잡지의 기획과 운영에서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독점과 분산의 입장이다. 발행인이나 주간, 또는 특정한 편집위원의 입장만이 일방적으로 내세워지는 풍토나 제각기 지분을 따로 가지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풍토는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잡지의 개성이나 일관성은 토론과 합의의 바탕 위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학연이나 지연, 혹은 특정한 이해 관계에서 편집 위원이나 편집 동인이 구성되는 일부의 현상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잡지의 개성이나 일관된 문학적 입장은 토론과 합의의 바탕 못지 않은 전제 조건으로 개방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간이나 편집 위원에게 임기를 부여하거나 객원 편집위원을 위촉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잡지의 기획과 운영에서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필자가 자주 중복되는 현상을 지적해 볼 수도 있다. 필자의 중복 현상은 좋은 필자를 자주 선택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일정한 능력의 한계를 지닌 인간이 좋은 글을 자주 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필자를 잡기 위하여 잡지끼리 지나친 경쟁을 하는 것은 좋은 필자의 능력을 일찍 소모시켜 버리는 역할을 하기가 쉬울뿐더러, 잡지의 개성을 상실시켜 버릴 수도 있다. 서로 비슷비슷한 기획에 비슷비슷한 필자를 나누어 갖는 결과가 초래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예지의 바른 역할을 위하여
이제 이 두서 없는 글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의 문화적 상황을 곰곰이 되새겨보면서 글판에서 요즈음 자주 거론되는 말을 한가지 더 인용하고 그 말에 담긴 뜻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감할까 한다.
요즈음 들어 사정의 여파가 언론과 출판계에도 미치면 많은 신문과 잡지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 잡지사들 중에는 문학 잡지사도 포함될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문학 잡지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문이나 다른 잡지들이야 발행 부수가 공개되면 당장에 광고수입이 격감하게 되어 부실한 곳들은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지만, 문학 잡지들이야 그 동안에도 광고 얻기에 그다지 애를 쓰지 않았을 뿐더러 발행 부수도 도토리 키 재기처럼 서로 엇비슷한 수준의 몇천 부 내외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판에는 몇 년 안에 문학 잡지들이 여러 개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소문과 함께 새로운 문학 잡지가 몇 개 준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런 소문과 새 문학 잡자가 준비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연관시켜 파악해야 할까 ? 나는 새로 창간되거나 복간을 준비하는 문학 잡지들이 보다 대중적인 성격을 띠거나 문화 예술 종합지의 성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문학 잡지들의 숫자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그럴 듯하다는 판단을 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문학 잡지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진로를 모색해야만 하는가 ? 나는 순수하거나 고급한 문학의 영역을 소개하는 문학잡지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적지 않은 문학 잡지들이 단행본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전작 출판 제도를 통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일반 출판사들의 출판 방식이 고급한 문학 잡지 발간을 통해서 단행본 출판에 참여하려는 잡지사들의 의욕을 감퇴시킬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순수한 문학 잡지의 숫자는 감퇴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잡지들이 계속 살아 남을 것인가 ?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고급한 문학 잡지 발행을 통해서 전문적이거나 일관된 단행본 출간의 저변을 확립해 놓은 잡지들은 살아 남을 것이고 문학의 영역을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대중문화의 영역과 접합시켜 놓은 새로운 기획을 보여주는 잡지도 살아 남을 것이다. 그 두 가지 모습은 과거부터 꾸준히 존재해 온 문학의 바른 모습이거나 새롭게 변모하는 문학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습을 담아 낼 수 있는 문학 잡지의 역할은 바른 것이기도 하다.
문학의 고유한 정신적 가치가 보존됨으로써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기능은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고, 새로운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문학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두 가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 내기만 한다면 문학 잡지는 어려운 존재 여건 속에서도 제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