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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신세대 시

- 체험의 시




황병하 / 문학평론가

'체험의 시(Poesia de la Experiencia)'세대로 불리는 스페인 신세대 시인들은 프랑코의 죽음(1975년) 이후 구가되었던 새로운 민주 질서 위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의 시인들을 가리킨다. 대체로 1980년대 초·중반에 자신들의 첫 시들을 선보인 이들 세대는 1980년대 중·후반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면서 자신들을 앞서 간 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들이 바로 금세기 스페인 시단의 마지막 모양새를 결정할 것이라는 점에서 '체험의 시' 세대는 단순한 하나의 새로운 세대 출현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스페인 시는 1950년대∼1960년대의 사회시(Poesia Social)-1970년대의 최후시(Poesia Novisima)-1980년대의 후기 최후시(Poesia Postnovisima)라는 맥락을 추적하며 변화해 왔다. 빅토리아 끄레메르(Victiriano Cremer), 블라스 데 오테로(Blas de Otero), 가브리엘 셀라야(Gabriel Celaya) 등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1960년대의 사회시는 당시의 스페인이 노정하고 있던 정치, 사회 문제들을 작품화하고자 노력했던 일종의 리얼리즘 시운동이었다.(Angel del Rio, 「Historia de la literatura espanola Ⅱ」, Barcelona: Ediciones B, S. A., 1988, p.534.) 최후시는 간명한 문체를 바탕으로 스페인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조명하려고 했던 그러한 리얼리즘 계열의 시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이미 스페인 시단에서 중견의 자리에 도달해 있는 페레 힘페레르 (Pere Gimferrer), 기예르모 까르네로(Guillermo Carnero), 비센테 몰리나 포익스(Vicnete Molina Foix), 안토니오 콜리나스(Antonio Colinas) 등이 주축이 된 최후시는 사회시의 미학적 근간으로 지적되는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의 거부로부터 그 출발점을 찾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최후시가 추구한 시적 미학은 문학 행위의 자율성, 문자와 내면 세계 사이의 결렬, 그리고 매스미디어, 대중 문화와 그리스·로마 고전 문화에 대한 이중적 관심이었다.(Elena M. de Jongh, Hacia una estetica postnovisima: neoculturalismo, metapoesia eintimismo, 「Hispania」, 74: 1991, p. 841.)

신세대의 '체험의 시'와 '최후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세대가 있다면 그것은 '후기 최후시'이다. 엘레나 종은 후기 최후시의 특징을 '신문화주의', '메타 시(Metapoesia)', '개인 내면 강조주의(Intimismo)'로 지적한다. 그녀가 기존해 있는 용어에 접두사 'post'를 붙여 이 세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 세대 안에 전 세대와 관계하여 어떤 동질성과 이질성이 동시에 내재 해 있기 때문이다.

후기 최후시에는 후기시의 중심적 미학인 신문화주의가 그대로 전차되어 있기 때문에 일면 후기시의 시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메타시와 개인 내면강조주의 같은 새로운 변별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평에 또한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이스 알베르토 데 쿠엥까(Luis Alberto de Cuenca), 루이스 안토니오 데 비예나(Luis Antonio de Villena), 하이메 실레스(Jaime Siles), 살바도르 로페즈 베세라(Salvador Lopez Becerrra) 등이 후기 최후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에 속한다.

스페인 신세대 시는 위에서 분류한 후기 최후시의 세 가지 특징 중 개인 내면강조주의를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킨 데서 자신들의 경계를 설정해 나간다. 개인 내면에 자신들의 시적 촉수를 뻗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시는 극렬한 자전적 형태를 띠고 있다.

소위 일화적 형태를 가지고 있는 사실주의적 자전과는 구별되는 이 내면 강조주의적 자전은, 그 성격상 체험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해석 양식을 추구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개별 시인들이 창조해 내고 있는 시 세계들은 다양하고, 마이크로코스모스적이고, 단층적이다.

따라서 이 세대는 거대한 테제를 동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목소리들의 집합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작은 이질적 개체들로 혼합된 '무작위적 집산'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들은 많게는 1960년 생부터 적게는 1966년 생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있어 어느 정도 차이가 엿보이지만 모두가 1960년대 생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신세대와도 연령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연장자에 속하는 1960년 생에는 곤살로 알소론 바르톨(Conzalo Alonso Bartol), 호세 페르난데스 데 라 소타(Joes Fer-nandrz de la Sota), 호세 루이스 페리스(,Joes Luis V, Ferris)가 있다.

곤살로 알론소 바르톨은 살라망까 출신으로 나이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지만 1988년 「니에베의 돌(Piedra de Nieve)」 발간을 시작으로 1989년 「여기에 계속 있는 이래 (De estaraquisiguiendo)」, 1991년 「도시의 주제에 관한 다양성들 (Variaciones sobre el tema do la ciudad)」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연초에 '에스끼오(Esquio)상을 획득하면서 신세대 시의 중심적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곤잘로 알론소 바르톨과 마찬가지고 뒤늦게 신세대 그룹에 뛰어든 빌보아 출신의 호세 페르난데스 데 라 소타는 1988년 바스코 주정부 시인상 1991년 문화부 펠로우쉽을 수상하고, 소설에까지 손을 대는 등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펴나가고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마지막 제안(Propusta final)」은 개인 체험의 내면화로 표상 되는 신세대 시의 특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말하지/그리고 아래에 있는 것들처럼 위에 있는 것들도 자연의 풍경에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단지 인간만이 이러한 신비롭고 완전한 질서에/끼어들지, 단지 인간만이/ 다른 법칙에 자신의 법칙을 강요하지/그래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반대로 자연을/증오하지……(후략)

세 사람의 1960년 생 중 가장 일찍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호세 루이스 페리스는 알리칸테 출생으로 1982년에 벌써 문화부의 창작 기금을 받아 「앞 바다(Pielago)」를 썼고, 1985년에는 '발렌시아 비평가 그룹 상'과 시집 「석회로 된 왕의 징표(Cetro de cal)」로 '아도나이스' 상을 수상했다. 시를 '감정과 사유 사이의 밸런스'로 이해하는 그는 왕성한 창작 의욕을 가지고 현재 어린이를 위한 동화와 시집 발간에 힘을 쏟고 있다.(「ABC Cultural」, No. 71: 12 marzo 1993, p,21.)

연령적으로 바로 이들 1960년 생의 뒤를 잇는 신세대 시인들로는 카를로스 마르살(Carlos Marzal, 1961년 생), 에스페란사 로페스 파라다(Esperanza Lopez Parada, 1962년 생), 마누엘 빌라스(Manuel Vilas, 1962년 생) 등이 있다.

이 중 여성인 에스페란사는 수도 마드리드 태생으로 처음에는 단편소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산문보다 시에 더욱 치중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첫 시집이 1984년 「경계선들의 산불로서(Como frutos de fronteras)」라는 제목 하에 발간되었으며, 다음 해에 두 권의 시집이 더 출간되었다. 그녀의 시들은 올해 발간된 「세기 말(Fin de siglo)」이라는 스페인 동시대 시인 전집에 포함될 정도로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스페인 시단의 국외자로 지칭하고 있지만 「옆방(El cuarto de al lado)」과 같은 그녀의 대표작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 또한 개인적 체험을 자신들의 시의 뿌리로 인식하고 있는 신세대의 일반적 범주로부터 완전히 이탈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그와 대략 아는 체를 하지도 않고/결코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그러나 나는 그가 나갈 때마다 그를 엿본다/나는 그가 있던 곳에 그가 없는 것을 보고/그렇게 해서 그의 몸뚱어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발견한다/그의 몸뚱어리가 버려 놓은 공동을/말하자면 나는 그가 밖에 나갔다는 것밖에 모른다/단지 하나의 상대적이고 목적 없는 앎/나는 그의 부재 이상 의 그 어떤 것도 분별해 내지 못한다.

우에스까 태생인 마누엘 빌라스는 17세의 나이에 「버드나무(Ei sauce)」라는 시집을 발표할 정도로 시작에 천재성을 보인 시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른 시작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음 시집 「불꽃들의 소음」이 나온 것은 거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990년이었다. 소위 '자전적 미학'이라는 신세대의 시 세계를 가장 명증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그는 문학 전공 교수로서 사회 평론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에스페란사나 마누엘 빌라스보다 한 살 위인 카를로스 마르살은 「퀴테스(Quites)」라는 문학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현재까지 「축제의 마지막(El ultimo de la fiesta)」(1988), 「경계선의 삶(La vida de frontera)」(1991)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현재 시와 일기가 혼합된 「자주 일어나는 일들(Menudeos)」이란 책의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 여섯 시인에 이어 신세대의 선두 주자들로 불릴 수 있는 보다 젊은 시인들은 디에고 돈셀 (Diego Doncel, 1964년 생), 알바로 가르시아(Alvaro Garcia,1965년 생), 루이스 무노스(Luis Munoz, 1966년 생), 비센테 발레로(Vicente Valero, 1963년 생), 호세 안토니오 토레(Jose Antonio Tore, 1963년생), 레오폴도 산체스 토레(Leopoldo Sanchez Torre, 1963년 생) 등이 있다.

이들 중 1990년대 이전에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한 사람은 비센테 발레로, 알바로 가르시아, 루이스 무노스 등이다. 나머지 세 사람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첫 시집을 낸 사람들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 디에고 돈셀, 호세 안토니오 토레, 레오폴도 산체스 토레와 같은 후자들이 신세대의 시 세계를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는 성급하지만 개연성 있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이들 중 특히 아스토리아스 출신의 레오폴도 산체스 토레는 시뿐만 아니라 비평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는 작가로서, 그의 대표작 「구름들처럼(Como las nubes)」은 소위 '체험의 시'라는 이 세대의 시적 지층을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해 주고 있는 작품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나는 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베에 의해/암처럼 고통스럽고, 커피처럼 쓴 그런 비/비와 도시/그것들을 살아 있게 하는 나의 눈/내 세계의 완전한 원형/나는 산다, 긴 눈을 가진 한 도시에서 산다,/겨울에는 무덥고, 여름에는/마치 군인들의 거수 경례처럼 차가운/마치 구름들처럼, 나는 산다……(후략)

마이크로코스모스적 체계 인식

서른 살 전후의 나이를 가진 스페인 신세대 시인들은 이처럼 탈이념화, 개인 체험에 대한 우월성 부여, 정치에 반한 문화 우위론 등과 같은 가치관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시 세계를 탐구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권의 신세대들과 전혀 변별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특별히 40년에 걸친 프랑코 독재 정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방출해 나가던 희망의 시대에 유년기나 소년기를 보낸 이들이기에 그러한 모습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신세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비춰질 수밖에 없다.

마치 스스로 고백하는 그들의 시적 전범들이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듯 그들은 더 이상 사회 공동의 집단적 체험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개별성의 집단이라는 형태 속에서 자신들 세대의 특징적 모습인 마이크로코스모스적 세계 인식 태도를 명증하게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