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하여
이가림 / 시인·인하대 교수
최근 우리 문학의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추세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올해부터 '대한민국 문학상'을 폐지하고 '한국문학 번역상'을 신설, 대상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지난 연말 순수 민간 문화기구인 대산재단(이사장: 신용호 대한교보 명예회장)이 55억 원의 기금을 출연, 우리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산재단은 3월부터 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우리 문학 번역지원의 대상을 선정하는 사업에 착수하여, 하반기부터는 실제적인 지원 사업을 펼쳐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구체적인 사업내용으로는 '대산 문학상' 시상을 비롯하여 창작 지원금 지급, 국제심포지엄, 해외 저명 문인초청 세미나, 외국의 한국문학 연구 기관 및 연구가의 번역 출판과 지원, 장학 사업 등 실질적인 계획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한편 국내 최대 규모의 D출판사에서도 국제적으로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특정 작가를 선정하여,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우리 문학의 국제 무대로의 진출을 위한 여러 사업 계획들은 지금까지 크게 힘을 기울이지 못했던 분야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나눠 먹기 식 상금의 미끼를 과시하는데 치우치거나 행사 위주의 전시 효과를 노리는 일과성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그야말로 무가치한 거품 문화를 일으키는 데 돈을 헛되이 쏟아 부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동안 문예진흥원에서 역점 사업의 하나로 추진해 온 우리 문학의 번역 소개가 70년대 이후 그때그때 단기적으로 세운 계획에 따라 명목상 책을 만들어 내는 데 그쳤을 뿐, 해외 독자들에게까지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러한 번역사업의 실패가 문예진흥원의 전략상의 허점에도 있는 것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그 역할을 맡아서 수행하는 번역자 개인의 능력과 재능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번역의 네 가지 어려움
'출발 국어의 메시지의 가장 가까운 자연스러운 등가어 또는 표현을 도달 국어 속에 만들어 내놓는' 뛰어난 번역자가 있어, 번역을 했으나 거의 번역 냄새가 나지 않는 유려한 번역을 해 놓았을 때, 그 번역 작품이 해외 독자들의 독서에 그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번역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죠르쥬 무넹에 따르면 번역에는 네 가지의 커다란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문명적 또는 넓은 의미로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들로부터 오는 어려움,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언어학적인 장애들로부터 오는 어려움, 문장 구성에서 오는 어려움, 문체의 분야에서 오는 어려움 등이다.
원천국(한국)과 목표국(서구)의 문명과 언어가 서로 너무나 달라서, 우리 문학이 서구어로의 번역은 의미와 문체에 있어 적절한 등가를 이루게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번역자가 원천어와 목표어에 충분히 정통해야 할 뿐 아니라, 훌륭한 본토 작가의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듯한 인상을 줄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 비로소 하나의 문학 예술로서의 번역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다.
비네와 다르벨레가 제시한 번역방법, 즉 말의 차용, 모방, 축자역(逐字譯)으로부터 전환, 변조, 등가와 번안 등의 방법도 번역 작업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이끌어 가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직역 또는 축자역은 양쪽 진술의 구문이 비슷하다면 채택할 만한 방법이 될 것이다. 비록 한국어가 구문, 통사론, 문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인도 유럽어와는 매우 다른 어족에 속하지만, 넓은 의미로 직역을 택할 경우, '서구어의 성질에 일치하는 한에서' 상황과 문맥에 따라 주어, 대명사, 관사, 명사의 성과 수, 소유 형용사, 관계 대명사 등을 번역 속에 적절히 구사할 수 있다. 번역자가 보다 멋진 번역을 해 보려고 축자역을 피하고 지나치게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과잉 번역에 빠지게 되면 오히려 망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직역의 메마름과 껄끄러움을 완화하기 위해서, 비네와 다르벨레가 말한 '전환'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때때로 필요하다. 원문의 완전한 의미상의 내용은 보존하되 품사나 통사론적 규칙은 지키지 않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능동태로 표현된 것을 서구어로는 수동태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 구문일 경우가 종종 있다.
'등가'와 '번안'이라는 방법은 하나의 원천어의 진술과 또 다른 목표어의 진술 사이에 있는 가장 가까운 등가적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령 우리말의 속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표현을 프랑스어로 옮길 경우 '늑대에 대해 말하자 그 꼬리가 보인다'(Quand on parle du loup, on on vnit la queue)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표현이 될 것이다.
시의 번역은 산문화 되어서는 안되며, 그야말로 시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에드봉 까레가 말했듯이 '시인들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번역자 스스로 시인답게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원천어의 시정과 특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목표어의 작시법, 운율 또는 리듬, 음성학적 효과, 형식적 양식 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언어학적 형식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번역 작업의 어려움을 깊이 인식함으로써 그로부터 훌륭한 번역 능력을 갖춘 번역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번역 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파격적인 액수의 번역 문학상을 신설하고, 뛰어난 번역 작품을 내놓는 역자와 출판사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러한 인재를 장기적 안목에서 배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탐스럽고 알찬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는 먼저 그 열매의 씨를 심고 돋아난 싹에 물을 주고, 뿌리와 줄기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충분한 거름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번역이 문화의 재창조이며, 외국 문학도가 삶의 내기를 걸어 볼만한 최선의 연구 분야의 하나라는 인식을 새로이 가질 필요가 있다. 번역의 이상적 실현, 즉 출발 국어와 도달 국어 사이의 등가의 실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양쪽 언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외국어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연구업적 가운데, 번역 작업이 매우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며, 번역의 이론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강좌가 대학이나 특수 연구 기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번역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한 진지한 노력과 체계적인 훈련 없이는 언제나 사상 누각을 짓는 일에 불과하며 해외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되는 창조적 번역물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번역 출간된 우리 문학들
아마도 우리 문학 작품의 첫 번째 해외 소개라 할 수 있는 홍종우와 로니의 공역 「향기로운 봄」(「춘향전」의 불역)이 1982년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출판된 이래 1세기의 세월이 흘러갔으나, 같은 동양 문화권인 중국, 인도, 일본에 비해 우리 문학의 해외 진출은 지극히 빈약한 실정이다. 필자가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종종 들르곤 하던 대형 서점 프낙(fnac)의 동양 서적 코너에 꽂혀 있는 중국, 인도, 일본의 숱한 번역서들 앞에서 기묘한 콤플렉스를 느껴야 했던 창피함이 새삼 떠오른다. 특히 프랑스의 가장 확고 부동한 고전 총서인 플레이아드 판으로 나와 있는 중국의 「노자」,「장자」의 번역서를 비롯한 「수호지」,「삼국지」,「홍루몽」,「금병매」 등의 번역본들, 그리고 아쿠다가와의 「나생문」과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위시하여 미시마 유끼오의 「금각사」, 아베 고보의 「모래의 여인」 등 대표적인 일본 현대 소설가들의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고 불문학도로서 부끄러운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다.
1980년대 이전 해외 문단에서 어느 정도 평가를 받은 우리 작가로서는 김은국, 강용훈, 김용익, 이의경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 같이 우리말로 쓴 작품을 번역하여 국제 무대에 알려진 경우가 아니다. 작가 자신들이 미국이나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영어나 독일어로 글을 써 세계 문단에 알려지게 된 '외국어로 작품을 쓰는 한국 작가'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서 모국어를 표현 수단으로 하여 작품 활동을 한 외국 문단에 속하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리차드. E. 킴' 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진 김은국은 31세의 젊은 나이로 1964년 「순교자」(The Martyred)를 영문으로 출판, 일약 미국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순교자」가 나오자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는 "어느 나라에서건 10년만에 하나 나타날 가장 유능한 젊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만 10주간에 걸쳐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순교자」는 2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최소한 50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올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김은국은 이어서 한국의 5·16 군사 혁명을 소재로 한 「더 이노슨트」(The Innocent)와 일제 식민지시대를 소재로 한 「빼앗긴 이름」(Lost Name)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굳혔다. 6·25동란을 배경으로 한 「순교자」가 그렇듯이 그의 모든 작품들은 조국인 한국에서 소재를 구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전개되는 구성을 갖고있다.
1930년대의 미국 문단에 데뷔한 강요훈은 3·1 운동 직후 건너가, 지극히 한국적인 토속적 세계를 서정적인 시적 문체로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작가이다.
1930년대에 쓴「초당」(Grass Roof),「행복한 숲」(the Happy Grove),「서유기」(East gose West) 등의 작품들은 김은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맛이 물씬 풍기는 동양적 세계를 담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주목할 만한 한국작가로서 김용익이 있다. 그는 장편 「뒤웅박(Diving Gourd)」을 발표함으로써 미국 문단 뿐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문단에도 알려진 소설가로 한국 농촌과 어촌의 인정 어린 세계를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로 그리는 데 성공하고있다. 1960년에 「행복한 나날」(The Happy Days), 1962년에 「뒤웅박」, 1964년에 「씨앗 속의 파란빛」(Blue in the Seed)을 출판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었으며 미국에서 영어로 쓴 12편의 단편을 묶어 「겨울의 사랑」(Love in the Winter)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3·1 운동 직후 독일로 건너가 뮌헨대학에서 중국학을 강의하던 이의경이 1946년에 발표한 자서전적인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Der Jalu fliesst)는 유럽 쪽에서 주목을 받은 유일한 한국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신들의 조국인 한국을 소재로 해서 글을 썼다는 사실과 작가 스스로 외국어로 작품을 창작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꾀하고자 하는 오늘의 우리 문단에 커다란 시사를 던져 주는 것이라 하겠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지닌 한 나라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해외 독자들의 독서에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가르쳐 준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의 발굴
'가장 한국적인 혼이 깃든 작품'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세계 문단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에 속한다. 그러나 그런 작품을 서구어로 효과 있게 옮기기 위해서는 양쪽 언어에 통달한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의 번역자를 만나야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해당 외국인이 한국 어문학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전략이 강구되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서유럽 지역의 대학에 열려있는 한국 어문학과에 보다 실질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의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한국학과가 대개의 경우 중국학과와 일본학과의 강의의 일환으로 개설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학과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대학에 등록한 외국 학생들이 한국 및 한국인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학업의 계속 여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으므로 국내 단기 연수의 기회를 자주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알리앙스 프랑세즈, 괴테 인스티튜드, 브리티쉬 카운슬 등과 유사한 한국 문화 및 어문학 보급 기관을 설치하여 해외 교수 경험이 있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국어를 가르침으로써, 장차 유능한 외국인 번역가를 양성하는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1980년대 이후 우리 문단에도 조금씩 밝은 전망과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의 수상 여부가 한 나라의 역량과 질을 그대로 반영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겠으나, 근래 몇 년 동안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천거된 김동리, 최인훈, 서정주, 김지하, 한말숙의 작품 번역은 우리 문학의 해외 진출의 교두보 또는 돌파구를 열어 보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문열의 「그 해 겨울」,「금시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르 몽드」지를 비롯하여 「르누벨 옵세르바퇴르」지 등으로부터 긍정적인 조명을 받는가 하면, 한무숙의 소설 「만남」이 미국 버클리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 유력한 독서 잡지 「라이브러리 저널」에 호평이 실리는 등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일본에서 번역 중에 있어 조만간 일본 독자층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징후들은 "의미와 문체에 있어서의 등가의 번역"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학 작품도 능히 세계 문단의 차원에서 얼마든지 그 가치를 겨루어 볼 만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