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문화의 파수꾼들
임병호 / 경기일보 문화체육부장
연극
경기도립극단이 있는 수원에는 최근 극단 수원예술극장과 극단 성(成)이 수원 지방연극을 지키고 있다.
'지방연극을 지킨다'기보다는 '사수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이 두 극단이 2월중에 무대에 올린 「하나를 위한 이중주」와 「보수작업」이 관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2월 15일부터 3월 21일까지 공연되는 수원예술극장의 「하나를 위한 이중주」는 도립극단 초대 상임 연출자를 역임한 이재인 연출로 이태실과 박기선이 열연하고 있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는 1980년 2월 런던의 부쉬 극장에서 초연 되고 같은 해 9월에는 듀크 오브 요크 극장으로 옮겨 1년간 공연했었다.
세계 27개국에서 공연된 이 작품으로 원작자 톰 켐핀스키는 최우수 희곡상을, 스테파니역의 드라뚜르는 최우수 여우주연상, 그리고 펜트만 박사역의 다비드 드 께제는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수원예술극장에서는 도립극단 단원이었던 이태실씨가 스테파니역을, 박기선씨가 펜트만 박사역을 맡아 열연 중에 있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는 인생의 절정기에서 뜻하지 않게 불치의 병(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생명과도 같은 음악을 포기해야만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가 심한 좌절과 절망감 속에서 정신과 의사인 펜드만을 찾아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그녀는 자신의 좌절감을 부정하면서 극도의 냉소주의로 펜드만과 맞서 치료를 거부한다. 한 여인의 반생을 부각하며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한 여자의 고통과 절망을 통하여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진지하게 표현한다.
특히 스테파니역의 이태실씨는 수원은 물론 경기도 연극제의 대표적인 배우로서 한동안의 공백을 깨고 다시 무대에서 혼신을 기울여 열연하고 있어 주부 관객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열살 된 아들을 둔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극배우로서 1인 3역을 하고 있는 이씨는 1986년 28세의 늦은 나이에 연극계에 데뷔한 이래, 「고향의 봄」,「정복되지 않는 여자」,「위기의 여자」,「신의 아그네스」 등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 넓은 배역을 소화해 왔다.
극단 성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공연한 모노드라마 「보수작업」이 2월 5일부터 14일까지 성황리에 끝난 데 이어 25일부터 3월 5일까지 앙코르 공연 중이다.
이창현 작 김성열 연출의 「보수 작업」은 85년 초연 된 이래 수원에서만 세 번째 무대에 올려진 것으로 원래 남자 주연의 작품이었다.
여자 주연의 작품으로 각색한 「보수작업」은 이란성 쌍둥이 중 잠만 자는 여인과 항상 의식이 깨어 있는 사내가 서로의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려 변신하지만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단군 설화, 나무꾼과 선녀이야기 등 우리 나라 전래 설화를 삽입해 외부의 힘에 의해 변신된 상황 비유하면서 주인공 여인이 욕설, 풍자, 익살로 관객을 사로 잡는다. 주인공 이은미씨는 극단 성이 수원 무대에 올려 성공한 「햄릿」의 오필리어역, 「프쉬케 그대의 거울」에서 주인공 효정역 등을 통해 연극배우로서의 '끼'를 훌륭히 보여 주었는데 「보수작업」에서도 쌍둥이, 창녀, 연출가, 해병대, 조교,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 등 1인 11역을 광적으로 그러나 관객의 숨을 죽이며 처리하고 있다.
문학
2월 들어 수원지방에서 문학 작품집이 잇달아 출간돼 향토 문학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 가운데 토요시 문우회의 첫 번째 동인시집 「수원에서」는 향토와 생활의 주변 정경을 진솔하게 담았다.
"시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애틋한 이야기들, 꾸밈없는 삶의 모습들을 원고지에 담아 한편의 시를 완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학관을 갖고 있는 토요시 동인들은 매월 두 번째와 네 번째 토요일에 만나 작품 토론을 열어 왔는데 2월 6일에는 수원문화원 큰사랑에서 「수원에서」 출판기념회 겸 시 낭송회를 열었다.
「수원에서」에는 김영돈, 김순덕, 오세정, 조한봉, 신강식, 한영숙, 김경화, 김경옥, 장순옥, 남혜숙, 김현미, 이태용, 양지찬, 홍진표씨 등 동인들이 정성 들여 쓴 시 65편이 실려 있다.
경기도 공무원문학회의 작품집 「팔달문학」 2집도 귀중한 수확이다. 「팔달문학」은 무엇보다도 위민봉사현장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따뜻하고 힘찬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깊고 크다.
도청을 비롯하여, 각 시·군의 문학 애호가들로 구성된 경기도 공무원 문학회는 회장인 정득복씨를 비롯하여, 최정학, 홍승표, 강시욱, 권오진, 박병두씨 등 문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 작가들이 다수 있으며 다른 회원들의 작품도 문학성이 매우 높다. 시와 시조, 수필, 콩트 등을 골고루 수록한 작품 가운데 유일한 동화 「검정붕어 이야기」가 책 후반부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원에 거주하는 주부들의 모임인 한밝메 문학회의 두 번째 작품집 「작은 음악회」는 합창이면서도 각자의 음률이 아름답다.
"서빙고 호숫가에/노을을 빗겨 섰던/내 첫사랑 소년에겐/가을 타는 냄새가 났다//사유의 올 풀어/새벽 길어 내는 나의 기도/속사랑으로/ 출렁이는 물살// 그 가슴 헤쳐/ 나팔소리로 일어서라/태양으로/솟거라//노을 등지고/미루나무처럼/손짓하던/내 첫사랑/소년 같은/아들의 옷깃엔/관악산 아침안개가 피어난다"
조청자씨의 시 「아들에게」 전문이다. 한밝메 문학회는 수원시 및 경기도 주부 백일장 입상자들이 모여 90년 6월 창립한 이래 매월 동인 작품발표회를 열고 있다. 정방진(회장), 박정숙, 박정희, 송영옥, 양정원, 조말숙, 조청자, 허정희, 황영숙, 황영자씨가 동인으로 활약 중이다.
시조시인 홍승표씨의 첫 작품집 「사랑아 ! 이제 우리는」이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기도 광주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홍씨는 현재 경기도지사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씨의 작품들은 고향의 나무들과 숲 사이를 지나던 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호박잎이며, 나팔꽃잎에 맺힌 아침이슬과 같은 청량함과 푸근한 인정을 담고 있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홍승표씨는 198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시조문학」 천료를 통해 재 등단했으며 경인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 협회 수원지부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1992년 「한국시조」 신인작품상을 받았다.
음악
2월 18일 출국했던 수원의 대한 어머니합창단이 미국 LA 시의회 초청 '한·흑 친선 음악회' 연주를 성공리에 마쳤다.
대한 어머니합창단의 미국 공연은 LA 사태 당시 희생당한 고 이재성씨의 장학재단 설립과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2월 20일 오후 7시 30분 다운타운의 웰서 연주홀에서 대한 어머니합창단, 홀만 흑인혼성합창단, 서울 코랄 교포합창단, 나성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공연했다.
1부 대한 어머니합창단, 2부 흑인 홀만 합창단, 3부 대한 어머니합창단, 4부 서울 코랄 합창단, 5부 나성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출연 팀들의 연합 연주회로 펼쳐진 '한·흑 친선합창단' 총지휘는 대한 어머니 합창단의 오현규씨가 맡았다.
대한 어머니 합창단은 「아침기도」,「You are my friend」,「우리는 여소서」,「칠갑산」,「경복궁 타령」,「장안사」,「한강수 타령」 등을 불러 박수갈채와 함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수원 산남 초등학교 학생 어머니들로 구성된 산남 어머니합창단이 2월 12일 오후 7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지난 1991년 가을 산남 초등학교 종합예술제때 합창단을 조직, 출연한 뒤에도 해체하지 않고, 아마추어 어머니 합창단으로 창립한 산남 어머니 합창단은 단장 임태술, 부단장 최점순, 총무 정연숙, 반주 라승희씨 등 40여명으로 구성됐다. 지휘자 이영희씨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10여 년 수학한 음악인이다.
창단 연주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산남 어머니 합창단은 수원지방의 수원시 어머니합창단, 난파 어머니합창단, 대한 어머니합창단, 수원 YWCA 합창단 등과 함께 수원의 합창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음회의 제2회 정기 연주회가 2월 20일 오후 7시 수원 시민회관에서 있었다.
수원에 거주하는 음대생들의 모임인 예음회는 회장 김상희(숙명여대 음대2년)를 비롯하여, 18명으로 구성됐다.
항상 노력하는 음대생들임을 과시한 제2회 연주회에서 예음회 회원들은, 기악, 성악, 피아노 연주, 듀오 등의 팀 구성으로 무대를 빛내 시민들의 격려를 받았다.
지난 1992년 6월 창단식을 가진 있는 바 있는 '수원 소년소녀합창단'이 2월 16일 수원 시민회관에서 창단 연주회를 열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단장 이지연, 지휘자 최용신, 반주자 한윤희, 성악 지도 서만숙씨가 중심이 된 수원 소년소녀합창단은 수원시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까지 37명으로 구성됐다.
창단 연주회에서 수원 소년소녀합창단은 「생명의 양식」,「주는 나의 목자」,「로미오와 줄리엣」,「고향의 노래」,「산마루」 등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불러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이로써 수원에는 난파 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두개의 소년소녀합창단이 활동하게 됐다.
미술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라혜석이 태어나 성장한 수원은 미술계가 화려하다.
한국 미술협회 수원지부를 비롯하여, 성묵회, 수미회, 수원 미술인 협의회, 경기 현대 작가회, 일구팔이일이회, 컴 아트 그룹, 수원 지역 미술교사회, 수원 구상 작가회, 수원 사생회, 수원 일요 화가회, 시맥회, 문미회 등의 미술 단체들이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며 활동하고 있다.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수원문화원 2층 큰사랑에서 제1회 작품전을 열어 수원 화단에 선을 보인 문미회(회장 정옥련)는 '수원 문화원 미술교실' 출신의 주부 미술 단체다. 수원 문화원 미술교실은 1990년 3월 수원 문화원이 미술발전을 위하여 개설했는데 1백여 명의 주부들이 강좌를 수료하였다.
아마추어 미술인 단체인 문미회의 제1회 작품전은 주로 소박한 풍경화와 정물화를 출품, 눈길을 끌었다.
고경희, 고미자, 김명숙, 김복자, 박계숙, 신동운, 양연숙, 오신숙, 오준자, 윤묘구, 윤춘선, 원미자, 원윤희, 이후남, 이희숙, 임순희, 장인희, 전영매, 전영숙, 정옥련, 최경옥, 최내춘, 최종숙, 홍문숙, 황의숙씨가 출품했다.
수원 문화원이 매월 발행하는 문화 소식지 '수원사랑' 창간 5주년 기념 제3회 수원 문화원 초대작가전은 2월의 경사였다.
'수원사랑' 표지화와 이 달의 작품란에 참여한 수원 지역화가, 서예가,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이번 초대 작가전에는 서양화에 김학두, 강생중, 권대균, 권용택, 김교선, 김성로, 김수현, 김영섭, 김주영, 김철규, 남부희, 서해창. 윤재상, 이득현, 이석기, 장상숙, 조진식, 최현식, 최희정, 한기백, 홍현옥씨, 한국화는 강강찬, 고학윤, 박영일, 이길범, 이선열씨가 출품했다. 또 공예는 장혜홍, 조각 우무길, 서예 김병학, 안효영, 차기동, 사진 강상훈, 김석태, 김중기, 남기성, 연민흠, 유철현, 임경택, 전유병, 정학균, 최종엽, 황문수씨가 참여했다.
서양화가 김교선씨(수원 매원중 교사)가 겨울 방학동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4개국을 여행하면서 스케치한 소품들을 모아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전시회를 가졌다.
'갤러리 수원'에서 있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동안 줄곧 비구상 작업만을 계속해온 김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세심 성당, 노틀담 사원, 영국의 핼턴 궁전, 템즈 강, 로마의 거리 풍경 등 4개국의 명물, 명승이 연필 스케치 15점, 유화 15점에 깨끗하고 아름답게 표현됐다.
태(胎)를 소재로 12년간 조형적 탐색을 거듭해 온 서양화가 홍현옥 씨의 첫 작품전이 2월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관훈 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열린 데 이어, 수원 장안 갤러리에서 2월 25일부터 3월 3일 까지 계속됐다. 생명을 잉태한 한 여성이 잉태한 생명과의 사이에 매개체로 존재하는 탯줄을 모티브로 삼아 생명과 생명 사이의 교감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형상화시킨 홍씨의 이번 작품전은 '내 생명의 생명이여'를 주제로 추상적 조형 언어를 빌려 펼쳤지만 제1부 천지창조, 제2부 홍수시대, 제3부 구원, 제4부 승화의 각 파트에 해당되는 소주제에 걸맞은 내용을 은유적으로 암시했다.
홍현옥씨는 대전 출생으로 공주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후 '80년대 초반부터 수원, 평택, 성남 등 주로 경기 지방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수원 수성중학교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