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레 유학 시절
문훈숙 / 유니버설 발레단 부단장·수석 무용수
흔히 유학이라고 하면 한국에 있다가 외국에 나가 공부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나는 미국에서 공부도 하고 모국인 한국에서도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와 외국에서 공부하였던 것이 다 유학처럼 되어 버린 것을 먼저 밝혀 두어야 하겠다.
내가 발레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8살 때 미국 버지니아주 멕클레인 우리집 근처에 있는 멕클레인 예술 학교라는 작은 발레 학교에서부터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 시작은 발레를 전문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도록 하시려는 어머니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여동생과 함께 그 학교에서 발레 레슨을 받았고, 주 1회씩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그 학교는 미국 스타일의 작은 교회를 개조하여, 1층에 발레 스튜디오를, 지하에는 미술을 가르치는 아담하고 소박한 목조 건물이었던 것 같다. 그 학교에는 고등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조그마한 주니어 발레단이 있었는데, 가끔 큰언니들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고, 더운 여름에 털로 된 두꺼운 의상을 입고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역을 하던 기억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모국에서의 첫 발레 유학
미국에서 태어난 나의 첫 유학은 10살 때 리틀엔젤스와 춤을 추기 위하여 한국에 온 것을 처음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 무용을 배워 리틀엔젤스와 해외 공연을 3차례 다녀와서 선화 예술 중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리의 선생님은 에드리엔 델라스 선생님이었고, 발레를 가르치러 한국에 처음으로 오신 델라스 선생님의 훈련은 강렬하고 엄격하고 열정적이었다. 델라스 선생님은 상체를 많이 쓰고 머리와 팔, 어깨 등의 동작이 크고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 바가노바 시스템이 한국 사람의 체형과 성격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현재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의 특징을 이루는 이 바가노바 시스템을 교육하였다. 실기는 기본적으로 하루 한 시간 반정도 하였고, 그 외의 시간은 스스로 연습을 하였으며, 발표회 같은 것이 있을 때는 연장이 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시간이 부족하여 정규학과 수업이 시작되기 전 새벽에 일어나 실기를 하기도 하였고, 수업이 끝난 후 밤 10시경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과 공부를 결코 소홀히 하지는 않았었다.
델라스 선생님은 12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발레계에 많은 공헌을 한 것 같다. 나를 비롯하여 현재 유니버설 발레단에 수석 무용수로 있는 김인희, 최민화, 솔리스트인 이인경, 그리고 취리히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허용순,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있다가 현재 러시아 유학 중인 박재근 등을 길러 내었고, 이러한 교육을 토대로 지금에 와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립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델라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오늘날 내가 발레를 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많은 영감과 인생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발레를 사랑하도록 가르치셨다.
로얄 발레 스쿨
중학교 3학년 때 영국의 로얄 발레단 내한 공연 시 로얄 발레 스쿨 학생을 뽑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때 7명이 합격을 하여 그 중에 나이가 많은 3명이 그 이듬해에 로얄 발레 스쿨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17번째 생일를 맞이하였다. 한국에 살 때는 이모,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영국에서는 조그마한 방을 얻어 같은 유학의 길을 떠나온 최민화, 안은숙 두 언니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숙소에서 학교까지는 지하철로 약 30분 정도가 걸렸고, 로얄 발레 스쿨에서 1년 동안 로얄 발레의 전 수석 무용수인 메리언 네인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그 분은 델라스 선생님과는 달리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성격이 힘들었던 것 같다.
로얄 발레 스쿨은 하급반과 고급반으로 나뉘어 고급반에는 16∼17세 이상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2년 과정이고,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교사 교육을 위한 특별한 과정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매일 아침 10시부터 한시간 반 가량 바아, 센타 등의 실기를 하였고, 시간표를 짜서 아래의 교과 과정을 각 학과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배웠다.
특별 교과 과정을 보면, 1. 포인트 클래스 2. 파드두(2인무) 3. 베리에이션 4 캐릭터 댄스 5. 피루엣 클래스 6. 레퍼토리(로얄 발레단에 있는 기존 발레 작품 연습) 7. 분장 8. 음악 감상 9. 베니쉬 노테이션(음악을 악보로 표현하듯이 무용을 기호로 기록하는 기법) 10. 예술사 11. 현대 무용 12. RAD(Royal Academy of Dance)인데 RAD시험에 합격하면 'RAD자격증'을 발급하였다. 1년의 교육과정은 3학기로 되어 매 학기마다 클래스 테크닉과 베리에이션의 시험을 치렀다.
로얄 발레 스쿨 시절에 나에게 특히 도움이 되었던 것은 로얄 발레단하고 같은 건물을 사용하면서 때때로 같은 스튜디오를 사용하였는데, 말로만 듣던 유명한 수석 무용수들의 연습 장면을 볼 수 있었고, 로얄 발레 스쿨의 학생들에게는 자주 티켓이 나와 공연을 보러 갈 수가 있었는데, 발레단의 공연과 생활 분위기를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로얄 발레 스쿨에의 유학은 많은 기대 속에 출발하였는데, 훌륭한 교육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담임 선생님의 성격에 적응이 어려웠고, 게다가 유학 시절 1년이 끝나 갈 무렵에 발목을 다쳐 고생을 하는 등 큰 성과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2년째 상급 학년 진급 시험에 무난히 합격을 하였지만, 다른 곳에서도 경험을 쌓아보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듬해에 모나코에 있는 왕립 발레 학교로 유학하여 나의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게 된 모나코 유학 시절이 시작된다.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의 수업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에서는 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님이 주로 지도를 해주셨는데, 로얄 발레 스쿨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학교라서 개인적인 지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며, 많은 공연에 발표의 기회가 주어졌고, 모나코 오페라단에 작품을 만들어 같이 공연하는 기회도 있었다.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는 준비 과정 4년, 고급 과정 4년의 8년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고급 과정 2학년에 편입되었다. 하루 수업의 일정을 보면 아침 10시 때로는 그보다 더 일찍부터 한시간 반 가량 기본 실기를 하고 일주일에 아래 과목마다 2∼3시간씩을 배분하여 교육을 받았는데, 그 과목은 1. 파드두 2. 포인트 클래스 3. 베리에이션 4. 요가 5. 현대 무용 6. 캐릭터 댄스 7. 공연 리허설 8. 희망자에 한하여 성악과 예술사가 있었다. 시험은 1년에 1회 무대에서 치렀는데, 각 학년마다 정해진 스텝과 베리에이션이 있어 준비 과정은 클래스 스텝과 베리에이션의 시험을, 고급 과정은 여기에 파드두를 첨가한 것으로 기억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나코의 시절은 퍽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이었다. 영국의 로얄 발레 스쿨에서는 그들의 스타일에 적응시키기 위한 기간이었겠지만, 첫 번째 해에 외국인 반을 따로 설정하고 1년에 1회 있는 학교 공연에 외국인 반은 참석시키지 않아 실망을 느꼈으며, 학생들이 조금은 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모나코에 와서는 밝고 화사한 날씨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며,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사기가 되살아났다. 영국에 있을 때 입은 발목 부상이 3개월 이상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를 하였지만 차도가 없었는데. 따스한 날씨와 학교의 분위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모나코에 가서 얼마 안되어 발목이 나았다. 학교 공연에 일본의 유명한 발레리나인 요코모리 시타와 함께 코펠리아를 공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는 산 위에 자리잡고 있어 그 밑에 기숙사가 있었다. 기숙사에서 일본인 선배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았고, 기숙사에서 나와 수십 수백 개의 계단을 뛰며 학교까지 올라가 스튜디오 에 있는 아름다운 프랑스식 아치 창문을 통해 보면 아름다운 모나코 항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쉬는 날이면 책이나 음악 테이프를 가지고 방파제에 올라가 편지도 쓰고, 노래도 듣고, 사진도 찍고‥‥‥.
모나코 항에서 펼쳐지는 국제 불꽃놀이 경연대회의 모습은 그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하고, 몬테칼로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카니발은 좋은 구경거리였다. 점심만 기숙사에서 먹고 아침과 저녁은 각자 해결해야 했는데, 치즈, 요구르트, 과일 등을 사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 프랑스식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커다란 재미 거리였다. 발레 트레이닝은 워낙 힘든 훈련이기 때문에 자유시간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풀기 위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나코는 그러한 환경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니버설 발레단으로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에서 2년 가까이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오하이오 발레단에 반년 동안 있다가 워싱턴 발레단으로 옮겨 2년이 지난 1984년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으로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활동해 왔는데, 발레를 현장에서 직접 하다 보니 무용수에게는 음악적인 감각이 매우 중요하므로 악기를 하나쯤은 배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 잠깐 이나마 배웠던 피아노가 크게 도움되었으며, 러시아의 키로프 발레 스쿨에서는 한 개 이상의 악기를 의무적으로 배우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89년 12월에 내가 비디오나 책으로만 접했던 키로프 발레단의 무대에 섰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얘기요, 영광이고, 벅찬 일었다. 키로프 발레단 200여명 단원들과 같이 공연하면서 하나의 일관된 스타일과 시스템을 갖춘 무용수를 길러 내기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학교와 그런 학교의 전통, 예의 범절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우리 나라에도 이처럼 전문적 무용인을 길러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학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마음 깊숙이 가졌었다.
키로프 발레 스쿨에 갔을 때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학생들이 수업하던 것들 멈추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평상시 생활에서도 앉아 있는 법이라든지 인사하는 법 등을 배워 공연에서 그런 에티켓이 자동적으로 배어 나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몸을 어떻게 움직여서 고난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레인으로서 마음가짐과 정신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육체적 트레이닝 못지 않게 중요하리라는 생각에서 유학 생활과는 직접 관련은 없으나 참고 로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