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두·괴짜 문화인
이홍섭 / 시인·강원일보 문화부기자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를 끼고 있는 강원도 강릉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도시다.
강원도는 크게 영동과 영서를 나뉘어 지는데 강릉은 영동지역의 중심 도시로서 오랜 전통을 지녀왔다.
특히 강릉 사람들의 젖줄을 타고 전해 내려오는 문화적 자존심은 놀라운 데가 있다.
그 자존심은 강릉의 문화적 풍경을 보수적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튼튼한 자생력을 지닌 도시가 주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난 '92년에도 이 자존심의 심지를 높이든 「괴짜 예술가」들의 행진이 이어져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샀다.
이 행진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두 명의 괴짜들이 있다. 이들이 만든 「작품」은 박하향처럼 신선하다.
이들 중 한 명은 자기집 1층을 허물어 아름다운 화랑을 꾸민 뒤 이를 화가들에게 선물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국내 최초의 축음기 박물관을 강릉에 건립, 음악 도시로 갈 수 있는 길을 폈다.
집의 반을 갈라 화랑으로 〈새안예사당〉에 심은 뜻은
화랑을 만들 사람들은 강릉에서 새안건축사무소를 운용하는 안문효씨(安文孝·42)로 안씨는 2층 짜리 자신의 집 반을 뚝 짤라 화랑으로 개조했다.
주택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화랑은 찾아온 사람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새안예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화랑을 찾는 사람들은 먼저 독특한 외양에서부터 감탄하고 만다.
안씨가 살림을 하고 있는 2층 전면이 유리로 뒤덮여 있어 초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면, 1층 화랑은 오래된 기왓장들과 2백년 이상 둔 마루를 뜯어서 만든 고풍스런 풍모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을 감탄케 하는 이 독특한 건물은 안씨 자신이 전공을 살려 만든 「건축학적 작품」이다.
강릉 토박이인 안씨는 연세대 건축가를 졸업한 뒤 김수근씨의 문하에서 예술적 감각을 쌓았고, 고향에 돌아와 사무소를 차린 뒤, 고향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바꾸어 가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91년 한국 건축전 건축사 부문 준우수상 수상으로 객관적 평가를 받은 안씨의 심미안은 전통과 현대가 함께 숨쉬는 공간을 강릉 곳곳에 심어 놓을 수 있었다.
안씨는 지난 4월의 개관전을 강릉 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은사인 장일섭 초대전을 열어 훈훈함을 전해 주기도 했다.
강릉의 화가들에게 화랑을 선사한 안씨는 한 극단의 고문역도 맡아 공연 경비를 지원하는 등 강릉의 예술인들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안씨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꿈은 그가 만든 화랑만큼이나 아름답다.
안씨는 「새안예사랑」까지 들어가는 30개 정도의 골목에 철로를 놓겠다고 말한다. 어린시절 끝없이 놓여진 철길을 따라가며 꿈을 주웠던 기억을 되살려 「예사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겠다는 그의 소망은 한 편의 이쁜 동화처럼 들린다.
안씨는 「새안예사랑」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예술의 전당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가 마루를 뜯어낸 목재를 이용해 예사랑의 문짝을 만들었듯이 강릉에서 자라나는 미래의 예술가들도 강릉 고유의 문화 속에서 숨쉬기를 안씨는 고대한다.
에디슨의 던호일도 수집 축음기 박물관에 쏟은 열정
강릉에 국내 최초의 축음기 박물관을 세운 손성목 씨(孫成木·47)도 괴짜 중의 괴짜라 할 수 있다.
손씨는 30여 년 동안 고물 축음기만을 모아 온 축음기 수집광으로 지난 11월 28일, 마침내 자신의 꿈을 강릉에 심었다.
강릉에서 조그만 건설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손씨는 5백 여 점의 축음기를 비롯하여, 10만장에 이르는 디스크를 「쏑 소리 축음기 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꿈나무 속에 전시했다.
외국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알려진 축음기 박물관에는 손씨의 땀과 정성이 알알이 배어 있다.
14세 때인 중학교 2학년 시절, 삼촌으로부터 선물 받은 고장난 축음기를 밤새워 고친 뒤 느꼈던 희열이 축음기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손씨는 안씨와는 달리 강원도가 아닌 함남 원산이 고향이다.
학창시절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축음기를 구입했고, 성장 후에는 사우디 등 중동에 근무하며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축음기 구입에 충당하는 등 삶의 절반 이상을 축음기 구입에 쏟아 넣었다.
모 건설업체를 차린 손씨는 강릉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자신의 꿈을 이곳에 심겠다고 결심, 다른 곳에 박물관을 유치하려는 각종 유혹의 손길을 뿌리쳤다.
손씨의 축음기 박물관에는 에디슨 축음기 1호기인 던호일을 비롯하여, 고전적 축음기에서부터 최신형까지 모두 8백여 점의 축음기가 모여있다.
또한 음반 10만여 장, 라디오 25종, 스피커 30조(60대)도 갖추고 있어 거대한 음악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축음기 중 국내 제품은 50여 점 정도이고 나머지는 손씨가 틈이 날 때마다 미국·영국·아르헨티나 등지를 찾아다니며 「악착같이」 모은 것들이다.
연건평 2백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건물인 「쏑 소리 축음기 박물관」은 지난 5월초 착공, 7개월만에 개관했다. 전시실과 음악 도서 1천5백 점을 갖춘 휴게실, 음악 감상실 등을 갖추어 건물 전체에서 음악 소리가 나게 꾸며진 이 축음기 박물관을 금새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손씨는 연3회 이상 음악인을 초청해 축음기 감상회·향토 문화 세미나 등도 가질 예정이어서 강릉의 음악 문화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95년 이전에 이곳에서 세계 축음기 전시회를 개최할 꿈을 지니고 있는 손씨는 조금씩 받는 입장료를 모아 「축음기 장학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
손씨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언젠가는 전시뿐 아니라 야외 음악당 등을 갖춘 종합뮤지엄센터를 설립해 강릉을 음악의 도시로 꽃피워 보겠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다.
지난 82년, 서독 프랑크푸르트 수집가에게서 감격에 벅차하며 구입했던 오디오 1호기 던호일이 조작 실수로 바늘이 부러져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자 손씨는 「꽤」 울었다고 한다.
「소리나지 않는 축음기는 가치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손씨는 백방으로 수소문, 미국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뉴저지의 축음기 박물관에 또 다른 던호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55년간 보관해 온 그 던호일을 한달 이상의 끈질긴 교섭 끝에 모셔왔다.
손씨의 축음기 수집 열정은 이처럼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손씨는 이 열정의 자식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아 박물관을 만든 것이다.
괴짜 둘이 세운 꿈나무는 자라나는 학생들
안문효씨와 순성목씨가 강릉에 세워 놓은 이 꿈나무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라나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그 열매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지금 막 자라나는 학생들인지도 모른다. 어떤 빛깔의 열매가 열리든 그 열매는 이들과 같은 「괴짜」들의 열정에 의해 열렸다는 사실은 오래 기억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