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연극

모노드라마의 유행과 그 의미




김성희 / 연극평론가, 한양여전 교수

연극은 소설이나 서사시처럼 이야기가 아닌 훨씬 그 이상의 것, 즉 신의 창조의 모방이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다 때가 되면 퇴장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처럼 연극은 살아있는 인물인 배우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 인생처럼 삶을 연기하다 퇴장하는 세계, 곧 「모방」의 우주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무대 위에는 이중의 세계가 현존한다. 배우라는 실제 인물과 허구적 인물의 겹침 혹은 긴장 관계가 그것이다.

신의 창조의 모방, 「관계의 예술」인 연극

그런가 하면 인간이 사회 속에 개인으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실제 삶의 방식대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관계를 맺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사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연극을 「관계의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관계」역시 이중적이다. 등장 인물들간의 관계와, 배우가 관객과 맺는 관계가 팽팽한 현의 줄처럼 소리를 내며 서로 교감한다.

무대와 객석의 교감은 사실 연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왜냐하면 무대 위에서 배우가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객석에서 「누군가」로 인정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극하면 최소한, 삶이나 인간관계의 축약 형식인 2명 이상의 배우가 등장하는 연극을 연상한다. 연극의 본질이 실제 행동의 모방이며, 행동은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의 갈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모노드라마」라는 형식이 있다. 연극이 종교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사실 최초의 배우는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임에 틀림없고, 그렇다면 가장 근원적인 연극 형식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모노드라마는 어쨌든 특이한 연극형식, 아니 어쩌면 마임극 만큼이나 연극의 변종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간의 세계를 모방한다는 연극 본래의 관념에서 생각할 때, 언어없는 연극이나 혹은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하여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표현하는 연극이란 확실히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부자연스러움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러한 양식을 취할 때의 어떤 특별한 예술적 의도와 효과의 문제이다.

요즈음 우리 연극계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모노드라마, 혹은 2명의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1명의 주연과 보조 인물이라는 관계로 모노드라마에 준하는 연극들의 유행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모노드라마나 혹은 판소리극 스타일의 2인극이 거의 예외없이 흥행에 성공하고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여 장기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특이한 현상에 대해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정통 연극의 흐름 벗어난 모노드라마 유행현상

1970년대 후반의 연극계는 상업주의 연극의 횡행으로 큰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또한 모노드라마의 붐과 전성기를 이룩했던 시기였다. 특히 배우 생활 15년을 맞는 추송웅의 1인극 「빠알간 피터의 고백」의 폭발적인 인기와 장기공연은 이후 모노드라마의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모노드라마는 한국 관객에게 그다지 특이한 연극이 아닌, 오히려 대중적인 연극으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공연법의 개정으로 소극장들이 합법적으로 존립할 수 있게 된 연극 환경의 변화로 이러한 1인극, 혹은 2인극(즉 모노드라마)의 붐을 일으키게 된 주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50석 내외의 작은 무대를 가진 소극장들이 많이 생겨나고, 또 영세한 재정 형편으로 극단들이 자체 소극장을 마련하게 되자 극장 조건에 맞는 연극들을 선호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관객층의 대두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학적 요인이 된다. 늘어난 공연장의 수 만큼에 비례하여 공연이 늘어났고, 공연이 늘어난 만큼 연극 제작자들의 관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다. 더군다나 '80년대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중요한 문화 현상은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탈이념의 시대로 전환했다는 것이며, 사회적 분위기 역시 소비지향, 감각적인 문화 소비의 시대로 바뀌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비사회, 탈이념시대, 감각문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신세대가 새로운 문화소비의 주체로 등장했고, 이들의 취향과 문화이상이 전반적으로 대중문화를 이끌게 되었다.

연극계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면, 소극장들은 우선 극장이나 극단 운영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애초의 「실험정신」대신에 현실적 타협인 흥행이 잘 될 만한 레퍼토리를 선정하여 공연하는 경향이 일반적이 되었다. 여러 소극장들이 주로 공연하는 연극들이 「섹스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혹은 「모노 드라마」와 「품바」계열의 전통연희의 상업화 연극들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할인 티켓의 남발로 연극자체의 질적 하락과 일회용 관객들, 특히 청소년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전략을 구사한 것도 연극예술이 이제 소비 상품으로 전락한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모노드라마의 유행은 이러한 구조적인 연극환경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로젤」, 「당신의 침묵」,「품바」,「딸에게 보내는 편지」, 「바쁘다 바뻐」, 「하늘천따지」,「자기만의 방」,「얼굴 없는 몸뚱아리」등, 근래에 공연되었거나 공연중인 모노드라마들은 이처럼 상당한 양에 이른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노드라마는 일종의 변종 연극이다. 그러나 모노드라마는 「모노」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예술적 의도와 표현형식 이라는 존재 이유를 가질 때 관객에게 그 어떤 정통적 연극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먼저 모노드라마는 「배우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극에서 배우의 살아있는 현존과 「천의 얼굴」의 연기력과 매력, 「혼의 떨림」과 관객과의 일체적인, 거의 제의적인 교감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배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풍부한 연극적 감수성으로 보여주기 위해, 어떤 「혼의 울림」을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 모노드라마의 무대에 선다. 자신의 연기생활을 평가받기 위해서도 모노드라마는 모든 연기자에게 중요한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연극의 왜소화 현상, 모노드라마의 문제점들

그런데 우리의 모노드라마들을 살펴보면, 치열한 예술가적 정신과 장인적 전문성을 가지고 관객 앞에 서는 배우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나 쉽게 모노드라마의 주연으로 서서 일인 다역을 관객과 장난하듯, 개그 쇼처럼 해치우는 배우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연극 자체의 품격과 연극의 본질을 망각한 상업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관객들이 많이 몰려왔다고 해서, 배우의 연기력과 감수성에 감동 받거나 정서적 동일시를 갖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러한 연극의 관객들은 옛날 장터에서 벌이던 약장수나 떠돌이 광대의 예능과 장기자랑, 혹은 놀이나 코미디 쇼를 현장에서 직접 구경하려는 구경꾼의 심리와 다를 바 없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뛰어난 연기력과 관객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흡인력과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공연하는 정통적 모노드라마라 할지라도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 선정의 선별력이다. 모노드라마는 먼저 연극의 기본 내용을 이루는 희곡 자체가 「모노」가 아니면 안 되는 존재 이유와 예술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러 명의 등장 인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독특한 세계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쟝 족덜의 「목소리」처럼, 한 인물의 내면세계의 깊이 있는 표출과 자아를 투영시켜 배우와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맑은 거울에 비추듯 느끼게 하는 마음의 일치가 모노드라마의 존재 조건일 것이다.

연극은 스포츠 경기장도, 쇼 무대도 아니다. 연극은 본질적으로 집단적 연기의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관중의 일체적인 마음의 융합을 가져오는 예술이 아니다. 연극은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예술이며 다양한 관중의 구성원이 하나의 개체로서 배우와 만나는 마음의 일치이며 집중이다. 집단적 최면이 아니며, 군중의 심리를 호소하는 예술이 아니다. 연극은 관객이 개체의 자격으로 배우에게 다가가는 예술이며, 그 때문에 종교적 효과를 지닌다.

세 번째로 예술적 완성도나 모노드라마의 독특한 특성이나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고 쉽게 제작되는 현재의 연극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연극의 왜소화 현상이다. 연극은 사회적 존재의 인간의 삶의 조건을 모방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1인극 혹은 2인극으로 가볍게 스케일이나 치밀한 복선들이 짜여져 삶의 선택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연극 고유의 형식과 연극성을 왜소하고 하찮게 만들며, 매우 주관적인 시각을 유포시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삶의 조건이나 내면세계를 진지하게 파고 들거나 성찰하지 않는 쇼나 놀이, 구경거리 이상의 것이다. 연극 속에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유형과 갈등,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책략이나, 운명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걸어들어가는 인간행동을 암시하는 많은 복선들과 반전이 있다. 그러므로 관객에겐 이러한 연극을 볼 때 어떤 지적 노력과 자극과 통찰력, 감수성이 개발을 얻게 된다. 그러나 쉽고 가벼운, 왜소한 모노드라마가 유행하게 되면, 관객은 다양한 시각의 집중점인 무대를 외면하게 되고, 이러한 취미수준의 변화는 결국 관객들을 더 쉽고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다른 대중예술로 유도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