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올림픽과 예술정신
안건혁 / 경향신문 문화부장
바르셀로나의 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성당)가 착공된 것은 1882년 3월 19일 성요셉 축일이었다. 프랑스의 쿠베르탕이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을 본 따 근대 올림픽을 시작한 1896년보다 꼭 14년 전의 일이다.
그로부터 199년 뒤의 7월 바르셀로나에서 제24회 올림픽이 열렸다. 1920년대에 이미 몬주익 메인스터디엄을 지어 놓고 유치 신청 4차례만에 세계 스포츠축전을 개최한 것이다.
50억 인구가 시청했다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TV중계는 으례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웅장한 모습으로 시작됐다. 기괴할만큼 색다르고 아름다운 이 성당은 아직 미완성이다. 1백70m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모두 12개의 종탑이 둘러싸게 될 이 성당은 지난 100년 동안 8개의 종탑을 세웠다. 4개의 종탑을 더 세우고 중앙대성당과 부속성당 등을 만들어 완공되려면 앞으로도 200년이 더 걸린다는 설명이다.
열전 16일. 세계가 지켜보며 함께 흥분한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은 계속되고 있다.
가우디뿐 아니라 화가 후앙 미로,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상악가 호세 카레라스, 몽세라 카바예, 환 폴스 아그네스 발차 등 이 지방 출신 예술가들의 명성만으로도 바르셀로나 문화올림픽에 대한 기대는 특별했다.
풍부한 문화예술의 유산을 물려받은 바르셀로나가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한다는 것이 문화올핌픽 조직위원회의 목표였다.
3대 목표중의 예술성 높은 올림픽
바르셀로나 올림픽 조직위원회(COOB)는 '86년 IOC총회에서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3대 목표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예술성 높은 올림픽이었다.
조직위는 곧바로 파스칼 마라갈 바르셀로나 시장을 위원장으로 올림픽 문화행사를 총괄할 올림피아와 쿨투랄SA를 설립했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의 폐막 직후인 '88년 10월 8일 성악가 몽세라 카바예와 그룹 퀸 멤버인 프레디 머큐리 등이 참가한 가운데 뮤직 페스티벌을 열고 문화올림픽을 시작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 끝나는 다음날 올림피아드를 시작했던 옛 전통을 근대 올림픽에서 되살려낸 것이다.
올림피아와 쿨투랄SA는 '92년까지 4개년 계획을 세원 문화올림픽을 진행했다.
「문화와 스포츠의 해」로 이름 붙인 '89년 첫 번째 가을축제에는 전세계 1백 11개 연극극단, 무용단, 음악단체들이 참가, 4백 21회의 공연을 가졌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의 역사를 교육하고 '92년 올림픽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본격화됐다.
'90년은 「예술의 해」.
세기말의 유럽예술과 카탈로니아 예술 사이의 관계를 모색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미술, 음악, 건축, 언론, 체육, 기술 등 6개 부문에 걸친 국제상도 제정됐다. 특히 건축가 가우디를 기념하는 현대건축전도 개최했다. 이 해 두 번째 열린 가을축제에는 1백 16개 단체가 5백 56회의 공연을 가졌다.
「미래의 해」였던 '91년에는 바르셀로나시의 미래생활을 조감한 미래전, 기록사진을 모아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사진전이 열렸다. 또 1백 53개 단체가 5백 49회를 공연한 세 번째 가을축제가 개최됐다.
올림픽 개최의 해인 올해는 주제를 3개로 나눠 문화행사를 펼쳤다. 첫장은 「2천년의 역사 바르셀로나」, 카탈로니아 지방의 오랜 역사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전시회가 주류를 이뤘다. 둘째 장은 「예술과 스포츠」, 「올림픽 기록전」, 「올림픽 디자인」그리고「스페인 스포츠의 기원」,「카탈로니아의 스포츠」,「카탈로니아이 예술과 스포츠」등으로 스포츠 도시의 면모를 강조한 행사들로 꾸며졌다.
셋째 장인 「올림픽 예술축전」에는 팝송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만담, 미국 탭댄스에 이르기까지 음악 49개, 연극 35개, 무용 10개, 오페라 4개, 야외공연 18개 등 1백 16개 단체가 참가했다.
이 축전은 베를린 쉴러극단,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극단, 프랑스의 유럽 오데옹 극단과 바렌보임의 베를린 필, 몬트리얼 심포니, 민스크 필 하머니 등의 공연으로 화려하게 펼쳐졌다.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에페스, 성악가 빅토리아 데 로스앙헬레스, 마릴린 혼 등 클래식 음악가와 대중가수 프랭크 시나트러, 에미 두 해리스, 엘튼 존 등도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인기를 모았다.
특히 지난 6월 3일 열린 프랭크 시나트러 공연은 1인당 21만원 정도의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 초만원을 이뤘다.
이태리의 라 스카라와 함께 세계 2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리세우에서는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등 고전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6월 15일 밤 이 도시의 유서 깊은 티볼리 극장에서 「소리여, 천년의 소리여」를 공연했다. 올림픽 축전 민속무용부문의 첫 번째 행사였던 이날 공연은 황병익 씨의 가야금 독주로 시작, 이매방 씨의 승무,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연주하는 정악 「전폐희문」, 대금 독주, 가야금 합주 「침향무」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공연의 뒷마당은 깃발을 흔들며 부른 뱃노래 합창, 조상현·강정숙의 판소리 「춘향가」, 김덕수패의 사물놀이에 이어 국립무용단과 사물놀이가 한데 어우러진 북들의 대합주 「오늘이 오늘이소서」로 끝을 맺었다.
이 공연에는 마르가리타 올비우스 문화예술축전 사무총장과 바르셀로나지역 해군사령관 등 유지들과 각국 외교사절을 포함, 1천5백여 명이 극장안을 가득 메웠다.
공연이 끝난 뒤 리세우 고등음악원의 안나 마리아 알보스 아신스 원장이 공연단을 찾아와 음악교류문제 등을 제안했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한 바르셀로나 문화올림픽
문화올림픽의 피크는 7월 17일부터 8월 9일까지 바르셀로나 시내 시우타델라 공원에서 열린 야외행사 20일 동안 자정부터 새벽까지 먹고 마시며 그날의 올림픽게임을 대형스크린을 통해 지켜보고 야외연극을 관람한다.
이번 문화올림픽은 모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만들려고 각종 공연 전시회의 입장료를 크게 낮췄다.
전시회는 무료에서부터 6백페세타(4천8백원), 연극은 평균 2천페세타(1만6천원), 야외행사는 무료다.
7월에 열리기로 했던 라이자 미넬리 공연은 스폰서가 적어 공연을 최소했다. 시민들의 입장료 부담이 커지는 때문이었다.
이처럼 4년에 걸쳐 펼쳐진 문화올림픽을 위해 지원된 예산은 미화 5천2백만 달러, 올림픽 전체예산의 2%를 조직위원회에서 배정했다.
조직위원회는 또 문화올림픽을 위해 '91년 7월 올림픽예술제 명예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스페인 왕비 소피아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명예위원회는 올림픽 개막행사의 감독으로 바르셀로나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를 선정했다.
드디어 7월 26일, 세계 50억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3시간동안 펼쳐진 올림픽 개회식 행사는 현대음악과 카탈루냐 전통예술이 어우러진 세계 최고수준의 음악축제였다.
올림픽사상 가장 음악적인 개회식으로 손꼽힐 이 행사는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카레라스, 알프레드 크라우스, 몬세라 카바예, 아그네스 발차 등이 총출동했다.
96명으로 구성된 바르셀로나 시립교향악단이 반주한 「세기의 음악회」는 바르셀로나 시민뿐 아니라 온 세계를 즐겁게 했다.
4년에 걸친 이 거창한 예술페스티벌은 세계문화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정립한다는 목표와 함께 바르셀로나 시민들을 위한 축제를 꾸미는데 열중했다.
연극, 무용, 민속, 음악 등 모든 공연은 저녁 9시 30분 이후에 시작됐다. 하루에 5번 식사를 하고 낮잠(시에스타)을 포함, 두 번 잠을 자면서 하루를 이틀로 산다는 이곳 사람들의 습관 때문이다.
이들은 거리 곳곳에 있는 노천 카페에서 새벽 3∼4시까지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예술을 감상하고 인생을 얘기한다. 외국 TV의 중계를 위해 섬머타임까지 실시, 자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사가 아니라 철저하게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든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문화축제는 거리 곳곳에서 흘러 넘친다. 서울의 대학로와 명동의 기능을 합쳐놓은 곳 같은 람블라스 거리에는 하루종일 무명의 화가, 연기자, 행위예술가, 음악가들이 펼치는 갖가지 즉석예술로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1년 내내 이같은 거리예술을 즐기는데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세계 여러나라의 예술가, 관객들이 몰려들어 여느때보다 더욱 풍성한 축제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뛰어난 문화예술을 만들며 즐기며 살아간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되기전 착공한 가우디의 걸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2백년을 계속 짓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