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 주립미술관
조원규 / 시인·독일 뒤셀도르프 대학 박사과정
1. 설립경위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금융도시 뒤셀도르프의 주립미술관은 외적인 규모 면에서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특히 거의 같은 시기에 인근 도시 쾰른에서 개관된 루드비히(Ludwig) 미술관에 비교하면 간소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양식(Stil)과 유파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개별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유일한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전시체제, 또 작품이 고도로 진가를 발휘하도록 면밀히 조성된 전시공간 등이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면모를 보여준다.
기금조성 후 25년간의 작품 수집을 거쳐 현재의 주립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에 알트슈타트(舊街)의 예거흐프 성(Schloss Jägerhof)이 미술관으로 이용되었는데, 늘어난 수집 소장품들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협소해지자 75년에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건축가를 공모하여 3년간의 준비 끝에 시공하여 82년에 현재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1960년에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의 주(州)정부는 미국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파울 클레의 그림과 드로잉 작품들 88점을 사들여 예거호프 성(城)에 전시하면서 클레 작품관을 포함하는 뒤셀도르프 주립미술관의 기금을 조성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의 분위기는 라인강의 경제기적에 고무 받아 이에 걸맞은 문화 기적을 실현해야 한다는 쪽이어서 뒤셀도르프시가 시의회의 결정을 통해 땅을 기증하였고 연방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쾰른, 묀헨글라드 바흐, 슈투트가르트, 뮌헨, 베를린,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지와 더불어 뒤셀도르프는 현재 독일의 미술 문화를 대표하고 있지만-수도권 및 대도시의 문화집중 현상을 발견할 수 없는 곳이 독일이고 보면-예컨대 이들 도시에만 훌륭한 현대미술관이 집중되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면(面) 크기의 소도시에도 세계적 미술품을 소장한 전시관들은 많이 있다.
처음에 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州)의 주립미술관은 주로, 파울 클레처럼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아직 젊은 예술인이었지만 이후에는 어떤 경향, 이를테면 포비즘, 큐비즘, 표현주의 등에서 개척자의 위치에 오른 이들의 작품을 수집하였다. 그 결과 '고전에 속하는 전위 미술품'들이 수집되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한 예술품이라고 무조건 선호된 것은 아니었다. 이 미술관의 입장은, 현재의 전위는 어느 정도의 시련을 통해 작품의 생명력이 시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여 알게 해주는 것은 삶이고 이는 곧 시간이 경과함을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소장 작품들의 순회전시에서나-소장품의 경우에는 더더욱-최근의 작품들을 구경하기 어려운데, 이에 대해서는 근·현대미술관으로서의 모험감과 긴장감이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2. 투자의 방향설정
오로지 회화 작품만을 취급하여 집중의 효과를 노리는 미술관이 30년 동안 수집하여 소장한 작품이 수효는 250여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중한 작품선택의 결과 지금으로선 사기 어려울 만큼 비싸진 작품들을 미리 구입한 경우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6∼70년대엔 사조, 유파, 양식을 문제삼지 않고 작품자체의 예술성을 판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미술관측의 철학을 두고서 '비판의 주객관성'을 어떻게 판가름하느냐는 내부적 논란이 많았다. 이에 대해 미술관측은 <개인이든 위원회이든 누군가 판단을 해야만 하고>, <모든 판단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좋은 그림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므로 미술관장이나 위원회의 평가에 따라서 어느 저명 작가가 거부되는 일도 가능하고, 실제로 신임관장이 들어선 지 1년 만인 올해 11월에 전시회가 열리는 요셉 보이스의 경우가 그렇다는 소문이 있다.
또한 1968년을 전후하여 학생운동이 서유럽에 큰 정치, 문화적 파장을 울려내고 있을 때는 도큐멘트적인 작품이나 기록물도 전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순수 회화에 국한한 전시 및 소장 방침은 고수되었다.
현재 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츠바이테 교수보다 앞서, 미술박물관 설립위원장으로 오래 일했던 베르너 슈말렌바흐 교수는 "가능한 많은 예산으로, 가능한 적은 수효의 그림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개개인의 그림에 많은 돈을 써서는 안 된다. 요컨대 그림은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비싼' 그림을 사들여야 하는 것"이 라고 강조한다. 그러자면 '현재 살아있는' 그림들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그림에 투자함이 안전할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한 예를 1962년부터 25년간 수집한 그림들을 모아 공개하기 시작한 소장품 전시회의 안내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기획하여, 개략 현대 회화로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전시했다. 열거하자면 후기인상파, 포비즘, 표현주의, 큐비즘 그리고 60년대 회화가 모두 섞여 있는데, 이는 당장 부각되는 능력뿐만 아니라 오래 살아 견디는 힘을 입증한 작품만을 선정한 결과이다.>
과연 소장품들을 보면 50대 연령의 작가가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이런 현상에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 <예컨대, 표현주의적인 그림이 하나 걸린다면, 이는 오로지 개별작품의 예술성으로 평가받아 걸린 것이지 예술사적인 맥락 즉, 사조나 유파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립미술관의 맞은편엔 시립미술관이 있는데, 후자는 주로 첨단의 경향을 보여 주는 회화작품을 전시한다. 이는 바로 '살아남은 것'과 '살아있는 것'의 대조를 보여준다.
3. 전시관
지금은 카페로 변한 하인리히 하이네의 생가는 시내 중심부에 속하는 알트 슈타트 구가(舊街)에 있고, 이곳에서 우툴두툴한 구도를 걸어 라인강변의 공원쪽으로 가다보면 외벽이 검은 화강암으로 번쩍이는 3층의 주립미술관이 나온다.
육중한 느낌의 재료로 만들기는 했지만 표면처리가 워낙 매끄럽고 되어 투명하게 보이는데, 이는 날씨의 변화에 따라 명암이 달라지도록 의도한 것이라 한다. 미술관의 중앙부는 보행자가 통과할 수 있도록 터널식으로 열려 있는데 이 터널 내부의 한 측면에는 남향을 피하여 만들어 놓은 전시장 입구가 있고, 이를 지나쳐서 걷다 보면 '파울 클레 소광장(Paul-Klee-Platz)이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서 한때 파울 클레가 나치의 집권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그리고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이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다수의 젊은 한국작가가 현재 배우고 활동하는 예술 아카데미(Kunstakademie Düsseldorf)와 쾌적한 공원 녹지인 호프가르텐(Hofgarten)이 나온다.
이 지역 일대가 일종의 문화가라는 느낌인데, 주립미술관의 입지 및 건축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열띤 논쟁이 있었다. 검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외벽이 차갑고 육중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그것이 비독일적인 것 즉, 북구 스칸디나비아적인 정서가 아닌가, 음울한 독일의 가을과 겨울 날씨를 생각할 때 자연광에 의존하는 조명 계획은 부적당하고 또 입구는 너무 어둡게 숨겨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는 고려는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창문의 높이, 이웃 건물과 연결되는 선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데서 볼 수 잇다. 1920년 대식 법원이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도미니카 교단의 교회, 백년 남짓한 옛 제국은행 등 상호 이질적인 주변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주립미술관을 설계한 것은 엄정한 공모를 거쳐 선정된 코펜하겐의 「디씽& 뵈이틀링 설계 사무소」였다.
공모 당시에 500명 가량의 독일 국내외 건축가가 참가 112개의 설계도를 제출하고 경합하였는데 이때 국제적으로 유명한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나 후에 낙선한 도면을 고쳐서 슈트트가르트 국립미술관을 지은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일본인 겐조(Kenzo) 등도 응모했었다는 뒷 얘기가 있다.
8천 4백 5십만 마르크가 소요된 공사로 이용 면적 1만 5천㎡, 전시공간 3,200㎡의 주립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이용 시설로는 1층에서 3층까지 배치된 소장품 및 비소장품 전시관, 1층의 시청각실 및 교육관, 2층의 사무실 및 강당과 7만여 권의 장서가 있는 20세기 미술도서관 등이 있다.
전시공간을 살펴보자.
파울 클레 전시관과 율리우스 비씨에(Julius Bissier)의 전시관이 3층에 있고, 감상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여 1층 입구 가까이에서 끝나도록 되어 있다. 1945년을 기준으로 한 20세기 미술 소장품 전시 공간은 2·3층에 있고, 주기적으로 바뀌는 외부작품의 전시공간이 1층 한 편에 있다. 소장품 대 비소장품의 전시공간비율은 3 : 1 정도이다.
실내에 들어서면서 바로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 특히 세심한 배려가 기울여진 시설로는 조명을 들 수 있다. 애초에 자연광을 사용한다는 원칙에 합의가 이루어져 지어진 이 건물에서, 인공조명을 사용하는 곳은 파울 클레와 율리우스 비씨에의 작품관 일부, 즉 수채화처럼 자연광을 이길 수 없는 작품들이 전시된 곳뿐이다.
대부분의 공간에는 부드럽게 골고루 퍼지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병용되어 있고 그림이 걸린 벽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가 기울여졌다.
이처럼 3층의 건물에서 자연광을 전체 공간에 배급하기 위해서 옥상으로부터 1층에 이르기까지 자연광의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따라서 천장이 12미터 높이에 이르는 곳도 보인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낀 날엔 외부광선이 미약해 어떻게 되느냐고 하면,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흐린 날씨를 반영하는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이 전시관의 설계상 단 하나의 실수는, 카페가 전시장 초입에 있다는 점이다. 관람객이 피곤해질 시각과 맞게끔 배려되지 않았는데, 이는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한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개장하며, 요금은 어른 2,000원, 어린이 1,200원 정도이다. 물론 학생을 포함한 할인 혜택자에 관한 규정도 있다.
그림의 촬영은 플래시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용되고, 큰 가방이나 외투 따위는 입구에서 의무적으로 맡기게 되어 있다.
4. 소장품 및 전시회
미술사에서 현대는 1905년에 시작된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 미술관측의 소장품들을 살펴보면 앙리 마티스에서 잭슨 폴록, 앤디 워홀에 이르는 '고전적 현대' 혹은 '현대의 고전들'을 발견할 수 있다.
브라크, 샤갈, 달리, 뒤뷔페, 막스 에른스트, 쟈코메티, 재스퍼 죤스,칸딘스키, 파울 클레, 마르리트, 미로, 모딜이라니, 몬드리안, 피카소, 이브 탕기, 앤디워홀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은 박물관이 기를 마다하지 않는 한 미술관을 통해 지난 시대의 삶-그것도 고도로 집중된 양식으로써 과거의 세계를 증거 하는 문화적 매개체가 된다.
이전의 작은 미술관의 성격까지 띠게 된 뒤셀도르프 주립 미술박물관측은 <우리가 지으려 한 것은 무엇보다도 전시관 그 자체>이었다고 강조한다. <목표는 커뮤니케이션 센터도 아니고 사교를 위한 만남의 장소도 아니었다. 예술품이 교재로 사용될 수 있는 문화센터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뒤셀도르프가 자신의 전시관을 갖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부서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하여 전시회와 함께 강연회를 열곤 하는데, 1만 5천 원 가량의 입장료를 내면 강의 청취, 작품감상, 옛날의 신문 잡지 광고를 포함한 문헌자료 소개 등의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김나지움(초·중·고등학교)과 대학의 관련 학과, 그밖에 일반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대체로 한 달에 한 번씩 몇 달간 계속되며 지도요원은 전문적 소양을 갖춘 교육부의 강사 및 교수들이 맡는다.
프로그램 내용은 예를 들어 「구상미술에서 추상으로」,「초현실주의」 등등 광범위한 주제가 있는가 하면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나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권터 윅커(Gunter Uecker)와 같은 개개인의 예술가들을 다루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 인 VHS(Volkshochschule)나 ASG 또는 KHG(Katholi-sche Hochschulgemeinde: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카톨릭 공동체) 등과 마찬가지로 공공의 교양 함양에 기여하도록 마련되어 있다.
전문적으로 미술에 관련된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예술에 매우 관심이 많아서, 전시회에 따라서는 시 전체 인구의 십분의 일이 관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뒤셀도르프 주립미술관에서 86년 이후 이미 전시되었거나 준비된 전시회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86년 7월: 파블로 피카소-파스텔화, 수채화, 드로잉 전시회
11월: 나움 가보-구성주의 전시회
88년 2월∼4월: 아프리카 미술전
9월∼89년 1월: Binationale-80년대의 독일/ 미국의 미술전
89년 2∼4월: 막스 에른스트-콜라주 전시회
9월: 안토니오 타피스-그림, 조각, 드로잉 전시회
11월∼90년 1월: 토니 크랙 전시회
90년 9월: 세계의 연(鳶) 전시회
91년 1∼3월: 아메도 모딜리아니 조각, 그림, 드로잉 전시회
8∼11월: 막스 에른스트 회고전
8∼12월: 초현실주의 회화전
11월∼92년 1월: 요셉 보이스 전시회
92년 3∼5월: 바실리 칸딘스키 전시회
6∼8월: 유럽 예술을 위한 유토피아-구성주의 회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