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낭송의 현황과 나아갈 길
윤성근 / 시인
삶이 그러한 것처럼 문학의 권역 안에서도 변화의 물결은 쉼없이 밀려오고 있다. 거칠게 말해 이러한 변화를 수용 할 수 없을 때에는 자연의 법칙이 그러한 것처럼 사멸의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 몇 해 사이 문학의 판도에서도 실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 장르 자체에 국한해서 말한다고 해도 예외는 될 수 없으리라. 이러한 변화를 한두 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몹시 어렵지만 시학의 상황, 혹은 시인의 상황이 전과는 달리 점차 그 위상이 협소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 사람은 필자 혼자만은 아니리라. 흔히 우리 사회를 후기 산업사회로 지칭하거니와,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재빠른 변모를 따라온 좋지 않은 부산물이 정신적 가치의 핍진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차 고급한 정신적 노력의 잉태물인 문화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1. 지금, 이곳에서 시낭송이 갖는 의미는?
논의를 시에 국한하도록 하자. 최근 모 시 전문지의 대담에서도 지적된 것이지만 시인과 시의 위상을 전시대와는 달리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대두될 정도로 시인이 처한 상황에 위기감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선진 각국-구체적으로는 구미 지역을 말한다-에서는 시인이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영향력에서도 현저하게 왜소화되는 상황이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중요한 가치중의 하나였던 대사회적 발언의 영향의 약화는 물론이고, 호구지책으로 젊은 시절 친우였던, 지금은 유명해진 화가가 그려준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본의 논리랄까, 교환가치에 대한 저항이랄까 또다른 가치추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지적들이지만, 그러한 가치 추구와 시인이 처한 상황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할 때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는 점차 독자를 잃고, 시를 읽는 사람은 시인 그 자신일 뿐이다, 뭐 이런 때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장르의 속성상 산문문학에 비해 구체성, 서사성 등에서 취약한 점이 없지 않지만, 더 많은 미덕을 겸비한 시문학이기에 필자의 소견으로는 꼭 이런 비관적인, 또 지나치게 결정론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불만이다. 가령 이것은 지나치게 서구 중심의 사고라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것에서 이해의 틀을 빌려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왜 장황하게 시문학이 처한 상황을 기술하는가. 필자는 이점에서 시낭송의 새 지평을 엿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시낭송, 혹은 낭송시를 너무 낭송의 좁은 틀 속에서만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반성이다. 일반적으로 시문학에 있어 낭송의 전통이 약해진 것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이미지즘,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대량 복제가 가능해진 데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즈음에는 낭송시의 개념 자체를 사멸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접하게 되는 실정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시는 낭송으로서의 지평은 존재치 않는다. 따라서 필자가 시낭송을 낭송이라는 전제하에서 보지 말자는 반대편 이유에서 시낭송은 그저 시낭송의 전통이 있더라는 식의 그릇된 선입견을 조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항구적인 명제는 이미 진실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하물며 생성, 변화하는 예술작품의 차원에 있어서야. 물론 시낭송은 빛나는 전통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더 빛나는 전통이 만들어지지 말라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필자는 이 점을 좀더 살펴보고 싶다.
시낭송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드문 점을 말할 수 있겠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시낭송이 활발히, 최근 몇 해 동안은 이틀에 한 번 이상씩 시낭송회가 개최된다는 점을 인식할 때 시 이론가들의 직무유기를 짐작케 한다. 이 점은 정연한 시낭송법이 전무하다는 현실에서 뒷받침된다. 그리고 우리가 좁은 시야로 외국문학하면 으레 영미문학, 불문학과 독일문학 정도를 떠올려서 그렇지 가령, 그 나름대로 세계성을 띤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소련문학에 있어 시낭송의 전통은 일찍이 금세기 초의 알렉산드로 블로크에서부터 오늘날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예브게니 예프투센코에 이르도록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예프투센코는 내한하여 그의 세련된 낭송술과 화법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측면에서의 시낭송의 성가보다도 독자들이 시낭송을 즐기고 있는 점은 부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느 시골 여인이 노동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냐는 우리 기자의 질문에 자랑스럽게 시낭송을 든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보즈네센스키의 인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에서 시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한다. 시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러시아 민족성과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러시아에서 시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동양이나 서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방법으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의 의견은 존중되고 추구되며, 시인은 문화의 보호자로서 존경받는다. 차르 정권 시대에 시인의 존재는 더욱더 부각되었다. 모스크바나 패채르부르그-현재의 레닌그라드-뿐만 아니라 전 지역에 걸쳐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시가 암송될 정도였다. 오늘날 시인이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저녁 정규 뉴스 방송 후-에 자신의 시를 낭독할 때, 시인은 수천이 아니라 수백만 청중을 사로잡는다. 보즈네센스키 역시 TV를 통하여, 또는 광장에서 자작시를 낭송해 왔다.
―조주관, 보즈네센스키 시집 해설에서
우리는 마돈나라는 유명한 팝 가수를 알고 있다.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한두 사람 이상 유명한 팝 가수를 대는데 그리 힘들지 않으리라. 소련에서 시인은 이러한 무비스타 이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기라는 말을 썼기에 오해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덧붙이는 것이지만 보즈네센스키의 경우 소련 자국 내에서는 전설적인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부기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오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그의 시집을 구입했다고 하고, 그의 시낭송이 있는 날 스타디움이나 대극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 갈채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광범한 시인의 대중적 지지는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그것은 물론 시낭송의 힘이고 위력이다. 시낭송은 소설가나 극작가는 꿈꿀 수 없는 시인만의 특권이고 자질이다. 다소 성급하게 필자의 생각을 앞세우자면, 우리는 시낭송의 새지평을 경작해야 한다. 그것은 독자를 상대로 혹은 시인 스스로가 과제로서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이점을 보다 상세히 알아볼 작정이다.
2. 우리나라 시낭송의 실태
우리나라의 문학행사 중에서 가장 많이 실행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낭송회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것은 물론 연원을 따지자면,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들 중에서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가장 많고, 또 그 이면에서는 비교적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르적 특성이 한몫 거들고 있기도 하지만, 문학행사 치고 시낭송이 빠져서야 말이 되는가 할 정도로 시낭송이 문단 언저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광범위하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점을 보충설명하기 위해 심상 시낭송회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 모임은 1985년 5월에 결성되었는데, 이 모임의 목적을 보면 "순수한 시 독자 모임으로 시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분들에게 시적 정서함양과 건전한 시적 교류와 행사를 통해 순수하고 새로운 시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취지문을 통해 이 모임은 기성시인들만의 모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임의 순서를 보면 흥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1부는 문학론 토론, 2부는 오늘의 시-시인의 시낭독-3부는 회원의 시낭독, 4부는 시인과 독자의 대화 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소위 문학의 밤 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학론 토론-혹은 강연-과 시낭송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단 이 모임뿐만 아니라 시낭송회 모임들이 이처럼 문학의 밤 행사와 구분이 없는 가운데, 또는 문학의 밤 행사가 시낭송회와 뚜렷한 구분이 없는 가운데 실행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낭송회가 일 년에 몇 회나 실시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앞서 시낭송회가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거니와, 이 점을 도표를 통해 살펴본다.
〈표1〉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시낭송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1986년∼1987년과 1987년∼1988년임을 알 수 있다. 이 통계들은 각 일간신문을 중심으로 집계한 것이므로 여러 사정으로 누락된 소규모의 시낭송회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더 많은 시낭송회가 열렸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이 두 해 사이에 많은 시낭송회가 이루어진 것은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했던 시인만세 각 지역대회와 서울대회가 기폭제의 역할을 하여 많은 시낭송회가 개최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1987년의 통계는 시낭송 횟수와 문학의 밤 행사가 합산되어 있어 그 구별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1988년과 1989년 두 해의 시낭송 횟수가 209회로 기록된 점이 실증시키듯 시낭송 횟수의 신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이 표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 해중 언제 시낭송회가 가장 많이 열린 것인 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시낭송회의 성격을 하나씩 규명해 보기로 한다.
〈표2〉에서 나타난 바 1985년의 시낭송회의 개최가 가장 많았던 달은 11월로 12회이며, 가장 적었던 달은 3월로 2회이다. 반면 1989년의 시낭송회 개최가 가장 많았던 달은 5월로 25회이며, 가장 적었던 달은 1월의 9회이다. 일반적으로 예술행사의 비수기라고 말하여지는 1, 2월과 7, 8월에 비교적 적은 횟수의 시낭송회가 열렸기는 했지만, 그러한 경향도 점차 완화되면서 지난해인 1989년의 경우에는 계절적 요인에 별 상관없이 꾸준히 시낭송회가 개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시낭송회가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운집했을 경우가 아니라면 시낭송회의 경우 공간적 제약이 많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표1〉최근 5년간의 시낭송 횟수 추이
연 도 |
|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횟 수 |
|
72 |
96 |
173 |
209 |
209 |
*1987년도의 시낭송 횟수는 문학의 밤 행사와 합산한 것임
〈표2〉1985년과 1989년의 시낭송회 월별 현황
연도 |
|
월 |
|
계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
1985년 |
|
5 |
4 |
2 |
4 |
6 |
5 |
4 |
6 |
7 |
8 |
12 |
9 |
|
72 |
1989년 |
|
9 |
19 |
18 |
22 |
25 |
20 |
15 |
16 |
17 |
15 |
21 |
12 |
|
209 |
그렇다면 문학행사중 시낭송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 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표3〉이 그 지수이다.
앞서 이미 시낭송회가 문학행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과연 지난 한 해동안 실행된 문학행사의 38.4퍼센트가 이 시낭송회인 점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밤과 구분된 이 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낭송회가 이처럼 문학행사의 거의 40퍼센트에 가까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중적 성과는 둘째 치고라도 시낭송회를 시인 자신이 퍽 가깝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학강좌나, 문학의 밤 및 독자와의 만남, 시화전 등에 비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이 시낭송회에 정책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겠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시낭송회의 지역별 변별 현황이다.〈표4〉는 지역의 성격을 몇 가지로 나누어본 통계이다.
1989년 한 해동안 시낭송회의 60퍼센트가 서울에서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이 통계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각 도별 통계자료를 보면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강원도가 39건으로 타 지역에 비해 많은 시낭송회를 개최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정기 시낭송회를 많이 개최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시낭송회를 알아보면 수향시동인회에서 개최하는 수향시 낭송회, 토요시 동인회에서 개최하는 토요시 낭송회, 바다시 낭송회에서 개최하는 바다시 낭송회 등을 들 수 있다. 이 낭송회들은 매달 1회 정도 개최되고 있다.
이처럼 활발히 시낭송회가 개최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부산지역 3회, 인천지역 1회, 대구지역 3회, 대전지역 4회, 충남지역 1회, 전남지역 3회 등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실정이다. 지역적으로 시낭송회의 개최 상황을 알아보면 반 이상의 시낭송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전반적으로 지방에서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점은 앞으로 이들 지역에서 더 많은 시낭송회가 열림에 따라 해소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여기에서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시낭송회가 지역문화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과 시낭송회가 지방 문인들의 요람이라는 점이다.
현재 강원도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활동중에서 대표적인 예는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한 시낭송회와 각종 동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각 지역의 시낭송회는 지역 문화동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는데, 각 동인들은 별도의 동인지를 발간하고 있는게 보통이다.
―서준섭,「우리지역의 문학을 말한다, 강원지역」, 문학사상, 1989년 5월호
〈표3〉1989년의 문학행사중 시낭송회가 차지하는 비중
구분 |
|
시낭송회 |
백일장 |
시화전 |
문학의 밤 독자와의 만남 |
문학강좌 |
기타 |
|
계 |
행사수 |
|
209 |
52 |
37 |
81 |
114 |
51 |
|
344 |
비율(%) |
|
38.4 |
9.6 |
6.8 |
15 |
21 |
9.3 |
|
100 |
〈표4〉1989년의 시낭송회의 지역별 현황
구 분 |
|
서 울 |
대도시 |
지 역 |
기 타 |
|
계 |
횟 수 |
|
126 |
12 |
70 |
1 |
|
209 |
이처럼 시낭송회의 역할은 단지 1회성의 행사가 아니라 그 지역 문인들의 산실로서 삶을 고양하고 문화의 가치와 문학의 의미를 알리는 문화운동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시낭송회의 지역별 현황을 해석하는 다음과 같은 지적도 있음을 부기해 두자. 이것은 서울에서 열린 시낭송회가 126건으로 정기시낭송회보다는 부정기적인 시낭송회가 많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서울지역이 문학에 관련된 각종 단체가 전국에서 가장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서울에서 열린 시낭송회들이 앞으로 정기시낭송회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상 1989문예연감에서).
그럼 다음으로는 어떠한 시낭송회가 정기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지를 살펴본다.〈표5〉가 그것이다.
이들 주요 시낭송회중에서 지면 관계상 몇 개의 시낭송회를 소개키로 한다. 이 중 공간시 낭송회는 시낭송회로서는 가장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지는 낭송회이다. 1979년 4월부터 열리고 있는 이 낭송회는 1986년 이후 바탕골 소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열리고 있다. 이 낭송회의 상임시인은 구상, 박희진, 성찬경, 조정권 등이며 이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 낭송회는 시낭송회를 기조로 하여 시와 현대음악의 만남, 또는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소도구의 사용 등 다양한 낭송법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수 시낭송회는 시의 생활화 혹은 대중화를 모토로 1982년말부터 서울 보리수 다방에서 열리다가 레스토랑 하이마트로 옮겨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주로 시단의 중진 시인들이 축을 이루는 이 낭송회는 시인과 독자들이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의 공감대를 넓혀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글로리아 낭송회는 시인 채수영, 박영우, 윤석산, 조완호, 황도형 등이 상임시인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초대시인과 함께 시낭송을 글로리아 고전 음악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바우방 낭송회는 시인 윤강로가 상임시인으로 이끌어가는 모임으로서 주로 젊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시와 시작 동기 등 질문과 토론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독자층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세대를 넘어선 예술의 세계를 펴나가는 것이 이 모임의 의의이다.
<표5> 정기시낭송회 알람표
지역 |
행사명 |
개최시기 |
주 최 |
주요개최장소 |
서울 |
꿈과 시와 사랑 심상시인낭송회 미래시낭송회 목요시낭송회 공간시낭송회 우이동낭송회 바우방낭송회 시소리낭송회 시의축제 보리수시낭송회 두레시낭송회 한단시소리방 |
매월 둘째 토요일 매월 둘째 토요일 매월 셋째 토요일 매월 셋째 목요일 매월 넷째 화요일 매월 넷째 금요일 매월 셋째 수요일 매월 넷째 토요일 매월 첫째 월요일 매월 첫째 토요일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
한국시집도서실 심상시동인 미래시동인 오늘의 문학 공간시낭송회 우이동시동인 바우방동인 시인의 집동인 문학아카데미 보리수시동인회 두레시낭송회 한단시소리방 |
혜화동시집도서실 팬클럽강당 현대다방 오디오월드 바탕골예술관 난다랑 오디오월드 용산도서관 샘터파랑새극장 하이마트레스토랑 카페시인학교 카페지리산북촌산9번지 |
강원 |
수향시낭송회 바다시낭송회 설악문우회시낭송회 토요시낭송회 물소리시낭송회 |
매월 셋째 토요일
|
수향시동인회 바다시낭송회 설악문우회 토요시동인회
|
춘천카페오페라 강릉다방 속초카페시나브로
|
전북 |
남원문학동인시낭송 문협남원지부시낭송회 |
매월 셋째 토요일
|
남원문학동인 문협전남지부 |
남원시민회관
|
경북 |
비화문학회낭송회 |
매월 셋째 토요일 |
비화사조문학회 |
포항시다방 |
경남 |
글예술 사랑방 낭송문학회 |
매월 셋째 수요일
|
문협진주지부 낭송문학회 |
서울신문사진주지부 마산예총회관 |
미래시 시낭송회는「월간문학」출신 시인의 동인인 '미래시'를 중심으로 열리는 것으로 서울 타임 커피숍에서 레스토랑 에코로 장소를 바꾸어 열리고 있다. 가장 많은 시인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려시인 시낭송의 밤은 박진관, 석성일, 이청화 등 승려시인들에 의하여 조계사 불교회관 등에서 열리는 시낭송회로 시창작을 하는 승려들이 모임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바다시 낭송회는 강릉지방의 젊은 시인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주로 강릉지역의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 시낭송회가 열리는 장소를 살펴 정확한 통계를 적시할 수는 없으나 다방 등지에서부터 점차 소극장 등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추이는 시낭송이 단순한 낭송에서부터 행위예술화하는 경향의 일단을 반영한다고 보여진다. 이점은 뒤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3. 시낭송의 여러 국면들
이즈음 씌어지는 시작품 가운데 낭송을 전제로 한 작품은 전무한 것이 사실이고, 또 전시대와는 달리 낭송되어진 작품만이 의미를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낭송의 영역은 사라지고 말았는가? 아니다, 단호히 필자는 말한다.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고. 이 장에서 살펴볼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앞서도 말한 바 있듯이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들이요, 죽을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시낭송의 전통에만 연연해서 지금의 이 상태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하등 없다. 새로운 시낭송의 지평은 바로 이 정신, 회의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전 장에서 시낭송의 범주를 좁은 차원에서 바라보지 말자고 했거니와 시낭송을 그저 시 플러스 낭송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낭송 텍스트들은 시도 뭐도 아니고, 그 행위 자체는 시낭송과는 아예 거리가 먼 개그도 키치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전에 말한 부정 정신, 회의하는 정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는 문학이 해야 할 전달 방식이며 진리 내용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시인이 시낭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충격적인 진술이다.
우리나라처럼 전달할 메시지가 많은 나라의 시인들도 시를 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시를 하면 어떨까? 감옥에 간 시인들, 70년대에 시를 '쓴' 것이 아니라 '했던' 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들의 정치적 퍼포먼스를.
―김수경,「행위시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학정신, 1990년 8월호
이처럼 넓은 의미의 시낭송은 '쓰는 시'에서 '하는 시'로의 대담한 이행을 가능케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시, 혹은 시낭송의 한계가 아니라 의사 한계를 허무는, 한 문학비평가의 말을 빌면 경계를 허물고, 간극을 메우는 적극적인 행위의 단초이리라. 다음의 예시들은 이런 경우들을 보여주는 몇가지 노력들이다.
1) 동독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
동시대의 독일 시인중에서 가장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 그는 1935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일찍이 동독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의 시집들은 서독에서 출판되었을 뿐아니라 문제의 1976년 퀼른 콘서트 이후 그는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다시 살고 있다.
퀼른 콘서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의 비판 대상이 되어 등장금지를 받고 있던 그가 귀국 보장을 받고 갔던 서독 퀼른의 시낭송회를 마친 뒤 동독 시민권을 박탈당함으로써 대규모 구명 운동이 동독에서 벌어졌고, 연이어 일련의 동독 작가의 망명사태를 낳은 문학사적 소용돌이를 말함이다. 그는 이제까지 모두 악보가 첨부된 일곱 권의 시집을 냈는데,「철사줄 하프」를 비롯한 네 권의 시집은 동독에 있는 동안 서독에서,「프로이센의 이카루스」등 3권의 시집은 서독에 온 이후에 간행하였다.
비어만은 그 자신의 지칭처럼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대부분의 시는 처음부터 청중을 향해 노래할 것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것이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는 베르톨트브레히트, 하인리히 하이네, 프랑스와 비용의 전통에 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문학의 역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가인(歌人)으로서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62년 서정시의 밤에 슈테판 헤름린의 추천으로 무명시인들의 시 50편중의 한 편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시작 활동을 통해 그가 펼친 논리는 아름답고, 통찰은 즐거우며 이미지는 힘이 있으면서 계몽적이라는 평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그는 가인답게 절묘한 운율을 구사하는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의 시를 번역한 전영애 교수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비어만의 텍스트는 작곡을 전제로 하거나 작곡과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의 운율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단어 유희가 두드러진다. 번역의 한계로 하여, 이를테면 원전 비판 노래인「Gorleben soll leben」같은 노래의 경우 '고를레벤을 살리자'라는 번역으로는 '고를레벤 졸 레벤'의 운율과 제치를 살려 낼 길이 없다.
―전영애, 작가세계, 1989년 가을호. p.405
번역은 반역이라고 했던가. 번역이 어떤 땐 창작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가. 그러나 번역의 불가피성에도 눈길을 주면서 비어만이 개척해 보인 노래 낭송시의 경지를 짐작해 보자.「격려」라는 이 시는 제목에 걸맞게 한 사람이 경구를 들려주는 듯한 서술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또한 이 시의 도덕적 격려라는 주제를 잘 배려한 것이라 믿어진다.
이 모진 시대에
그대, 굳어지지 말라
다들 너무나도 굳은 사람들, 그들을 깨뜨려
다들 너무도 뾰족한 사람들, 그들을 찔러
즉각 부러뜨려 버려라
이 혹독한 시대에
그대 혹독해지지 말라
지배자들을 뒤흔들어라
―기타 뒤에 앉았구나―
그렇지만 그대 고통 앞에 앉지는 말라
이 충격의 시대에
그대, 놀라지 말라
그것이 저들의 목적이지
큰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가 무기를 뻗쳐드는 것
그대 써서 마모되지 말라
그대 시대를 그대가 쓰라
그대가 잠수를 할 수는 없다
그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 또한 필요로 한다
바로 그대 명랑함을
우리는 침묵으로 은폐하지 않으련다
이 침묵의 시대에
나뭇가지에서는 초록빛이 터져나온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에게 가리켜 보이련다
그러면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전영애 역)
2) 시낭송을 통해 자유를 지향한 비소츠키
블라디미르 비소츠키Vladimir Vissotsky는 1938년 모스크바의 도심에 있는 한 조산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련문학 내에서도 하나의 독특한 현상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그가 민중시인이면서 독특한 음색으로 그가 쓴 시들을 읊조리는 음유시인적 풍모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가락에 실려 소련 전역으로 퍼졌고 단 한권의 시집을 낸 바 없음에도 그의 시는 시낭송의 큰 위력에 의해 사후에도 많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녹음 테이프의 덕을 많이 본 사람으로 지칭되기도 한다.「이오니스트」지의 1988년 11월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일단의 광부들이 지질학 연구소에서 주최한 설문조사에 응한 적이 있었다. 설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라 썼다고 한다.
"여러분, 잠깐만."
사회학자는 대답을 정정하고 싶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여러분은 시인이 아닌 가수의 이름을 쓰셨군요."
그러자 광부들이 대답했다고 한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소츠키는 시인입니다. 그를 가수로 분류한 것은 당신네들입니다."
비소츠키의 시낭송은 다이나믹하며 극적 구성과 기타가 동원되는 등 소도구를 적절히 사용한 것으로 넓은 층의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당국으로부터 낙인찍힌 시인도, 추방당한 시인도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나게 체제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시인도 아니었지만 그는 청중들의 가슴속에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낭송을 추구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인류 보편의 자유에의 추구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잦은 반복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시를 한 편 인용하기로 하자. 이 시는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다. 제목은「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이다.
너의 열일곱 살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열일곱 불행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검은 연발총이 숨겨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그럼 네가 사라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친구여, 넌 이 거리를 기억하겠니?
아니지, 넌 볼쇼이 카레트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볼쇼이 카레트니라는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사람이
그의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린 곳이니 말이야.
그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
너의 열일곱 살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열일곱 불행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너의 검은 연발총이 숨겨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그럼 네가 사라진 곳은?
볼쇼이 카레트니 거리지.
이하 생략(*바다저작권번역실 역)
3) 시낭송과 퍼포먼스
우리는 행위시의 낯선 개념과 함께 긴즈버그의 그 흥얼거리는 듯한 입놀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행위시의 개념은 어느새 우리들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고, 초기의 그로테스크에서부터 시 장르의 해체정신으로까지 승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아랫배가 불룩한 중년의 시인(라우센버그)이 무대에 서자 스피커에서 째즈 음악이 흐른다. (가라오께) 마이크를 든 시인,
"트리스탄 짜라를 위하여!"
그리고 째즈 음악과 음악 사이의 휴지부에 시를 더빙하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는 텍스트도 없다. 마치 익숙한 가수처럼 청중을 사로잡으며 더빙 포에트리를 공연하는 시인……드디어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끊어지고 짜라의 시가 낭송된다. 그 휴지부에 라우센버그가 자신의 시를 더빙한다. 캬바레 볼테르에서 알프래드 자라와 트리스탄 짜라가 하던 동시시의 기법인가 궁금하던 사이 한 시인이 무대에 올라와 모던댄스 같은 춤을 춘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텍스트를 읽는다.
―김수경,「행위시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학정신, 1990년 8월호
기계문명의 발달과 산업사회 이전의 시대를 굳건히 받쳐주던 아우라의 상실은 이 시대에 고스란히 남겨져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시인은 더 이상 상아탑이나 책상머리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마음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은 것이다. 시인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거대한 폭풍과도 맞서야 하는데 불행히도 시인의 무기인 시는 전 시대에 더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행위시는 시인이 시낭송 혹은 퍼포먼스 등을 통하여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하나의 안간힘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 외에도 컴퓨터 시, 기호시 등을 통하여 우리는 발달한 기계문명, 정보사회의 이기들을 이용한 시낭송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4. 시낭송의 다양화와 활성화를 기대하며
이제까지 시낭송의 의미와 실태, 그리고 시낭송의 다양한 전개를 보여주는 몇 가지의 시례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시낭송이 될 수 있는지 좋은 시낭송의 요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낭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말한 바 있지만 우리의 문단 상황과 독자들의 성향 등을 종합해 볼 때 그 중요성은 배가 된다. 앞서 살펴본 심상 시낭송회 등의 경우와 같이 시낭송이 기성시인과 독자, 혹은 전문인이라 할 시인과 동호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에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야 말로 시낭송의 본격적이고도 활발한 전개가 시작될 수 있는 시점에 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종합적인 결론이며, 또 그리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은 시인 쪽에서 적극적으로 청중들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렇다면 좋은 시낭송의 요건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은 낭송에 적합한 좋은 시가 선택되어져야 할 것이다. 좋은 시작품이라고 해서 모두다 낭송에도 좋은 시는 아님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낭송에 좋은 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어야 할까? 이 점은 크게 보아 시의 내용과 형식의 세부적인 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다. 시의 내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청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 즉 낭송을 듣고 그 정황이나 앞으로의 전개 상황 등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추상적인 작품 내용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노래한 시가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청중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편적 정감을 노래한 시가 시낭송의 내용으로 선택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의 내용이 이러해야 한다면 낭송에 좋은 시가 갖추어야 할 형식적 세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시의 행과 연의 종결 부분이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명사로 끝나는 경우는 적은 시, 그리고 행과 연의 끝이 '하라', '니다'의 서술어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시 등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들은 일반적인 경우의 시낭송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 시인이 뜻하는 바 시의 주제에 따라 다른 이론의 틀을 가질 수 있을 것임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시인 송현이 들고 있는 우리 현대시중 낭송에 최적인 시 11편을 알아보기로 하자. 1. 바다(서정주) 2. 해바라기 비명(함형수) 3. 즐거운 편지(황동규) 4. 별헤는 밤(윤동주) 5. 낙엽(김남조) 6. 금강(신동엽) 7. 가을 산문초(윤재걸) 8. 장미의 의미(전봉건) 9. 지금은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양성우) 10. 목마와 숙녀(박인환) 11. 호명(고은) 등이다. 이 순위를 보면 다소 주관성이 있으리라 믿어지지만 비교적 시낭송회에서 많이 등장하는 시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순위를 보더라도 시의 수준과 낭송에 적합한 순위와는 일치하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다.
두 번째로 좋은 시낭송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은 청중들의 수준이다. 청중들의 수준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청중들의 수준을 잘 고려할 때 공감대가 큰 시낭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낭송을 하는 공간의 중요성이다. 이제까지는 덩그런 공간만이 주어졌지만 네 번째 항목이 될 소도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점과 맞물려 시낭송 공간의 중요성은 점증하고 있는 추이이다. 특히 연극이 벌어지는 소극장 등지에서 시낭송이 이루어진다면 시낭송의 다양한 모습을 잘 보여주게 될 것이다.
시낭송에 소도구가 쓰인다 함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시낭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며, 그것조차 시낭송의 중요한 일부로 정착되어 갈 것이다. 음악을 위해 악기를 손수 연주한다든가, 기구를 쓴다든가, 판토마임 등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인접 장르의 예술이 점차 시낭송 속으로 유입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인 자신의 시낭송에 대한 관심의 제고를 들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시인이 시낭송에 임하고 있지만, 시낭송에 대한 관심을 가진 시인 자신이 시낭송 전문가가 된다는 심정으로 임한다면 시 독자도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하나씩 하나씩 독자에게 다가서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세계시인대회를 앞두고 세계의 저명 시인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한다. 이들중에는 시낭송의 천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앨런 긴즈버그와 아카야 유다카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는 보즈네센스키도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한다. 1편당 수십분에 이르는 그의 시낭송을 보게 된다는 것은 시낭송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낭송할 시 한 편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도록 한다. 이 시의 제목은「나는 고야」이다. 고야(1746∼1828)는 스페인의 화가이다.
나는―고야!
황량한 들판을 날며,
작은 포화구 같은 내 눈구멍을 쪼아댄다.
나는―비애!
나는 전쟁의 소리,
1941년 눈 위에 버려진
도시의 타다 남은 불.
나는―기아.
나는 목매단 여인의 목구멍,
그녀의 시체는 종처럼
텅 빈 광장에서 뎅그렁뎅그렁 울고 있다……
나는―고야!
아, 분노의 포도송이!
나는 한 줌의 재가 된 불청객의 유해를
서구로 단숨에 날려보낸다!
그리고 잊지 못할 하늘에 단단한 별들을
꽃처럼 박아버린다.
나는―고야.
(*조주관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