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의 특별전과 줄리앙 슈나벨의 조각전
김종근 / 미술평론가, 숙명여대 강사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의 메카로 뉴욕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뉴욕은 세계 현대 미술의 중심지이고 거대한 미술 시장이다. 최근의 이러한 현황은 시카고와 LA, 그리고 동경의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양상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Auction에 따른 활성화이지 아직 뉴욕은 다른 도시보다 극성화된 성격을 잃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매스컴과 미술잡지 「Art in America」나 「아트뉴스」등의 많은 지면들이 다른 지역의 미술동향이나 전시보다는 뉴욕의 전시에 집중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80년대 미술이 뉴욕에서 신표현주의와 뉴페인팅으로 그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는 신표현주의도 몰락하고, 무서운 아이들로 대변되는 네오지오Neo Geo역시 문학의 파행적인 기능과 답보 상태에서의 사회에 발언도 그 힘을 상실했다고 성급하게 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AIDS로 올 2월에 사망한 케이스 헤링의 작품들은 화제를 일으키고, 그의 삶과 예술은 TV에서 1시간 가량 방영될 정도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쟝 미셀 바스키아의 죽음도 뉴욕의 화랑가에서는 뉴욕의 상업주의와 스타탄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과대 광고와 매스컴과 화상의 상업주의는 여전히 현대 미술의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작가들은 뉴욕화단에 전혀 어필되어 있지 못하고 백남준을 제외한 한국화가들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 작가들의 뉴욕의 진출과 LA 카운티 미술관의 상설 일본 미술전시와 카운티 뮤지엄의 일본 조각가들의 거대한 조각전시는 미국과 국력의 정비례라는 상식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특별히 기획된 영국의 후란시스 베이컨 전시는 몇 가지 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프리뷰Preview로 관람한 「모로코에서의 마티스」와 동시에 개최되고 있는 베이컨의 이 전시는 영국, 독일, 스코틀랜드, 스위스 등 각국에 흩어진 59점의 대작 유화로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허쉬혼 미술관측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1988년 베이컨이 죽은지 얼마 안돼 열린 베이컨의 이번 회고 전시는 베이컨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데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1909년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인테리어로서 일을 시작하였는데 스무살 때 피카소 전람회를 보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대부분 대작들인 이 작품들은 1945년 풍경속의 인물들을 시발로 해서 베이컨의 회화에 주요한 모티브인 일그러진 인간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1953년 반 고호의 초상부터 인간의 형상, 특히 머리 부분에 일관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는 사각형의 구조물 안에 인물을 배치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거기에 쓰여지는 모델들은 거의 그의 친구들이었으며 그의 이미지 선택은 거장들의 작품과 필름 및 사진 등을 이용했다. 포프의 회화 시리즈에서는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즈의 「포프 이노센트X의 초상」을 끌어들여 변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19세기 사진작가 무이브리지의 모션은 그의 인간과 동물에 관한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베이컨은 정원에서 섹스를 하는 모습,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 모습, 세면대에 기대어 있는 모습, 세수를 하는 풍경 등 많은 작품들을 일상 생활속에서 다이내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개인적인 상징성이 풍부하고, 현대적인 삶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작품 가운데 강렬한 색채와 주제의 역동적인 표현, 긴장된 화면구성 등이 베이컨 회화의 참다운 힘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신체 해석에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그것들은 육체의 움직임을 찍은 사진들에서 연유된 것들이다.
에로틱한 자신의 초상화에서부터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까지 인간의 다양한 생활의 구석구석에 편린들을 강렬하게 담고 있다. 늘 그 자신이 고백하고 있듯이 〈육체는 그림이고, 그림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그의 신체에 대한 신념은 공간 구성과 대담하게 생략된 단순화의 정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쪽 얼굴을 과감하게 일그러뜨리거나 지워버린 그의 신체의 변형은 냉정하게 구획되어진 공간 속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창출해 내고 있다. 특히 그가 기억하고 있거나 알고 있는 이사벨 로스돈, 뮈리엘 버커, 루시앙 프로이드, 오랜 친구 조지 다이어 등은 그의 전작품에 모델이 되었다. 베이컨이 그린 그림들은 인간의 본능과 삶의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 철저하게 장식성을 거부하고 현장의 사실적 표지를 극적으로 전환 해석하는 표현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금세기 표현주의의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늘 〈나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그의 이번 특별전에는 60∼70대의 노인부터 젊은 학생까지 당대 인간들의 삶을 뜨겁게 표출한 베이컨의 예술을 보려고 줄을 서 있다. 이 전시와 더불어 뉴욕의 소호Soho 화랑에서는 1960년대 이후 현대 미술의 기수, 뉴페인팅의 대표적 작가인 쥴리앙 슈나벨의 조각전이 페이스pace갤러리에서 열렸다. 5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열린 슈나벨의 전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뉴 페인팅―미국적 신표현주의―의 대표작가의 변신이라는데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일찍이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한 표현 형식으로 현대 문명사회가 갖는 인간의 모습을 접시의 깨진 조각으로 덧붙여 충격을 주었던 그는 그림에서 간주되었던 색채와 형태를 파괴하고, 갖은 형상을 화면속에 붙이고 끌어들임으로써 고요하던 뉴욕화단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미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페이스 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평면화가로 알려져 있는 슈나벨의 조각전이라는데 세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4∼5m의 육중하고 거대한 10여점의 흉물스런 조각들은 그의 회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폐품 Junk스타일의 조합으로 그의 새로운 변신을 가늠케 한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의 최신작들로 마련된 이 작품들은 낡은 고철과 나무들로 이루어졌는데, 인간의 괴물스런 모습을 빌린 형상들은 슈나벨의 변용된 인간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나무조각에 단순한 오브제를 결합시킴으로 인간의 변용화에 그의 탁월한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 위에 곁붙인 쇠파이프와 고전적 조각의 말의 모습에서 보이는 역사적인 퇴행과 거대한 아프리카 조각의 설치 등은 그의 원시성에로의 원초적 회귀 의식을 잘 보이고 있다.
그의 조각에 대한 실험은 물론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당대의 뛰어난 작가들의 예를 들면, 미로나 드가, 모딜리아니, 르느와르 등이 걸출한 조각작품들을 남겼고 훼르난도, 보테로, 헤링, 그리고 피카소 등이 조각작품으로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킨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아프리카 조각을 조각속에 끌어들이는 것도 결코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피카소, 브랑쿠지, 쟈코메티, 마이율, 체미아킨 등이 아프리카 인체 조각들을 그대로 작품속에 도입하거나 자신의 모티브 속에 직접 결합시켜 원시성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차원을 발전시켜 온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나벨의 이번 조각전은 뉴페인팅의 선구자로서 다시 원시성과 역사의 유물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현대예술의 세계를 심화시키고자 했다는데 촉각이 세워지고 있다.
역사는 늘 오늘을 살아가는데 지혜와 비전을 제시하듯이 과거의 역사와 미술은 현대미술의 세계를 열어가는데 늘 그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쥴리앙 슈나벨의 조각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욕의 페이스갤러리와 MOMA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