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 좌담 「문화 발전 10개년 계획」의 방향과 의미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설득으로 발전의 틀을 다지자




이중한(사회) / 서울신문 논설위원

유재천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상일 / 성대 독문학과 교수

이두영 / 중앙대 도서관학과 교수

이중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본격적이고 체계화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 계획안이 말하는 기본방향과 실행시의 난점, 또 그러한 것들의 의미 등을 정리해 보는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광범위한 과제를 놓고 있기 때문에 이 계획안의 기본방향과 몇몇 항목을 골라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상일 저는 특히 〈문화의 틀 짜기〉라는 5가지 의미설정이 대단히 반갑게 생각됩니다. 문화예술인들이 이미 정책적인 체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던 터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계획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1차적으로 남아 있는 문제가 되겠지요. 아울러 차세대인 청소년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 계획안이 조금 소홀하게 다뤄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재천 저 역시 문화정책이 추구하는 5가지 틀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계획전반이 대단히 의욕적이고 포괄적인 아이디어를 망라했습니다.

이두영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틀은 전문가 300명과 3,000명 문화예술인이나 학술인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짜여졌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이 거의 채워졌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나 덧붙인다면 이러한 문화정책이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중한 저도 〈이 계획안이 우리 역사 속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계획이다〉라고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은, 한 단계 진보된 문화정책을 세우는데 국민들의 평균적인 인식이 부족한 점과 이 계획안을 접하게 될 수용자측의 이해 부족의 문제입니다. 국민적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계획안에는 그 태도가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상일 사실 우리의 문화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껏 주어지는 것만 수용하는 입장이었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여력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체험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문적인 접근을 요하는 정치나 경제에 비해 문화는, 쉽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두루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 문화예술을 인식하는 단계를 만든다고 봅니다. 문화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문화정책을 다지는 단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중한 대단히 좋은 관점입니다. 반론 또한 전달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인식을 더 깊이 하는 거라고 보면 더욱 효과적이겠지요. 그러면 내용으로 들어가서, 저는 먼저 문화정책의 개별항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문화조건에서 보면 상당히 황당해 보이거나 허황해 보이는 목표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것을 허황해 보인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쪽으로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개별항목을 찾아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의견을 나눠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유재천 이 계획안 머리말에서 관료주의와 중앙집권주의를 지양한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제가 받은 느낌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중한 그 예를 들어주시죠.

유재천 예를 들면 이 사업계획의 대부분이 문화부가 주관하는 계획이라는 겁니다. 민간주도 사업의 영역에까지도 문화의 행정적인 지원이라든지 모델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민간 영역의 하나로서 기업 문화를 창설하겠다고 하는데요, 기업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갖고 있는지 몰라도 기업문화야말로 각 기업마다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화부가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하니 관주도의 관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가령, 국제선 비행기 안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술을 내놓으라고 권유한다는데, 그런 부분까지 문화부가 관여할 성질인가 의문입니다.

이두영 아까도 거론되었지만 문화란 온 국민이 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마련이 아닌가 합니다. 유 선생님이 말씀하신 국제선 안에서의 술 문제라든가 혹은 부지깽이 같은 것은 심벌적인 효과로 보면 어떨런지요.

이상일 10여년간 문화사에 대하여 관주도라는 것을 지켜보는 제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권유하고 조언하는 관의 입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권장하는 입장인데, 그것까지 관제라고 말하는 것은 정부측 입장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기업문화만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기업과 문화가 전혀 접목을 못했는데 그것을 접목할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기업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의 기업에게 문화부가 문화행사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것이 결국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문화사업이라는 것을 자각시키려는 지금은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냥 버려두면 문화 자체가 독립성을 잃고 정치문화, 군사문화 같은 것에 예속될 위험도 많습니다.

유재천 제가 지적하는 것은 기업문화라는 개념입니다. 기업문화는 경영적인 개념인데, 경영학에서 기업문화라고 하는 것은 기업 나름대로 규범이나 가치체계이고, 일종의 풍토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기업의 문화사업에 투자하고 참여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지요. 정책수립에서 기업문화라는 개념을 쓸 때는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지금처럼 다루게 되면 전혀 의미가 달라져서 기업의 경영과 가치, 목표, 풍토 자체를 마치 문화부가…….

이상일 문화부가 선도를 하는 것처럼 되면 곤란하겠지요

이두영 앞서 말씀하신 대로 계몽적인, 교육적인, 또는 국민적 설득력을 확보하는 시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상일 자칫 잘못하다가 그런 계몽적인 역할이 선도적인 성격으로 나가다가는 조금 전 유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완전히 관주도의 성질의 것을 답습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중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의견을 하나 첨부하자면, 빨리 자주적인 문화체계를 만들어내면서 행정력을 민간 쪽으로 떼어내는 노력, 이것은 사실 민간 쪽에서 해야할 일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 계획안 속에는 전반적으로 행정주도의 의지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주도적 의지가 상당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재천 아울러 문화를 지나치게 정형화시키려는 느낌입니다. 전통 생활문화의 표준화 같은 원형을 전승시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노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 모델을 개발한다는 식의 정형화는 문화부가 만들어낸 모델에 맞춰 나가기를 바라는 발상이 상당히 깔려 있습니다. 문화의 다원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문화의 정형화로 치달을 위험이 큽니다.

이중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민간 쪽의 자주성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유재천 노인문화, 여성문화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에 맡겨두면 되지 문화부가 그런 데까지 나서서 여성문화의 패션은 어떠해야 하고 머리모양은 어떠해야 하고…… (웃음)

이중한 그런 식으로만 보지 말고, 예를 들면 이런 게 있잖습니까. 이 계획안에도 있지만 한글서체를 개발한다든가……

이두영 그런 것은 무척 바람직한 부분이지요.

이중한 문화 영역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도하려고 할 때 필요한 예산을 찾아내는 능력도 사실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 정부가 나서서 A라는 단계에 1이라는 예산을 가지고 한 번 시도해 보라는 권유의 방법도 있다고 봅니다만.

이상일 저는 정형화라는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우리의 국민성이라는 것이 위에서부터 주어지는 것만 받아들였던 습성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가 주어져도 그것을 받아서 행정절차를 거치는 사이에 정형화될 위험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지적된 것처럼 노인문제는 노인문제 전문가가 있을 터이고, 우리의 전통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위한 아파트 건축은 민간대열에서 일할 수 있는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에서 행정이 손을 떼야지 어떠어떠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시가 지방에 내려가면 그것이 정형화될 위험은 상당히 많습니다.

이중한 비슷한 문제를 하나 더 제기하겠습니다. 매월 문화인물 연고지를 조성하는 것은 문화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시·군마다 하나의 축제를 정착시킬 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겠습니까. 이상일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일 나중에 가서는 똑같아집니다. 획일화되는 거죠. 그러므로 어떠한 아이디어가 민간대변으로 넘어갔을 때, 각 지역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지방자치제와도 연결되는 것이고요.

이중한 지금 우리의 전통문화만 하더라도 최악의 패턴화에 와 있습니다.

이상일 그렇습니다. 획일화로 가는 위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문화부는 그러한 여러 가지 측면을 측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개수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중한 이 계획안에서 정부 주도가 되어서는 안될 부분과 일부 놔둬도 무관할 부분을 꼼꼼히 분해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하나의 결론으로 내릴 수 있겠습니다. 또한 산재해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능력개발을 좀 해야겠는데, 그것을 누가 시작할 수 있겠는가도 문제입니다.

이상일 그 입안을 수용하는 측에 대한 교육도 중요합니다. 또 그것을 수치화시키기 위한 연구도 활발해야겠고요. 예를 들면, 행동과학연구소 같은 데 청소년문화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용역을 주면 청소년문화의 문제점이 관념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파악됩니다.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이 정책수립과 동시에 진행된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중한 문제는 기초연구도 안되어 있는 과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문화 쪽의 기초연구는 예산을 따기가 가장 어려운 항목인데, 저는 이번 계획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무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문화에 대한 기초 연구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이상일 문화부의 고민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중한 연구의 출발점을 설정하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만들어 놓으면 당장 실효성을 가진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그 연구를 인정받기조차 힘듭니다.

이상일 문화부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몇 군데 산하기관에서라도 진행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 쪽에서 그런 방법을 강구할 뭔가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중한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 계획안의 국민 문화향수 부문의 구조라는 것이 교과서처럼 되어 있는 데요, 이 계획안 대로라면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요원과 당장 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행정이 끼어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이 계획안에는 단순히 요원양성, 거점설치까지만 명시되어 있는데, 우선, 도서관 문화센터화가 시작된다면 어떤 문제가 당장 현안이 되는가 하는 부문과 박물관쪽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두영 질이 높은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가 가장 문제입니다. 도서관 쪽에서 말씀드리자면, 도서관이 문화활동의 거점노릇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동미술관, 이동박물관, 문화원 등이 그 지역과 일치화되어 활동을 해야 하는데, 공공도서관의 정보자료를 갖추는 문제를 문화부에서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공공도서관에다 문화원의 기능을 합쳐 시·군 단위로 문화원과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함께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중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일 지역의 전통문화를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이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자기 지역 문화운동 요원이 됨으로써 전통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이두영 선생님 말씀대로 문화원과 공공도서관의 1차적인 통합도 인력과 재정이 부족한 현시점에서 시도함직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적으로 분화시킬 시기가 오면 그때가서 분화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쉽겠지요. 각 지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 하드웨어와 종합적인 두뇌가 연결되면 양질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입니다. 종합예술센터도 물론이구요.

이중한 아울러 문화예술 TV채널이 하나쯤 더 있어야 한다고 요망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민의 문화적 기초 소양능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이 TV를 통해 보급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는 관점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의 발전 과정은 TV매체를 중심으로 한 전파 미디어가 주도적 역할을 해 왔는데, 저는 그 주도적 역할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위해서도 TV가 자기 역할로 반납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만.

유재천 얼핏 좋은 발상 같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흥미위주의 시간 보내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흥미를 위주로 하는 상업채널쪽으로 방송구조를 개편하는 상태에서 텔레비전 문화채널이란 아무런 구실도 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런 발상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학교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학교교육에서 문화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좀더 새롭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10개년 계획안을 보면 타부처와의 연관 사업이라는데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타부처와 문화부와의 협력관계가 있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정리가 안되어 있습니다.

이중한 국민학교 교육에서부터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넣지 않고는 문화소양교육이 안된다는 건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문화부에서 정책을 세우면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당장 행정부간에 부딪치게 됩니다. 우리의 교육구조라는 것이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줘도 학교에서 시행이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텔레비전 프로라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것이지 텔레비전을 믿어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유재천 지금과 같은 방송구조에서 학교교육 프로그램을 제외한 다큐멘터리 같은 종류의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프로의 시청률은 0.1%도 안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상업방송까지 나와 재미있는 만화, 연속방송을 방영해 보십시오. 시청률은 더 떨어져서 문화방송 매체는 죽고 맙니다.

이상일 일본, 미국, 독일의 경우 상업방송이 우세한 데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요소는 문화적인 요소대로 전승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문화채널이 하나라도 있는 것이 좋으냐 없는 것이 좋으냐,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문화채널이 하나라도 있음으로써 국민들이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라든지 발상법을 조금씩이나마 확대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재천 옳으신 말씀입니다. 문제는 국민 전체의 문화향수능력을 제고시킨다는 의미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과 기존의 문화적 취향을 보강시켜주는 효과밖에는 안될 거라는 겁니다.

이중한 있긴 있어야겠는데 문화채널이 현재 구조 속에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 요점인데요, 세계는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습니까. 후기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의 구조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환경도 모두 바뀌고 있습니다. 세계 변화에 우리의 문화가 어떤 속도로 쫓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상일 오히려 저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발전속도를 의식하고 우리가 10개년 계획을 아무리 짜봐도 결국 낙차만 커지게 되거든요.

이중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부문에 대해 얘기를 좀 하도록 하죠.

이상일 그 부문에 관해서는 우리처럼 인문과학을 한 사람은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중한 그래도 해야 할 기본 전제나 우선 순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상일 제가 보기에 그것은 체험을 통해서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니만큼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우선 경험해야겠지요. 아울러 퇴폐적인 것, 무질서한 것들을 겪어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관념적인 현상을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쪽에서 수치로서 보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중한 정부 내에서도 각 부처가 문화의 의미변화를 포함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상일 그런 의미에서 문교부가 뭘 하고 있느냐 공보처가 뭘 하고 있느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총체적 삶과 관련되어 있는 정부 부처라는 것이 교육이라는 제도 속에 갇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앞으로 우리 정부가 과제로 삼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의 레저 부흥에서 관광 부문의 경우 교통부가 관계되어 있는데, 이것을 교통부만의 문제로 생각해 보리는 것은 위험천만이지요. 그러나 이 10개년 계획이 이러한 문제를 앞서 제기했다는 것은 문화부가 다른 부서보다는 상당히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재천 그런데 이런 것은 좀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의 5가지 틀 가운데 갈등구조를 풀기 위한 화합문화라는 것이 있는데요, 갈등구조라는 것이 문화로서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이중한 더구나 우리나라 현안의 갈등은 더욱 그렇습니다.

유재천 화합문화의 틀을 설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만, 화합문화 실천계획의 틀로서 세워진 항목은 전혀 없고, 단지 화합문화라는 5개 명제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중한 같은 관점에서 통일문화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유재천 마찬가지입니다. 세시명절 통일잔치를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피상적인 접근입니다. 통일문화를 지향할 때 남북간의 이질문화를 극복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상이하게 만들어놓은 가치나 규모의 문제를 어떻게 동일화하느냐가 사실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문교부가 가치나 규범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계도 보입니다.

이상일 문화의 전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교포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이민민속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이 됩니다. 이민민속 가운데는 남한에서 퇴폐화된 민속과 북한의 이데올로기적인 민속과는 다른 어떤 순수한 것이 남아있습니다. 흘러 변경에 가 있는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우리의 참다운 전통문화일런 지도 모르지요. 미주의 경우는 불가능하겠지만 해결하기 불가능한 교류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교류가 가능한 길을 터주는 것이겠습니다.

유재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전시효과를 염두에 둔 항목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거리, 문화장터, 문화장관에서 무슨 선언문을 발표한다는 식의 각종 축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가시적이고 전시적인 계획들이 마구 나열되어 있는데요, 정부가 문화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조성기관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상일 그런 가시적인 것은 올림픽과 연관이 많습니다. 가장 축제가 많은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픽이 지나고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축제의 형식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향토과시적으로 축제는 발전했고, GNP 향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축제문화는 경제력과 상호 발란스를 취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중한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계기를 통해 문화도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올림픽과 같은 관점에서 문화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령, 가야문화만 하더라도 중요한 우리나라 문화인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문화입니다. 가야문화를 대담하게 복원하는 차원의 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축제문화의 형성보다는 훨씬 중요하지 않겠느냐 생각하게 합니다.

이상일 그러한 가야문화의 가야국기나 결혼의식 같은 것들을 발굴계획하고 사회 신화적인 축전으로 병행해야겠지요. 축제라는 것이 사회 신화극적인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러한 것들이 국제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고요.

유재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안에 보면 그런 생각은 거의 없고 동양문화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며 동양문화 예술제, 세계 화합의 날, 문화제 창설 같은 발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일 가령 한양 천도 600주년을 맞는 축제에서 동양적인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한 도시의 600년 동안의 변화를 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전통문화의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중한 서울 600년이란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서울의 경우, 가장 실패한 도시발전의 한 대표입니다. 우리가 부숴야 할 건물을 알고 있는 것만도 여러 개 있는데, 차라리 그러한 것들을 대담하게 부수는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반성을 하는 게 휠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두영 축제라든가 일회용의 문화예술 행사를 자료화해서 전국민에게 보급될 수 있는 유통체제가 있어야겠습니다. 문화유통과 전파, 데이터 뱅크를 만드는 것도 다 좋은데요, 저는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를 자료화하는 쪽에 역점을 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재천 독립기념관 골짜기에 〈세계의 집〉을 짓고 모든 역사자료를 모아 학생들 교육의 산 도장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계획하기 전에 먼저 각 지역마다 지역사적인 전통을 기록하고 간직하는 작은 박물관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중한 체계화된 하드웨어로 집을 짓고 박물관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있는 범위의 것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일치시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뭐든지 버리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는 겁니다. 지나간 잊어버린 것들을 따지기에 앞서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이 모두 전통이 아니겠습니까.

이상일 개인적 차원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를 높이는 지위향상 같은 것도 중요합니다.

이두영 더 안타까운 것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문화예술 관계의 있는 자료조차도 파악이 안된다는 데 있습니다. 문화부에서 이런 것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데이터로서 모두 집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중한 도서관의 경우, 70년대 도서마저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고, 지금 시장구조에서는 소부수를 찍는 책들은 2년만 지나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개인 소장을 다시 찾아서 우리의 도서체계로 정리하는 작업은 정부에서 할 일인데……

유재천 2000년대에는 환태평양시대의 주도국이 되겠다는 항목이 있는데요, 문화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발상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것입니까. 설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각종 국제수준의 예술행사 참석이니 종합문화상 창설이니 하는 발상으로 될 일은 더욱 아니지요. 말씀하신대로 고도(古都) 하나를 발굴하는 작업이 국제문화에의 기여라고 생각됩니다.

이중한 마지막으로 재원 문제를 좀 언급했으면 좋겠습니다. 재원 마련도 문화계가 같이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함께 방법을 연구하는 과제로 접근해야 할 사항이 아니겠습니까.

유재천 재원 문제는 앞으로 방송법이 통과되면 공익자금 중의 상당부분을 문화예술 발전계획 쪽에서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화 발전계획과 관련되어 있는 기금은 체육기금 조성에 비해 거론조차 덜 되고 있는데요, 체육입국이라는 5공시대의 망령부터 부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일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단계는 그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두영 어떤 의미에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은 하나의 지침 정도로 받아들이고, 구체적인 것은 민간단체든 뭐든 각종 부서들이 나름대로 연구해서 문화부에 제시하고 요구하면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이상일 문화부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총리실, 청와대와의 압력이 미칠 수 있도록 자꾸 변화시켜야겠습니다.

이중한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면 이런 것이 되겠습니다. 세계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가 선진국을 향해서 가려고 한다면 문화발전 영역도 함께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맞도록 해야 할 일들의 이해도가 너무 약해서 문화계 전원이 나서서 이해도를 높이고 설득의 행위를 스스로 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가장 중요한 요점으로 남기고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리:이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