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소재의 확대에 따른 작품의 변화
안두진 / 작곡가, 이화여대 강사
소리의 빛깔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어 그것을 분류하면 수많은 종류로 나눌 수 있겠으나 그것은 우리 귀의 독특한 감각 작용에 의한 현상일 뿐, 소리 그 자체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 중의 하나인 파동현상으로서, 이 현상이 공기를 매질하여 우리 귀에 전달된 것을 두뇌가 해석한 것이 소리이다. 우리 귀에 만파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소리일지라도 기본 진동은 한가지로서 그것을 정현파 진동이라 부른다. 이 진동이 일정한 수열에 따라 규칙적인 공진을 하기도 하고, 수열과는 관계없이 불규칙하게 떨리기도 한다. 이 때 이 진동을 제어하는 고전적인 개념의 기계장치를 음정이 있는 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며, 후자인 불규칙 진동의 집합이 소음, 즉 잡음이 될 것이며, 이러한 불규칙 진동이 응용된 악기가 음정이 없는 타악기인 북·꽹과리 등이 된다. 19∼20세기를 거치는 동안 물리학은 소리의 실체를 완전히 규명했으며, 전자공학은 전기적으로 제어하는 기술까지 개발해 놓았다. 또한 미학 분야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종래의 미학을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하였으며, 작곡가들은 이 모두를 기꺼이 수용하여 자신의 작품속에 이것을 반영시켜왔다. 소리의 보존과 가공에 관련된 기술적인 내용 한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우리가 소리를 기록하든지 멀리 보낼 때는 대부분 전기장치를 이용한다. 이는 전기 역시 전자파의 흐름-전자의 파동-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폰은 음파를 전자파로 바꿔주는 변환장치이다. 이 변환장치에서 전자파로 바뀌어져 음파는 녹음기에 보내져서 자기의 조밀도의 형태로 기록되거나 레코드판에 골의 깊이와 넓이로 기록되어진다. 자기 테이프나 레코드판에 기록된 음파는 다시 전자파로 바뀌어진 스피커를 통하여 음파로 재생되어진다. 이 경우 레코드판에 실수에 의한 상처가 난 판이나, 보관을 잘못한 판을 작동시키면 소리가 왜곡되어져 나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녹음 테이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실수에 의하여 중간에 다른 녹음이 중복되어 녹음되는 경우도 있고, 엉킨 테이프를 주행시키면 소리가 이상하게 변형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우연적인 경험을 작가들은 필연으로 바꾸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녹음 테이프에서 소리가 왜곡될 수 있다면, 전자파의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이것을 기초로 하여 인위적인 조작장치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 장치가 부조니가 예언한 미래 악기의 기본적인 모델이 되는 전자 음향 합성기 즉 Electronic Synthesizer가 된다. 이 신디사이저는 기존의 악기의 음색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1980년대 컴퓨터가 이 악기와 결합되면서 이제는 원시적이기는 하나 인식 기능까지 부여받고 있는 중이다.
앞서 음향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 멈췄는데, 음향에 대한 음악가들의 이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과거 수열이 규칙적인 진동만을 음악에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던 반면 현대의 작가들은 그 범위를 확대하여 불규칙적인 수열을 갖는 진동들도 음악에 과감히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소리의 기본 진동이 정현파의 곡선을 갖고 그것의 조합이 음색과 음계를 결정한다고 할 때 그것은 상대적인 소리의 개념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동양 문화권에서 소리를 다루는 가치체계와 서양 문화권에서 다루는 소리의 가치체계가 다른 것도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원효대사가 설파한 아름답고 추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접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르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이 천여년이 지난 오늘날 음악가에게까지 다다른 것이다.
도구나 수단이 목적을 제한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음악 용어로 풀어쓴다면, 악기가 연주법이나 음역의 한계를 가짐으로써 표현의 범위를 제한하고, 악보 역시 그것이 갖는 형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작가의 표현 범위를 상당히 제한하고 있음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한계성을 탈피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작가에게 소재의 새로움은 항상 새로운 작품의 탄생으로 연결되어진다. 창작이라는 말 뜻 자체가 기존의 것을 넘어선 새로운 것을 만듦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다른 의미를 부연하지 않더라도 작가는 새로운 소재를 향하여 자신의 세계를 늘 열어 놓고 있다. 소리를 소재로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추구하는 세계는 소리의 색깔과 관련지어진다. 작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새로운 연주기술을 개발하고, 관현악에서 색다른 편성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적극적인 작곡가들은 새로운 소리를 얻기 위하여 각 나라의 민속 음악을 연구하기 위하여 녹음기를 메고 각 나라를 순회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기존의 악기를 개량하며, 새로운 악기를 제작하여 새로운 소리를 얻어내려고 애를 쓴다.
지난달 그믐날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에서는 컴퓨터와 전자장치를 이용한 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를 마련한 뎐롱회는 작곡을 전공한 젊은 작곡가들의 모임인데, 이들이 전자 매체를 이용한 음악-전자음악-을 발표 할 때는 주로 뎐롱회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 음악회는 전통적인 악기 대신 컴퓨터와 녹음기를 비롯한 전자악기가 그들의 작품 연주에 주로 쓰여지며, 청중들이 증폭장치와 스피커를 통하여 전달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장치되어진다. 이날 발표한 작곡가는 이영수, 안두진, 황성호, 이인성, 진규영으로 악기는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컴퓨터가 장치된 신디사이저가 8대 동원되고, 이것을 제어하기 위한 제어용 컴퓨터가 따로 설치되어졌다. 그리고 음향을 가공하기 위한 오디오 악세사리가 20여대, 소리를 배합하는 믹싱콘솔이 4대, 음향을 증폭하는 앰프리파이어 및 스피커 2조가 배치되었다. 이날 작품중에서 안두진과 황성호, 이인성의 작업이 이 글에서 다루어져야 할 내용인데, 먼저 안두진의 작품은 이인성이 제작한 트래일코드Trailchord라 이름지어진 악기를 위하여 작곡되어진 작품이다. 중세의 모노코드Monochord에서 바탕을 찾을 수 있는 트래일코드Trailchord는 긴 알루미늄 샤시에 피아노 강선 하나를 띄우고 한쪽 끝에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카트리지를 장치한 아주 간단한 악기이다. 이 악기는 외부의 진동에 반응하여 소리를 내나 공명판을 통하여 확성되어 나오는 소리는 없고 전기장치인 마그네틱 카트리지를 통해서 전자파의 형태로만 소리를 검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확성장치에 연결하면 1차적인 소리를 얻는데, 이것은 음악용으로 사용하기는 부족하므로 음악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신디사이저에 입력하면 여러 가지 가공과정을 거치며 매끈하고 다양한 소리로 변환되어진다. 이 악기의 특성은 음 발생시간이 늦고, 떨림이 폭이 넓은 반면, 선이 하나이므로 화음은 낼 수 없으나 카트리지로 직접 소리를 받으므로 신디사이저를 위한 음원으로는 정밀한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이 악기를 주 악기로 하여 다른 3대의 신디사이저와 협연을 하도록 짜여졌으며, 음계소재는 계면조의 순정률로, 선율 및 형식은 단일 주제의 일원성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황성호의 작품은 아나로그 신디사이저를 위한 즉흥성의 음악으로 시퀀스를 이용하여 기본 골격을 구성한 다음 그 위에 여러 가지 음 소재를 덧칠해 가는 방법으로 구성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아나로그 신디사이저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이인성의 작품은 컴퓨터에 의하여 제어되는 신디사이저에서 발생되는 음악과 컴퓨터에서 얻은 영상을 동기시킨 작품으로 음악과 영상이 컴퓨터를 매체로하여 결합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전자 매체를 이용한 음악은 20세기 음악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이며, 미래적인 작업이다.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청중들도 원하든 원치않든 이것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조적으로 짜여져버렸다. 다음 세기에는 부조니가 1907년에 발표한 논문에 예견한 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실험적인 작곡가들이 하는 작업들이 보편화될 것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소재를 원하는 작가들의 소재에 대한 탐구만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술공학은 예술의 소재를 넓혀주는 기술인 동시에 예술의 완성된 형태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