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뽀

제8회 전국연극제




한상철 / 연극평론가, 한림대 교수

제8회 전국연극제가 90년 5월 21인부터 6월 4일까지 춘천에서 전국 14개 지역 대표 극단들이 참가하여 성공리에 개최되었다.

연극제가 춘천에서 개최된 것은 7회 동안 각 도를 모두 순회하였음으로 당연한 순서였으며, 춘천이 강원 도청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규모의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되지 못한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시켜주고 그간 꾸준히 성장해온 강원 연극의 상승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배려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도세(道勢)와 시세의 약세로 문화예술 활동이 저조한 춘천에 연극제를 초치한 것은 행정당국과 시민에게 문화의식을 높여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한 환경을 자원으로 하는 관광사업과 함께 서울에 인접해 있는 도시로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참가 극단과 작품

시·도 예선을 거쳐 본 연극제에 참가한 극단과 작품은 다음과 같다. 굴레「철수야」강원 춘천, 에밀레「바다와 아침등불」경북 경주, 시민「잃어버린 사람들」광주, 부산레퍼터리「칠산리」부산, 둥지「한씨연대기」전북 남원, 동인극장「한방 사람들」대전, 물뫼「쥬라기의 사람들」경기 부천, 입체「칠산리」경남 거창, 미추홀「아버지의 침묵」인천, 천안「어느 푸르름이 그 빛을 더하랴」충남, 처용「진혼곡」대구, 청년극장「증인」충북 청주, 거울「어떤 사람도 사라지지 않는다」전남 순천, 가람「귀향풀이」제주(공연일자순).

이번 연극제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은 과거 수상 경력이 있는 극단 및 이 연극제에 참가 경험이 많은 극단들이 많이 불참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단체는 굴레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참가하지 않았으며, 14개 극단 중 10개 극단은 80년대 이후에 창단된 연륜이 짧은 극단들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연극제의 전반적인 공연수준을 예년에 비해 저하시켰으며, 모처럼 극장을 찾아온 관객에게 연극에 대한 실망을 주었고, 기대를 저버리게 한 결과를 초래했다. 지역의 주요 극단들의 불참은 다른 극단에게도 고른 참가 기회를 주고, 그것을 통해 지역 극단들의 수준을 고루 향상시킨다는 긍정적인 명분도 있었지만 본 연극제의 근본적인 취지, 즉 각 지역의 최상의 작품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특성과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지역만이 아닌 한국연극 전체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다. 만약에 이번과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지역예선을 거칠 필요 없이 적당히 안배된 극단들이 모여서 벌이는 한마당의 잔치로 전국연극제의 성격과 구조를 변경하고 일체의 시상제도도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축제도 정선된 작품들이 아니면 관객 없는 자기들만의 잔치에 끝나고 말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연극제에서 한가지 지적해야 될 일은 시상제도의 부작용이다. 그것은 작품선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극단들은 상을 의식하고 작품을 선정하는 경향이 짙다. 그들이 공연한 작품들은 절대다수가 서울연극제 참가작 내지 수상작이거나 서울 공연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지역 작가의 절대빈곤이 이같은 서울 의존을 심화시켰지만 그들이 공연한 작품들이 과연 진정으로 그들이 꼭 공연해보고 싶고 원하던 작품이었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 긍정하기는 어려운 일 같았다. 작품이 극단의 성격이나 능력에 적절히 어울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지역적 특성에 대한 고려, 새로운 작품해석, 서울 공연과는 다른 연출, 연기술, 공연술 등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만약 그들이 상을 의식하지 않고 정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연극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다양하고 흥미로운 공연을 보여주었을는지 모른다. 그들의 작품선정의 한계는 왜 암울한 정치 사회 현실을 담은 작품들이 그렇게도 우세했을까, 왜 좀더 건강한 해학과 풍자로 억압되고 답답한 관객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생각을 못했을까, 어째서 특정 작가(이강백)의 작품은 3편씩이나 공연되었을까, 왜 좀더 인간적인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연극에 깊은 관심을 쏟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들이 제기된 데서 명확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아마추어 연극의 성패는 작품선정에서 반 이상이 결정됨에도 늘 작품을 잘못 선정한다는 사실에 바로 아마추어의 의식과 정신적 한계, 그리고 미적 감각의 미성숙성이 자리한다고 생각된다.

지역 작가의 희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전국연극제의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연극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기 때문에 하루 속히 지역 극작품들을 개발해서 서울로부터 탈피해야 진정한 전국연극제가 이뤄질 수 있고 나아가 한국연극의 전반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신작희곡은 4편이었는데 그중 2편은 신천문예 당선작을 확대하거나 개작한 것이고, 한 편은 기성작가(최인호)의 소설을 극화한 것이었다. 나머지 또 한 편은 극작가 개발의 한 본보기로 삼을만한 것이었는데, 진흥원의 워크숍 지원비를 받아 지역 시연회를 거치고 그것을 보완해서 연극제 작품 중 유일한 희극이었으며 희곡상 수상의 영예를 얻기까지 하였다.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작가의 작품을 찾아내 아직 미숙하지만 워크숍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 개작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은 신작 발굴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신춘문예 당선작도 워크숍 과정을 거쳐 장막으로 고쳐 썼더라면 현재 상태보다 한결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각 극단의 공연들

「철수야」는 김상렬 작, 이영철 연출로 장려상을 받았다. 살인범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상고심에서 무죄가 판명되어 석방된 재미교포 이철수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이영철은 이철수의 고통과 그 내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백인의 인종적 편견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반미 감정이라는 역편견의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었으며 결말이 불분명하게 처리된 것은 작품·연출 다 책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에피소드 식으로 전개되는 수많은 장면마다 조명을 암전시킨 연출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겠는데, 이같은 조명의 잦은 암전기법을 다른 연출가들도 과도하게 선호하고 있었다. 그의 연출은 전체적인 장면 구축에는 무난했지만 종이연을 통해 철수의 내면을 부각하는 서정적인 장면 등이 좀더 주의깊게 처리되었어야 했다. 미국인들에게는 모두 가발을 씌웠고, 등장하는 판사·검사·변호사들이 법정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영철은 강성연출에는 능하지만 그것만이 아닌 부드러운 연출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인공 박석재는 지닌 가능성을 살려내지 못하고 시종 단조로운 표정으로 일관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바다와 아침등불」허규 작, 이수일 연출은 전통의 계승과 복원의 중요성을 조선 과정의 여러 가지 난관과 최종적 완성을 통해 제시하였지만, 원작이 지닌 주제의 진부성과, 긴박감이 부족한 구성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시련 끝에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졌는데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후반의 갑작스런 해결은 딸의 급작스런 태도변화 때문이었는데, 딸을 사랑하는 젊은이와의 관계가 치밀하지 못해 감상으로 흘렀다. 그리고 현대조선소의 방해는 사족같다. 이수일은 무난할 정도로 극을 연출해갔으나 그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했다. 희극적인 인물 황주사(윤봉근)는 성격을 잘 살리기는 했으나 극전개에서 어떤 지렛대 구실을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미술의 김경수는 무대공간을 최대로 이용하여 조선소를 시원하게 꾸몄고 담장의 사실성이 뛰어나 미술상을 수상했는데, 배경의 바다풍경은 원근법의 미숙성을 드러냈다. 이 공연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사투리 억양을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대사의 상당부분을 전달하지 못한데 있다. 원체 연기자들이 발성훈련이 잘 안되어 정확한 발음을 못하고 있는 데다 그런 억양까지 첨가되니 경상도 관객이 아니고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정한 이치다. 그같은 문제는 이번의 여러 다른 공연에서도 똑같이 나타난 문제인데 그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지역연극인들에게 있어야 할 것 같다.

「잃어버린 사람들」이상용 작, 정철 연출. 금년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인 이국민의「화로」와 인물, 사건, 주제가 너무 닮아 있는 작품이다. 인신매매범인 선장, 그에게 납치되어온 청년, 선장의 폭력과 피살, 반항적인 청년의 탈출시도와 익사, 굴종적이었던 영감의 결연한 태도 변화 등이 그렇다. 다른점이 있다면 인물들이 3명에서 15명으로 늘고 여자들이 등장하며, 사건과 이야기가 많아진 것이지만 그 결과는「화로」에 비해 극적 긴박감도 없고 주제의 뚜렷한 부각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연출도 구태를 못벗은 진부한 것이었으며 정인주의 미술은 배가 불필요하게 크고 배경의 사실성이 전혀 없었다. 좋은 연기자도 없는 터에 그나마 주연과 조연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다만 영감의 박윤모가 좀 나은편이었고 과부댁 유지영은 지나친 과장이 거슬렸지만 가능성이 보인 연기자였다.

「한씨연대기」는 황석영의 같은 작품을 가지고 연출(배수연), 연기자가 변함에 따라서 어쩌면 그렇게도 전혀 딴판의 연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김석만의 연출 작품과 너무나 낙차가 컸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한방 사람들」오청원 작, 임연주 연출.

앞서 언급한 지역 작가의 워크숍 신작이고 연극제의 유일한 희극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여인숙에 모인 각종 인간군상의 꿈과 허영심을 풍자한, 희극성과 교훈성을 결합시킨 작품이었다. 돈 뭉치를 여인숙객들이 연쇄적으로 훔쳐냈지만 결국 도둑질한 자만 탄로나고 돈은 돌고 돌아 주인한테 도로 갔다는 트릭이 재미있다. 하지만〈나에게 돈만 있다면〉하는 욕망과 〈그러면 뭣을 할 수 있겠는데〉하는 꿈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재미는 반감되고 교훈성은 약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직업적인 특징만 나타났지 성격의 스테리오타이프화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여러 인물들간의 상호관계와 작용이 좀 더 긴밀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임영주는 희극 연출의 기본을 아직 충분히 터득하지 못한 것 같아 연쇄 도둑질의 기계적 경쾌성을 살리지 못했고 의외성, 위기와 반전 같은 희극적 고안을 장치하지 못했다.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는 하숙집 수위의 이종국이 아주 호연을 보여 극을 이끌어갔기에 다행이었다. 다른 사건의 혐의자를 찾아 하숙집에 잠복한 형사와 극중 사건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 작, 윤봉구 연출. 탄관촌의 분쟁을 무리없이 처리하고 있지만 좀 더 주제 부각이 강력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새로운 조합장과 소장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장면은 힘이 있었으나 여선생과 합창단, 광부와 그의 아들의 반항간의 관계는 원작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극중 결혼식과 놀이장면은 그 자체로서는 흥미로운 장면이었지만 결혼식이 너무 소홀하게 처리된 반면 놀이는 신명졌다. 새 조합장의 놀이 솜씨 때문이었고, 그는 타 연기자에 비해 좋은 연기를 보였다. 반면 주인공 만석(이기석)의 연기가 불투명했다. 소장(유인석)도 무난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크게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장려상을 받게 되었다.

「칠산리」이강백 작, 이종일 연출. 이 공연은 연출의 기능이 연극제 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공연이었다. 자식들을 코러스화 한 것은 정진수 연출의 초연 때나 별 차이가 없었으나 그들의 집단적 움직임의 위치와 형태를 끊임없이 변형시켜가면서 무대에 변화를 주었으며, 맏아들은 코러스로부터 독립시켜 그들의 리더겸 극의 진행자로의 역할을 담당케 했다. 그들은 의상도 각자 다른 스타일로 다양화했다. 배경의 산이 강렬한 추상화 색채의 효과를 내도록 한 것은 인상적이었고 할미를 박제상태로부터 살아있는 인물로 환원시키는 연출적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었다. 끝내 나타나지 않는 막내를 시위하고 있는 운동권 인물의 걸게그림으로 대치한 것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미술적 발상에서 얻어온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이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상의 표현들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평가에 앞서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나 주제 부각에 얼마나 공헌하였으며 그와 연관되어 무대에 극적인 분위기와 무드를 돋구는데 얼마큼 이바지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그점에서 그같은 실험들은 단지 실험에 끝났지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실험이 그 자체도 미적 아름다움과 예술적 감흥을 던져줄만큼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던 지역연극에서 상투적이고 도식적인 표현 방법을 탈피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스타일과 방법을 찾아내려 애썼다는 것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공연은 원작에 없는 군인이 어머니를 겁탈하는 장면을 새로 집어넣었는데, 그같은 개작은 민간에 대한 군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이 이 극의 목적이 아니었으며, 무대에서 성폭력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연기진은 전체적으로 고른 편이었으며 개성있는 인물도 몇 명 눈에 띄었다.

「어느 푸르름이 그 빛을 더하랴」조원석 작, 안광희 연출.「어느 족보가……」를 이렇게 개명한 이유를 모르겠으며 더욱이 조병갑을 군인으로 대치하고 민중이 그에게 저항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한 것은 과잉 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횡포한 조병갑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지 않은데다 내용 표현의 양식적 일관성이 부족하여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군인으로서 조병갑인 김도용의 연기는 무난했지만 그를 위시한 다른 연기자들의 대사발성이 분명치 않아 듣기에 무척 곤란했다.

「진혼곡」최인호 작, 박철 각색, 이상원 연출. 최인호의 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인물·시대·주제가 다 불분명하고 신화인지, 민담인지, 전설인지, 허구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노미라는 노예의 해방으로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내용이지만 그 우의적 진실성이 전혀 형상화되지 못하고 노예와 그 주인들의 이상한 생활과 형태만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노예를 동물로 취급하여 암노예를 노미와 교미시키는 장면은 타락한 무대의 전형이었다. 다만 산허리를 톱니바퀴식으로 잘라 그 사이에 조명을 투영해서 묘한 효과를 얻어낸 방식은 괜찮았고, 노미역의 이동학은 고뇌의 표현이 미흡한 것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사투리가 심해 대사 전달이 반 이상은 불가능했다. 이 작품은 신작이었다.

「증인」 신명순 작, 이창구 연출. 이창구는 많은 연출 경력을 가진 연출가지만 이 별 특징없는 희곡을 무난하게 처리해 갔을 뿐 활기 있게 만드는 연출력은 보이지 못했다. 다만 무미건조할 뻔한 이 극을 그래도 살려낸 것은 변호사역의 이승부와 양여사의 김경미가 긴장감을 조성했고, 서세경의 진웅성이 독특한 성격으로 제 몫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사가 명료한 반면 연기가 너무 인위적이었다. 4개의 장려상중 하나를 차지했으며 김경미는 여자연기상 수상자가 되었다.

「귀향풀이」장일홍 작, 이광후 연출. 금년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으로 작가 자신이 장막극으로 고쳐 쓴 것이다. 세습무인 어미는 자기 딸도 무당이 되어 가업을 잇길 바라지만 딸은 이를 거부하고 서울로 올라가 청계천 피복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남자를 알게 되는데 그는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된다. 그후 딸은 낙향하여 칩거하던 중 심한 열병을 앓게 되고 꿈에서 죽은 그 남자를 보게 된다. 이튿날 질펀한 굿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순간 신이 내려 한판 춤을 추게 된다. 이 기본 줄거리에다 무당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예전에 4·3사건 때 국군과 빨치산에 의해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앞쪽에 삽입하여 장막으로 꾸몄는데 결과는 보기 흉한 혹처럼 겉돌뿐이다. 장막은 단막을 물리적으로 늘려놓으면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본 줄거리도 딸의 내면적 갈등을 그리지 못하였고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신내림에 그대로 연결시킨 데에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었다. 장막은 새로이 구상했어야 했고 그런 구상에 알맞은 인물과 사건이 선택되고 조직되어야만 했었다. 연출도 치밀성이 없었으며 연기자들은 아마추어의 미숙성을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은 장려상 수상작도 포함된 아직 괜찮은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작품들의 개괄적인 평이었다. 연극제에 참가한 모든 작품이 다 훌륭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모든 페스티벌의 공통된 운명이다. 따라서 한 연극제에서 불과 몇 편의 수작만 수확한다 해도 그것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8회 전국연극제는 그러한 수작들 건져내지 못해 평년보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되는데, 그럼에도 불고하고 최우수작과 2편의 우수작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임에 틀림없었다.

우수상 수상작인 「칠산리」는 모든 연기자가 고른 기량을 갖추었으며(이것은 전국연극제에서는 큰 장점이 된다) 허영길의 연출은 매끄러운 진행으로 원작을 잘 살려내었다. 어미(이동희)가 출현하는 장면들이 대체로 좋았는데 그것은 이동희의 연기가 출중했기 때문이며 대체로 여자연기자 흉년이었던 이번 연극제에서 그녀는 특히 돋보였다. 그것이 그녀를 여자연기상으로 보답하게 한 것이다. 그밖에 남자 연기자로 장남의 이상복과 면장의 김상훈이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검은천과 막대기를 이용하여 연기자들이 즉석에서 산을 만들어낸 것은 독창적이었고, 그 산을 끼고 산에 사는 아이들을 표출시킨 효과도 좋았다. 다만 의상이 연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상복차림이어서 불만스러웠지만 마대로 만든 어미의 의상만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또 하나의 우수상을 수상한 최인석 작, 송연근 연출의「어떤 사람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산만한 듯이 보이는 극 구성과 뚜렷한 플롯이 없는 것 같은 이 작품을 가지고 그러한 결점들을 오히려 리얼리즘의 핵심이 되는, 산만하고 논리적이지 않는 삶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준 장점으로 전환시켜 연출의 리얼리즘 연극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읽을 수 있게 해 준 공연이었다. 필자로서는 이만한 정도의 리얼리즘 연극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자들도 뭐 그렇지 뛰어난 사람이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붙잡을 지푸라기라도 있었으면〉,〈아 수박 먹고 싶다〉같은 평범하고 진부한 대사가 노동판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생활하는 고달픈 작부들의 처절한 외침으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은 확실히 이 연극이 잘 만들어진 연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연출과 연기자들의 작품 해석이 정확했음을 말해준다. 술집의 사실적 장치가 뛰어났으나 강에서 썩은 냄새가 풍겨오는 환경은 전혀 사실성이 부족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난하고 억압받고 있는 노동자, 하층민의 생활을 충실히 반영한 데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관객을 충분히 감동시키지는 못하였다.

끝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윤조병 작·연출의「아버지의 침묵」은 창작 활성화 지원금을 받고 5월에 서울에서 극단 성좌에 의해 초연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과 대비되어 더 흥미로웠다. 이번 공연은 작가 자신의 연출 덕택으로 작품의 의도가 더 분명해졌고 중요 부분들이 더 잘 살아났다. 국토건설대에 잡혀 갔다온 후부터 실어증에 걸린 김재호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부각시켰으며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운동권 딸과의 면회 장면을 열린 공간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더 잘 살릴 수 있었다. 반면 산비탈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과 지식인 김재호 일가의 고통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 사이의 상관성은 그 거리가 더 멀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이 희곡의 문제점으로 나타나 있었지만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김재호에게 종이자르는 습관을 주고 청소부의 아내를 벙어리로 설정하는 등 사실적 디테일이 보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달동네 생활은 서정성이 약했고 특히 직조공을 살려내지 못했다. 달관한 듯한 천강일의 오광석도 아직 흡족하지는 못했다. 김재호의 김종원은 비록 외마디 소리밖에 못하는 인물이지만 연기상 수상자가 될만큼 중후한 연기로 극의 중심적인 세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줄 알았다. 그밖에 연기자들 모두가 제 몫을 무리 없이 소화해냄으로써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극을 만들어냈다. 한가지 가장 큰 불만은 서울 공연의 장치를 그대로 축소해서 사용한 점이었다.

개선할 점들

공연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배우들의 발성이 정확하지 않은 데다 지방 사투리 억양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이었다. 대사가 생명인 연극에서 대사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은 치명적이고, 온 신경을 귀에다만 집중하다보면 관극하는 즐거움을 거의 다 빼앗겨 짜증이 난다. 한정된 특정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이 아닐 경우 토속적 사실성은 대사에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토속어라도 어미 처리등 뜻을 놓쳐도 상관없으면서도 무드를 살려낼 수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연기자 문제로는 한두 명의 주연과 나머지 다수 조연의 연기 차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워낙 연기자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그 문제 해결 없이는 좋은 공연을 이룩할 수 없다. 연습과정에서 주연급에 못지 않게 조연에게도 신경을 쓴다면 현저히 개선될 것이다. 이번 연극제에서 결국 수상작들은 연기가 모두 비교적 고르기 때문이었다.

연출은 연극을 보다 재미있고 볼거리가 있도록 만들어야겠다. 줄거리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대는 무엇보다 최대한 감각적 지각에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될 것이다. 서울 공연의 반복이란 결국 그 점을 등한시했다는 것을 뜻한다. 내용 자체에 못지 않게 표현력 개발에 주력해야 될 줄 안다.

작품의 내용에서 주의해야 될 점은 전국 연극제의 관객의 대다수는 학생층이기 때문에 그들을 의식하여 비어·속어·음란한 말이나 행위를 억제해야 한다. 공연중 옆에 앉은 학생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연극이 꼭 시국 이야기만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삶과 문화는 복합적인 것이지 반드시 정치 경제 사상만은 아니다. 작가들의 시선이 보다 넓어지고 확대되어야겠으며 작품 선정의 시선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된다.

관객의 문제는 심각하다. 자발적인 관객이 아닌 동원된 관객이 대부분인 전국연극제는 연극을 정착시킬 기반을 닦지 못하고 있다. 관객 없는 연극은 연극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역의 경우 관객 확보의 전략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지방 관료들과 유지들의 의식적인 관극행위의 유도이다. 이번 연극제에서 필자는 춘천의 유수한 사회 명사나 관리를 극장에서 만나보지 못했다. 연극제 같은 큰 문화행사가 있을 때 연극가족 서클을 의무적으로 조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역의 문화행사는 그 지역 행정 담당자의 노력에 크게 성패를 좌우한다. 춘천 연극제는 개막 축제행사인 시가지 퍼레이드로 분위기 조성에 일단 성공했지만 막상 기간중 춘천시민을 축제의 열기속에 몰아놓을 만한 아무 행사도 준비도 없었기 때문에 열기는 날이 갈수록 식어갔다. 춘천의 언론 방송을 최대한 이용하지도 못했다. 이 모든 원인은 일단 행정당국의 연극 내지 문화에 대한 몰이해나 인식부족, 또는 경험의 부족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춘천을 서울 인근의 문화예술 거점도시로 육성 발전시킬 가능성도 전망을 흐리게 한 것 같다. 그러면 춘천을 서울의 유흥장으로 만들 것인가, 다시 반성해 볼일이다.

춘천시립문화관은 상당한 개보수를 하였지만 아직 조명시설이 미비하고 시설 운영이 미흡하다. 객석 출입구에 지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의 하나였다.

극장 하나만을 사용하여 연극제를 2주일간이나 계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단축하는 방법이 강구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행사를 초청하여 연극제만의 단조로움을 없애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전국연극제는 일년에 한번씩 전국에 있는 연극인과 연극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침목을 도모할 수 있는 마당으로 정착하였고, 연극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할 수 있는 귀중한 통로로 자리 잡았다. 그 모임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풍속까지 발전시켰다. 전국연극제의 최대의 성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연극제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강연, 세미나, 데몬스트레이션 같은 유익하고 실제적인 행사들이 겸행되고, 가능하다면 외국의 아마추어극단을 한두팀 초청하면 더욱 활기차리라 생각된다.

전국연극제는 계속해야 하며 다만 운영방법은 개선되어야겠다. 그리고 연극제에 임하는 극단과 연극인의 연극제에 대한 의식과 태고가 예술적으로 보다 진지하고 성실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