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뉴욕의 예술자료관
이상만 / 음악평론가
1970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KBS에 속해 있던 때여서 BBC 방송국이 내게는 가장 동경되던 곳이었다. 그때 BBC의 텔레비전 청사를 지은지 얼마 안된 때여서 나는 그 웅장한 규모와 시설에 탄복했었다.
그러나 건물의 모양새나 규모로 보아서는 갓 새로 지은 프랑스의 ORTF방송국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확대될대로 확대된 BBC는 그 본부 건물 하나만 가지고는 그 왕국의 통치에 부족해서 10여 군데의 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을 모두 살피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건물에는 거의다 자료관이나 도서관이 갖추어져 있었고 각 건물에는 하나같이 자료를 운반하는 카트(작은 손수레)가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그당시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라 모든 자료들의 목록책자들이 각방마다 비치되었고 본인들이 직접 대출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료 요청을 하는 신청 양식에 기입하거나 전화로 요청하면 그 자그마한 손수레로 각방마다 배달해주고, 또 그것을 반대로 수거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참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더구나 BBC에는 자그만치 군소 자료관이 16군데나 있었고 레코드 자료관은 그 당시 100만매를 넘는 세계 최고의 컬렉션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자료관들도 모두 세계적이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대영제국 그리고 대 BBC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자료 열람실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일반 자료는 모두가 개가식으로 되어있고 누구나 이용이 편리하도록 건물의 중앙 중심부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BBC의 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유럽의 많은 방송국들도 이 원칙만은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란 것은 크리스티라는 200년이 된 골동품 경매상의 지하실 자료창고였다. 이 지하창고는 아무에게나 공개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곳에 근무하는 마이클 이라는 친구 덕분에 그 자료실을 볼 수가 있었다. 나에게는 일생을 통해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300평 정도의 자료 파일내에는 200년동안 그곳에서 거래한 골동품의 목록이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정리되었고 그 이동사항 까지도 추적해서 기록을 보존하고 있었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작품들을 그림으로 입체화해서 그려놓았고 사진 발명후는 흑백으로 그리고 칼라로 보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디오로 담아놓았는지 모른다. 일개 상회가 그렇게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은 감히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뉴욕의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알렌 컬렉션이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의사로 외교관으로 왔던 알렌이 모은 문서이다. 그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모은 종이 한장도 안 버리고 모두 미국으로 가져갔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자료들을 뉴욕의 시립도서관에 기증 보관하고 있다. 이 자료를 열람하기까지 세 번의 관문을 거쳐 특별한 허가를 받고 열람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자료인 구한말의 애국가의 원본등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고 또 당시 궁중의 연회 초청장까지도 모두 보관되어 당시의 역사를 알자면 그 자료를 보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있다. 이것은 바로 미국의 힘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헌 자료를 아직도 외국에서 찾아야 할것이 너무 많다. 자료를 축적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이다.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이 방면에 황무지이다. 문화를 가꾸지 못하면 우리 정부에 문화부를 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뉴욕 시립도서관의 공연관계 자료는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문화정책에서 오는 행정의 슬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