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화

스코틀랜드, 유럽문화중심지로의 발돋음




허권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과장

1.

지난 3월 2일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인 글라스고우Glasgow에 1990년도 유럽의 새로운 문화도시의 자격을 승계했다. 클라이드 강변에 위치한 인구 120만명 규모의 이 도시는 스코틀랜드의 최대도시이며 경제·공업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은 그다지 화려하지 못해왔다. 그리고 이 도시는 유서깊은 유적지와 함께 많은 학자와 예술인을 배출시킨 도시라는 점도 널리 열려지지 않아 왔다. 도심지에 자리한 켈빈그로브미술관, 1807년 글라스고우 대학교내에 설치된 헌터리언박물관은 유명한 문화기관이며 글라스고우 예술대학교도 이 도시가 자랑하는 예술교육기관이다.

앞으로 1년동안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로서의 명예와 이목을 받게된 이번 행사는 엘리자베드 2세와 유럽각국의 문화장관, 시장 등 주요인사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왕립극장에서 거행되었다.

소위 유럽문화도시 프로그램 European Culture City Programs이라고 불리는 이 사업은 그리스의 여배우출신 문화장관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1985년 그리스의 아테네가 첫 번째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된 이후, 1989년에는 파리가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되었고, 금년도 글라스고우에 이어 내년에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이 이 명예를 승계하기로 의결되었다.

각국의 문화장관이 참가한 이 승계식에서 작년도 유럽문화도시인 파리의 시락 시장은 <모든 문화도시들은 유럽의 통합과 번영에 기여해 왔으며 최근 유럽을 강타한 민주주의 열풍을 지속시키는데 앞장서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범유럽적인 사업을 통해 문화적 동일성과 정신적인 화합과 유대관계의 강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또한, 스코틀랜드 예술장관 리챠드 루츠Richard Luce도 유럽공동체의 문화발전을 지적하였다.

유럽 못지않게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독특한 지역문화권을 형성해오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와 유사한 사업의 전개는 아시아 문화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과거 일부 사학자간에 일본의 교토, 한국의 경주, 중국의 장안이 비슷한 6∼7C경에 설립되었으며 그 나라 문화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점을 감안하여 상호 문화 역사도시의 지정을 주장한 선례가 있었으나 이의 실현은 여러 이유로 극히 불투명해왔고 나아가 유럽지역처럼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사업을 착수한 예가 없어 왔다.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여러 측면에서 그 효과를 분석할 수 있으나 크게 다음 2가지 분야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첫째, 최근 국내 문화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분산화정책 개념을 통해 볼 때,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유럽전체를 한단위로 보고 각국의 문화도시가 거점이 되는 지역분산화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문화도시가 핵을 이루고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켜 유럽 전체적으로 문화분야의 진흥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국가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결된 문제 중의 하나가 기층문화권을 토대로 한 지방문화의 진흥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바로 이 개념을 국가단위에서 유럽전체로 확산시켰으며 이러한 확산정책을 통해 예술인·학자의 교류는 궁극적으로 창의성과 독자성을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

둘째,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 사업이 지향하는 목표가 1992년 1월 발효되는 새로운 유럽의 통합계획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거대한 집단체제의 출범을 앞두고 각 국가의 결속과 우애 증진 그리고 집단적 목표의 설정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 학자간의 의견이다. 집단체제의 탄생에는 공동의 목표와 정신 그리고 상호신뢰가 핵을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문화도시 프로그램은 각국의 전통가치를 지속 보존시키고 예술인의 다양한 교류와 접촉을 무리없이 진척시켜 전유럽인이 지향하는 새로운 이상에 쉽게 접근시킨다는 보조적 수단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북방문화교류 등 최근 국가간의 문화교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우리의 입장에서 유럽식의 문화사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하나의 개념과 사업으로서의 유럽문화도시에 관한 우리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는 있다고 본다.

2.

국내의 미술관과 화랑도 점차 전문화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문영역의 작품만을 수장한 특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피카소미술관과 같이 특정화가를 중심으로 전문화하거나 시대별 혹은 경향별로 특성화하는 추세를 몇몇 국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국립초상화미술관Scottish National Portrait Gallery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주목을 끈다. 작년도에 개관 100주년을 맞이한 이 미술관은 명칭 그대로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만을 소장한 전문 미술관으로 타미술관과 설립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라고 하면 큐레이터들이 엄선한 작품을 선정하되 그 소재와 형태에 구분없이 예술성·창의성·기법에 초점을 맞추지만 초상화미술관은 예술성이 주된 평가요인이 될 수 없다는데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초상화 전문박물관은 글자 그대로 역사를 회화작품을 통해 이해케 하는 일종의 교육장으로 역사적 공적을 남긴 위인과 함께 역적·간신 등 불명예의 낙인이 찍힌 인물들의 초상화도 수장하게 된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의 초상화박물관도 이 지역의 역사적 인물들을 주대상으로 전시공간이 할당되고 있는데 수장된 초상화들은 주로 17세기 이후의 작품들이고 그중에는 국부론을 저술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아담스미스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이 미술관은 작품의 선정기준을 역사, 애국성, 예술성의 순서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타 미술관과 달리 미술사나 역사를 전공한 전문위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예술만을 위한 미술관의 기능에서 사회를 위한 미술관으로서의 폭넓은 기능을 주장하고 있는 이 미술관에는 많은 위인들의 초상화가 시대별·주제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18세기의 위인으로 아담스미스와 과학자인 죠셉 블랙경,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 그리고 화가로는 앤드류 포울리스의 초상화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19세기의 초상화중에는 외과의사였던 조셉 리스트, 과학자인 토마스 켈빈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맨 위층에는 금세기 위인들의 초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로버트 번스(알렉산더 내쓰미작), 다비드 흄(앨랜 람세이작), 제임스 보스웰(봄피오 바토니작)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엘리자베드 여왕의 1983년도 초상화(아비그도르 아리카작)도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