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서산 박첨지 놀이
서연호 / 연극평론, 고려대교수
충청남도 서산군 음암면 탑곡리에는 1920년대 후반부터 인형극 박첨지놀이가 전승되어 왔다. 아직도 공식 명칭이 없으므로 필자는 「서산 박첨지놀이」로 부르고자 한다. 필자의 현지조사는 1989년 9월 15일에 이루어졌다.
마을 출신의 예능보유자인 주연산(朱連山1903∼ )옹은 20세 때 운산면 신창리에 나가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 강원도에서 이사와서 그 골에 살았던 유영춘(한자명 미상, 살았으면 100세 이상)에게서 인형제작법·놀이방법·재담 등을 배우게 되었다. 주옹은 유영춘 밑에서 3년간이나 배우고 놀았다.
마을 어른들의 권유로 다시 고향(당시에는 高陽洞이었다)에 돌아온 주옹은 마을의 젊은이들과 함께 주로 명절때에 노는 한편으로, 가끔 인근 마을에 가서도 놀았다. 유영춘은 신창리에서 6년을 살다 다시 해미로 가서 여생을 마쳤다 한다. 인형사 유영춘의 과거에 대해서 주옹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신명의 뛰어난 주옹은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마을 농악대의 상쇠로 오랫동안 활약하였으며, 민요 가창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제 말기부터 50년대 중기까지는 세상사가 시끄러워 놀지 못하였고, 50년대 말기부터 복원하여 오늘날까지 가끔씩 명절을 이용하여 놀고 잇다. 현재 마을에 살면서 주옹의 예능을 계승하고 있는 사람으로는 金東益(1929∼ ), 金東舜(1934∼ ), 田天官(1924∼ ), 權赫鎭(1922∼ ), 金龍得(1911∼ ), 許昌淳(1935∼ ) 등이 있다.
무대의 특징은 남사당패 꼭두각시 놀이의 무대와 다름이 없다. 삼면에 포장을 치고 그 안에 조종사들이 들어가며, 관중석 앞에 잽이가 앉아서 재담과 반주를 해준다. 주조종사와 보조조종사(2명 정도)는 의자에 앉아 인형을 놀리게 되는데, 무대 포장의 높이는 조종사이 모리가 관중석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치한다. 주조정사는 잽이 중의 한 사람과 재담을 주고받는다. 무대는 관중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가능하며, 보통은 집의 툇마루 위에 설치하여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인형의 재료는 바가지, 나무, 끈, 오색천, 물감 등이 사용된다. 형태는 바가지 인형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안면의 크기는 대체로 25×20센티미터의 타원형이다. 바가지로 안면을 만들어 채색하여 인물을 정한 후 천으로 마치 자루같이 옷을 지어 입힌다. 자루 속에 팔을 깊게 넣고 안면 부분을 손으로 잡아 조종하는 방법의 포대계 인형이다.
나무 막대기를 깎아 만든 홍동지 같은 장두계 인형도 더러 있었다. 조작 솜씨가 정교하지 못하다. 상여나 사찰은 공예품들과 같이 나무로 제작한 것이다. 박첨지의 「박」이 「바가지 인형」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이 탑곡리의 인형에서는 실감으로 느껴진다. 연희본으로는 주연산 구술, 김동익 채록본이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우리 학계에서 1930년대 말기까지 전국 30여개의 지역에 인형놀이가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고된 바 있는데, 서산 박첨지놀이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으로서 크게 주목된다. 우리나라의 인형놀이 전승은 유랑연희패와 부락의 향인연희패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유랑연희패는 박영하패, 노득필패 및 남사당패(남운룡 중심)가 학계에 보고되었고, 향인연희패는 구파발 인형놀이가 보고 되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남사당패의 꼭두각시와 더불어 향인연희패로서 서산박첨지가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 인형놀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서산 박첨지놀이 연희본
<나오는 순서>
박첨지 주인공
박첨지 동생
박첨지 큰 마누라
박첨지 작은 마누라 동생 명노
홍동지 길닦기
평양감사 꿩사냥
구렁이와 홍새
평양감사 사망상여
스님
절 신축
소경 눈뜨기
<제1막>
박첨지 : 뛰루 뛰루 뛰뛰루가 뛰루야∼……쉬이……
악 사 : 그게 누구여?
박첨지 : 날더러 누구냐구. 나. 저 위 녘 살어
악 사 : 위 녘 살면 다 영감의 집인가. 사는 지명을 일러줘.
박첨지 : 꼭 알고 싶은감. 그럼 일러줄게. 저 위 삼천동 아래 삼천동 가운데 삼천동에서 사
는 박궐영 박주사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데
악 사 : 그럼. 여긴 무엇하러 왔어.
박첨지 :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구. 내가 말여 과거에는 잘 살았는데 자식을 못둬서 화가 나는 바람에 쳇짐이나 차려지고 팔도강산 구경이나 다닌다고 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좋구먼.
악 사 : 그럼. 워디 워디 다녔나?
박첨지 : 워디 워디 다녔느냐구 1. 원산, 2. 갱갱이, 3. 포도, 4. 옥사, 5. 덕바위, 6. 덕지내,
7. 맷덕, 8. 장단, 9. 인천, 10. 서울로 튐더듬었어.
악 사 : 많이 돌아다녔네.
박첨지 : 그 버덤 더 좋은 설돌림도 했지.
악 사 : 어떤 섬을 돌아다녔나?
박첨지 : 어떤 섬이냐구 요섬, 사섬, 공사섬, 안섬청룡, 빼알녹섬으로 튐더듬었어. 그러다가 더 좋은대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에서 저녁먹고 토막도더 베고 떠억 드러 누었는데 워서 웬 어린 녀석들이 오더니만 이루가두 소근소근 저루가두 소근소근 생지랄을 하드란 말여.
악 사 : 그래서 뭐라고 했나?
박첨지 : 그래서 점잖게 나무랬지.
악 사 : 뭐라고 나무랬나?
박첨지 : 뭐라고 나무랬냐구. 이놈들아 늙어서 죽으면 냣어 없어질 놈들아 했드니 워디로 없어지더먼. 그래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나섰더니 워서 뚱땅뚱땅 하걸래 찾어 없드니 여기 오니께 사람도 많고 좋구먼.
악 사 : 아. 여기 좋구말구.
박첨지 : 그런디 말여 많이 돌아다니다가 작은 마누라도 얻었는데 혹시 동생이 찾아오거든 나, 여기 왔다갔다고 허지말어.
악 사 : 그려 염려말어 안 일러줄게.
박첨지 :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자, 워떤가?
악 사 : 아! 참 이쁘구먼.
박첨지 동생 : 여보세요.
악 사 : 누구여
박첨지 동생 : 내가 박첨지 동생인데 혹시 우리 형놈 박첨지 어디로 갔는지 보았소?
악 사 : 여기 왔다간지가 얼마 안되여. 저편으로 갔는데 빨리가면 만나 볼거여.
박첨지 동생 : 워디로……
악 사 : 저리로…… / 반복하다가 형을 만난다.
박첨지 동생 :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오려밭에 새나 보지 뭐하러 싸돌아다녀.
박첨지 : 네 살림이나 잘 허지 웬 참견여
박첨지 큰마누라 : 여보세요.
악 사 : 누구여
박첨지 큰 마누라: 내가 박첨지 큰 마누란데 여기 혹시 박첨지가 어디로 갔는지 보았어요?
악 사 : 예. 여기 왔다간지가 얼마 안돼요……말을 들으니께 작은 마누라 얻어 가지고 돌아다닌다고 합디다.
박첨지 큰 마누라 : 워디로 갔는지 아세요?
악 사 : 이 쪽으로 갔어요.
박첨지 큰 마누라 : 이 쪽이요
악 사 : 저쪽요 / 반복하다가 박첨지와 만난다.
박첨지 큰 마누라 : 살림은 어떡하구 작은 마누라만 데리구 다니면 제일 강산여……
박첨지 : 네 년은 없어도 살테니까 걱정마……
명 노 : 여보세요?
악 사 : 누구여
명 노 : 내가 박첨지 처남 명노인데 여기 혹시 박첨지가 어디로 가는지 보았소?
악 사 : 여기 왔다간지가 얼마쯤 되었는데 빨리 찾아보면 찾을 수 있을껴.
명 노 : 어느 쪽요
악 사 : 이 쪽요 / 반복하다가 박첨지랑 만난다.
명 노 : 누님을 배반하고 요리 쫄쫄 저리 쫄쫄 무엇하러 다니는 거여.
박첨지 : 매형헌티 쫄쫄거리는게 뭐여. 말 버릇이 고약허군
명 노 : 작은 마누라 얻어가지고 다니는 주제에 어때.
박첨지 : 아이고 인제 살림이나 갈라주고 나 혼자 돌아다녀야 건네.
악 사 : 누구한테 살림을 노나 줘?
박첨지 : 누군 누구여.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지.
악 사 : 어떻게 노나 줄라겨?
박첨지 : 큰 마누라 헌티는 다 썩은 새끼 한 사리와 후면에 있는 다 깨진 매운 재 바탱이 주고. 작은 마누라는 영당퐁당 여다지 자개 함농에 반다지는 너 가져라.
<제2막>
박첨지 : 나. 여기 또 왔어.
악 사 : 뭐하러 또 왔어
박첨지 : 평양감사가 꿩사냥을 하러 다닌다고 농민들에게 길을 닦으라고 해서 백성들은 할 수 없이 길을 닦아야만 하고 연장은 없고 욕은 할 수 없고 욕하는 의미에서 배꼽 밑에 있는 연장으로 닦아야 한대. 한 농민은 꿩사냥을 따러 다니다가 솔공이에 눈 이 먼 사람도 있대.
악 사 : 그럼. 홍동지를 불러서 닦어.
박첨지 : 그려, 그럼 홍동지를 불러서 닦어야 하겠구먼……홍동지……자네가 길 좀 닦으야 겠네.
홍동지 : 길을 뭘로 닦어.
악 사 : 연장으로 닦지 뭘로 닦어.
홍동지 : 연장은 무슨 연장여.
악 사 : 자네, 있는 연장으로 닦게.
홍동지 : 이걸루? ……쉬……쉬……
박첨지 : 길 잘 닦었꾸먼.
악 사 : 시원하게 닦았지……
(평양감사의 꿩사냥 출연)
박첨지 : 평양감사가 꿩사냥을 해다가 꿩고기를 먹고 체했대.
악 사 : 꿩고기를 먹고 체헌디는 약두 없다는디.
박첨지 : 아녀, 꿩고기를 먹고 체헌디는 홍새를 먹으면 나서.
악 사 : 홍새가 어디있나?
박첨지 : 우리 집에 홍새가 두 마리 있는데 비싼 값으로 팔어야겠네.
악 사 : 그럼 잘 됐군. 돈 좀 많이 생기겠구먼
(그런데 홍새 두 마리를 구렁이가 잡아먹음)
박첨지 : 아이구 구렁이가 홍새를 잡아먹는걸 쫓다가 내 코까지 물려서 하얀 코피 날뻔했네.
악 사 : 그거 큰 일 날뻔했구먼
박첨지 : 평양감사가 홍새를 못 먹어서 죽었댜.
악 사 : 그럼 장사 지내야겠군.
박첨지 : 곧 장사 지낸댜. 상여 나올거여.
(상여 등장……상여소리……)
상 제 : 여보세요
악 사 : 아. 그게 상제 아녀.
상 제 : 상여 어디로 가는 거 보았소?
악 사 : 상여는 벌써 갔는데 뭐하고 이제오나.
상 제 : 저기서 귀한 친구 만나서 술 한잔 먹다가 상여를 놓쳤어요.
악 사 : 상제 등에 짊어진건 뭐여?
상 제 : 바둑 강아지여.
악 사 : 바둑 강아지는 뭘 헐려구?
상 제 : 산신제 지낼려구…… 애고, 애고, 애고…… 아리랑…… 아리랑……
<제3막>
박첨지 : 나, 또 왔어.
악 사 : 뭐하러 또 왔어.
박첨지 : 평양감사가 죽어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라고. 저승길을 닦는 의미에서 절을 짓는댜.
악 사 : 그럼 잘 됐구먼.
박첨지 : 스님이 나올거여.
스 님 : 나무 관세음 보살…… 공중사를 신축 하는데 여러분들께서 시주 좀 많이 하여 주십사 하여 나왔습니다.
악 사 : 스님. 걱정 마세요. 찬조와 협조를 많이 해드리죠.
스 님 : 나무 관세음 보살……
(절 짓는 대목이 연출됨)
스 님 : 이 절 어떱쇼?
악 사 : 잘 지어졌습니다.
박첨지 : 절도 새로 짓고 했으니 소경 눈을 뜨게 불공을 드려야 할텐데 여러분들이 많은 시주 바랍니다.
악 사 : 그건 염려말어.
박첨지 : 그럼 내가 꿩사냥 따러 다니다가 눈이 먼 소경 데리고 나오께.
(소경 출연)
소 경 : 여러분이 시주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눈이 뜨게 됐습니다.
박첨지 : 내가 춤출테니 장단 좀 잘 쳐줘.
악 사 : 그려. 장단은 걱정말고 춤이나 잘춰……
(춤추고 노는 과정에서 소경의 눈이 떠지면서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