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시의 갈래와 문화기층적 이해
정민 / 한양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파격시는 한시의 파생적 갈래의 하나이다. 병고에서 다루려는 파격시는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기존 한시의 관행과 형질을 파괴하고 있는 것들이다. 지난 122호에서 다룬 잡체시가 기존 한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용인데 반해, 파격시는 한시의 틀을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형질의 변화까지 시도하고 있어 중국인이 보아서는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할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파격시는 김삿갓류의 작품들에서 보아온 바, 흔히 희작시(戱作詩)의 개념으로 불리워왔다. 그러나 단순한 희작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있어 여기서는 파격시란 용어로 한데 묶어 규정키로 한다.
조선 후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한시의 형식을 응용한 파격의 시도들은 그 시대상과 창작계층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기에 족하다. 이들 작품들에는 단순한 장난끼만으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놀라운 언어감각과 재치와 기지가 번뜩이고 있고, 나아가 시대의 모순과 질곡을 성토하기 비판과 풍자와 목소리로 확장되고 있다.
파격시가 한시의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창작계층의 여러 제약과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존 장르 양식의 틀을 허물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왕성한 이들의 창작의욕이 근대문학으로의 이행에 있어 중요한 한 동인이 되었음은 무시할 수 없다. 본고에서는 실제 창작된 파격시의 구체적 예시를 통해 그 다양한 갈래를 알아보고, 여기에 투영된 창작의식의 저변을 검토하려 한다. 논의의 과정에서 선인들의 뛰어난 언어감각과 작품의 하상(河床)에 남겨진 시대의 자취, 그리고 내용적 파격가 형태의 파괴가 시사하는 현재적 의의 등에 대해보다 진전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파격시의 갈래와 창작의 저변
인용된 작품들은 성격상 구전이거나 후대의 체록에 의해 정리된 것들이 많다. 이는 텍스트 확정에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앞선 몇 편의 글이 좋은 참고가 되었다. 해당 각 작품의 출전이나 이에 따른 각주는 이 글에 미루기로 한다.
우선 파격시의 다양한 갈래에 대해 정리해 보자, 실제 언문풍월이니 육담풍월(肉談風月)이니 하는 명칭으로 범박하게 불리워지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몇 가지 분명한 나름의 하위범주들이 존재한다.
크게 보아 파격시의 범주는 내용적 측면에서의 파격은 다시 서너 가지의 하위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형식은 한시의 기존 양식적 틀을 묵수하고 있으나 그 내용적 측면에서 파격인 경우가 있다. 주로 말장난에 가까운 이 유형은 중국인이 보아도 이해를 넘어 손뼉을 칠 정도의 날카로운 기지와 해학을 동반한다. 또 한시의 형식을 지키고 있고, 의미상 연결도 자연스럽되 음차(音借)에 의해 이중적 의미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한시의 축자적(逐字的) 이해는 음차에 의한 이면적 의도를 가장하기 위한 당의(糖衣)일 뿐이다. 반대로 훈차(訓借)에 의한 파격도 있다, 흔히 육담풍월로 불리워지는 이러한 파격은 한자로는 쓰여졌으되 한글 훈으로 읽지 않으면 아예 해독이 되지 않는 경우다. 이밖에 이들의 응용형태도 있다.
형태적 측면의 파격에도 몇 가지의 하위범주의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형태의 파격으로 17자시의 예를 들 수 있다. 5, 5, 5, 2언의 구성으로 잡체시로의 분류도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파격적 양상이 더 강한 예다. 또 한글과 한문의 혼용에 의한 파격이 있다. 흔히「언문진문 섞어作」으로 불리우는 파격이다. 한시의 형식성만 빌어왔을 뿐이나 내용은 그럴듯한 평상성을 유지한다. 여기서도 단순한 섞어작의 경우와 응용의 경우로 나뉜다. 이것은 5자 7언의 한시의 형식만 빌어 아예 한글로 짓는 언문풍월의 출현으로 진전된다. 여기와서는 운자도 한글로 맞추게된다.
파격시의 이러한 여러 갈래를 주제적 측면에서 보면, 형태적 파격의 경우는 대개 평상적인 한시의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반해, 내용적 파격의 경우에는 풍자와 해학의 의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형태의 파괴에다 내용까지 파격의 형식에 담아 충격의 최소화를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용적 파격의 경우 형태적 틀조자 깨트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미에 있어서만은 생소한 말하기 방식으로 낯설게 만들기의 효과를 창출한다. 이러한 형태적 내용적 파격의 두 양상은 결과적으로 파격시의 주제영역을 확장시켜 독자의 흥미를 배가시킨데 상보적으로 작용한다.
이들 파격시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조선 후기 몰락한 지식인들에 의해 창작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파격시는 뜻있는 선비로서 할 짓거리는 못된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파격시의 존재는 단순한 특정 개인이나 일시적 흥미거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폭넓은 작가군과 향유층의 기호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미 임, 병 양난을 겪은 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의 대두를 볼 수 있다. 국초 이래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권위를 지켜왔던 성리학이 격변하는 안팎의 변화 욕구를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하고 보수 반동의 길을 되풀이 해 걸음으로써 더 이상 이념적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사농공상의 계층에도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점차 대두되어 간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적 부를 누리게 된 상공계층과,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실질도 없이 덩치만 비대해진 양반과 토지의 겸병으로 소작인으로 전락해 버린 농민계층 사이에 자리바꿈이 진행되었다. 기득권의 추구로 전제적 정권을 구축했던 노론의 정치세력은 새로운 이념의 제시나 대안의 설정도 없이 부정과 부패, 매관 매직으로 세도정치를 가속화시켰다. 이 와중에서 체재를 부정하거나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수많은 몰락 양반들이 등장하였다, 속칭「딸깍발이」양반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배운 한문의 지식이 실제 아무소용이 없게 되자, 일정한 생업도 갖지 않은 채, 김삿갓의 경우와 같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지식을 파는 시골 서당의 훈장질 따위로 실의와 낙담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출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막다른 골목의 막막함 속에서 없었다. 막다른 골목의 막막함 속에서 고작 배운 지식을 통하여 시나 짖고 술이나 마시며 할 일없이 세상을 향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파격시의 창작은 이러한 시대환경의 부산물이다. 정상적인 환경 아래서는 용인 될 수 없는 파격시가 보여주는 형식의 와해는, 정신사적 연관 아래 이해할 때 이들 몰락 지식인들의 암담한 안간힘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개화기로 접어들면서 발전적 계승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내용상 형태상의 파격적 시도들이 주제적 차원의 변용으로 확대되면서 마침내는 여타 장르와의 습합이나. 아예 장르의 해체로까지 진전되었던 것이다. 이제 작품을 통해 그 구체적 갈래와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내용적 파격의 경우
1. 제재 및 표현상의 파격
희작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조선후기 한시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로 제재 및 표현상의 파격성을 들 수 있다, 이전 같으면 도무지 시의 제재가 될 수 없던 것이 버젓이 시속에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뜻만 5자 7언의 형식 위에 나열했을 뿐 운자도 신경쓰지 않고, 우스꽝스럽고 망칙한 표현이나 가발한 착상에 의한 시작도 심심찮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파격시는 나중 형태적 파격으로까지 더욱 진전되는 것으로 초기적 파격의 양상이다.
김삿갓의 시를 보면 요강이나 벼룩, 이 등의 시의 제재로 거리낌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미 정상적인 관행에서 이탈하여 있을 뿐 아니라 보통의 경우 도무지 시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시인은 기상천외의 제재를 통해 그의 시재(詩才)를 자랑하고, 기존 관념의 틀을 깨뜨리고 있다. 이(風)를 노래한 그의 시 한 수를 보자.
주리면 피 빨고 배 부르면 떨어지니/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먼 길손 품 속에서 낮 볕을 근심하고/공한이 배 위에서 새벽 벼락소릴 듣네/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글자 풍(風)자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네/묻노니 능히 선골(仙骨)도 범하려는가/마고할미 머리 긁으면 천태에 앉았거니.
飢而橪血飽而熿 三白昆蟲最下才 / 遠客懷中秋年日 窮人腹上廳晨雷 / 形雖似麥難爲麴 字不成風未落梅 / 問爾能侵仙骨否 麻姑搔首坐天台
운자는 지켰다. 처음 네 구는 이의 생태를, 나중 네 구는 외양 묘사와 이에 대한 경고의 내용이다. 한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것은 볕이 좋으면 볕바라기를 하며 옷을 벗어 이를 잡을테니 하는 말이요, 새벽 우레소리는 기실은 주린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다. 5구는 이의 생김새를 이른 것이고, 6구는 이의 한자가 바람 풍자에서 한 획을 뺀 것임을 두고 한 말이다. 마고는 새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고대의 선녀로 「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그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다. 그 마고가 천태성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고, 자신은 또 선골이니 감히 범접치 말라는 경고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은 모면할 수 없어 해학적으로 풀어본 것이다.
다음은 김립의 시로 방랑의 도중에 만난 어느 중과 젊은 선비를 기록한 내용이다.
중 머리통 둥글둥글 땀난 말불알 같고/선비 대가리 뾰족뾰족 앉은 개자지 같애/목소리는 구리 방울을 구리 솥에 부딪는듯/눈깔은 검은 후추가 흰죽에 빠진 듯.
憎首團團汗馬崇 儒頭尖尖坐狗賢/ 聲令銅鈴零銅鼎 目若黑淑落白粥
이미 운자도 개의치 않고 있다. 홧김에 뱉어버린 것이어서 그럴테지만 이런 내용에서 운자를 찾는 것도 우스운일이다. 반들반들한 중의 머리와 상투튼 선비의 머리에 대한 독살스런 풍자도 그렇거니와 애애거리는 목소리를 방울소리에, 조그만 눈을 죽 위에 떨어진 후추 한 알에 비긴 표현은 절로 감탄을 부른다. 세상을 향해 퍼부어야 할 풍자를 엉뚱한 데로 퍼부은 셈이다. 그의 좌절은 정작 딴 데서 온 것인데, 거기로는 퍼부을 수 없는 원망이 달리 투사되어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지독한 풍자와 해학 속에는 안스러운 번민과 뿌리깊은 갈등의 그림자가 비친다.
신선은 산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라/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사 어찌 새이랴/얼음 한 조각 녹으면 도로 물이 되나니/두 나무 마주 서면 문득 숲을 이루네.
仙是山人佛不人 鴻惟江鳥鷄奚鳥/ 永消一點還爲水 兩木相對便成林
위시는 내용만 보아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잘 알 수가 없다. 각 구절마다 진의를 알 수 없는 명제들만 주욱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무의미한 나열이 아니라 파자놀음에 의한 파격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구의 「仙」은「人」과 「山」이 합쳐진 글자여서 「山人」이라 하였고, 「佛」은 「弗」과「人」의 합자여서 「弗人」즉「不人」이다. 마찬가지로 「鴻」은 「江」과 「鳥」, 「鷄」는 「奚」와 「鳥」의 합자임을 가지고 농친 것이다. 「永」자에서 점 하나를 떼면 「水」가 되고, 「木」자를 두 개 겹쳐 놓으면 「林」이 된다. 글자 풀이로 이루어진 내용도 대체로 사실명제에 가까운 것이어서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다음은 글자 장난에 의한 파격시의 예다.
동림산 아래 봄 풀 푸른데/큰 손 작은 소 긴 꼬리 흔드네/오월 단오를 근심겨워 보냈으니/팔월 추석도 두렵기만해.
東林山下春草綠 大丑小丑揮長尾/ 五月瑞陽愁裏過 八月秋夕亦可畏
앞의 2구는 한가로운 전원의 풍경을 그렸다. 그런데 후 2구는 궁핍에 절은 농가의 근심을 그리고 있다. 소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데, 단오를 근심속에 보냈다는 것으로 보아 그나마 붙여먹는 적은 땅뙈기에 모도 제대로 심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봄부터의 추석걱정은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들이닥칠 빚독촉에 세금독촉 때문이다.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는 운자도 없고 표현도 함축미 없이 심드렁해 시라고 할 거리도 못된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해하고 말면 시인의 의도에 긴 꼬리를 휘두르고(揮) 있는 큰 소 작은 소는 그저 예사 소가 아니다. 丑에 꼬리를 달면 尹이 된다. 좋은 시절 꼬리를 휘두르는 소는 백성에게 횡포를 자행하는 윤씨일가이다. 김삿갓이 동림산 아래 윤가가 많이 사는 마을을 지나다 수모를 당하고, 그 고을 다른 백성들에 대한 이들의 횡포를 야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丑)가 기실 윤(尹)임을 이해할 때 1.2구와 3.4구의 불협화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天이 冠을 벗고 한 점을 얻으며/ 乃가 지팡일 잃고 한 띠를 둘렀네.
天脫冠而得一點 乃失杖而橫一帶
7언의 구색을 갖추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뜻을 따라 새기면 본래의 의미가 드러난다. 天이 관을 벗으면 大가 되고, 여기에 다시 한 점을 얻었으니 犬이 된다. 또 乃가 지팡이를 잃으면 了가 되는데, 다시 띠를 두르게 되면 子가 된다. 그러니까 위의 두 구는 犬子 즉 개새끼 라는 욕설이다. 점잖은 처지에 툭 뱉을 수도 없고 부아는 치밀어 욕은 퍼부어야겠고 해서 나온 장난질이다.
이상 살핀 제재 및 표현상의 파격형을 보면 이전 한시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비시적 제재가 시적 표현의 대상물로 버젓이 등장하고 있고, 그밖에 운자에 대한 무시와 함께, 파자유희에 의한 창작과 욕설 등이 시의 내용 가운데 지닌 공통점은 한자 본래의 의미를 활용하여 파격적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음차(音借)에 의한 파격
음차에 의한 파격형의 시들도 있다.
약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을 시구 가운데 슬쩍 끼워넣는 약명체나 인명체와 같은 잡체시의 한국의 변용양상으로 볼 수 있다. 한자 본래의 축자적 의미는 그대로 살리면서, 독음으로 읽었을 때의 이중적 의미가 주는 묘미를 한껏 즐기려는 것이다.
다음<팔대시가>(八大時家)란 김립의 작품은 거의 잡체시의 모습에 가깝다.
李謫仙 늙은 이 뼈 이미 썩었는데/버드나무 본디 다만 꽃다움 드리웠네/누른산 골짝에 꽃이 흐드러졌고/ 白樂의 하늘가엔 기러기 줄지어나네/ 杜子의 미인도 이제는 적막해라/ 陶淵 의 밝은 달은 오래도록 황량타오/가련타 韓退之는 어디에 있나/다만 孟東엔 들풀만 자라있네.
李謫仙翁骨己霜 柳宗元是但垂芳/ 黃山谷裏花天片 白樂天邊雁 行/ 杜子美人今寂寞 陶淵明月久荒凉/ 可憐韓退之何處 維有孟東野草長
각 구마다 이백, 유종원, 황정견, 백거이, 두보, 도잠, 한유, 맹교 등 중국 역대의 유명한 시인들의 이름이 삽입되어 있다. 약간의 억지가 없지 않지만 통상적인 축자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문자 유희는 아무나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도한 언어구사와 해박한 지식, 기발한 착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음차에 의한 파격은 다음 단계에 가면 순 우리말의 음차로 발전하고, 내용도 풍자적 해학적 내용으로 변모한다.
슬프다 문벌은 모두 훌륭한 족속으로/세월에 헛되이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五老峯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세상사람 모두 도를 안다 일컫네.
可憐問閥皆佳族 虛老風帥獨可悲/ 五老峯下論理坐 世人皆稱道也知
오로봉 아래에서 다섯 늙은이가 모여 고담준론이 한창이다. 모두 훌륭한 문벌의 자손으로, 이제는 영락해서 늙고 고단한 인생들이다. 이야기야 예전 좋은 시절 조상 자랑일테지만, 영문을 모르고 세상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도인쯤 되는 것으로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몰락한 양반님네들의 안스러운 허세를 풍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독음으로 읽어야 본래의 뜻이 선연하게 되살아난다. 다시 독음으로 읽어보자.
슬프다 문벌은 개가족(皆佳族)이요/세월에 헛되이 늙은 도깨비(獨可悲)로다/오로봉 아래에 노루(論理)가 앉았는데/세상 사람들 모두 도야지(道也知)라 일컫네.
「훌륭한 족속」이「개가죽」으로,「홀로 구슬프도다」가「도깨비」로,「이치를 논함」이 「노루」로, 「도를 안다」가 「도야지」로 둔갑해 버렸다. 그네들이 논하는 문벌이니 집안이니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가. 개가죽이요, 도깨비 같이 허상만 있고 실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빈 껍데기가 아니던가. 노루를 보고 도야지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또 어떠한가. 시인의 속마음은 세상사람들이 기실 그들을 도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운 것이 아니라 돼지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퍼부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하나 더 보자.
유월 땡볕에 새는 앉아 조을고/구월서늘 바람에 파리가 죄다 죽네/달이 동산 마루에 뜨자 모기는 처마로 모여들고/서산 지는 해에 까마귀는 둥지로 향해 나네.
六月炎天鳥坐杭 九月凉風蠅盡死/ 月出東嶺蚊嬕至 西山落日鳥向巢
시랄 것도 없는 내용의 나열이다. 한시절에 대한 감회도 아니고 눈 앞의 풍경을 읊은 것도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의 확인 뿐이다. 이 또한 각 구끝 세작의 독음을 이용한 장난이다. 역시 김삿갓의 시로 전해지는 것인데, 떠돌다가 어느 촌 구석 강 가 정자에서 이마을의 양반입네 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 좌수(座首)니 진사니 첨지니 향수(鄕首)니 제멋대로 호칭을 얹어 높여 부르는 꼴을 보고 눈꼴이 시어서 지었다는 작품이다. 아예 그네들의 성까지 따서 「趙坐首」「承進士」「文僉至」「吳鄕首」의 독음을 가지고 위의시를 엮어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해 뜨자 원숭이 들판에 나오고, 고양이 지나가니 쥐가 다죽네, 저물녁 모기는 처마로 모이고, 밤되자 벼룩이 자리를 쏘더라」(日出猿生原 借過鼠盡死 黃昏蚊嬕至 夜出蚤席財)라 한 것도 있다. 여기서는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趙碩士) 등의 이름을 넣었다. 이러한 유사형의 존재는 이러한 문자놀음의 어느 특정 상황속에서 순발력 대응으로 지어지기 보다 몰락 문인들의 파적의 거리로 놀이화 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서당을 일찍부터 알아/방 가운데는 모두 높은 물건 뿐일세/생도는 다해야 열이 채 안되는데/선생이 와도 아뢰지도 않느니.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末十先生來不謁
김삿갓이 버르장머리 없는 시골 훈장과 생도들에게 던져준 시로 전한다, 생도들의 경망한 행동과 괘씸한 버릇에 대한 노여움이 잘 나타나 있다. 더욱이 위 점 찍은 부분을 독음으로 읽으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한 고약한 욕설이다. 절묘한 언어의 이중적 사용이다.
다음은 조선 후기의 시인 석북 신광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네 나이 이제 열 아홉인데/벌써 비파를 갖고 다루네/빠를젠 빠르게 높고도 낮게/ 知音에게 알리기 어렵지 않네.
爾年十九齡 乃操持瑟瑟/ 速速虛高低 勿難報知音
시는 열 아홉난 어느 기녀의 비파 다루는 솜씨를 보고 감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저 범박한 내용의 시지만, 이를 한글 독음으로 읽게 되면 남녀의 성행위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내용이 된다. 이럴 飁 한시 본래의 내용은 이면에 감춰진 장난기를 숨기기 위한 가장일 뿐이다. 장난치고는 고약하리만치 지나치다.
다음 시는 발상을 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주제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樂民樓 아래에 백성 눈물 떨어지니/ 宣化堂 위가 먼저 화를 당하리라/함경도 백성들 모두 몰라 도망가니/ 趙基榮 집안의 복이 어찌 오래 가리오.
樂民樓下落民泯 宣化堂上先禍當/ 咸鏡道民咸驚逃 趙基榮家澤豈永
함경갑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한 시로 알려진다. 낙민루와 선화당은 모두 함경 감영 내에 있는 실제의 이름이다. 시를 보면 각 구의 앞 세 자와 뒤 세글자의 독음이 꼭 같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즐거워 한다는「낙민루」에 눈물짓는 백성의 원망이 있고, 덕화의 다스림을 펴는 집인「선화당」에 복은커녕 앙화가 미친다고 하므로, 놀라 달아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 조기영에 대한 경고로 맺고 있다. 실제 백성들의 달아남은 학정에 못이긴 때문이지만, 독음으로 이해하면 곧 닥쳐올 앙화가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각각의 단어마다에 반어적 의미를 연결시킴으로서 서슬푸른 풍자와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희작도 단순한 장난을 넘어 이렇듯 백성의 원망과 원성을 담을 飁, 풍자와 비판의 주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지난 호에 소개한 방 있는 「菊樹寒沙發」(국수한사발)과 같은 예도 있고, 전국의 지명을 시구 가운데 넣어 지은 장편의 거작도 있다. 이러한 음차에 의한 파격형의 경우 한자 자체의 축자적 해석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와 독음으로 환기되는 의미가 교차되면서 주체를 심화시키는데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문면적 의미는 독음으로 환기되는 이면적 주제를 감추기 위한 당의(糖衣)로써만의 의미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언어의 이중적 사용이 주는 묘미를 십분활용하고 있다.
3. 훈차(訓借)에 의한 파격
한자의 훈을 따서 읽어야만 독해가 가능한 파격시도 있다. 앞선 음차의 경우는 의미 구조가 이원화 되어 있었는데 반해, 이 경우는 의미는 일원화되어 있지만, 훈차를 풀이하는 데는 암호풀기와 같은 재간이 필요하다. 해독하는 이들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이를 지은 이들의 재치와 기지는 대단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김삿갓이 어떤 노랭이의 부고장을 「柳柳井井花花」로 써주고 그 의미를「버들버들 떨다가 우물우물 하더니 꼿꼿이 죽었다」고 새긴 따위의 장난질과 상통하는 것이다.
우선 비슷한 한 두 예를 본다.
새 날자 가지는 한달 한달/바람 부니 잎은 너푼 너푼.
鳥飛枝二月 風吹葉八分
산에 오르니 새는 쑥국 쑥국/바다에 가니 물고기는 풀떡 풀떡
登山鳥艾羹 臨海魚草餠
두 가지 예시가 모두 같은 발상이다 첫구의 「二月」즉 두 달은 한달에 한달을 더한 것이므로, 이를 「한달 한달」로 풀이했고, 「八分」은 속음이 「팔푼」이므로, 똑같은 방식으로 반씩 나누어「너푼 너푼」로 읽은 것이다. 둘째루도 마찬가지로 「艾羹」의 훈을 따 「쑥국」으로 「草餠」의 훈을 따 「풀떡」으로 풀이하였다. 완전히 한국화한 문자 유희이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긴 그대로/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시정의 매매는 세월대로/온갖 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지내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貧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김삿갓의 시다. 운자를 「竹」으로 해. 매 구 끝에 삽입했지만 한자의 의미로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마치 향찰식 표기를 해독하는 방식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순도 우리말 어순 그대로다. 「竹」을「-대로」로 해석하여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보자는 끝구의 주제를 끌어내고 있다. 마치 옛시조의「청산도 절로절로, 나도 절로절로 」의 설의와 비슷하다,
조선 후기의 소설인<要路院夜話記>를 보면,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가는 시골선비와 서울선비가 한 방에 묵으면서 이런 저런 장나시로 한껏 글재주를 겨루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주로 그들이 짓고 있는 시들은 약명체 등을 비롯한 여러 잡체시들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실린 훈차를 이용한 희작시이다.
내 시골 내기를 보니/몸 가지임이 괴이하도다/언문 쓸 줄도 알지 못하니/어찌 眞書 못함 괴이하리오.
「賭」와「條」,「辛」과 「沼」넉자를 운자까지 맞추어 넣되, 풀이는 훈으로 해야 가능하게 되어 있다. 서울 선비가 어수룩하게 생긴 시골 선비를 깔보고 시비를 건 것이다. 번역 부분의 덧점이 바로 네 글자를 훈으로 새긴 부분이다. 이에 질세라 시골 선비의 대꾸도 만만치 않다.
내 서울 것을 보니/과연 거동이 되도다/대저 인물을 꾸었으되/의관으로 꾸민 것에 지나지 않도다.
我觀京之表 果然擧動戎/ 大底人物貸 不過衣冠夢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겉을 말하는 「表」와 뙤놈「戎」자, 꿀「貸」와 꿈「夢」의 네 자를 적절히 섞어 말을 엮었다. 만만히 본「시골내기」에게 우습게「서울 것」이 한 방 먹은 셈이다.
다음은 또 다른 방식의 훈차에 의한 파격시이다.
천리 평양길 십리에/큰 뱀이 길 막으니 사람들 죄「잇끼」놀랄네/해는 練光亭 밑 물 위에 지는데/백구는 아랑곳 않고 오간단 말인가?
天里平壤十里於 大蛇當道人皆也/ 落日練光亭下水 白鷗無恙去來乎
1,2,4구 끝의 「於」와「也」「乎」가 훈차로 활용되고 있다. 「於」는 처소격 조사로 우리말「-에」에 해당한다. 「也」는 종지를 나타내는 어조사이지만 흔히「이끼 야」로 통하므로, 뱀을 보고 놀란 비명「잇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끝의 「乎」는 의문의 어조사이므로 4구를 의문의 의미로 만들고 있다. 훈차의 방식 가운데서도 매우 흥미로운 예에 속한다.
다음은 훈차의 사용이 상당히 복잡해진 국면을 반영한다.
주인은 운을 커다란 고리「銅」를 부르는데/내사 음으로 하지 않고 「새김」으로 하리라/막걸리 한 동이 빨리 빨리 가져오게/이번 내기는 자네가 지네.
主人乎韻太環銅 我不以音以鳥態/ 獨酒一盆速速來 今番來期尺四蚣
남의 술자리에 끼어 목을 축이려는데, 시를 짓지 않고서는 한 잔도 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운자를 부를니까 하필 고약한「銅」자를 불렀다. 골탕을 먹이겠다는 수작이었다. 2구 끝의 「鳥態」는 훈으로 읽으면 「새곰」즉 새김이다. 「態」는 훈차로 사용되었지만 그 음은 그대로 주인이 부른 운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끝구의 「尺四蚣 」은 자(尺)와 넷(四), 그리고 지네(蚣)이니, 이를 연결하면「자네지네」란 의미가 된다. 골탕 먹이려던 주인이 되려 골탕을 먹은 꼴이 되었다.
스무나무 아래 서루운 객이/망할 집에서 쉰 밥을 먹네/세상에 어찌 이런 일 있으료/집에 돌아가 설은 밥 먹음만 못하리.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問豈有七十事 不知歸家三十食
지난 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김삿갓의 시다. 방랑의 길목에서 시장하여 밥을 청하는 나그네에게 쉰 밥을 내온 것을 보고 각박한 세상 인심을 통탄하며 지었다는 시다. 「二十樹 」는 「스무나무」로 새기니, 흔히 산에서 볼 수 있는 느릅나무에 속하는 교목 활엽수이다. 「三十」은 「설흔」이니, 처음엔 「서러운」으로, 뒤에 가서는 「설은」으로 새겨 묘미를 더했다. 마흔은 다시 「망할」로, 일흔은「이런」으로 각각 새겼다. 스물, 서른, 마흔, 쉰에서 일흔에 이르는 점층에 의한 의미의 연결이 가히 훈차에 의한 파격형의 압권이라 이를만 하다.
이상 이러한 훈차에 의한 파격형의 시들은 여느 파격의 경우보다 창작이 더욱 어렵고, 특히 재치와 기지가 요구되는 형태이다. 여기서는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훈이 문제였고, 한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도무지 통하지 않으므로, 통하지 않는 의미를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운자는 오히려 지켰다. 파격형의 가장 발달된 형태의 하나이다.
4. 기타
이상 살핀 여러 유형의 파격시 외에 한시의 형태를 갖춘 내용적 의미의 파격형이 있다. 육담풍월의 한 갈래로 음차도 훈차도 아닌 사람의 이름을 활용한 특이한 형태의 파격시이다. 「어우야담」에 실려있는 다음의 예화는 이어 살펴볼 예시와 발상을 같이 하고 있어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일손이 산사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장인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원문에는 주욱 사람의 이름만 나열되어 있다. 포악한 의 학정으로 은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문왕은 인자함으로 백성을 다스려 모든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 뒤에 그 아들 무왕이 일어나 주공 단과 협력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무왕은 강태공으로 더 잘 알려진 태공 망을 스승으로 섬겨 선정을 베풀었다. 또 소공은 문왕의 서자로 역시 무왕을 어짐으로 보필하였으므로, 주공과 소공과 태공 세 사람을「삼공」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위 글을 풀이하면,
「문왕이 돌아가시자, 무왕이 나오셨네, 주공이여! 주공이여! 소공이여! 소공이여! 태공이여! 태공이여!」가 된다. 어진 임금이 어진 임금의 뒤를 잇고, 충직한 신화가 보필하는 아름다운 광경에 대한 찬탄인 것이다. 그러나 이래 가지고서야 무슨 편지라 할 것이 없다. 문왕의 이름은 「 」이고, 무왕의 이름은「 」이다. 또 주공의 이름은「 」이고, 소공의 이름은「 」이며, 태공의 이름은 「 」이다. 위의 글은 다름 아닌 이들의 이름의 음과 훈을 사용하여 지은 희문이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이 된다.
「(신발) 창이 없어 발이 나왔으니, 아침마다 저녁마다 바라고 바란다」요컨대 신발에 창이 다 떨어져 다닐 수가 없으니 새 신을 보내달라는 말을 가지고 장난을 해본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시가「요로원야화기」에 한 편 실려 있어 여기 소개한다.
대단히 추운 방에/잠이 오질 않아서/부쇠(부싯돌)을 치고자 하나/주머니에 깃이 없네.
각 구절마다 한고조 유방, 도연명, 진시황의 아들 부소, 그리고 항우의 이름이 삽입되어 있다. 원문과 역문을 보면 어떻게 저런 해석이 가능할 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김일손의 편지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한고조의 이름은 유방이니, 여기서「방」을 따고, 도연명의 이름이 잠이므로 누워자는 「잠」을 연상하였다. 진시황의 아들부소는 부싯돌의 다른 이름인「부쇠」로, 그리고「깃」은 항우의 이름에서 훈을 따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암호를 풀고 다시 원문을 배열하면, 「 」이 되어 앞서의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상의 내용적 측면에서 파격을 보여주는 여러 시들을 살펴보았다. 시의 제재나 표현상의 파격과, 그밖에 음차나 훈차에 의한 파격, 그리고 이들의 복합에 의한 파격 등 다양한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지닌 공통점이란, 내막이야 어떻든 모두 5자 7언의 자구의 규칙성 등 외형적인 면에서의 한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형태적 파격의 경우
본 절에서는 파격의 양상이 한시의 외형적 모습에까지 확대되어 나타나는 파격시들을 다루기로 한다. 여기서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 짓는 소위「언문진문 섞어」의 경우와, 5자 7언의 규칙성만 남겨두고 한글로 짓는 언문풍월의 경우 등이 있다. 언문풍월에서는 운자를 아예 한글의「葡」모음이나 「薡」모음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17자 시도 있다. 5, 5, 5, 2의 형태적 변용을 시도한 것으로, 그 풍자성과 해학성 때문에 잡체시로의 분류보다 파격시로의 분류가 적절한 예이다.
1. 한글. 한자 혼용에 의한 파격
앞서 훈차나 음차를 통한 말장난은 마침내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짓는 파격형을 만들어 내었다. 이 형태가 주는 묘미는 한시의 운자 등 형식적 요건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우리말을 삽입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자연스런 의미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도 글귀의 삽입만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형이 있고, 다시 한번의 응용이 요구되는 복합형도 있다.
다음은 이항복이 지은 것으로 「이諺叢林」에 실려 전하는 가장 오래된 예로 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긴 즉 이렇다. 아침에 남의 수레를 빌려 타고 어딜 가는데, 갑자기 수레가 엎어져 뒤꼭지를 다쳤다. 그래 큰길에서 구슬피 울고 있자니 구경하던 사람들이 미치광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하나의 회화적인 장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시의 특징은 가운데 삽입된 한글 부분을 삭제해도 의미가 그대로 통한다는 점이다. 「借」가 있으니「남의」것임은 당연한 이치고, 다친 것이야 앞의건 뒤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哭」이 이미 들어 있으니 어떻게 울어도 상관은 없고, 「狂」이 이미 미쳤다는 의미이므로「미치」의 관형어는 불필요하다, 즉 오언의 시구에다 꾸밈말을 엊어 칠언으로 부연하고 이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시는 섞어류의 창작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를 던지고 있다.
김삿갓의 시다. 1. 2. 4구는 앞 네자에 수식어로 우리말을 삽입하였고, 3구도 동작에 대한 수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남산을 데걱데걱 올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갖 꽃이 흐드러진 봄 산을 취한 눈으로 굽어보는 풍류를 토로한 내용이다.
네 구 꼭같이 가운데 넉 자를 부사어, 혹은 수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형태적으로 매우 특이한 구성이다. 듬성듬성 소나무 서있는 오솔길과 여기저기 부딪치는 사람들 속을 평생 술 마시며 떠돈 방랑의 한생을 잘 표현해 내었다.
다음은「대한자강회월보」에 이기가 소개한 것이다.
사랑 문간방에 사는 처녀의 수줍은 거동은 재치있게 묘사한 것이다. 무던한 용모에 가느다란 허리, 남정네를 보고는 얼른 숨은 모습이 구름 사이에 밝은 달이 숨는 듯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별본청구야담」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실려 있다.
몇 사람의 선비가 정자에 술 마시고 시 지으며 노니는데, 지나던 과객이 자리에 끼려다가 시를 짓지 않으면 끼워주지 않겠다는 말에 즉석에서 지었다는 시다. 소재는 마침 안주로 상 위에 올라있던 소머리였다. 2. 3구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와 제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연나라 소왕은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 위해 절치부심, 어진 이를 초빙하여 악의, 추연 등의 인물이 그에게로 와, 이들의 도움으로 제나라의 70여 제나라의 성을 회복한 뒤에 전원에 돌아와 누웠다고 한 2. 3구는, 그러니까 제 주인을 위해 평생 힘든 일만 한 소가 마침내 제 주인을 부유하게 해주고 나서 전원에 돌아와 누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운 것이 쉬자고 누운 것이 아니라, 고기가 되어 선비들의 잔치 자리에 안주거리로 오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니 살짝 풍자를 감춘 것이다.
「대한민보」에 실린 분운시에도 이런 것이 있다.
사월 남풍에 보리 익으니/농부 끼니 밥엔 아옥국이요/ 봄 새벽 첫 애우는 소리에/산모의 첫 밥은 미역국일세/서울의 풍운은 날로 어지러운데/벼슬아친 이밥에 잡탕국이요/좋은강산 중흥을 노래하는데/우뚜한 신하들은 나라 위해 애쓰네.
사월이라 대맥도 누렇게 익어 농부의 손길은 바빠만 가고, 이때엔 아옥을 뜯어 된장국을 끓인다. 3.4구는 아이 낳은 산모가 먹는 미역국을 말했다. 5.6구에는 얼마간 풍자의 뜻이 담겨있는 듯하다. 한성의 풍운은 날로 어지러워 앞날을 예측키 어려운데 붉은 소슬대문의 >벼슬아치들은 좋은 이밥에 잡탕국을 끓여 먹고 있다. 「잡탕」의 어감은 온통 뒤죽박죽이라는 「紛紛」의 의미와도 무관치 않아 재미를 상승시킨다. 7.8구는 교목과 같이 우뚝한 신하들의 보국으로 삼천리 강산이 곧 중흥을 노래하리란 내용이다. 매 짝 수구는 모두 여느 한시와 다를 바 없으나, 홀 수 구는 한글「국」으로 운으 맞추고 한글과 한잘를 섞었다.
위의 여러 시들과 달리 다시 한번의 응용이 필요한 복합형의 섞어도 있다. 여기서는 여러 변이형들이 전해진다. 그만큼 입에 오르내렸다는 증거다. 강산 이서구가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시를 먼저 소개한다. 정승까지 지낸 그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강가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경망한 선비하나가 멋모르고 자기를 업고 강을 건네라고 요구하였다. 능청스레 선비를 업고 강을 건너는데, 선비는 그만 그의 머리에서 정승의 관자를 보았다. 그래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죄하는 그에게 지어주었다는 시다.
내 세상의 「시옷」(걁)을 보니/시비가 「미음」(ꁁ)에 있더라/집에 돌아가 「리을」(鱁)을 닦아라/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 찍으리라.
시옷은 「人」자와 비슷하고, 미음은「口」자의 모습이다. 리을은「己」요, 디귿에 점을 찍으면 「亡」이 된다. 이를 다시 풀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시비가 입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가 된다. 말조심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김삿갓의 것으로 전하는 다음의 비슷한 시도 있다.
허리 아래에 기역(낫)을 차고/소 코앤 이응(뚜레)을 뚫었네/집에 돌아가 리을(몸)을 닦으라/그렇지 않으면 망할것이니.
3. 4구는 위와 꼭 같다. 1구는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 그대로 낫을 가리킨 것이고, 소의 코를 꿴 뚜레의 모양은 영낙없는 이응의 형상이다.
이상 살핀 여러 편의 예들은 한시의 형질이 변모 파괴되어가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상의 변용은 앞서 살핀 여러 내용상의 파격위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내용만으로 어쩔 수 없는 표현욕구가 형태의 변용, 파괴로까지 진전된 것이다.
2. 언문풍월
한문과 섞어 짓던 형태의 변용은 마침내는 아예 한글로 5자 7언의 구색만 갖추고, 운자조차 한글로 짓는 언문풍월로까지 발전한다. 김삿갓의 시 중에,
물은 은공이가 되어 절벽을 방아 찧고 / 구름은 옥 자 되어 청산을 마르재네.
水作銀歛春絶壁 雲爲玉尺度靑山
과 같은 시는 운자를 각각 기역과 니은으로 단 예로 전해진다. 이러한 운자의 변용시도는 바로 언문풍월에서 그 묘미를 발휘한다.
언문풍월은 예전 주로 궁녀들이 한시의 작법을 응용하여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짓던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창작은 개화기에 와서인데, 1900년대에는 거의 시조문학과 경쟁관계를 유지할만큼 그 세를 떨쳤다. 여러 잡지에서는 운자와 제목을 주고 현상공모를 하고, 수백편을 모아 「諺文風月」이란 책이 출판되는 성황을 이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개화기 이전의 것으로는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밥 한술 얻어 먹으려다 헛탕을 치면서 그 절 중과 수작한 시가 있다. 운자는 「타」자이다.
사방기둥붉어타 / 석양행객시장타 / 네절인심고약타
아마도 완성된 작품이었다면 2구와 3구 사이에 운과 무관한 한 구절이 더 있었을 법 하나 세 구절만 구전으로 전한다.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작품을 q보기로 하자. 제목은〈자명종〉이고, 운자는 「가나다」이다. (작품은 현대어로 고침)
두 개바늘돌아가 / 글자마다치노나 / 땅땅치는그소리 / 늙을로자부른다.
큰 바늘 작은 바늘이 쉬지 않고 돌며, 정각과 매 30분이면 어김없이 종을 울려댄다. 자명종이 울릴 때마다 늙음을 재촉하는 소리로 들린다는 재치다. 가나다의 순서에 의한 운자의 배열도 그렇고 시상의 전개도 시적이다.
참대붙인종이가 / 흔들면은바람나 / 몹시더운여름엔 / 친한벗이네로다
부채를 제재로, 부채의 재료와 효용을 역시 운을 갖춰 노래한 내용이다. 바늘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다. 운자는 「올골솔」로 꽤 어렵다.
명주비단고운을 / 요리조리가는골 / 어김없는네로다 / 좋은솜씨지은솔
이 고운 명주비단에 요리조리 골을 내어 바느질을 하고나니 솔기마다 솜씨가 정갈하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언문풍월은 일상적인 여러 소재들을 가지고 운자에 있어서도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까지 다양하게 창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이것은 한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재치만으로도 창작이 가능했으므로,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작가층을 가졌다는데에서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3. 17자시
5.5.5.2>형태의 시이다. 지난 호잡체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보았던 삼구시나 한사람이 한글자씩 돌아가며 불러 짓는 연자시(聯字時)등과 비슷한 성격의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위에서 본 섞어 이나 언문풍월이 한시의 기본 형태에다가 한글을 삽입한데서 기본 형태에다가 한글을 삽입한데서 이루어진 파격이라면, 17자시는 기본적인 자수율의 파괴에 의한 파격이다. 물론 의미는 전통적 한시의 전달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옥산 장한종이란 이가 지은「禦睡新話」에 소개된 3수가 있다. 작품은 계속 연관된 문맥 속에서 지어지고 있는데, 교묘한 풍자와 해학이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원님이 몸소 비를 비는데/그 정성 뼈에 사무치누나/한 밤에 창 밀치고 하늘을 보니/밝은 달이로다.
날이 오래도록 가물어 기우제를 지내는데, 제사를 지내는 곳이 기생집 근처였다. 원님은 제사에 마음이 있지 않고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선비가 괘씸한 생각에 이 시를 지었다. 정성이 뼈에 사무치도록 열심히 비를 비는 태수의 정성을 먼저 말하여 그에 대한 호의의 감정을 유발시킨 뒤, 그날 밤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밝은 달」이 두둥실 떳더라는 이야기를 덧붙여 보람없는 기우의 허위를 통박한 것이다. 이를 본 원님이 화가 났다. 그래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니 다시
시 열 일곱자를 지었다가 / 곤장 스물여덟대를 맞았네 / 만약 만언의 상소를 지었더라면 / 반드시 죽었으리라.
作詩十八字 受答二十八 / 若作萬言硫必殺
라 하였다. 다시 셋째 수는 더욱 화난 태수가 그를 귀양보내니 외삼촌의 전송차 나왔는데 마침 애꾸였다.
석양 단풍 언덕 길에/날 보내는 외삼촌의 정이여/서로 드리운 이별의 눈물은/석줄이러라.
斜日楓岸路 舅氏送我情 / 相垂離別淚三行
자신은 성하고, 외삼촌은 애꾸니 눈물이 석 줄이라는 익사이다. 갖다 붙인 이야기겠지만 그런대로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상 형태적 파격에 의한 여러 작품을 보았다. 한글과 한자의 혼용, 아예 한글만으로 짓는 언문풍월, 그리고 풍자와 해학적 성격이 강한 17자 시 등은 모두 내용상의 파격만으로 충족시킬수 없는 다양한 욕구의 분출이 마침내 한시 형질의 변화로까지 치달아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느 개인의 기발한 착상이나 파적의 장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계층 전반에 걸친 호의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파격시 창작의 문화기 충적 이해
-한계와 가능성-
지금까지 여러 갈래의 파격시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검토하였다. 이들 파격시에는 참으로 절로 손뼉과 무릎을 치게 하는 재치와 기지가 번뜩인다. 이러한 재치와 기지 만으로 이들 시는 뚜렷한 자기 위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한시의 형식성으로 대변되는 굳건한 전통적 가치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가치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표류의 과정 속에 이루어진 전형기적 양식이라는 점에서 파격시의 의의는 찾아질수 있을 것이다. 동양 문화권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시기 이러한 파격시의 출현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파격시에는 희작(戱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비록 기막힌 재치와 기발한 착상, 교묘한 의미조작 등을 수반하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것들이 지닌 속성 때문에 파격시는 결코 시대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진지한 주제를 담기에는 적절치가 못했다. 이러한 희작적 성격이 그동안 이들 파격시에 대한 학문적 무관심을 불렀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시대와 사회의 모순과 질곡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기에 충분할 정도의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였는데도, 이들 시들이 대 사회적 목소리에 등한했던 것은 확실히 파격시가 지니고 있는 분명한 한계가 아닐수 없다.
김삿갓의 좌절과 분노는 단순히 길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군상들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모순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분노와 풍자는 시대를 겨냥하지 않고 장난기의 우스개에 머물고 말았다. 또한 현재 전하는 김삿갓의 시는 실제 그의 작품만이기 보다 오히려 김삿갓으로 대변되는 제도권에서 이탈한 방외적 지식인 집단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 것이다. 이러한 희작이 일 개인의 세상에 대한 울분과 불만의 토로만으로 그치기에는 파격시의 갈래가 너무 다양하고, 창작의 충 또한 두텁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존질서에 대한 파격의 욕구가 이 시기에 오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쓰일 목적으로 갈고 닦은 학문과 포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차단 당하고, 가치관의 붕괴와 예측할 수 없는 안팎에서의 위기의식만이 고조되어 가던 tleop 파격시는 불리워졌다. 양반이 전 인구의 반에 육박하고, 사농과 공산의 가치전도가 이루어지던 세상이었다. 노론정권의 전제에 의한 세도정치가 뿌리를 내려, 이들 문벌이 들거나 여기에 줄대지 않고서는 과거 급제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매관이 공고연히 판치던 세상이었다. 도처에서 일어나던 민란이며, 횡행하던 도적떼, 과닐들의 탐학은 점점 도를 더해가고, 여기에 겹친 가뭄과 홍수, 전염병으로 나라의 기반은 바탕에서부터 흔들리던 세상이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어렸을 때부터 배워 익혔던 학문 지식이 도무지 현실에 쓰일 가망이 없고, 그렇다고 막일도 할 수 없었던 몰락한 딱산 양반들이 할 수 있는 길이란 결국 이런 파격의 희작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심심풀이의 파적으로 갈등의 심회를 달래는 일 밖에는 더 없었다. 파격시가 그 문면의 재치가 주는 재미의 이면에 늘 씀씀한 비애를 수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은 웃음인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를 지나 개화기로 접어들면서의 양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개화기의 잡지나 신문, 회보 등을 통해 발표되고 있는 여러 파격시들은 결코 발표되고 있는 여러 파격시들은 결코 자기 비애를 머금은 해학이나, 조롱과 새타이어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주제르 지향하고 있다. 이는 닥쳐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담아야 할 새로운 내용에 대한 욕구가 넘치면서, 기존 장르의 해체와 습합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예컨대 잡체시 가운데 새 울음소리를 음차하여 짓는 양식인 <禽言體>의 경우, 과거 즉 「布穀」즉 「씨뿌려라」의 의미로 음차되어 봄날의 서정을 부추기던 뻐꾹새의 울음소리는 이 시기에 오면, 「復國鳥」라 하여 빼앗긴 나라의 광복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음차된다. 언문풍월의 경우만 하더라도, 앞선 김삿갓류의 파격의 지향하고 있는 주제와는 판연히 다르다.
초기 파격시의 양상이 단순한 희화적 재치나 기지에 그쳤다면, 이를 보다 포괄적, 양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개화기의 파격시나,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 국문시가 들은 새 시대에 대한 열망과 위기 앞의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등으 주제적 차원에서 뚜렷히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파격시가 우리에게 주는 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아진다. 좌절하고 부딪쳐 나가면서도 결코 외면할 수 없엇던 시대와의 갈등에서 초기단계의 파격시가 보여주는 의식의 한계는 다음 시대에 오면 그간의 축적의 바탕 위에서 인습의 낡은 굴레를 벗어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쟁취하는 것으로서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깨어있는 의식의 자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잡체시와 파격시에 대한 장황한 논의를鱁 마무리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굳어진 인식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신의 추구가 사회 전반적 현상으로 대두되기까지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과 경험의 집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시와 같이 형식성이 강한 장르에서의 잡체시와 파격시와 같은 변이형태들의 존재는 단순한 희필의 붙이로 치부되어 버릴 속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지만, 그 정신사적 궤적을 면밀히 추적할 때 결코 일회적인 흥미거리에 머물지만 않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근자에 와서도 비시니 반시니, 혹은 형태파괴시니 하는 새로운 말하기 방식에 의한 시작에 대해 활바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시의 새로운 말하기 방식이 그 실험적 의도의 강렬성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인식하는 시대정신이나,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희필의 불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정신사적 연관이 있다면 이 또한 아마 이러한 언저리에 놓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