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원류 - 해방이후부터 1987년 상반기를 중심으로
이창경 /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연구회
머리말
유적지의 발굴 구역이 정해지면 조심스럽게 한 삽씩 흙을 퍼내기 시작한다. 그런 중에 삽의 끝을 통해 어떤 물체의 느낌이 전해져 오면 긴장과 함께 삽을 바꿔 작은 손 삽으로 흙을 걷어낸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물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부드러운 솔로 완전한 모습이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흙을 쓸어내야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발굴 작업팀의 눈 앞에 드러난 아름다운 연화문의 기와편!
언제나 발굴과 유적조사를 할 때면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우리의 유적들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현현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우리 선조의 숨결과 우리의 정서가 이어져 어떤 희열을 가져다 주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느 야산의 깨어진 돌부처나 색바랜 고옥의 벽화, 도공의 혼이 어린 도자기나 투박한 질그릇에서도 그런 희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런 유물들 속에서 우리는 맥박과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은 언젠가부터 전통문화를 상실한 채 외색과 서양문화에 채색된 국적불명의 혼합문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영화 포스터에서 연극의 내용에서 놀이의 형태에서도 심지어는 우리의 의식구조까지 우리의 것이 아닌 외래의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다. 즉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정서가 무엇인지 현재에는 분명하게 규정 지을 수 없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단체가 많아지고 점차 대중 속으로 파급되면서부터 우리의 문화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가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것을 찾고, 민족의 주체를 세우는 것이 바로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온고지신하는 올바른 자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노력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점차 확대되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민족의 유형문화재와 유적에 관한 연구실적과 역량을 재확인하고 이를 정리해 보는 작업 역시 나름대로 역량을 재확인하고 이를 정리해 보는 작업 역시 나름대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던 유형문화재에 대한 학위논문, 일반논문 등을 중심으로 연구실적을 파악해 봄으로써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고 또 그 계량적 실적을 통해 부문간의 비중 등을 알아보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본론에 앞서 유형문화재 연구에 관한 문헌적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 몇가지 잠정적 원칙을 세웠음을 밝혀둔다.
첫째, 자료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연구를 제외한 고고, 미술, 공예, 건축 및 기타 유적 등의 유형문화재에 관한 연구만을 대상으로 했다.
둘째, 유형문화재의 연구실적에 있어서 학위논문과 기타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던 일반논문을 중심으로 했다.
셋째, 시기적인 범위는 연구실적의 발표시기를 기준으로 하되 그 시점이 해방이후부터 87년까지 속한 연구실적만 선별하였다. 이같은 원칙하에서 수집된 논문을 분야별, 학교별, 연도별로 각기 구분해 비교 정리하여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계량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학위 논문의 실적현황
해방후부터 87년까지의 문화유적분야의 학위논문과 일반논문을 모두 수집한 결과 총 2천 3백 2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수치는 국회도서관에서 발행한「석, 박사 학위논문목록」과 「정기간행물목록」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한국사 논저 총목록」,「한국사 연구 휘보」등을 종합한 결과이나 87년도에 발표된 연구실적은 「한국사 연구 휘보」만의 통계로서 상반기까지의 것임을 밝혀둔다.
전체 논문을 박사, 석사, 일반으로 구분하였을 때 도표-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박사학위20편, 석사학위5백 98편, 일반논문 1천 6백 84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3분류의 논문을 각각 연도별 , 학교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박사학위논문
해방후부터 1987년 상반기까지의 박사학위논문은 총 20편이 발표되었으며, 이를 연도별, 학교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1973년에 동국대 황수영 박사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불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이화여대가 4편, 동국대가 3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박사학위 수여 학교는 모두 11개 학교로 나타났으나 동아대와 전남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는 모두 서울에 소재한 학교인 것으로 드러나 서울과 지방의 편중도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80년을 기점으로하여 그 전, 후의 연구실적을 보면 각각 10편씩 같음을 알 수 있는데, 피상적이긴 하지만 이는 70년대나 80년대나 이 분야의 연구실적이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폭넓은 분야에 걸쳐 많은 연구결과가 요망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석사학위논문의 연도 및 학교별 실적
반면 석사학위논문은 박사학위논문수보다 약 30배나 많은 총 5백 98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연도별-학교별로 분류해 보면 표와 같다.
이 표의 가로와 세로는 각각 논문의 발표 년도와 학교를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가 이를 관찰하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총 5백 98편의 논문이 57년에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효시로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에 있어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학교라는 점과 그 다음으로 동국대, 숙명여대, 성균관대, 고려대, 연세대, 홍익대 등이 차례로 논문을 발표하여 유형문화재에 관한 연구 역사가 비교적 오래된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논문의 대학별 분포를 보면 홍익대가 1백 45편으로 가장 많고 이화여대, 서울대, 단국대, 동국대, 동아대의 순으로 집계되고 있어 몇몇 특정학교에 편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지방에서는 동아대가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나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방에서 발표된 논문을 전체논문의 23.3퍼센트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넷째,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70년까지는 5~6편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었던 것과는 달리 70년대에 들어서서는 논문수가 급증하는 한편 발표 대학도 크게 확대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결과로 생각됨과 동시에 각 대학의 인원 증가 및 교육의 강화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3) 석사학위논문의 실적
다음엔 석사학위논문들을 고고학, 건축, 불교유적과 석조물, 미술, 공예 등 크게 다섯 분야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학교와 연관시켜 비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고학 관계 석사학위논문은 그 내용에 따라 묘, 석기, 청동기, 토기, 토우 유적, 기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를 학교별로 나누어 발표된 석사학위논문수를 정리하면 표와 같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0편의 고고학 관계 석사학위논문 중에서 단국대가 11편으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다음이 서울대, 홍익대의 순서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내용에 따른 논문의 분포를 보면 토기에 관계된 논문이 가장 많아 전체의 38.3퍼센트인 23편이었고, 그 다음이 묘에 관계된 논문으로써 전부 18편에 이르렀으며, 토우 8편, 유적 5편, 석기 4편의 순으로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고고학 분야의 연구성과는 아직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학이 그 실적면이나 연구에 있어 대단히 미약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분야
다음 건축분야는 건축의 개념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그 범위의 광협이 정해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협의의 개념을 적용시켜 궁궐 및 향교 등을 의미하는 건축을 비롯해 성곽, 사, 사지, 기타 등으로 분류해 이 분야의 연구실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같은 정의에 입각해 건축관계 석사학위논문을 수집해 본 결과 총 56편이 이에 해당되었으며, 이를 다시 위에서 나눈 4개 분야와 학교를 연관시켜 비교하였을 때 다음의 표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건축관계 논문은 전체 석사학위논문의 발표실적과 비교해 볼 때 앞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불교유적 및 석조물의 연구실적과 함께 가장 낮은 논문의 발표실적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도 한다.
즉 총 5백 98편의 석사학위논문 가운데 건축관계 논문은 9.4퍼센트에 불과한 56편으로 연구실적에 있어 매우 낮은 비중을 갖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요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내용별로 살펴보면 궁궐, 향교 등의 특수 건축물에 대한 연구실적이 단연코 많아 총 56편의 논문중에서 46.4퍼센트인 26편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에 절에 대한 사 연구논문이 11편이었으며 성곽이 8편의 순이었다.
학교별 발표실적에 있어서는 서울대가 11편으로 가장 높은 실적을 나타냈고, 고려대, 동국대, 홍익대의 순서로 높은 실적을 보였다.
또한
불교유적 및 석조물 분야
불교유적 및 석조물은 내용을 불상, 타파, 부도, 비, 석조물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분야는 역사성에 비해 가장 낮은 연구실적을 보이고 있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논외로 치더라도 객관적으로 발표된 논문 수만 고려한다 해도 총 52편으로 전체 석사학위논문 가운데 가장 낮은 8.7퍼센트만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표를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홍익대가 14편으로 가장 많은 수의 논문을 발표한 학교로 나타났고, 그 다음이 동국대로서 7편을 발표하였으며, 이화여대와 동아대가 각각 6편씩을 발표하여 동순위를 기록하였으나 서울대는 4편으로 고고학, 건축 등에서의 높은 실적에 비해 이 분야에서는 실적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내용별 연구실적은 불상에 대한 연구가 20편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 석조물 연구가 15편, 타파 12편의 순으로 집계되었다.
미술분야
다음으로 미술 분야의 석사학위논문을 보면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은 총 2백 68편으로 유형문화재에 대한 전체 석사학위논문 중 4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분야에 비해 압도적인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이 높은 비중을 갖게된 이유는 물론 많은 학교가 이 분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에 임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미술이란 분야가 현대사회에 있어 제학문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학문 분야라는 점이 보다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럼 총 2백 68편의 석사학위논문을 학교와 내용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학교별 분포를 보면 표에서와 같이 전통적으로 미술분야에 대해 명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홍익대가 73편을 발표하여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음이 이화여대, 서울대, 경희대의 순이었고, 동국대와 동아대는 각각 13편으로 동순위를 기록하였다.
한편 내용에 있어서는 유형문화재의 미술관계 분야를 회화, 불화, 고분벽화, 불교벽화, 암각화, 문양, 기타 등으로 나누었을 때 회화에 대한 연구실적이 1백 31편으로 압도적이었으며, 다음이 문양으로서 전부 1백 9편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불화를 비롯해 고분벽화, 불교벽화, 암각화에 대한 연구실적은 모두해서 9.7퍼센트인 26편에 불과해 이 분야에 연구가 극히 편중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공예분야
끝으로 공예는 임의적이나마 자기(磁器)·종(鐘)·와(瓦)·요지(窯址)·금속공예(金屬工藝)·목공예(木工藝)·칠공예(漆工藝)·상감(像嵌) 등으로 그 내용을 분류하여 연구실적을 조사해 보았다(표-8).
먼저 공예관계 석사학위논문을 학교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유형문화재에 대한 석사학위논문 총5백98편 중에서 27.1퍼센트에 해당하는 1백 62편이 공예관계 연구논문인 것으로 집계되어 미술분야 다음에 높은 발표 논문수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홍익대가 46편(28.4%)의 석사학위논문을 발표해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교로 지적될 수 있고 이화여대가 29편(17.9%), 숙대가 16편(9.9%), 단대가 10편(6.2%), 서울대 9편(5.6%), 동아대 7편(4.3%)의 순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1편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학교가 모두 22개 학교인데 비하여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위의 몇 개 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교는 매우 저조한 연구 실력을 보이고 있다.
한편 내용별 분포를 보면 도자기에 관한 논문이 50편(30.9%), 목공예가 33편(20.4%), 금속공예가 27%(16.7%) 등 대부분의 논문이 이들 세 개분야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음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편중 이유는 이들 분야의 공예품이 비교적 다른 유물보다 보존상태가 양호해 연구하기에 용이하다는 점과 또 양적으로도 다수의 논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대상선정에 있어 연구폭이 넓다고 하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유형문화재에 관한 석사학위논문의 분야별 실적현황을 종합해 보면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연구분야의 편중화 현상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발표된 석사학위 논문수가 총 5백98편인데 이 중 미술과 공예에 각각 2백 68편(44.8%)·1백 62편(27.1%)이 몰려 있어 결국 이 두 분야에 대한 논문이 71.9퍼센트를 차지하는 심한 불균형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물의 양적 요인이 큰 변수로 작용되기는 하나 앞으로는 다른 분야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실적을 제고 시켜야 될 것으로 사료된다.
둘째, 연구분야의 편중화 정도가 심하다는 것 외에도 동일한 분야내에서도 내용에 따른 연구실적 역시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술분야인데 총 2백 68편의 미술관계 연구논문 가운데서 회화와 문양에 각각 1백 31편(48.9%)·1백 9편(40.7%)이 편중되어 있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같은 경향은 공예부문도 마찬가지인데 자기·금속공예품·목공예품에 대한 연구논문 1백 10편을 빼고나면 여타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연구실적의 편중도가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반논문의 실적현황
개항
여기서는 석·박사학위논문을 제외한 논문 즉 각종 대학논문집·학술지·연구보고서·전문잡지 등에 게재되었던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논문을 중심으로 현황을 파악해 봄으로써 대학의 틀을 벗어난 전체적인 연구동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근대적인 학문방법이 도입된 것은 일제시대로 매우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으나 그나마도 일본인들에게 독점되다시피해 한국인들에게는 연구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현 고유섭 선생에 의해 이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축적되어 미미하게나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대학에서 연구의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6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고, 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이같은 짧은 역사를 갖는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실적을 알아보는데 있어 분류원칙을 앞의 석사학위논문의 경우를 그대로 답습하기로 한다. 그러나 내용분류에 있어서는 자료의 성질상 약간 다른 원칙하에 임의적으로 나누었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일반논문의 연구실적을 계량적으로 비교하는데 있어 석사학위논문을 대비시켜 같이 제시하였음도 부기한다.
그러면 분야별 연굿실적을 알아 보기에 앞서 일반 빛 석사학위논문의 전체적인 개황을 조망해 보도록 하겠다.
박사학위논문 20편을 제외한 일반 및 석사학위논문의 분야별 분표는 (도표4)와 같다. 즉 총2천2백82편의 논문가운데 불교유적에 관한 논문이 7백 39편(32.4%)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공예부문이 4백 41편(19.3%), 미술부문이 4백 9편(17.9%), 고고학부문이 3백 85편(16.9%), 그리고 건축부문이 3백 8편(13.5%)의 순이었다.
또한 이를 일반논문과 석사학위논문으로 대별해 양적 비교를 꾀하면 다음의(도표5)과 같은데, 전반적으로 일반논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미술분야에 있어서만은 석사학위논문의 발표실적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격차가 심한 분야는 불교 유적부문으로서 일반논문이 6백 87편으로 93.0퍼센트를 차지해 압도적인 실적을 갖고 있다.
끝으로 연대별 실적추이를 살펴보면 다음의 (도표6)에서처럼 7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유적부문은 전체적인 실적규모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반면 발전추세에 있어서는 가장 기복이 심한 분야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가장 높은 비율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는 미술인데 최근까지 집계된 연도별 발표논문수를 비교해 보더라도 다른분야를 압도하는 가장 왕성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들 5개 분야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분야별 실적
고고학분야
고고학분야의 논문을 정리하는데 있어 묘(墓)에 해당하는 석관묘·토광묘·옹관묘·고분 등은 시대적·종류적 구분없이 정리하였고, 석제유물·청동유물·골제유물 등도 한가지로 묶어 분류하였다. 또한 토기·토우 역시 세분하지 않고 한가지로 묶었으나 고대주거지와 패총에 관한 논문은 일반논문에서만 볼 수 있었던 관계로 석사학위논문의 내용분류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했다.
이렇게 정리한 고고학관계 일반논문의 연도별 발표현황을 보면(표-9)와 같다.
먼저 고고학분야에 있어 석사학위논문과 일반논문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총 385편 중에서 석사학위논문이 15.6퍼센트인 60편인 반면에 일반논문은 325편에 이르러 압도적인 위치를 보이고 있다.
이를 구체적인 논문의 성격별로 살펴보면 석사학위논문의 경우에는 해방이후 단 한편의 논문도 발표되지 않다가 1964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최근까지 묘 18편, 석제·청동·골제 등의 유적 11편, 토기·토구 등의 31편이 발표되어 모두 60편에 이르는 매우 미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비해 일반논문의 경우는 석사학위논문보다 약10년 앞선 1955년에 묘에 대한 연구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되면서 지금까지 계속 활발한 연구실적을 쌓고 있어 좋은 비교가 된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해방이후부터 50년대까지의 사회적 혼란기에는 이렇다할 논문이 거의 없고 60년에 접어들면서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내용별 실적을 보면 묘에 대한 연구가 단연코 많아 3백 25편의 고고학관계 일반논문 중에서 43.7퍼센트에 해당하는 1백 42편이 지금까지 발표되었고, 그다음으로 토기의 경우가 75편(23.1%)을 기록하였으며, 석제·청동에 대한 연구는 50편(15.4%)으로 집계되어 이 세 분야에 대한 연구실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건축분야
건축은 성곽과 일반건축(궁궐·향교 등)·가람·사지 등으로 분류하였다. 지금까지 총3백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의 (표-10)과 같다.
이 표에 나타난 바를 보면 총3백8편의 논문중에서 석사학위논문은 56편으로 18.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58년에 처음으로 연구논문이 발표된 후에도 상당기간 연구실적이 부진하다 74년에 들어오면서부터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일반논문은 무려 10년이란 기간을 앞선 48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하였지만 60년대에 들어와서야 상당량의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양적 비교에 있어서는 석사학위논문이 56편, 일반논문이 2백 52편(81.8%)으로 약 4.5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내용별 연구실적을 비교해 보면 석사·일반논문 둘다 건축·사·사지 등에 대한 연구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각각 48편·2백4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집계되어 성곽연구에 대한 관심이 요망되고 있다.
불교유적 및 석조물분야
구체적인 내용구분에 있어 석사학위논문은 불상, 타파, 부도, 석조물·비로 구분하고 일반논문은 불상, 타파, 부도·사리장치, 석조물·비로 나누었다. 이러한 구분을 연도별로 정리하면(표-11)과 같은데,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교유적과 석조물관계 논문들이 유형문화재의 제분야 중에서도 가장 많은 논문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박사학위논문까지 합한 총 2천3백2편의 논문중에서 이 분야의 석사·일반논문만이 7백39편(32.1%)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고,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둘째,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석사학위논문보다는 일반논문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왜냐하면 7백 39편의 불교관계 논문중에서 일반논문이 6백87편으로 9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별 연구논문 수의 편중도에 있어서는 석사·일반논문 모두 불상연구에 치중되어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일반논문 6백87편 중에서 불상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38.7퍼센트로써 2백66편에 해당하고, 석사학위 논문의 경우는 52편의 논문중에서 20편(38.5%)이 불사에 관계된 논문임이 밝혀졌다.
미술분야
미술분야는 회화·불화·벽화·암각화·문양 등으로 구분하되 일반논문에서는 단청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것을 연도별로 정리하면(표-12)와 같은데 이 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체 논문이 4백9편인데 비해서 회화에 관계되는 석사학위논문이 1백32편으로 3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용적인 중복도 많겠지만 무엇인가 논문의 질적 수준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이에 반해 일반논문은 44편으로 오히려 석사학위논문보다 적은 수를 보이고 있다.
둘째, 그러나 불화와 벽화의 연구에 있어서는 일반논문이 71편, 석사학위논문이 27편으로 미술에 대한 연구시각은 석사학위와 일반이 매우 상이함이 드러났다. 즉 석사학위의 경우는 회화와 관계된 논문이 1백32편으로 가장 많았음이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중복설명을 피한다해도 그 다음으로 높은 발표실적을 갖고 있는 분야가 문양에 대한 연구로서 1백9편에 이르는 것과는 달리 일반논문에 있어서는 석사학위논문수 중에서 제일 저조한 불화·벽화에 대한 연구실적이 가장 높아 전부 71편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회화가 44편, 문양이 26편으로 석사학위논문의 경우와는 순서에 있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예분야
공예는 내용 분류상 그 범위가 상당히 넓지만 여기에서는 자기, 종, 와. 요지, 기타공예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하여 범위를 압축시켰다. 이것을 연대별로 정리한 것이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석사학위논문과 일반논문의 양적 대비를 관찰해 보면 이 분야의 논문 총 4백 41편 중에서 일반논문은 2백 82편으로 63.9퍼센트, 석사학위논문은 1백 59편으로 36.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 내용별의 집중도는 석사학위논문의 경우 금속, 목공, 철, 상감 등의 공예품 연구에 1백 4편이 몰려있고, 일반논문의 경우는 종, 와, 요지 등의 연구에 1백 45편의 논문이 편중되어 있어 이 분야 역시 내용에 따른 관심이 다 큰 차이를 갖고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같은 예는 자기에 관한 논문수를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석사학위논문의 경우는 50편, 일반논문의 경우는 20편으로 절대치의 차이만도 2.5배에 이르지만 점유율의 차이는 이보다 더 현격해 석사학위의 경우는 31.4퍼센트인 반면 일반논문의 경우는 7.1퍼센트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자기에 대한 연구에 있어 한가지 더 부언해 두고자 하는 점은 연구 대상물인 자기의 양적인 우월성에 비해 연구논문수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는점이다. 원래 공예부문의 연구는 조사된 자료에 입각해 보더라도 어느 특정 내용에 편중됨이 없이 고르게 연구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자기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그러나 연구대상물의 풍부함에 비한다면 그 같은 불 편중성은 별의미가 없는 수치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연구실적이 기대되는 것이다.
맺음말
본고는 지금까지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논문을 연도별, 학교별, 분야별로 분류하여 다각도로 그 현황을 살펴보았다.
비록 이 글이 해방이후부터 87년 상반기까지 발표된 유형문화재 연구논문을 집계해 정리하고 개황을 밝히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째, 연구분야의 편중화가 두드러진 현상이라는 점이다. 박사학위논문은 총 2천 3백2편 가운데 20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논의로 차지한다 해도 석사학위 논문과 일반논문의 경우는 이같은 현상이 매우 심해 균형있는 연구가 요망되는 실정이다. 또한 분야별 편중보다도 더 심한 것은 바로 연구실적의 내용별 격차에 있음도 강조해 둔다.
둘째, 또 한가지의 편중화로써 중앙과 지방의 현격한 실적차이를 들 수 있다. 재료의 여지없이 중앙에 위치한 대학에서 발표된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물론이고, 같은 중앙이라해도 실적의 대부분이 몇 개 대학에 집중되어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유형문화재에 대한 연구는 한마디로 중앙의 몇 개 대학에서 몇가지 내용만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 조사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셋째, 시기적으로는 다수의 논문이 70년대 이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반논문은 50년대 말부터 발표되기 시작했지만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성과는 해방이후의 혼란기와 50년대 초의 황폐기를 거쳐 60년대의 사회적 중흥기 이후에야 가능했던 것으로 이는 불가항력적인 시대상황을 반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연구논문의 절대부족이다. 아직 우리의 문화유적연구의 단계는 실증적인 사실 확인에서 조금 발전된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을 좀더 과학적으로 개발시키고 타학문과 연결하여 비교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연구들이 창출되어야 한다.
다섯째, 넷째와 관련된 것이지만 고고학관련 논문이 적다는 것이다. 중세기의 유적 연구논문들은 상당량 있는 반면에 사라진 문화유적에 관련된 연구 논문들은 상대적으로 적어 우리 고대의 역사, 문화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이 분야는 상당한 재력과 훈련된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로서 정책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여섯째, 논문의 질적 수준의 문제이다. 80년들어 논문의 숫자는 크게 늘었으나 독창적인 논문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인상이 짙다. 심지어는 제목조차 같은 연구논문들도 많았다, 이같은 현상이 탐구작업의 증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인력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유적 관련논문을 정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공별로 연구발달을 정리한 논문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연구들이 학문 속에서만 논의되고,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서 개발되어 우리에게 관심과 즐거움으로 다가올 때 우리민족의 문화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주체성있는 민족문화로 세계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분야에 관련 있는 모든 사람과 국민 모두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며 그날이 성큼 다가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그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