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 공간 속의 문학기행
박덕규 /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82년 중앙일보 신춘 평론 입선.
시집으로「아름다운 사냥」(문학과지성사) 등이 있음.
우리 문학을 배태시킨 지역문화공간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씌어지는 이 글은, 자료 제공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우리 소설사가 어떤 문화적 토양 위에 형성되고 있는가 그 문화 거점을 파악하게 하는 한 가지 시도로서 제시될 수 있으리라 본다. 신문학 이후의 우리 소설사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대상으로 삼았으나 필자의 의도에 따라 그 공간적 특성을 추출하기 쉬운 작품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소설의 작중 무대가 되는 직접적인 지역 공간뿐 아니라 작가의 중요한 창작 동기가 되었을 작가적 상상 공간까지 아울러 밝히고자 애쓴 것은 창작이 가지는 자유로운 공간 이동의 방식을 인정한 결과이며, 따라서 그런 특징을 알기 쉽도록 작중 무대로서의 공간, 역사소설의 공간, 상상적 공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작중무대로서의 공간
1) 지리적 공간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으로부터 환경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경험했던 곳, 지금 삶의 무대가 되고 있는 곳으로부터 의식적,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적 상황을 설정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지명을 밝히고 그 지명의 실제 특성 지역을 무대로 사건을 엮어나갈 수도 있고, 구체적인 지역 묘사는 하지 않아도 자기의 경험에 의해 얻어진 무대를 설정하여 사건을 꾸며가기도 한다. 그 지역, 그 무대를 찾아내는 일은 그 작품, 그 작가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① 행정구역상의 공간(표1 참조)
분단 조국에서 소설의 작중무대를 행정구역 별로 유형화시키는 일이 우리 민족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될지 모른다. 특히 우리 소설에서 이북 체험을 밝힐 때 그렇다. 그런데 상처를 드러냄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함경도가 작중 무대인 작품은, 바로 함경도가 고향인 최서해의「紅焰」과 이효석의「들」, 김동리의「興南撤收」등을 들 수 있다. 함경도는 일제 때 굶주림을 못 견딘 내지인들이 옮겨가 살기 이전까지는 문화적 공간이 못됨은 물론 생활적 공간조차 될 수 없었던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때문에 소설의 작중 무대로 등장하는 예가 흔치 않았다.「紅焰」도 두만강 서북쪽 폐허「白河」를 무대로 한 작품이라 뒤에 설명될 안수길의「북간도」와 더불어 간도문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들」은 어두운 시대에 함경도의 자연 속에 은둔한 한 지식인의 얘기이고,「興南撤收」는 6·25때 북진했던 국군과 그곳 주민들이 흥남 항구 경도 땅으로 삼은 예는 흔치 않다.
행정구역상의 공간 유형(표1)
공 간 |
대 표 작 |
함 경 도 |
이효석「들」, 최서해 「홍염」, 김동리「흥남철수」, 안수길「북간도」 |
평 안 도 |
이광수「흙」·「무정」, 김동인「배따라기」·「감자」,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계용묵 「백치 아다다」, 황순원「카인의 후예」·「별과 같이 살다」·「노새」, 선우휘「불꽃」·「노다지」 |
황 해 도 |
「임꺽정」, 박경리「시장과 전쟁」, 황석영「장길산」 |
서 울·경 기 |
염상섭「삼대」, 이상「날개」·「종생기」, 현진건「운수좋은 날」, 나도향「벙어리 삼룡이」, 황순원「명」, 최인훈 「광장」, 김승옥「서울 1954년 서울」, 최인훈 「타인의 방」, 박완서「도시의 흉년」, 김용성「도둑일기」,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태순「야촌동 사람들」, 윤흥길「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강석경「숲 속의 방」,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
강 원 도 |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동백꽃」·「산골 나그네」, 김원일「환멸을 찾아서」 |
충 청 도 |
방영웅「분례기」, 이문구「관촌수필」,김주영「객주」 |
전 라 도 |
채만식「탁류」, 송기숙「자랏골의 비가」·「암태도」, 서정인「달궁」·「철쭉재」, 유흥길「장마」·「완장」, 문순태「징소리」, 김승옥「무진기행」, 한승원「불의 딸」 |
경 상 도 |
김동리「무녀도」·「황토기」, 염상섭「만해전」, 박경리「토지」·「김약국의 딸들」, 이동하「장난감 도시」, 김원일「노을」·「불의 제전」, 김주영「천둥소리」 |
제 주 도 |
이청준「이어도」, 현기영「변방에 우짖는 새」, 현길언「열전」 |
만 주 |
김동인「붉은 산」, 안수길「북간도」, 김동리「등신불」 |
미 국 |
최인호「깊고 푸른 밤」, 우희태「숫자의 행방」 |
일 본 |
이병주「관부연락선」, 손창섭「낙서족」, 이문열「영웅시대」 |
월 남 |
황석영「탑」, 박영한「머나먼 쏭바강」 |
기 타 |
최인훈「태풍」, 최상규「나방과 거품」, 고원정「거인의 잠」 |
평안도가 작중 무대인 작품은 주로 평안도가 고향인 작가들, 이를테면 김동인·황순원·김이석·선우휘들에 의해 나타났다. 삼월 삼짇날 대동강 정경이 잘 나타나 있는「배따라기」, 평양을 배경으로 하는「감자」,「김연실전」등이 김동인의 작품이다. 평안도가 고향이진 않지만 염상섭도 자신을 자연주의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로 평가받게 해 준「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작중 무대로 대동강 부근을 택했다. 2차대전 직후의 평양의 모습을 담은「카인의 후예」와 「별과 같이 살다」에도 평안도 지형과 지명이 곳곳에 나타난다. 정주가 고향인 춘원도「無情」에서의 평양을,「흙」에서 평안도 산골 어느 마을을 각각 설명하고 있다.
황해도는 지역적으로 서북 지방의 산물이 서울로 수송되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조 때 관리들의 부패가 심하던 시절에는 이 지역에 도적이 들끓어 서북에서 서울로 향하는 봉물짐을 가로채는 일이 잦았다. 소설「임꺽정」이 바로 멸악산맥의 한 골짜기 청석골에 본채를 두고 봉물짐을 가로채는 것으로 의적 무리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던 임꺽정의 이야기이다. 홍길동·임꺽정과 더불어 조선조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지는 장길산의 일대기를 담은「장길산」의 주무대는 구월산인데, 이 소설에선 황해 바다나 장산곶에 대한 묘사도 군데군데 있다. 박경리의「시장과 전쟁」은 여고 교사의 눈을 통해 6·25직전의, 전쟁터와 다름없는 연안 장터의 삶을 보여준다.
서울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오래고 변함없는 문화 중심지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사회인인 인간은 누구나 사회 중심 지향의 의식을 갖게 마련이다. 변동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개화 이후 줄곧 서울 지향의식을 드러내 왔다. 문학이 삶의 양상을 드러내는 일이고 보면, 시대의 선각자적인 역할까지 담당해야 하는 작가들에게도 이러한 의식은 팽배해 있을 수박에 없었고, 따라서 서울의 삶은 우리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뿌리뽑힌 삶」의 양상이 되었다.
1930년대 서울 서대문 쪽에 살던 만석꾼 조씨 집안 3대의 몰락 과정과 당대 시대 변동에 따른 의식의 변모과정을 묘파한「三代」(염상섭), 남산 밑 유곽촌의 한 가정을 주무대로 백화점·다방·서울역 등을 그린「날개」(이상), 인력거꾼이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운수좋은 날」(현진건), 1920년대의 남대문 밖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벙어리 삼룡이」(나도향) 등이 서울 무대의 소설들이다. 또한 6·25 후 서울에서 생활기반을 마련한 황순원·이범선·이호철·오상원 등의 월남작가들의 실향민 소재 작품들, 서기원·손창섭들의 전후 작품에 이어 새로운 도시적 감수성으로 등장한 김승옥의「서울 1964년 겨울」등의 도시소설, 이청준·조해일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70년대 작가들의 도시 체험적인 소설들이 우리 문학의 질적·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서울을 무대로 삼은 소설들이다. 김용성의「도둑일기」는 6·25 전쟁고아 3형제의 성장을 통해 4·19 무렵까지의 서울의 변모를 보여준다.
행정의 서울 지향화, 서울의 인구 팽창으로 인해 서울 변두리 또는 주변 도시에 산업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는데, 그들의 위성 도시적 삶은, 서울 외곽의 한 지역을 무대로 삼은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서울 재개발지구의 철거민들이 이주해 집단적으로 마을을 이룬 성남시 단대동 무대의 윤홍길의「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이 동서로 땅을 가라놓은 지형을 하고 있어 같은 지방이라도 바다와 산악의 양면성을 지니는 곳이지만 우리 소설에서는 산골 무대가 우세하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 봉평이란 산골이 무대이고, 김유정의「동백꽃」,「산골나그네」도 산골이 무대다. 김원일의「幻滅을 찾아서」는 해류를 타고 북에서 흘러 내려온 한 권의 비망록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산문제 소설로 주무대는 속초 부근의 해안도시다. 윤후명의「귤」등에서도 강원도 바닷가가 나온다.
충청도를 무대로 한 것은 이문구의「관촌수필」과 방영웅의「분례기」가 눈에 뜨이는데, 그밖에 충청도를 주무대로 삼은 작품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전라도를 무대로 하는 소설은 채만식의「탁류」를 대표로 들 수 있다.
군산은 일제 식민지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개항된 항구다. 이 항구 도시로 마치 금강의 흐린 강물이 흘러 황해로 몰리듯, 각 도에서 금전에 눈 먼 사람들이 몰려들어 탁류를 이루며 들끓게 되는데,「탁류」는 그런 군산항을 무대로 1930년대 한국 사회상의 단면을 표출해 냈다.
전라도는 그 넉넉한 토양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버림받은 지역이다. 조선조 때도 전라도 출신들은 출세길이 막혀 있었고, 함경도나 섬 지방과 더불어 죄 지은 사람들이 가는 유배의 땅이 되었다. 일제 때는 양곡 수탈지가 되었고, 6·25의 참화는 피난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지방 사람들의 생활 근거마저도 짓밟아 놓았다. 이러한 역사로부터의 버림받음은 도리어 문학적 토양을 튼튼히 해준 점이 되었다. 전라도 문학에는 언제나 뿌리깊은 한이 서려 있었다.
6·25당시 계층간의 충돌로 한 부락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송기숙의「자랏골의 悲歌」, 이데올로기의 재물이 된 한 가정의 샤머니즘적 화해를 그린 윤흥길의「장마」, 버림받은 자들의 은둔처 지리산을 무대로 하는 서정인의「철쭉제」·「달궁」, 서해 바닷가의 설화적 한을 그린 한승원의「불의 딸」등이 전라도를 무대로 전라도의 한, 우리 민족의 한을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김동리의「황토기」,「무녀도」, 박경리의「김약국의 딸들」,「토지」,김원일의「노을」·「불의 제전」, 이동하의「장난감 도시」연작 등은 경상도를 주무대로 한 소설들이다.「무녀도」는 경주,「황토기」는 금오산 밑의 작은 마을,「密茶苑時代」는 피난 시절 부산에서 문인들이 드나들던 다방,「만세전」은 부산,「김약국의 딸들」는 충무,「토지」는 경남 하동,「노을」은 진영이 무대이다.「장난감 도시」연작은 6·25 직전의 대구 부근의, 가난에 찌든 판자촌 주민·피난민들의 삶을 묘파한 수작이다. 경상도는 천년 신라 역사의 토양인 데다가, 조선조 때도 역사의 주체적 세력으로 부각된 경우가 많았다. 동학 때는 전라·충청과 더불어 민란의 대표적 근거지가 되기도 했고, 6·25 때는 피난민들이 몰리고 마지막 후퇴선언이 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경상도를 무대로 한 소설들의 공간은 다음 세 가지로 유형화될 수 있다.
ⅰ) 김동리의 소설로 유형화될 수 있다.
ⅱ) 「만세전」,「토지」,「노을」로 대표되는 역사의 주체적 힘의 공간
ⅲ) 「장난감 도시」로 대표되는 피난 공간.
한 시인이 말했듯 제주도는「원래 싸움터」인, 그래서 사람 살기 힘든, 바람 잘 날 없는 섬나라였다. 오래고 오랜 소외의 땅이었다. 그 곳의 삶은, 「이어도」(이청준)에서 보듯, 시원적 세계에의 그리움을 가진 자연과의 합일만을 추구해도 영위가 가능한 삶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토호 세력과 부임 관리들과의 타협 또는 마찰 속에서, 삼별초의 마지막 항몽처로서, 유배지로서, 천주교도 세력에 도리어 핍박받는「변방에 우짖는 새」(현기영)들의 항쟁처로서, 서로가 승리자 되기를 포기한 4·3 사건의 동족상잔의 현장으로서, 거듭 역사로부터 소외되어온 사람들의 삶이었다. 현길언의「列傳」연작은 바로 4·3 사건 등의 역사로부터 피해 당한 섬나라 사람들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지도에는 없는 땅도 우리의 문화적 토양으로 실존했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만주 체험이다. 김동인의「붉은 산」, 김동리의「등신불」이 있는가 하면, 안수길의「북간도」에는 가장 먼저 간도를 개척했던 이주민들의, 한민족으로서의 영토의식이 잠재되어 있다.「토지」2부의 무대가 용정이란 점도 주목거리다. 해방 전 우리 민족이, 이주민으로서, 장사꾼으로서, 망명객으로서, 마적패로서, 독립운동가로서 숨쉬고 있던 그 만주 땅은 원래 우리 한민족의 영토이지만 지금은 중공 땅이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 인구 백만이 넘는 조선인 자치부락이 있어, 1930년대 무렵의 조선인 옷을 입고, 우리말과 우리 글을 사용하며, 우리말로 된 문학을 읽고 쓴다니, 새로운 간도 문학을 기대해 봄직도 하다.
일본을 무대로 한 소설로는 이병주「관부연락선」, 손창섭의「낙서족」등과 이문열의「영웅시대」등이 있고, 남의 나라 땅 월남에서 청춘의 피를 흘린 체험은 황석영의「탑」, 송기원의 「경외성서」, 박영한의「머나먼 쏭바강」,「인간의 새벽」으로 나타나고, 부의 표상인 미국에서의 체험은 최인호의「깊고 푸른 밤」, 이연철의「그리운 꿈」등으로 잘 나타난다.
이밖에 유홍종은「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에서 네덜란드를, 최상규는「나방과 거품」에서 쟈이레를, 고원정은「거인의 잠」에서 가상의 아프리카 신생국을 무대로 설정했으며, 최인훈은「태풍」에서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을 무대로 삼아 한국과 미·일의 정치 관계를 우의적으로 표출시켰다.
②생활공간<표2 참조>
작가가 특정한 지역을 무대로 삼더라도 그 지명을 확실히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는 지명을 확실히 밝히더라도 그 지역이 작중 사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 배경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그 지명 이름이나 지명의 실제 장소에 애써 관심을 두는 일은 작품 이해의 저해 요인을 스스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보다는 작중의 생활 배경, 인물의 주변 환경에 관심을 두는 것이 작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될 것이다.
표2에서 보듯, 우리 소설의 작중 무대는 거의 대도시로 되어 있다. 해방 전후에는 그 대도시가 서울·부산·평양·대구 등지로 독자성 있는 대도시 형태를 보이고 있었는데, 6, 25·4, 19를 거쳐 경제 성장 정책하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서울 중심 문화권의 급진적인 확장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서울 중심적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고, 따라서 소설 속의 도시는 거의 서울의 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묘사되게 되었다. 앞서 밝힌 서울 지역을 무대로 한 소설들이 대표적인 도시무대 소설이 된다. 김승옥·최인호 등의 도시적 감수성도 그들의 생활 배경이 되고 있는 서울 무대의 소설을 통해 잘 발휘되고 있다.
기타「난장이…」(조세희) 연작,「아홉켤레…」(윤흥길) 연작 등, 공단·위성도시·회사 등에서 얻어진 70년 대적 체험과 「귀머거리 새」(양귀자),「무너질 청년」(김원우) 등 소시민적 삶에서 얻어진 80년 대적 체험은 도시 문학의 깊이를 더해준, 소설 공간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농촌 무대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주로 해방 이전 작가들의 어떤 시대적 사명감의 소산이라 볼 수 있는 ⅰ) 계몽주의적 성향의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파행 역사에 대한 의지적 맞섬의 인식에 관련된 ⅱ) 민중주의적 성향의 소설이 그것이다. 춘원의「흙」, 심훈의「상록수」, 이무영의「제1과 제1장」, 박영준의「모범 경작생」등의 농촌소설들은 ⅰ)의 유형에, 채만식의「논 이야기」, 손기숙의「자랏골의 悲歌」 ,「岩泰島」, 이문구의「관촌수필」, 문순태의「정소리」들은 ⅱ)의 유형에 각각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ⅱ)유형의 작품들은 대개 외부 상황에 의해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의 가난한 삶이 주된 내용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소설 속에서의 산은 대체로 세 가지의 빛깔을 띠고 있다.
ⅰ) 이효석·김유정에서 보는 자연적인 산
ⅱ) 임꺽정·장길산에서 보는 은둔적인 산
ⅲ)「지리산」(이병주)·「청둥소리」(김주영) 등에서 보는 사상적인 산
이중 특히 ⅲ)의 빛깔은 여순 반란사건·빨치산 등의 내용을 배경에 깔고 있는 윤흥길·문순태·김원일 등의 소설 속의 산에서 자주 나타난다.
우리 소설에서는 여섯 개의 중요한 강을 찾을 수 있다 <표2-1참조>. 두만강은 안수길·최서해 들의 간도 문학에서 이주민의 생활 근거로서 묘사되고 있고, 대동강은 낭만적인 봄 놀이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강은「샛강」을 사는 서민들에 의해 그 파란 많은 역사를 드러낸다. 낙동강은 삶의 공간으로서의「모래톱 이야기」를 지나「도요새에 관한 명상」에 이르러 폐수로 오염되어 철새조차 내려와 앉기를 거부하는 비자연적인 강이 되었다. 금강은 격동하는 시대에 황금 만능의 인간들이 이루는 탁류가 되고 있고, 섬진강은 한 때 곡창 지대의 넉넉한 젖줄이었다가「토지」에서처럼 차츰 그 힘을 탕진해 간 몰락 대지주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
어촌이 무대가 된 소설은, 부산 일광 부근의「갯마을」(오영수)과 통영 부근 바닷가의「波市」(박경리)가 있다. 광산촌은, 광부들의 임금 문제를 표면화시킨「달과 까마귀」(박기동), 개화기 열강의 반도 침략을 그린「노다지」(선우휘), 갱내의 광부들을 묘사한「地層」(전광용)에서 보인다.
기지촌은 양공주를 주인공으로 세운「黃拘의 悲鳴」(천승세), 구두닦이 소년의 눈에 비친 전후 기지촌의 타락상의「리킴」(송병수), 동두천 양공주들의 애환을 그린「아메리카」(조해일) 등과 1980년대 들어 한국 속의 미국으로 일컬어지는 이태원의 신식 매춘부의 당당한 생활을 담은「밤의 요람」(강석경)에서도 나타난다.
생활배경의 공간유형 (표2)
공 간 |
대 표 작 |
도 시 |
김동인「감자」·「김연실전」, 염상섭「삼대」·「만세전」, 황순원「카인의 후예」, 현진건「운수좋은 날」, 이상「날개」, 김용성「도둑일기」,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최인호「타인의 방」 |
위 성 도 시 |
조세희「난장이…」, 윤흥길「아홉 켤레…」, 양귀자「귀머거리 새」 |
산 골 |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산골 나그네」, 유재주 「또 하나의 계곡」, 서정인「달궁」, 이병주「지리산」, 황석영「장길산」 |
농 촌 |
이광수「흙」, 심훈「상록수」, 이무영「제1과 제1장」, 박영준「모범경작생」, 이문구「관촌수필」·「우리동네」, 송기숙「자랏골 비가」·「암태도」, 하근찬「수난 2대」, 방영웅「분례기」 |
강 변 |
표 2-1 참조 |
어 촌 |
오영수「갯마을」, 박령리「파시」 |
광 산 촌 |
전광용「지층」, 박기동「달과 까마귀」, 선우휘「노다지」, 최성각「잠자는 불」 |
기 지 촌 |
천승세「황구의 비명」, 송병수「쑈리 킴」, 조해일「아메리카」, 강석경「밤과 요람」 |
섬 |
계용묵「백치 아다다」, 송기숙「암태도」, 이청준「이어도」·「당신들의 천국」, 강용준「철조망」 |
군 대 |
김용성「리빠똥 장군」, 조해일「멘드롱따또」, 이문열「새하곡」 |
학 교 |
현진건「B사감과 러브레터」, 유진오「김강사와 T교수」, 전상국「우상의 눈물」, 김국태「우리 교실의 전설」, 현길언「급장선거」 |
가 정 |
현진건「빈처」, 전상국「고려장」, 박완서「나목」, 오정희「전갈」, 서영은「먼 그대」 |
화 실 |
김동인「광화사」, 이청준「병신과 머저리」, 이제하「유자약전」, 강석경「밤과 요람」 |
회 사 |
윤흥길「아홉 켤레…」, 조세희「난장이…」, 김원우「이목구비」, 정종명「이명」 |
소설 속의 여섯 개의 강 (표 2-1)
강 |
작 품 |
두 만 강 |
안수길「북간도」 |
대 동 강 |
김동인「배따라기」 |
한 강 |
이정환「샛강」 |
금 강 |
채만식「탁류」 |
낙 동 강 |
김정한「모래톱 이야기」, 김원일「도요새에 관한 명상」 |
섬 진 강 |
박경리「토지」 |
섬을 무대로 하고 있는 소설은 우선 평북 선천군 신미도(身彌島)를 주무대로 설정한「백치 아다다」(계용묵)을 들 수 있다. 한 때 아다다가 낙원으로 알던 그 섬은 남편의 물신화로 인해 죽음의 섬이 되고 만다. 어민들의 삶을 그린「흑산도」(전광용),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그린「철조망」(강용준), 일제 때 암태도 소작인들의 쟁의(爭議)를 다룬「암태도」(송기숙), 나환자촌 소록도를 무대로 해서 인간의 명예욕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던「당신들의 천국」(이청준)들이 섬 무대의 소설들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보통 남자로서의 작가들이 경험한 군대도 자주 작중 무대로 등장하는데, 권력 지향의 인간상을 극렬하게 표출한「리빠똥 장군」(김용성), 병영에서의 우화적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집단 속의 개인의 나약함을 말한「멘드롱따또」(조해일), 전쟁 없는 시대의 군 생활에 대한 허무의 시기를 그린「塞下曲」(이문렬)들이 대표적인 예다.
또 작가가 직접 교단에 섰던 체험을 살려 학교 또는 학생 주변 환경을 무대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비개방적인 여학교 기숙사를 무대로 한 현진건의「B사감과 러브레터」,「우상의 눈물」(전상국),「우리 교실의 전설」(김태국),「급장선거」(현길언)등이 대표적인 예다.
작가로서 미술을 전공했거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일 경우 화실이나 기타 미술적 공간을 무대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있는 김동인이「狂畵師」를 썼고, 이제하도 그의 회화 경험을 크게 이용하여 우리 소설에 미술적 공간을 확보해 두는데 성공했다. 이청준도「병신과 머저리」에서 화실에서의 완성하지 못한 인물화에 대한 집착을 주제 부각의 매개물로 삼고 있고, 강석경도「밤과 요람」등의 많은 단편에서 주인공의 인생관 변모를 화실 생활에 두고 있다.
대가족 제도가 붕괴하고 핵가족 제도가 정당화되면서 가정적인 것, 가족적인 것도 갈등의 대상, 묘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는데, 가난한 작가의 가난한 아내「빈처」(현진건)를 필두로, 핵가족 시대의 노인문제를 부각시킨「고려장」(전상국), 박완서의 가족 소설, 잘 살아보려는 지식인 부부의 잘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富者實習」(이순), 외국 간 교수 남편이 돌아오기 전날의 조바심을 그린「전갈」(오정희) 등의 단편들, 전남편에게 아이까지 빼앗기는 한 이혼녀의 메마른 눈물「먼 그대」(서영은)들이 가정을 무대로 한 소설들이다.
도시인들의 직업 공간으로 등장한 회사는,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노동 문학에 거쳐 80년대와 들어와「耳目口鼻」(김원우),「耳鳴」(정종명) 등의 작품들 속에서 이미 직업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위에「군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③ 작중의 공간 이동
한 작품에서 한 가지 차원의 공간만이 설정되는 것은 아니다. 작중 인물이 다양하거나 작중 시대가 포괄적일 경우 작중 무대는 몇 가지 차원의 공간을 더 획득하게 된다. 이를테면 황순원의「별과 같이 살다」는 주인공은 인생 행로에 따라 그 작중 무대 또한 대구 부근→서울→평양으로 옮겨간다. 김주영의「객주」또한 조선 말엽 보부상들의 장터 순례 길을 쫓아 문경 새재로 군산으로 남원으로 작중 무대를 바꾸어 간다. 또 우리에게 분단의 현실과 이천만 이산가족을 낳게 했던 6·25로 인한, 작중 무대로서의 공간이동을 설정한 소설들이 있다.
6. 25에 의한 공간이동 유형 (표 2-2)
유 형 |
이동로 |
작 품 |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이동 |
남 -> 북 |
최인훈「廣場」, 이문열「英雄時代」 |
순수이산형 이동 |
북 -> 남 |
전상국「아베의 家族」, 유재용「짐꾼 이야기」 등 다수 |
6·25를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조명한 소설이 많지 않지만, 그 때문에「광장」과「영웅시대」는 중요한 작품이다. 남한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환멸과 아버지가 북의 고관으로 있다는 점으로 이북행을 행한 이명준「광장」, 해방 이전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가 6·25전 북행한 남로당원 이동영「영웅시대」의 이동은 우리 문학에서 가지기 어려운 공간 이동이다. 이에 반해「아베의 가족」(전상국)이나 유재용의「짐꾼 이야기」「古木」등 중단편들은 6·25로 파생된 이산가족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 이동형 소설들이다.
2) 특수상황의 공간 <표3 참조>
인간은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항상 나름의 자기 얼굴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세계와 맞부딪칠 때 자신의 보통얼굴, 보통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말이 없이 온순하기만 하던 사람도 군중 속에 어울리면 고함도 치고 돌도 던진다. 가난한 군중 속에 어울리면 고함도 치고 돌도 던진다. 가난한 머슴살이로 만족하던 삶에 완장을 주고 죽창을 주니까 모든 세상이 뒤바뀌어져야 한다고 믿는 당원이 되었다. 환경 변화에 따른 인간의 심리 변동을 윤흥길은「완장」을 통해 묘파한 적이 있다.
이렇듯 인간이 전에 없던 경험과 맞부닥치게 됨으로써 도리어 그 본래의 진정한 인간 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작가는 자주 소설 속에 특수한 상황을 설정해 둔다. 실제로 6·25 탈영병으로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있었던 이정환은「가치방」에서 감옥이라는 특수 환경 속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강용준은 그 안에서 인염의 투쟁이 극렬해서 도 하나의 동족 상잔이 벌이고 있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야기를「鐵造網」에 담았다. 이호철의「天上天下」, 송영의「선생과 황태자」는 어떤「사상」과 관련있는 사람들의 감옥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버스도 곧잘 한계 상황으로 제공되는 무대이다. 조해일의「心理學者들」은 버스 안에서의 소매치기 발생이라는 특수 상황적 공간 부여가 돋보이는 작품이고, 최인훈의「웃음소리」, 이청준의「살아있는 늪」도 버스 안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승객으로 꽉 찬 열차 안 상황은 송영의「中央線汽車」에 주어졌다. 공원을 무대로 한 소설은 이청준의「잔인한 都市」가 있다.
그밖에 병원이라는 상황도 매우 좋은 소설적 무대가 될 수 있는데 이청준의 데뷔작「退院」이나 최인호의 데뷔작「見習患者」또는 김정한의「第3病棟」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역사소설의 공간 <표4 참조>
작가는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지대, 지나간 시대를 추체험할 수 있다. 이 일로써 현 시대의 안목으로 지나간 역사를 재조명하고 평가하는 역사 소설의 형식을 얻을 수 있는데 이 형식은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역으로 현재를 더욱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흔히 있는 야담류, 전기류(傳奇類)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데, 특히 춘원·월탄 소설들과 같은 왕 중심의 궁중 비사류(秘史類)는 대부분 흥미 본위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적인 역사소설을 기대하는 뜻에서 관심 밖으로 내몰았다.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공간으로 한「춤추는 司祭」(이청준),「그 찬란한 날개의 黎明」(이문열), 조선 중종조의 정당을 배경으로 조광조의 정치적 야망과 시대적 좌절을 그린「王祖의 祭壇」(서기원), 시대의 부패에 따른 도둑촌을 배경으로 한「임꺽정」, 「장길산」(황석영), 조선 정조·순조 시대 천주학·실학의 보급과 박해 상황 위에 전라도 강진과 서울 등을 무대로 정약용과 그의 조카 정하상의 일대기를 그려 낸「만남」(한무숙), 조선 말엽 보부상들의 상업로를 따라 전국의 장터, 주막을 그린「客主」(김주영), 6·25를 전사적 차원에서 그린「남과 북」(홍성원) 등의 작품은 우리 소설문학의 공간을, 시대를 뛰어넘어 확대시킨 소설이다. 또 역사소설의 범주에 들 수는 없지만 조세희의「시간여행」은 오늘날의 정국으로부터 5. 16·6. 25·식민지시대·왜란·호란·고려대의 피침·5천년의 역사를 두루 살피고자 했던, 상황 이동형 소설이랄 수 있다.
상상적 공간 <표5 참조>
작중 무대로서의 지역이나 의도에 의해 부여된 상황이라는, 구체적 의미의 소설 공간은 아니지만, 작중 인물을 현 존재로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적 공간이 소설 속에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우리 소설사에서 배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이 경우 그 상상적 공간에 보다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작가의 세계관이나 창작 의도를 엿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소설에서 보이는 이러한 상상적 공간의 유형은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났다.
1) 종교적 공간
「無影塔」(현진건)이라는 불교적 차원의 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소설사에서 본격적인 종교적 공간을 마련한 예는 그리 많지는 않다. 김동리의「사반의 十字架」는 당대로서는 얻기 힘든 기독교적 회의가 있는 작품이고, 이문열의「사람의 아들」은 그 회의를 한층 인간적 차원에서 심화시킨, 기독교적 상상 공간의 실정없이는 얻기 어려운 작품이다.
부처가 되려고 승려가 된 사내는 「병속의 새」를 꺼내기 위해, 이른바 득도하기 위해 거듭 번뇌하고 좌절하는 수행 과정을 그린「만다라」(김성동)은 대표적인 불교적 공간의 소설이다.
2) 상징정 공간
소설 속의 주무대는 아니지만 상징적 공간으로서 작중 인물의 행위 변화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는 소설이 있다.「배따라기」(김동인),「巫女圖」(김동리),「鶴」(황순원) 등은 설화나 전설·민담의 공간과 현 존재의 공간을 상징적 차원에서 연계시킨 상징적 공간의 소설이다. 인물은 배경과 적절한 어울림을 가진다. 그 어울림의 공간이 상징적 공간이다. 이청준은「이어도」에서 제주 사람들의 마음의 섬, 시원의 고향 이어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윤후명은「돈황의 사랑」·「누란」·「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들에서 사라진 서역 제국의 이름과 그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내면 공간을 상징적으로 설정해 놓고 있으며, 서영은도「사막을 건너는 법」,「먼 그대」에서 낙타가 걸어가는 사막을 주인공의 가슴 속에 상징적으로 존재하게 했다.
3) 관념적 공간
작가의 내면 지향이 소설에서 일상이 아닌 관념적 공간을 만들기도 하는데, 장용학의「圓形의 傳說」이나, 독자와의 글읽기 싸움을 벌이는「그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가」(이인성) 등에 의한 공간이 그것이다.
소설문화 공간에 드러나는 문제점 타계의 제안
지금가지 소설사를 일별함으로써 소설문학에서의 공간을 유형화시키고 간단하게나마 그에 대한 검토·분석을 행해 보았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관심 표출 과정에서 우리 소설사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가능했고, 조심스럽게나마, 그 문제점 타개를 위한 대안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게 되었다.
ⅰ) 좁은 국토에다 분단의 현실에 있어 소설문학적 공간 또는 그 제한된 소설적 공간, 제한된 작중 무대에서 집중적으로 뿌리뽑힌 시골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 이문구·서정인의 노력 또한 주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협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문학의 간도 체험, 만주 체험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분단 이후 계속 추구해 온 황순원의 유민의식, 7. 4공동성명 이후 더욱 간절해진, 유재용 등의 망향의식들은 분단 문학의 공간을 확대 심화시키는 값진 노력이다.
ⅱ) 서울 중심 문화, 대도시 중심 문화의 현장으로서 서울이 우리 소설문학의 주된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양적인 면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소설이 기타 지역 소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점, 이 양적인 우세가 결과적으로 질적인 우세와도 크게 연관된다는 점이다.
ⅲ) 서울 소설의 우세에 따라 농촌, 광산촌, 산촌 소설이 약세를 면치 못한다는 점, 특히 해양소설, 항구소설 등은 거의 불모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 철저한 장인의식으로 소설적 공간을 찾아나서고 확대해 간 이청준의 노력이 돋보인다. 또
ⅳ) 일제시대·2차대전·6. 25전쟁·4. 19 등의 격동의 시대사를 경험하면서 냉철한 이데올로기 비평안으로 시대사를 조명한 소설들이 적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광장」을 전후한 최인훈의 정치 우의소설, 시대소설에서의 자유로운 공간 이동이 높이 평가되고,「노을」등의 분단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들이 기대되고 있다.
ⅴ) 정확한 사료와 투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 아쉽다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이 대문에 한무숙의「만남」과 같은 실학·천주교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당대 풍습에 대한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에서 새로운 인식에 처음 눈뜨던 한 시대를 조명한 소설은 최근 소설문학의 큰 성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점은 하나의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 공간을 창작의 꽃으로 피워 올리게 하는 힘일 것이다. 우리 소설사는 그를 가능하게 하는 문학적 토양이 더욱 성숙해지고 깊이와 폭의 심도를 더해 가기를 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