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문화예술재원
허 권 / 유네스코
■ 영국의 문화재정
영국에서 예술에는 영국인의 경험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문학과 연극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불후의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지만 음악에서는 상대적으로 훌륭한 거장들을 배출시키지 못하였다. 이는 음악이 예술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영국인의 기질에는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추앙되었던 헨델도 조지 1세와 찬더스공의 초청으로 영국에 체류하였던 독일음악인이었다.
마찬가지로 음악과 관계가 깊은 오페라나 발레도 외국에서 유입되어 나중에 발전한 예술로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러나 문학과 연극은 현실적인 인간세계를 그리는 분야이다. 공상문학의 전통도 있으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신랄한 현실비판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디포의 「로빈슨 크로소」는 공상적 환경 속에서의 가장 현실적인 생활태도가 주제로 되어 있다. 미술분야에서도 유화이건, 영국에서 특히 발전한 수채화이건 초상화나 풍경화에 걸작이 많다. 아무튼 관념이나 추상을 대상으로 하는 경향은 어느 예술장르에서나 그 역사가 짧다고 볼 수 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문화정책과 예산의 동향
영국에서 국가에 의한 예술지원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활성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의미에서의 예술행정에 대해 일부 문화담당관들은 많은 국립박물관들이 설립하기 시작하는 18세기부터 이미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계열의 문화기관으로 맨처음 대영박물관이 1753년에 설립되었고 뒤이어 국립미술관이 1823년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1852년, 국립 표트레이트 갤러리가 1856년, 테이트 갤러리가 1892년 각각 국가에 의해 설립되었다. 단, 테이트 갤러리는 5년 후인 1897년부터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영국정부는 많은 예술가와 고용계약을 체결하여 그들로 하여금 전장의 정경과 용감히 조국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의 모습을 기록하거나 화폭에 담도록
하였다. 따라서 1910년대까지 영국정부의 예술지원은 주로 그림, 조각 등의 시각예술과 역사, 박물관 쪽에 편중되었다.
1927년에는 영국의 공영방송국인 BBC가 발족되었다. 초창기부터 BBC는 폭넓은 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였고 방송국내에 전문 오케스트라를 운영하였다. BBC자체의 운명과 예술프로그램을 위해 BBC는 TV수상기와 라디오 세트를 판매할 때 부과되는 등록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앙우체국 post office은 이 세를 징수하여 일정한 비용을 제외한 전액을 BBC에 이전시키고 있다.
1933년 영국영화소 British Film Instiute 가 영화의 질적 향상과 영화인의 창의성 고양을 위해 창설되었다. 교육과학성에서 지원하는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영화소는 런던에 국립영화극장과 국립영화필름보관소를 갖고 있다. 특히 이 영화소는 미국의 국립예술진흥기금 진 NEA으로 부터 매년 100만불 이상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는 미국 국립영화소의 창설 모델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영국국민의 예술적 향유와 참여의 기회를 박탈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국정부만이 공연예술을 진흥하는 유일한 후원자였다. 1938년에 국립흥행서비스협회 Entertainment National Service Association가 발족되었다. 민간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과 연기자를 초청하여 군대막사와 군수창 등에서 노래와 무용 그리고 연극을 실연케 함으로써 예술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그 다음해인 1939년, 예술자문위원회와 전시예술인 고용위원회가 홍보동성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 두 위원회는 시각예술을 지원키 위해 발족되었는데 이 위원회에 의해 많은 현대미술 작품들이 구입되었다. 같은 해, 필그림 트러스트 Pilgrim Trust 는 오늘날 「대영제국 예술평의회 Arts council for Great Britain ACGB」의 모태가 되는 「음악·미술진흥위원회 Committee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CEMA)」를 발족시켰다. 시각예술과 음악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에 의해서 주도된 이 단체에 영국정부는 1942년 봄부터 참여함으로써 이 단체는 국가적 기관으로 승격했고 명칭도 위원회에서 「평의회 council」로 변경되었다. 초대 부장으로 마이나드케인즈 Maynard Keynes가 임명되었다.
■ 1980년대 정부의 문화예산
영국은 크게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구성되지만 흔히 대영제국이라 할 때는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를 지칭한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 정부의 문화예산이라 함은 이 세지역의 정부예산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영국정부의 문화예산은 다음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문화예산이 급격히 증가되지는 않고 있지만 서서히 증액되고 있다.
둘째, 국가의 문화예산중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규모가 급격히 신장되고 있다.
세째, 1인당 문화예산배당액을 볼 때 잉글랜드보다 스코틀랜드 지방의 주민이 혜택을 더 받고 있다.
네째, 교육과학성 이외에도 문화예산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이 많이 있다.
다섯째, 정부의 문화예산의 배분과 관리는 전적으로 행정기관이 아닌 문화·예술전문단체에서 집행되고 있다.
여섯째, 예술발전을 위한 민간 부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문화예산을 살펴보면 영국정부는 국가예산의 약 0.32∼0.34%를 문화예산으로 할당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83 년의 경우 (영국의 회계년도는 4월 1일을 기준으로 해서 명년도 3월 31일 종료됨 )총 4억 5백 4십만 파운드를 문화예산으로 확정했는데 이 예상규모는 당년도 총 국가예산의 0.34%에 해당되었다.
특히 1982년에 들어와서 중앙정부와 지방당국의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각각 17%, 21%씩 증가되었다. 1981년과 1982년의 문화예산을 1983년도 화폐가치로 환산하더라도 실질예산이 11%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국의 문화예산의 동향이 점차 중앙정부의 예산에서 지방정부의 예산 쪽으로 그 비중이 높아가고 있다는 점이 최근의 특징이다. 1983년의 예산을 보면 각각 중앙정부와 지방행정당국이 절반씩 문화예산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부의 1983년도 문화예산 2억 3천 2백만 파운드의 약 47% 가 기존 박물관과 미술관의 운영 및 사업비로 지원되었다. 대영박물관, 과학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임페리얼 전쟁박물관, 국립미술관, 국립해양박물관, 국립포트레이트 미술관, 테이트 미술관 Tate Gallery, 런던 박물관, 왈라스 컬렉션 Wallace collection, 써 요한 소안 박물관 Sir john soane museum, 문화재 관리청, 지역박물관위원회에 7천 9백만 파운드를 지출하였다.
한편 중앙정부 문화예산의 약 52%가 일반 예술사업비로 배정되었는데 1983년의 경우 이 부문에서 수혜를 받은 기관들은 대영제국 예술평의회 (1억파운드), 영국영화소, 국립영화학교, 수공예 협의회, 공립저작권협회 Public lending Right, 기업후원회 등에 총 1억 790만 파운드가 지원되었다.
이러한 큰 규모의 문화예산이 국민 1인당 얼마만큼 배당되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무척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영국을 구성하는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각 지역에 할당되는 예산규모의 파악은 영국문화정책의 주안점과 지역간의 문화활동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리라 판단된다.
1983년을 기준으로 살펴볼 때 영국인 1인이 정부측으로부터 받는 문화예산의 규모는 7.4파운드였으며 (한화로 약 12,000원)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주민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웨일즈의 경우는 6.9파운드 중 5파운드를 중앙정부로부터 지원 받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 지역보다 적어도 문화예술부문에 있어서는 중앙정부에 크게 의존한다고 보아야 한다.
각 국가의 1인당 문화예술비를 상호 비교하는 것은 문화적 삶의 한 부문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나 불행하게도 각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상이하여 통계의 비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나마 신빙성이 있는 통제의 수집조차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례로 <표 1>에서는 도서관 예산이 누락되어 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도서관의 문화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이의 예산을 문화예산에 포함시킨다는 사실이다.
<표 3>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문회예산이 지역별로 어떻게 할당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표 1>에서 나타났듯이 적어도 문회예산에 관한 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는 호각지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국립극단, 박물관 등 대형 문화기관에 집중적으로 배정되었음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지방의 문화예산은 예술 각 부문의 창작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문화예산이 잉글랜드에 편중되어 있으나 <표 2>에서 보듯이 잉글랜드는 인구과밀 지역이고 대규모 문화기관이 운집되어 있기 때문에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조직상 문회예술사업의 기획 및 조정의 책임을지고 있는 기관이 교육과학성이지만 이 부서 이외에도 직접 문화와 예술부문에 지원하는 기관들이 있다. 국방성은 국군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환경성은 문화유적지 보존과 관리를 위해 1983년 9천 7백만 파운드를 집행하였다. 또한 외무성은 영국 평의회 British Council 을 통해 예술의 국제교류 및 해외 문화기관(유네스코등)과 많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영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서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예술에 대한 행정적 의무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비록 19세기 부터 지방자치제가 운영되었지만 영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주민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행정적 봉사에 예술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에반해 서독은 예술진흥을 공기관의 의무이자 중요한 행정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와서 지방단체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커가고 있고 그 지원의 폭도 날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킨 여러 행정조치중 중요한 2가지의 계기를 알아보는 것이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로 언급할 조치가 1948년에 계정된 지방자치법이다. 이 법령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세 수입의 2.5%선까지 예술진흥을 위해 집행할 수 있는 관계규정이 수록되어 있다. 6페니율A Sixpenny Rate 로 알려진 예술재원 관계조항은 임의적이지 결코 강제적이 아니다. 이 조항을 바탕으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내 문화예술사업을 돕기 시작하였다. 버밍엄은 지방도시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미술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류악단인 버밍엄 시티 오케스트라의 운영을 지원하고 있고, 맨체스터는 전액 시예산으로 운영되는 시민극장을 갖고 있으며 역시 일류급에 속하는 핼리오케스트라를 지원해 주고 있다.
두번째의 행정적 조치가 1974년의 행정개편을 통해 이뤄졌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지방단체의 예술에 대한 의무가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영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예술사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보테마우스와 같이 예술사업에 많은 지원을 했던 시도 있었다. 이미 이 시는 1893년 시립 오케스트라를 발족시켰다.
■ 예술평의회의 창설에서 1970년대까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 국회는 전쟁동안 음악미술진흥위원회 CEMA가 수행했던 문예지원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계승하기 위해 1945년 대영제국 예술평의회 ACGA를 창설시켰다. 1960년대 미국에서 국립예술인문과학위뭔회가 정부에 의해 발족된 당시 학제·예술계로 부터 거센 항의와 우려를 받았지만 영국에서는 아무런 이의가 제기되지 않은 채 발족 되었다. 이는 전쟁동안 BBC 와 CEMA의 사업이 영국 국민에게 커다란 감명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재무성의 기금을 받아 시작된 ACGB의 창괼 목적은 1946년 의회가 수여한 왕립헌장에 아래와 같히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순수예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기예를 발전, 향상시키며, 대영제국 전역에 걸쳐 예술과 대중과의 만남을 촉진시키며, 아울러 위의 목적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여타 단체들과 협조하거나 자문하는 기능을 갖는다」
의회는 1967년 ACGB 의 목적을 일부 수정한 새로운 헌장을 제정하였는데 수정된 내용은 평의회가 재무성에서 교육과학성으로 이전 편제되고, 위의 목적에 「순수예술」이라는 단어가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예술」로 대체하는것이 주요 골자였다.
예술평의회는 1명의 의장과 19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재무성 총감이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국무대신과 협의하여 이들을 임명하는데 임기는 4년이다. 대영제국 예술평의회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예술진흥과 문화발전을 위해 각기 두 지역에 예술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다.
대영제국 예술평의회가 예술단체와 개인에게 지원하는 지원금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일반사업비 명목으로 지원되는 사업비, 재정손실을 보충할 목적으로 지원되는 기금, 극단과 음악단체의 순회공연지원 기금, 자본적립을 위한 기금, 시범 사업에 지원되는 기금, 페스티발 기금, 교육및 훈련기금, 여행기금 등이 있다.
지원을 희망하는 각 단체는 비영리 단체임을 입증하는 서류와 매년 4회 이상의 이사회가 개최되고 있다는 증거와 영연방제의 목적을 준수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지원신청서와 함께 제출하여야 한다. 모든 수혜단체들은 지원금의 사용내역을 정확하게 작성 보고하여야 하며 지원금과 관련된 사항, 예컨대 해외연주여행과 같은 부수 사업도 평의회의 승인을 얻어야만 하게 되어있다. 지원금의 운영과 관리는 우리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다.
ACGB 는 초창기 대부분의 정부예산을 국립계열의 중요문화기관이나 지방도시의 대규모 예술단체를 지원하는데 사용하였다. 1967년에 ACGB는 로얄 오페라 하우스, 영국국립오폐라, 로얄발레단, 국립극단, 로얄섹스피어 극장의 5개 단체에 총예산의 38%에 달하는 사업비를 지원했으며 위의 국립계열단체와 중요 오케스트라, 지방의 5개 극단에 지원된 예산을 합산하떤 무려 50%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예산의 편중은 예산의 분산화와 군형의 필요성을 촉발했기 때문에 1974년에 이르러서는 5개 국립계열단체의 예산비중이 27%로 대폭 조정되었다.
또한 ACGB가 1964년 지역예술협회 Regional Art Association 에 할당한 예산은 ACGB 총 예산의 겨우 1%에 불과하였었다. 이 비율은 1974년 10%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 당시 영국에는 13개의 지역예술협의회가 설치되었는데 대다수의 협회들이 보다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방행정당국, 지방교육기관 혹은 민간인과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ACGA는 이러한 움직임을 도와주기 위해 지방 문화의 발전과 정책을 담당할 지역문화부를 설치하였다.
ACGA 의 지원사업중 미국의 국립예술기금과 상이한 기금이 바로 예술공간건립프로그램 Housing Art programme 이다. 예술평의회는 템즈강에 위치한 사우드 뱅크 South Bank 에 새로운 국립연극 단지를 조성하는데 많은 지원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지방행정당국시 개인의 참여를 유도하기위해 미국 NEA 가 운용하는 대충자금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1965년에서 1971년 사이에 ACGB는 지방의 예술센터 건립등 모두 123개 프로젝트에 총 300만 파운드를 집행한 바 있다.
ACGA 는 단지 재정지원을 하는 기관으로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창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을 강구하여 대중과 예술과의 괴리를 없애고 영국예술의 창조적 진흥을 도모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ACGB 는 오페라의 기획 및 순회공연을 알선하는 「만인을 위한 오페라」 Opera for all 라는 기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리사이틀 홀인 위그모어 홀 Wigmore Hall 을 임차하여 음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ACGB는 이 기간동안 많은 예술영화를 직접 제작하거나 지원하였었다. 산간벽지에 이동 영상차량을 보내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문화적 잠재력을 깨우치는데 적지않은 예산을 집행하여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예술평의회에도 파급되었는데 웨일즈예술평의회는 매 3년마다 웨일즈 청년성악콩쿨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 및 보급을 위해 ACGB가 취한 또 다른 전략은 도서지원 프로그램이었다. ACGB가 주체가되어 시집협회 Poetry Book society 가 1954년 영국에서 창설되었다.이 단체에 가입한 시인이나 시민들은 매년 일정부수의 새로운 시집을 지원받게 된다. 1973년까지 약 6만부의 시집이 이 협회를 통해 공급됨으로써 출판업자로 하여금 역량있는 시인이나 새로이 문단에 데뷰하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경제적 손실없이 발간할 수 있게끔 유도한 효과를 띠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신소설협회 New Fiction Society 가 뒤이어 발족되었다.
비록 예술평의회가 많은 재원을 예술단체에 할당하고 있지만 개인에 대한 보조금의 지급도 항상 고려되었던 것 같다. 1945년 케인즈는 개인예술가를 위한 정책이라는 주제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예술가는 우리의 심령이 머무는 곳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신선한 초목지로 이끌어 주고, 우리에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우리가 분노할 때 즐거워 할수 있게 해 줌으로써 우리의 감수성과 본능을 순결케 해준다. 공공기관의 책임은 이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그리고 창작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1965년 예술정책 백서는 단체에 대한 지원강화와 함께 개인 예술가를 위한 지원을 증대시킬 것을 요구 하였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ACGB 는 미술품 수집가로서 그리고 큐레이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여 왔다. 예술평의회는 런던에 헤이워드 화랑 Hayward gallery 와 서펜타인화랑 Serpentine Gallery 을 운영하고 있다. 1946년 부터 1970년 까지 약 1,000 회의 전시를 이 화랑에서 개최했으며 매년 20여회씩 지방으로 순회전시를 보내왔다. 스코트랜드와 웨일즈예술평의회도 에딘버러와 카디프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ACGB 는 비록 교육과학성에 소속되어 있지만 NEA와 달리 폭넓은 교육프로그램은 전개하지 않고 있다. 청소년극장의 운영 혹은 학교내의 예술프로그램 Work in school, writers in school 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으나 주로 지원단체인 코벤트 Co Vent Garden, 새들러스 웰즈 the sadler's wells, 심포니오케스트라, 극단에서 자체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 1980년대 예술평의회의 예산
ACGB 의 예산규모는 70년대에 이어 87년도에 들어와서도 계속 증가해 왔지만 1983년을 분기점으로 실질 예산규모는 오히려 감소되었다. 영국경제의 인프레이션으로 액면가치가 절하되었기 때문이다.
<표 4>에서볼 수 있듯이 ACGB 는 국립공연예술단체의 운영을 위해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다음 연극분야와 지방예술협회 Regional Arts association (RAA)를 적극지원하고 있다.
1984년 이후 공연예술의 진흥을 위해 ACGB 는 로얄 오페라 하우스 Royal Opera House, 영국국립오페라 English National Opera, 국립극장 National theatre, 로얄 섹스피어 컴퍼니 Royal shakes peare Company 의 국립공연예술단체에 총지원금의 31%선까지 지원하고 있다.
1956년 부터 1973년까지 영국에 모두 12개의 지역예술협회가 설치되었다. 이 헙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하는데 있는데 이를위해 이 협회는 가장 많은 재정을ACGB에 의존하고 있으며 (70%) 소규모이지만 약간의 재정을 영국영화소와 수공예협의회에 의존하고 있다. 지역예술협회는 예술사업을 지역내에서 전개하기 위해 지방행정당국, 협회의 회원, 대학교, 경제단체 및 예술단체의 대표자로 구성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자발적인 독립기구이다. ACGB가 지역예술협회에 지원하는 예산의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1980년 ACGB는 총예산의 10%를 RAA에 지원했으나 1986년에는 15.5%까지 증가시켰다.
영국의 예술평의회는 오페라·무용·연극·미술·문학 등 예술의 각 쟝르를 고르게 지원하고 있지만 1980년대에 ACGB가 가장 많이 지원했던 분야가 연극쪽이다. 1986년도 ACGB의 보고서에 의하면 총예산의 12%를 지원하였으며 그 지원액도 1천 1백 7십 5만 파운드에 달하였다. 영국의 연극단체는 크게 국립계열의 극단, 민간극단, 스코틀랜드 대표극단, 웨일즈의 대표극단, 잉글랜드 대표극단들로 5등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웨일즈와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극단들은 예산의 40∼50%를 ACGB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립계열의 극단들은 1년 예산의 50%를 ACGB에서 제공되는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1982년 이후부터 ACGB는 음악, 연극, 시각예술, 문학의 지원비율을 일정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표 6>은 각 예술쟝르별로 지원되는 예산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 웨일즈 예술평의회
웨일즈 예술평의회와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는 런던에 있는 ACGB의 사업방향과 목표에 부합되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들이다. 이 양 기관은 ACGB로 부터 일정 비율의 사업금을 지원받고 있다. 웨일즈 예술평의회는 1980년부터 ACGB의 총예산의 7%를,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는 12%씩 지원받고 있다.
웨일즈 예술평의회가 1986년 ACGB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은 726만 파운드였다. ACGB와 마찬가지로 웨일즈도 연극과 오페라 분야에 각각 23%, 22%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웨일즈 지역내에 있는 아마츄어 음악동호회 200여 단체가 결성된「웨일즈 아마츄어 음악동맹」도 적극지원하고 있으며 시각예술의 진흥을 위해 별도 조직된 「웨일즈 미술디자인협회」의 프로그램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 협회는 웨일즈 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이 분야의 최대 단체라는 사실을 웨일즈 시민들은 자랑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달리 웨일즈에는 3개의 지역 예술협회 RAA 가 있는데 이 단체 역시 웨일즈 예술평의회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
스코틀랜도 예술평의회의 사업을 돕기 위해 ACGB는 매년 자체예산의 12%선까지 지원하고있다. 1986년 이 단체는 총 1,211만 파운드를 지원받아 지역예술단체의 지원 및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최근 스코틀랜드 행정당국은 인구의 감소, 공장의 자지 휴업, 농산품 생산량의 감퇴 및 주거환경의 미비라는 행정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여전히 목가적인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행정당국은 문화예술의 진흥을 통한 관광산업의 활성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비록 잉글랜드지역보다 예술부문이 덜 발전되었지만 매년 1,000여건 이상의 재정 신청서를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는 접수받고 있다. 이 평의회의 예산지원은 웨일즈와 달리 예술 전분야에 균형있게 분배하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오페라와 연극 그리고 음악 분야가 주 수혜쟝르이다. 스코틀랜드에는 웨일즈처럼 지역 예술협회가 설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는 지역예술의 발전을 위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보고서의 골자는 스코틀랜드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배가되어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 개인과 기업의 예술지원
1981년 기준으로 영국내에서 예술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인구는 총 208,520명이었다. 이중 62%에 해당하는 129, 240명이 직장을 갖고 있으며, 29%인 60,720명은 직접 개인업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많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전적으로 정부측에서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나라에서 개인과 기업체의 후원 및 지원을 적극 환영하고 있으며 이에 알맞는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영국의 대규모 사업체들은 스포츠분야에만 매년 1천만 파운드 이상을 지원한데 반해 예술분야는 1/10도 못미치는 1백만파운드만 지원했었다. 이 이유는 자명하다. 왜냐하떤 스포츠야말로 기업의 이미지를 선전하는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그 혜택과 파급효과는 사회 전 계층에 골고루 미치기 때문이다. 경기전에도 각종 홍보물로 기업의 이름을 광고할 수 있으며 경기중에도 TV 혹은 선수의 유니폼을 통해 일반 시민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부각하는데 기업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부각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안임에 틀림이 없다.
미국의 기업체처럼 기업체와 예술과의 유착현상은 뚜렷하지 않으나 80년도에 들어와서 기업의 예술지원 양상은 앞으로 영국의 예술발전에 새로운 좌표를 제시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Association for Business Sponsorship of the Arts (ABSA)의 다양한 캠페인의 결과였다. ABSA는 1976년 루크 리트너 Luke Rittner의 주창으로 6개 사업체대표가 각각 10만파운드를 기금으로 조성하면서 발족되었다. ABSA 는 기업의 예술후원을 촉진시키기 위해 기업주를 대상으로 예술과의 관계 개선의 필요성 및 기업의 사회적 문화적 소명의식을 깨우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의 수가 증가추세에 있다. 1980년 84개의 사업체와 16인의 기업가가 예술지원에 기금을 내놓았으나 3년후 이 숫자는 사업체가 98개업체로 기업가도 28인으로 늘어났다. 「보다 좋은 유대관계, 성공적인 고용, 판매의 증가, 좋은 이미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ABSA의 예술지원금도 1982년에 1257만 파운드에서1984년 1750만 파운드로 신장되었다.
영국정부는 기업의 예술참여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기업후원촉진 계획 Busines Sponsorship Incentive (BSIS)을 1984년 10월 착수했다. 이 계획은 ABSA가 책임지고 있는데 대충방식으로 운용되는 정부지원금을 활성하기 위함이다. 초기 5개월간 57개 업체가 50만 파운드를 이 계획을 위해 지원했다. 그러나 1985년 중소기업의 참여를 보다 유도하기 위해 대충자금 방식을 일부 변경했다. 왜냐하면 대충자금의 비율이 1 : 3이기 때문에 기업의 참여가 다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충자금을 1 : 1과 1 : 3의 두가지로 구분하여 예술단체가 1파운드의 기금을 확보하면 기업이 1파운드를 지원하는 1 : 1의 조건을 최저 1,000파운드 부터 시작되게 하향조정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대규모 사업체들은 예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갖고 있어 실험적이고 헌신적인 작품이나 예술단체를 지원하기 보다는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적은 보수적이고 고전적인예술사업을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마디로 각 기업체의 홍보관들은 베르그의 작품보다 베에토벤과 베르디 작품들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무난하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어떤 예술단체들은 기회과 공연에 스스로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더우기 소규모 예술단체나 이데올로기 성향의 전문단체들은 기업으로 부터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이겠지만 오늘날 영국에서 간단한 1막짜리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데 약4만파운드에서 6만파운드가 소요되고 「에비타」Evita 같은 뮤지칼은 거의 50만 파운드가 든다고 한다. 대다수 예술단체가 재정압박을 받는 이유는 제작비, 인건비등이 계속 상승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희사금, 지원금은 이러한 재정적 손실을 보충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때도 있다.
사뮤엘쿠르톨드 Samuel Courtauld 는 영국의 미술진흥에 전생애를 보낸 후견자였다. 그는 1923 년 테이트 갤러리에 19세기 프랑스 그림을 사주기 위해 쿠르톨드기금을 설립하였고 런던대학교에 건물을 희사하여 미술연구소를 운영케 했다.
영국의 재단과 자선단체들이 예술에 지원하는 투자액은 연 1백만 파운드 미만의 미미한 액수이다. 그러나 필그림 트러스트 Pilgrim Trust 로운트리 트러스트 Rowntree Trust, 굴벤키언 재단들은 영국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단체들이다.
앞으로 민간부문의 예술에 대한 지원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영국행정가들은 믿고 있다. 왜냐하면 공공부문의 문화예산이 무한정 증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 표에서 나타났듯이 영국정부의 문화예산은 국민 1인당 5.8파운드 씨 할당되는 데 이 액수는 스웨덴 국민의 문화예산이 1/4에 해당되어 영국민의 문화적 혜택이 유럽지역에서 결코 높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