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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도시 시드니




박선이 / 조선일보 문화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화한 항구 중의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는 시드니 만에 면한 「오페라 하우스」를 이 도시의 얼굴로 내놓은 정도로 「극장 도시」이다.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최고급 시설부터, 창고를 개조하거나 허름한 빌딩을 손질해 만든 극장까지 수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으리 만치 많고 수준도 천차만별인 시드니의 극장들은 그러나 시민들에게 생활 문화의 현장으로 언제나 개방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시민들은 물론 낯선 외국인 관광객이나 방문객, 어린이나 어른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며 「극장 구경」을 할 수 있을 뿐더러 극장(극단)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기며 우연히 들른 발걸음이라 할지라도 돌아갈 때는 그 극장의 존재와 하는 일을 마음속에 새기고 돌아가게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극장마다 크고 작은 식당·휴게 시설과 전시 공간을 반듯이 확보하고 있는 점도 공통적인 특색이다. 이곳들은 관광객이나 관람객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공연 관련 자료를 사보거나 얻을 수 있어 공연이 없는 시간에도 극장은 쉬지 않고,「문화 공간」으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록스 지역의 부두 극장 Warf theater

시드니가 처음 도시로 형성될 때 생긴 마을이라는 록스 지역의 월쉬 부두는 온통 바위로 된 도시로 시드니의 상징적인 사적지이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전성기도 지난 이곳에는 1920년 무렵에 지었다는 낡은 부두 건물들이 서 있다. 요즘도 시드니 만 유람선과 작은 화물선들이 드나드는 시설로 쓰이고 있는 이 부두의 제4부두가 극장이다. 시드니 극단이 2년여 전 낡은 부두 시설을 개조해 만든 이 「부두극장 Warftheater」은 시드니 극장들의 개방성과 시민들의 생활 문화 현장이라는 특성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예다.

■ 부두 극장의 내부 시설

극장 건물은 폭 27m에 길이 225m. 극장으로 개조하면서 건물 안에 2층을 만들어 1층 회랑을 전시실과 극장 사무실. 연습실, 식당으로 쓰고 2층에도 전시실을 두었다. 3백여 석 규모의 극장 「부두 스튜디오」와 「부두 극장」등 2개의 공연장 출입구는 2층에 있어 일반 관광객들의 소음을 피할 수 있다.

전시장인 회랑에는 이 극단에서 공연했던 작품의 歷史가 한눈에 드러난다. 무대 모형과 의상, 연출 노트, 사진집과 도록이 죽 전시돼 있고 공연 포스터도 이들과 함께 걸려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 제작 과정을 모두 담은 일지와 도록 이었다. 83년 공연한 「귀부인」의 제작일지를 보면 출연진, 스텝의 이름, 사진이 모두 실려 있고, 무대 디자인과 의상, 조명 디자인 도록이 실려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 1940년대 중국대륙의 생활 풍습과 모택동 등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사진도 실어 놓았으며, 이들(사진)이이 작품의 의상·무대 디자인, 분장에 어떻게 이용됐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2절지 크기의 제작일지는 얇은 투명 비닐로 각 장이 포장돼 있어 수많은 사람의 손 때가 묻었어도 거의 망가지지 않고 보존돼 있다.

무대의상 보관 창고도 아주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다. 출입구에는 물론 「관계자 外 출입금지」라고 조그맣게 쓰여 있지만, 그 옆에는 사람 실물 크기의 마네킹 4개가 무대의상을 입고 서 있는 진열장이 있어 이 곳이 무엇 하는 장소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만든다.

「부두 극장」에는 2개의 공연장과 2개의 연습실, 무대의상·미술 장치 보관창고와 제작실, 분장실, 1, 2층 회랑 전시실 등 공연 시설 외에 식당과 바가 있어 늘 방문객에게 공개된다. 길가에 면한 매표소에서는 포스터와 기념품을 팔고 있지만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필자가 극장을 찾은 날은 마침 낮 공연이 있었지만 공연장 입구에서만 단원들이 번갈아 가며 입장권을 받고 있었을 뿐 일반 방문객들은 자유롭게 시설을 둘러보고 질문을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부두 극장」은 시드니 극단이 전용 극장으로 쓰고 있지만 소유권은 뉴 사우스 웨일즈 주 정부에 있는 공공 시설 극장으로 개조하는 예산(3백 70만 달러)도 대부분 주 정부에서 나왔고, 천재도 예산보조를 받고 있지만 공연 기회이나 식당, 바 경영 등 운영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들에게 시설을 늘 개방하고 있는 것을 잠재적인 관객 개발이란 측면도 있지만 식당 운영 수입도 적지 않고, 또 주정부 예산을 들인 공공시설인 만큼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 극단의 도널드 맥도널드 氏는 설명한다.

조지가에 위치한 록스 극장

오스트레일리아 인형 극단과 오스트레일리아 청소년 극단이 각각 1, 2층에 극장을 갖고 있는 록스 극장은 시드니의 번화한 상업 지역인 조지街 어귀에 있는 허름한 빌딩이다. 재개발지구인 이곳은 다른 빌딩들과 마찬가지로 도로에 면한 출입구도 단촐한 모습이 얼핏 지나쳐 버리기 쉬운 평범한 건물이지만 현관 머리의 표지는 그곳이 극장임을 알려준다.

인형 극단의 「메도우리 극장」과 청소년 극장

1층 입구에는 인형 극단의 매표소와 사무실이 있고 맞은 편 벽에는 87년 공연 일정과 포스터가 화려하게 게시돼 있다. 입구 정면은 인형 극단의 「메도우리」극장 출입문이며 왼편으로 휴게실과 바가 있다. 출입문 앞에는 험상궂은 낡은 인형이 「극장 재건을 위해 먹을 것을 좀 주세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 떡 벌린 인형의 입과 들고 앉은 바구니에 마음씨 좋은 관광객들은 5센트에서 1달러, 5달러까지 넉넉하게 먹여 주는 것이 눈에 띄었다. 휴게실과 로비에는 이 극단 공연에 출연했던 퇴역 인형들이 천정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바에 걸터앉아 있거나 벽에 걸려 있기도 했다. 2층의 청소년 극장과 인형 극장의 주 관객 층은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

공연 레퍼토리는 주로 교훈·교육적인 것으로 올해는「피노키오」, 「버드나무 숲의 바람」, 「신비한 하마」등 명작·전래 동화를 소재로 한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 공연이 없는 시간에는 어린이들을 초청, 인형극 워크샵을 열어 인형 제작과 공연 준비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반 방문객들에게도 극장을 개방,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형 극장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공연은 언제나 상상과 발견, 탐구, 모험의 세계를 제공해야 한다. 언제나 열려 있는 극장·무대만이 그들의 탐구욕을 자극할 수 있고 자라서도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어른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문화 공간 「벨보아 거리 극장」

벨보아街에 새로 문을 연 「벨보아 거리 극장」은 조금 특별한 극장이다. 일반 빌딩을 개조해 지난 봄 개관한 이 극장은 연극인들 뿐만이 아닌, 일반 여성들이 함께 참여해 만든, 말 그대로 여성들의 문화 공간이다. 뉴 사우스 웨일즈大 연극 대학 교수이며 연출가, 평론가인 파멜라 페인 헤켄버르氏를 비롯, 여성 작가, 평론가, 연출가들이 주동이 돼 일반 여성들을 회원으로 1만5천 달러를 모금, 극장을 만든 것 아직 공연은 하지 않고 있지만 「여성 연극」, 「여성 문화」를 펼칠 공간으로 꾸미기에 연일 회원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쉬기도 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회원이 아닌 일반에도 공개하여 그들도 회원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고 헤켄버그씨는 밝혔다. 또한 극장의 공간성을 극복하기 위해「뉴 디어터」라는 연극 잡지도 펴내고 있다.

■ 조개 껍질 모양의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만의 베넬동 곶에 세워진 조개 껍질 모양의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도 일반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개방적이기는 민간의 크고 작은 극장들과 마찬가지다. 시드니 시내 관광 코스에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단체나 개인 누구든 관광 입장권을 사서 구경할 수 있다. 공연장으로는 콘서트 홀(2천6백90석)과 오페라 극장(1천5백47석), 드라마 극장(5백44석), 플레이하우스(4백19석)등 4개의 본격적인 시설 외에도 실내악 연주회 등이 열리는 레코딩 홀, 노드 포이어, 영사실, 전시실과 야외 연주장 브로드워크 스튜디오가 1년중 크리스마스와 수난 금요일 이틀만 빼고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단체(성인 3달러 50센트, 어린이 1달러 80센트), 개인(60달러)을 위한 「극장 시설 관광」이 안내원의 인도로 이뤄지고 일요일에는 무대 뒤 제작 시설까지 고루 보여주는 「무대 뒤 관광」(6달러)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聖 트리니언의 악당들」이란 애칭으로 불린다는 안내원들은 대부분 연극 등 공연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안내원 일자리는 자신들의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터라 꽤 인기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현재 안내원으로 있는 사람들은 남·녀 30여명.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는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 시설들은 낮 시간, 관광객들을 위해 공개될 뿐 아니라 휴일과 새벽, 밤에도 시민들의 휴식 장소이자 생활의 현장으로 사랑 받고 있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료 공연과 부대 시설 개방, 각 연령층에 맞는 공연 프로그램 개발은 이 극장의 중요 사업 중의 하나라고 한다.

연령층에 따른 각종 프로그램은 전문 인력을 두고 연중 계획을 짠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유아들을 위한 공연·교육 프로그램이 이 큰 극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침 필자가 찾은 때는 부활절 휴가로 학교들이 2주간의 방학중이었다. 방학 기간에는 오페라하우스에 어린이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된다. 극장 내부의 계단에서는 「동화 구연」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었고 무대 뒤 연습 스튜디오에서는 「발레의 기초」를 실연과 함께 강의하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해마다 연중 기획으로 짜여져 미리 예약을 받는다고 극장 관계자는 밝혔다. 물론 무료지만, 참석자 수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하다. 사무실·상가가 밀집해 있는 시내에서 걸어서 10∼20분, 자동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는 평일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한 무료 연주회,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연중 무휴로 실행하고 있다. 영사실에서 열리는 이 「점심시간 해프닝」에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참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 시드니의 야외 공연 시설

일요일에는 더 큰 규모의 시민 대상 프로그램이 이곳 저곳에서 열린다. 레코딩 홀에서는 무료 실내 악 연주회가 열리고 갖가지 공연 안내 팜플렛이 무료로 배부된다.

시드니 만에 면한 「산책로」, 브로드워크 스튜디오 등 야외 공연 시설에서는 실내악과 록 음악 연주회가 열리기도 하고 동남아시아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의 민속춤 공연이 벌어지기도 해 휴일 가족 나들이의 인기 코스라고 한다. 실내악 연주회 등은 ABC(오스트레일리아 방송국)가 스폰서로 방송국에서 기획,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은 각종 공연을 구경할 뿐 아니라 극장측에 신청해서 스스로 공연할 수도 있다.

공연이 있는 매일 밤(대개 8시 ∼ 10시) 시민들은 극장 주변에 설치돼 있는 폐쇄 회로 TV를 통해 공연 실황을 공짜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 가운데는 이를 이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극장 주변의 산책로, 브로드워크 스튜디오 등은 언제나 개방돼 있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데이트族들을 만날 수 있으며 새벽에는 인기 있는 조깅 코스이기도 하다는 것이 극장측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