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현장적 활용방안을 모색한다

시 낭송과 연극, 음악이 어울린 현장예술




민용태 / 시인·외대교수

스페인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앵커리지에서 암스테르담을 올 때는 조용하던 것이, 암스테르담에서 마드리드행을 타면 왁자지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면 노래가 나오지만 스페인에서 술자리가 있으면 "치스떼"(웃기는 이야기)가 밤을 새운다. 그들의 이런 말을 즐기는 습관은 스페인 일상어의 수준을 시적인 경지까지 끌어올린 이유가 된다.

미국의 어느 로르카 연구가는 스페인어에서처럼 시어와 일상어의 차이가 없는 언어는 지상에 없을 것이라고 과장해서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 시 쓰기는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미친 끼하고 시인 같은 데는 모두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법"이라는 그들의 속담을 보아도 이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런 말을 즐기는 습관, 시를 상식으로 생각하는 전통이 빚은 문학모임이 "떼르뚤리아"이다. "떼르뚤리아"는 회합, 혹은 모임이라는 뜻으로 보통 카페나 살롱을 중심으로 펼치는 문학활동을 말한다. 세기초부터 오늘까지 수많은 떼르뚤리아가 있었고 그 중에서 유명했던 것이 20년도 경부터 십여 년간 문단을 주름잡던 라몬 고메스 데 라 세르나의 "카페 뽐보"였다. 피카소, 네루다, 보르헤스, 헤밍웨이, 브르똥 등 당시의 세계적인 문학가가 들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떼르뚤리아의 한 예다.

카페를 본거지로 하는 떼르뚤리아는 보통 한 두 사람의 이름 있는 시인이나 작가들을 중심으로 오후 일곱 시나 여덟 시경부터 한 두 시간 계속된다. 발표 형태는 다양하다. 주로 첫 파트는 한 시인이 시집을 읽거나 작품 평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다음 파트는 그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간담회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오늘 남아있는 마드리드 중심 가의 "카페 리온"같은 데서는 아무 젊은 문인이나 신작을 발표할 수 있는 곳도 있으나 대개는 미리 초대장이 발부되고 신문에 예고하는 것이 오늘의 떼르뚤리아다.

종래에는 카페 문화의 발달과 함께 이렇게 모여 환담할 수 있는 떼르뚤리아가 많았으나 요즘은 글자 그대로 문학 발표회, 시 낭송회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스페인 문화원과 아테네오 시 떼르뚤리아가 유명한데, 여기에서는 종전의 떼르뚤리아 형식대로 미발표 시집을 읽고 평론가가 평을 한 뒤 자유로운 간담회가 뒤따른다. 모임이 끝내면 대개 가까운 카페나 술집에 다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시 낭독이라기 보다는 시 읽기에 가까운 비연극적인 낭독방법이 보통이고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예는 거의 없다는 점이랄까.

그러나 요즘은 모두들 바쁜 세상이라서 이런 떼르뚤리아같은 전통적인 문학발표회 보다는 책 출판과 동시에 카세트나 노래를 통해 독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시 낭독 카세트의 경우는 원작자가 육성으로 자작시를 낭독해서 발표하는 것이 가장 많고 안또니오 마차도나 로르까같은 저명 시인들의 시는, 많은 경우 작곡되어 가수가 부르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작곡들은 작품의 시적인 풍미를 살리기 위해 시 낭독과 멜로디가 반반씩 섞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징주의 이후 자유시가 단연 우세하다는 것이 요즘 시 풍조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서반아 시에는 운율감이 생동하는 작품이 많아 낭독 그 자체가 음악성을 내포하는 경우를 본다.

시가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센세이셔널한 것은 유명 가수들의 시 낭독회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왕립 연극학교"에서 시 낭독법을 주요 과목으로 유지하고 있을 만큼 낭독이 정격화되어 있는 풍토라서 이렇게 유명 연예인들이나 가수들의 낭독회는 록 페스티발만큼이나 인기를 끈다. 이런 행사는 주로 극장이나 사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영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서 선전도, 전파력도 대단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유명 시인들의 잘 알려진 시들을 낭독하는 예가 많아서 신선감은 없다 할지라도 일반대중의 기호에 맞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특기 할만 하다.

같은 방법이지만 옛날의 음유시인 스타일로 돈을 버는 예술가들도 있다. 그 방법은 아까 말했듯이 시에 작곡을 해서 충분히 서정성을 살려 노래하는 경우가 그것이고, 또 하나는 시 낭독 전문가가 카페나 살롱, 술집 등에 가수처럼 고용되어 시를 읊는 스타일이다. 어떤 집에 가면 희랍의 랩소디처럼 튜닉을 입고 분장을 한 낭독자가 시의 효과를 최대한 살려 청중을 매료하는 광경은 재미있다. 이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즉흥시인이기도 해서 즉석에서 귀한 손님이 올 때 시를 지어 바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스페인은 축제의 나라다. 각 고을마다 마을의 수호성자가 있고 전통 축제가 있다. 이런 축제에는 꼭 시가 따른다. 소위 "꽃놀이"라는 이름의 백일장이 벌어진다. 이런 백일장은 즉흥시라기보다는 미리 모집을 하는 형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나 상금들이 두둑하고 대우를 잘 받아서 소위 전문시인들이 한번쯤 가까이 해보는 시 콩쿠르이다. 내용은 일정한 제목이나 테마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즈음은 자유 소재로 모집할 때도 많다. 스페인의 축제는 거의 매일 고을 어느 곳에선가 벌어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아서 이런 백일장도 언제나 기회가 있다고 보아야 된다.

여기에 당선이 되면 요즘 말로 "미스" 어느 마을, 즉 그 축제의 여왕으로 뽑힌 미녀 곁에 자리하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중세 음유시인 스타일의 즉흥시를 낭독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스페인 서민 문학의 전통에 살아있는 양식이라서 대중의 흥과 곧잘 부합되는 면도 있다. 서민 문학의 한 맥락이라면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삐로뽀"같은 것이 그 한 예로, 아직도 안달루시아에 가면 길가 아무 여자나 보고 말을 건넬 때 붙이는 몇 마디 시적인 표현들을 들을 수 있다. 아름다움은 누구의 아름다움이든 우리의 시적인 감성을 건드릴 수 있다. 이것이 서민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유출 방법으로 전통화 된 것이 "삐로뽀" 습성이다. 지금은 차차 없어지고 있는 이런 관습에서 우리는 스페인 국민의 심미적인 개성을 엿볼 수 있으며, 이것이 서민문학의 어디엔 가는 그대로 살아있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 축제의 여왕에게 바치는 시 같은 것으로 그것이 가치야 있던 없던 간에 축제의 분위기를 돋우는데는 만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스페인의 전통 속에 살아 있는 민간 차원의 문학과 대중과의 접촉 방법이라면 "환 마치 문화재단"이나 문화성에서 주관하는 정부차원의 문예진흥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각 지방행정에서 문화 강연에 막대한 예산을 배려하는 것이다. 4, 5년 전 돈키호테의 고향 라만차의 어느 도시의 시 발표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동료 시인 한 사람과 초대받는 이 자리에는 백여 명의 청중이 지방 문인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발표회가 끝나고 우리는 그 마을 전통 술집에 모여 다시 축연을 벌였는데 호텔비, 여비를 포함 사례금이 너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문화성이나 여타 문화 재단에서는 매년 10여명의 문인들에게 창작 보조비를 지불하고 그 동안 쓴 작품을 출판해준다. 문예 창작을 후원하고 발표해주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것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특기할 만한 것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같은 선전 매개체의 적극적인 보조다. 모든 신문이 문학에 4, 5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것은 상식이지만, 매주 10페이지가 넘는 문학 특집을 발행하는 것이 모든 신문의 경우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주요 문학상의 발표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아도나이스 시상"이나 "쁠라네따 소설상", "나달 상", "국가 문학상"의 발표를 예로 들어보면 대개 호텔 연회장에 최종 심사에 오른 작가, 시인들, 문화계 인사들을 모아 놓고 파티가 벌어진다. 그 파티에는 심사위원들의 작품에 대한 토론, 품평회가 공개 방영되고 당선자가 발표된다. 이런 보도 매체의 문학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는, 즉시 수상서적의 판매 부수에 반영되고 독자의 호응도의 찬반에 영향을 미친다.

스페인 문화풍토가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페인은 국외의 상, 즉 노벨 문학상이나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같은 것은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문화정책으로, 보다 관심을 두고 홍보하는 것은 자국의 문화활동이며 그 차원 높은 심층취재라는 것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 사람들은 문학에 무슨 찬란한 성공이나 실패가 있을 수 있다고 아예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학은 전통을 사는 그들의 삶이며 호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매스컴의 문학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는 한편으로 정부의 시책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오히려 민중의 기호에 맞추기 위한 자연적인 추세라고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문학과 독자와의 관계는 사실상 어떤 특별한 시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많은 경우 그것은 이들 국민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며, 그들 일상대화의 관심사이고 내용이기 때문이다.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문화에 대한 각별한 배려는 민중 축제에서부터 대중문화로 탈바꿈을 하고, 또한 그것은 각 문화 재단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여기서 정부가 하는 역할은 그 관심도의 활성화 내지 홍보에 인색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대중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전문 낭독가의 예술적 기능 확대와 시장개발, 유명 가수들의 시적 메시지 전달에 대한 관심도 같은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표본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