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한국문화의 체험(2)

Ŕeflexions sur l'ame coŕeenne




Jeam HOURCADE Attaché Culturel

Ambassade de France en Corée

외국에서 직무수행을 하고 있는 한 외교관이 그가 느끼는대로 그 나라의 심오한 현실에 대하 허심탄회하게 말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국가, 즉 한국의 실체에 관계되는 것이고 한국인들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것, 그들 대대로의 조상, 그들의 열망, 그리고 역사를 통해 얻은 그들 행동의 특이성, 신 앞에 그리고 인간들 앞에 그들이 주는 이미지 혹은 준다고 생각되는 이미지, 물론 그것은 외국인에게는 다르게 느껴지는 이미지, 이와 같은 것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인접국가를 통해서 이 땅, 즉, 한국을 고찰해보고자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역사를 통해서 이 인접국 즉 일본은 한국에게 있어서는 큰 거울과 같다. 일본은 그 한국의 이미지를 비쳐주며 또한 한국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나는 나의 그 두 가지 약점을 역이용하여 한국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프랑스 국가를 대표하여 이 나라의 문화의 관찰자로서 파견되어 그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에 거주하면서 얻은 경험에 비추어 나는 친애하는 한국국민들에게 그들이 외국방문객들에게 처음 주는 인상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한국은 양(陽)의 나라이다. 흉칙한 시멘트 건물 외에는 모든 것이 물이고 나무이고 인위적으로 희뿌연 이웃 섬나라로부터 한국에 도착하게 되면 사람들은 즉시 바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이 곳에선 돌과 단단한 물체를 만질 수 있다. 공기는 맑은 하늘 아래서 진동한다. 수평선은 선명하다. 일본과는 달리 불투명한 안개는 없다. 산의 정상과 석조건물 모서리에는 선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곳에선 일본인들의 굽실거리는 태도의 근원인 신체적 접촉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 악수는 솔직하다. 말소리는 크고 목청은 높고 음성은 맑다.

이곳 사람들은 원색을 좋아한다. 저곳 일본에서는 엷은 색을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소리를 좋아하고 그래서 음악과 생명과 기쁨의 화음처럼 목소리가 조화되는 합창을 좋아한다. 저쪽 바다 건너에서는 침묵을 좋아한다. 정원의 이끼를 통해서 예술적으로 표현하듯이 파도의 출렁이는 소리나 시냇물의 졸졸거리는 소리에 의해 약간 격을 높이며 신성화시킨 침묵을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강한 맛을 좋아하는데 저곳에서는 세련된 혀끝의 섬세함 때문에 싱거운 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두 국가의 양념은 같은 것을 사용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 두 국가는 現象界와 그들 환경으로부터 얻어지는 경험을 이해하는데 있어 서로 상반된 방향을 취하고 있다. 사물의 美를 찬양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존재의 행복을 노래함에 있어 서로 상반된 방식을 취하고 있다 ; 바로 이것이 동양학 전문가이자 한국불교의 전문가, 현재 일본에 사는 한 친구와 내가 최근에 극동지방에 머무르면서 같은 불란서인으로서 우리들의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다.

영(靈)과 예술의 세계에서, 한국 국민과 자연에 대한 이 원칙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입증된다. 이웃 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즉 불교나 도자기 혹은 전통예술에 관한 모든 것은 이곳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든가 중국에서부터 건너와 한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전해지든가 했다.

한국 ; 대륙(중국)의 창조적이면서도 무질서한 격동과, 대양 한복판에 있는 나라와의 사이에 있는 교량 ; 분명한 대륙적 속성과 섬이 되고자 하는 꿈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반도국 ; 아시아의 모체인 남단에 위치해 있는 위협적인 인구의 나라와 북쪽 초원의 배달민족의 신비한 순수성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나라 ; 북극의 추운 겨울, 긴장된 눈초리의 계절,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계절과 찜통 같은 숨막히는 여름, 대양의 수평선을 향하여 긴장 풀린 눈동자의 계절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나라 ; 특히 태극기의 대조적인 두 가지 색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반도국. 마치 뿔과 뿔을 맞대고 있는 숫양과 같이 다른 모든 것에서도 대조를 이루는 나라.

내가 이 땅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던 것은 몇 년간 자리를 비운 후, 다시 도착했을 때, 매번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좀 더 쉽게 숨을 쉴 수 있는 듯한 인상을 받으며 경주 석굴암을 찾아갔을 때였다. 새벽에 단숨에 올라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부처의 완벽한 모습 앞에 서게 되었다. 새벽 빛이 갑자기 비쳐 들어와 내 얼굴을 비추었다.

서쪽을 등지고 앉아 있는, 모든 것을 깨달은 그의 앞에서 동방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이 일시에 나를 사로잡았다. 화강암으로 된 한국의 심장부, 바로 그 옛부터 내려오는 적국을 마주하고 있는 이 땅의 보배,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일 아침 그곳으로부터 햇빛이 찾아드는 그것에 모든 것이 있었다 ; 창의적인 국가이다. 바로 갈등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문화의 교차로이자 문화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교류와 창의가 있는 나라이다.

아마 독자는 위에서 서술한 중에서 이미 한국과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를 암시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골(Gaule)족과 그리고 라틴계통과, 또한 게르만족 계통에 속하고 있는 나의 조국 프랑스에 대해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프랑스는 만남의 장소, 끊임없는 교류의 장소, 유럽중심의 그의 문화에 대해 자족하는 나르씨씨즘적인 열망과, 혼합되고, 혼혈적인, 완성되지 못한, 그래서 매일 재창조되는 그 국가의 부인할 수 없는 특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나라이다.

나는 남불태생으로 산간지방의 골족이다. (내 고향이 브르타뉴가 되었더라도 별로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음식의 강한 맛이 나의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고향도 역시, 북구라파에 대해, 고전적 문화의 원천이 되지 못했을 망정 그 고전적 문화의 교류를 위한 교량적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그 문화는 지중해 해안을 떠나 처음 다른 풍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 고향의 농가들도 역시 단단한 돌로 만들어졌다. 그 지방 역시 무거운 흙과 암석으로 이뤄진 산이 있는 고장이다. 눈에 덮여 있는 기나긴 겨울, 그 겨울동안 베레모를 쓰고 많은 생각을 발효시키는 사람들, 또한 밤샘을 할 때나 축제 때에 여럿이 모여 너댓이 짝을 지어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러한 것이 나의 눈을 반짝이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이곳 한국에, 향수에 젖은 날, 파도같이 기억이 밀려드는 날들을 위해 몇 개의 녹음 테잎을 갖고 있다 ; 향수 그리고 인내 이것은 까프리꼬르느의 銘句이자 한국 국민들의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대단히 큰 것이다. 프랑스에는 유교사상이 없다. 그러나 모든 오래된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인들은 옛것을 존경한다. 내가 보기에는-감히 솔직히 말하건대 -유교사상의 지나친 면이 한국의 역사나 투쟁에 있어서 큰 장애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유교사상의 고정적인 특성인 수직적인 성격이 오랜 세월동안 비판, 발전, 교류, 그래서 삶을 구가하는데 있어서 방해요인이 되어 왔었다.

매우 종종 나는 이곳 한국에서 그들은 단지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말해서 그들 명함에 씌어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명함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읽기 전에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희랍과 로마 인도주의 전통과 기독교를 통하여 인간이 우선이고 최종적 심판자는 사회가 아닌 신이거나 혹은 자기 자신 즉, 자기 자신의 양심적인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선입견의 사회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생각은, 프랑스 문화의 풍요로움의 근원이었다. 한 체제에 대한 의무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개개인의 자유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는 유교사상 뿐만 아니라 불교사상, 샤머니즘(이것은 프랑스의 몇 군데 시골에 아직도 남아있는 "우상신자"라고 불리우는 어떤 종교의식과 비슷한 것이다.)도 또한 있다.

그리고 또한 기독교가 있는데 이것은 문화의 엇갈림 속에서 최근에 들어와, 지배적인 종교가 없는 틈에 성장하게 되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교황이 1984년에 백여 명의 성인을 한 번에 시성식하기 위해 한국에 오셨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그리고 이제는 한국이 카톨릭교회에 가장 많은 성인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사람의 신앙이 어떻든 간에, 확실한 것은 한국도 우리나라(프랑스)와 같이 영혼을 승격시키는 나라라는 것이다. 갈등이 많은 나라, 여러 가지 상반된 요소가 있는 나라, 우리 나라(프랑스)와 같이,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진 나라, 마늘 냄새가 나는 나라, 힘주어 악수하고 목청을 높여 말하는 나라 ; 아시아에서 전형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그렇지만 중심을 차지하는 나라, 불편하고 도전의 대상이 되는 나라, 후하면서도 한편 주먹을 힘껏 쥘 수 있는 나라 ; 럭비를 잘할 수 있고 우리 나라와 같이, 전쟁에서 박력 있게 나갈 수 있는 나라, 항상 실락원과 영원한 부흥을 꿈꾸는 나라, 바다로부터의 도전에 맞서있는, 오래된 농업국 ; 열광적인 나라, 예술가들의 나라 ; 격렬한 나라 그러므로 성인들의 나라인 것이다.

(번역·여동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