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전통문화예술의 확산. 정신생활문화의 보급

강원지역에서의 민속놀이의 보급




김선풍 / 관동대학 교수

1. 서

조선총독부 간 「조선의 향토오락」에 의하면 강원도 민속놀이로 추천, 농악, 각력, 오광대놀이, 답교, 해색인, 석벌, 자벌, 서화벌, 사자놀이, 박첨지놀이, 홍동지놀이, 조조잡이놀이(조조포), 종경도유, 연등놀이, 채장유, 사희, 장치기(타구), 제기(축구), 쌍육, 궁술, 화전놀이, 고화벌, 연날리기, 투우, 자치기(타호유), 달맞이놀이(영월), 줄타기(답색), 미역감기(천유회), 호미씻기(선금조유), 척전(정전), 지신밟기(지신답), 길쌈놀이(공동적마), 비석치기(비석타), 호박따기(남풍유), 공기내기(석유), 장기, 투계, 닭놀음(계유), 말놀음(마유), 쥐놀음(서유), 장기, 바둑(위기), 골비, 칭칭놀이(칭칭유), 골뱅이놀음(나유), 사방치기(사방타) 등을 열거하고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강원도의 큰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그 행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놀이와 예능 등의 종류,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보급되고 있는가, 또 그 지역 주민들의 예능관은 어떠한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 본

민속문화행사란 일반대중의 높은 예지와 민족정신, 그리고 그 지역 주민의 애환을 담고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측면적 인간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주민성을 알려면 우선 그곳 자연과 민속문화의 특질을 파악해야 한다.

강원도의 토속적 문화 행사로는 강릉의 「강릉단오제」와 삼척지방의 「정월-대보름제(죽서문화제로 개칭)」를 들 수 있다. 근래 향토 단위의 독특한 문화적 유산과 지역 특색을 띠고, 주민의 협동심과 애향심 곧 정신적 단결을 목적으로 한 강릉의 「율곡제」, 영월의 「단종제」, 삼척의「광공제」, 원주의 「군도제」가 생겼으나 오랜 역사의 자생만물은 아니다.

율곡제 때는 일반 놀이나 예능행사가 거행되고 있지 않으며, 「단종제」때는 줄다리기 촌극경연회, 농악, 경창대회 등 민속놀이가 약간이나마 거행되고 있으며, 「군도제」행사에는 불꽃놀이, 농악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축제 분위기를 돋우며, 「광공제」는 광부들을 위한 생산적 향토문화행사(격년제)이기 때문에 간단한 현대식 축제에 지나지 않는다.

영동과 영서로 나누어 민속 놀이를 살필 때 역시 고유한 민족제전은 영동지방에 계승되고 있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이상 살핀 바대로 강원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축제로 강릉단오제와 삼척의 죽서문화제를 들 수 있겠다.

필자는 강릉단오제 중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굿놀이와 관노가면극에 관해 논급해 보기로 한다.

본 놀이는 1967년 1월 16일 문화공보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한 강릉단오제 행사 중의 하나다.

관노란 용어는 구한말까지 관노들이 공연했기 때문에 붙이게 된 것인데, 현재는 관동대학 무형문화연구소에서 맡아 관동대학 국어교육학과 학생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다.

강원도 지방의 가면희는 대부분 무속행사와 더불은 탈놀음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도 동해안 일대 무당들이 여흥의 장으로 마련되는 탈굿(범굿 등)이 존재하고 있거니와, 기록에만 존재하는 고성의 성황굿, 삼척의 금잠 성황행사 때의 탈굿의 흔적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신라 김이사부장군이 우산국을 정복할 당시 사용한 탈은 서낭제와 상관이 없는 전쟁가면에 속한다.

고로 이렇게 영동 일대 해안과 산간지방에는 예부터 무속 형식의 일환으로서의 벽사가면과 전쟁가면이 이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릉단오제의 제문 내용에 무격들이 행사를 앞에서 이끌어간다고 하여 무측전도란 문구가 보인다.

또 남효온(1454∼1493)의 추강냉화에 단오제를 지적한 듯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곧 영동민속에 무속행식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결론을 갖게 한다.

매년 3, 4, 5월 중 한 날을 택해서 무당으로 하여금 산신을 만들어 제사하였던 바 부자는 말에 싣고, 가난한 자는 등에 지고 산에 올라가 귀신석을 마련하고 북, 거문고 등의 음악을 즐기며 3일간 실컷 마시고 배불린 후에 집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이밖의 기록 등에서 살필 수 있듯이 영동민은 예로부터 무격을 중심으로 남녀가 모여 축제행사, 곧 한 바탕 굿판이 이루어졌고, 이같은 종교적 민간 행사(신앙)에서 곧 민속놀이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다음, 이들 종교적 집단 행사 중심의 놀이 이외에 농경 생활 중심의 놀이도 무시할 수 없으니, 농악을 중심으로 한 농악, 줄다리기 등이 그것이다.

이로 볼 때 한국의 민속놀이 장르구분은,

(1)종교의식의 굿놀이계 민속놀이

(2)농경의식의 기농계 민속놀이

(3)유희본능의 오락성과 신체단련의 민속놀이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4장르를 개별적으로 언급해 보기로 한다.

(1)종교의식의 굿놀이계 민속놀이

조선조의 주읍의 주무는 내무녀로 그곳의 서낭당을 받들 뿐 아니라, 관부의 부군당을 받들어 모시는 곳의 관선무였으며, 남자는 장악청에 속에 관아의 의식 때는 주악을 무사에는 무악을, 주읍의 대제 때는 산태희 등의 잡희를 연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제주도의 「입춘굿」, 「꽃반」, 「영등굿(말뛰기 놀음)」등과, 강릉의 「단오제 굿놀이」, 「관노가면희」, 「등불놀이」, 이밖에 하회, 경주, 북청, 고성, 횡성 등의 「사자놀음」이 이에 속한다.

원래 원초적인 면에서 종교의식의 굿놀이계 민속놀이와 농경의식의 기풍계 민속놀이는 출발에서 다르다 할 지라도 오늘날의 민속놀이는 이 둘의 혼복합체로서 존재한다 하겠다.

그러나 민중은 신을 좀더 즐겁게 해주고 치성을 올릴 때 풍농·풍어뿐 아니라 아들도 낳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놀이를 잘 살펴보면 이 두 사상의 혼합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릉 단오제의 형식은 다분히 불교적 의식, 유교적 의식, 무속적 의식의 복합체라 하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재래 종교의 형식규범을 따르고 있는 경향이 짙다 하겠다.

굿놀이든 어느 놀이든 그 주민 내지는 자연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허백당기에 있기를,

「대체로 인정이란 땅이 기름지지 못한 곳에서 살면 부지런하고 땅이 기름진 곳에서 살면 게으르게된다. 원주 사람은 나면서부터 그 부모가 먼저 곡식을 주어 재곡으로 자본을 삼고, 해마다 이식을 취하는데 있어서도 아무리 적다 할지라도 만금과 같이 중히 여기고, 새벽 일찍 논밭에 나가 밭갈이 하는 것을 보살피기를 쉬지를 않다가 저녁 때가 되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강릉은 그렇지 않아 강보를 떠날 때쯤 되면 편안과 사치와 집치장을 일삼고, 부자집 돈을 꾸어서라도 유연자금을 마련하여 술에 취하지 아니하는 날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지적대로 원주는 굿놀이의 여유가 없는 고장이었다.

강릉단오제 굿놀이, 강릉탈 등이 굳어 오늘에 면면히 전해 오는 이유도 실은 산천의 기상이 그곳 사람의 기질과 성품을 만들었고, 여유 있는 생활의 차이가 놀이의 성격도 다르게 만들었던 데 연유한다.

그러면 강릉 단오제굿과 그에 수반된 여러 놀이를 어떻게 지역주민들은 즐기고 있을까.

무당굿을 구경하는 가설성황당 앞에 모인 노인보살님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소변도 앉은 자리에서 보면서 즐기기도 한다. 무당의 연희 동작과 노래, 탈굿에 그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 제전은 완전히 자식 둔 중년 여성과 노인들의 축제 무드로 감돌고 만다. 이 놀이굿판에서 1주일쯤 징, 꽹과리, 북, 호적 등의 굉음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신명이 난다. 굿판 모래 위에서 자는 촌할머니가 상당히 많다. 진정 강릉단오제는 영동뿐 아니라 강원도민의 축제인 바 이곳에 들려가는 인파가 1주 30만이 넘는 수에 달한다.

단오제 때의 주요 행사명을 들면, 산신제, 국사성황제, 여성황제, 제전의식, 관노가면희, 농악경연, 그네대회, 등불행진 씨름대회, 토속민요경창대회, 시조경창 등과 축구, 정구 대회가 있다.

그러면 강원 지역에서 유일하게 보존·전수되고 있는 관노가면희만을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관노가면희는 서민들이 하지 않고 관노들이 맡아서 했는데 제사 기간 중 5월 1일, 대성황사 앞에서 놀았고 단오날까지 날마다 놀았다 한다.

본 가면희는 임동권 교수가 1966년 강릉출생의 관노 고 김동하 옹과 고 차형원 옹의 증언으로 재헌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1971년 강릉여자종합고등학교와 강릉교육대학에서 공연했으나 현재는 관동대학에서 맡아 공연을 한다.

등장인물은 양반(1), 소매각시(1), 시시딱딱이(2), 장자마리(2), 기타 觵대잡이 무녀와 악공, 거화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특징을 살피면, 서낭제 가면희라는 점, 관노들이 공연했다는 점, 열부사상을 고취한 점, 대사 없는 묵극 형식의 가면희라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특히 무언극 계통의 연희가 없는 한국연극사에서 특기할 만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극이었기 飁문에 극적이고 놀이적인 요소가 더 강렬했고, 장자마리나 시시딱딱이의 땅재주 등 강렬한 판토마임은 관중을 놀라게도 폭소를 자아내게도 했던 것이다.

(2)농경의식의 기풍적 민속놀이

줄다리기는 기풍적 민속놀이의 대표가 되고 있다. 물론 줄다리기는 기풍뿐 아니라 풍어의 의미도 함께 갖는 수가 있는데, 이 경우가 삼척 기줄(게줄)다리기다.

강릉단오제와 삼척 기줄다리기의 내용적 차이는 저자가 신을 모시는 종교의식에서 출발한 선종교후기원 의식인데 반해, 삼척의 기줄다리기는 약간의 종교성도 엿보이나 목적의식을 풍농·풍어에 둔 놀이로 간주된다.

(3) 유희본능의 오락과 신체단련의 민속놀이

전국적으로 비슷한 현상이겠지만 이 지역에는 개싸움, 닭싸움, 불싸움 등의 싸움을 내용으로 한 놀이가 있고 씨름, 장치기, 석전놀이, 그네뛰기, 널뛰기,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등의 신체 단련을 위한 놀이, 윷놀이, 장기, 생윷, 바둑, 골패, 화투 등의 실내 놀이가 전해온다.

(4)아동유희

아동들이 즐기는 놀이로는 실놀이, 숨바꼭질, 연날리기, 돌차기, 고무줄놀이, 가마타기, 공치기, 땅 재 먹기, 손바닥치기, 고사리놀이, 엿치기 등이 있는데, 이들 중 강릉의 고사리 놀이는 흥미있는 형태의 놀이로 수십명의 아이들이 한 무리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수양산 괴비 고사리 꺾으로 가자」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차례로 손을 놓지 않고 선두에서부터 손 아래로 빠져 나가며 노는 놀이다.

이 유희는 초동들이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심심할 때 묘를 한가운데 두고 빙빙 돌면서 놀기도 한다. 이른 강강수월래의 원무 동작을 연상하게 되는데, 강강수월래가 여성의 춤이었다면 고사리놀이는 남성들의 원무인 점이 독특하다.

3. 결

이상에서 살핀 바대로 강원도에도 어느 도 못지않게 많은 특수 민속놀이와 예능이 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놀이의 출발은 첫째 종교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었고, 둘째 풍농, 풍어 및 유희 본증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면 필자가 근 10여년간 살핀 이 지역 민속 중에서 보급 보존 가치가 있는 것만을 추출해 본다.

① 성인의 놀이와 예능 중 관노가면희와 장치기 보급을 강조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강릉단오제 때 관노가면희 외에 장치기놀이를 실시했으면 하낟.

② 화전놀이 때 지었던 화전가, 곧 내방가사를 짓는 고령 할머니들이 지금도 강릉, 양양, 북평 일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도 경연대회를 열어 의욕을 북돋고 사라져 가는 미풍양속을 전수받아야 할 것이다.

③ 중·고·대학에 가면반을 두어 강원도 고유의 가면을 배우게 해야 할 것이다.

④ 제기치기, 장치기, 고사리놀이, 씨름대회, 그네뛰기, 널뛰기 등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 실연했으면 한다.

⑤10여년 전에 실시되었던 연날리기 대회를 다시 개최하여 강원도 고유의 연을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⑥ 끝으로 민속 보존을 위한 방안으로 전국적인 「민속의 날」제정을 제창하고 싶다. 이는 각 도 대항이 아닌 각 도 군민의 순수민족 잔치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