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 문화시설
유익서(柳翼斲) / 소설가
■ 지리적 조건
경상남도는 한반도의 동남단에 위치하여 영남지방의 남반부를 자리잡고 있다. 북으로는 경상북도와 등을 비비고, 서로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남·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서가 232㎞, 남북이 194㎞이며, 총면적 11882.28 ㎢이다.
81년 7월 1일 김해가 시로 승격되어 마산, 진주, 울산, 창원, 충무, 진해, 삼천포 등 8개의 시와 진양, 의령, 함안, 창녕, 밀양, 양산, 울주, 통영, 거제, 고성, 사천, 남해,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창원, 김해 등 19개군, 20개 읍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경상남도는 338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남북방향으로 관류하고 있는 낙동강을 젖줄로 하여 분지 및 충적평야가 비교적 넓게 발달해 있어 취락이 용이해 일찍부터 많은 인구가 집결해 생활했으며 가야와 신라의 문화가 꽃피는 터전이 되었다.
■ 문화 전통과 그 개황(槪況)
일찍부터 가야를 비롯해 신라의 문화가 꽃을 피웠던 경상남도는 옛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남 특유의 문화적 특색을 고수해 오고 있다. 그리고 문화계의 보고인 해인사(海印寺)·통도사(通度寺)·쌍계사(雙溪寺) 등의 대가람을 품에 품고 있는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이다.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재 가운데 창녕읍의 신라 진흥왕 척경비(新羅 振興王 拓境碑)와 합천군 해인사 대장경판(海印寺 大藏經板) 등 국보 7점과 충무의 세병관(洗兵館), 통도사 대웅전(通度寺 大雄殿) 등 보물 63점, 그리고 사적 및 무형문화재 등 지정 문화재 1백 52점과 지방문화재 2백2점 등 총 3백 54점의 문화재가 26개 시·군에 고루 분산되어 있다.
각종 문화시설
동부에 울산·밀양, 중부에 마산·진해·창원, 서부에 진주·충무를 중심으로 세 블록의 문화권을 형성하여 균형 있게 발전하고 있는 경상남도 내의 문화시설은 65년 7월 공포된 지방문화사업 조성법에 의거하여 지역 사회 발전과 향토 문화 발전을 위해 설립된 18개소의 지방문화원과 사립 1개소를 포함한 시·군립 공공도서관 13개소, 그리고 34개소의 극장과 지방 유지가 사재로 건립된 밀양 문화회관이 있고 아직 종합 박물관이 없는 도내에 역시 사립인 진주 민속박물관이 있어 그나마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그밖에 학교 등의 공공시설이 문화행사에 사용되며 사설의 본격 전시장인 화랑이 8개소 있다.
오는 83년 대망의 도청 창원으로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진주에 준공될 경남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열게 되면 마땅한 전시실이 없어 진주로 마산으로 옮겨가며 궁색하게 치렀던 경남도미전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며 따라서 무대가 없어 각종 예술단체의 초청 공연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국립교향악단이며 무용단 등의 공연을 보지 못했던 도민들에게 비로소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게 될 것이다.
향토문화제와 문화단체
그런데 경상남도처럼 향토문화제 등 많은 문화행사를 치르는 도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제로서 향토문화예술제의 효시라는 진주 개천(開川)예술제를 비롯하여 밀양의 아랑제(阿娘祭), 진해의 군항제(軍港祭) 등 13 시·군에서 특색 있는 예술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4회 째 치른 경상남도 미전과 또 6회 째의 노산 가곡의 밤도 미술과 음악의 밭에 씨를 뿌리는 뜻 있는 행사들이다.
예총 도지부가 결성되어 있지 않은 경상남도에는 마산·진주·울산·충무·진해·밀양 등 6개소에 예총 시·군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그 밖의 예술단체로는 한국미협(韓國美協)·사협(寫協)·문협(文協)·무용협회 등의 지부가 산개 되어 있다.
3대 문화상
그리고 도내의 향토문화 발전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문화상은 도에서 주관하는 경상남도 문화상과 동방유량 회장인 신덕균(申德均)씨가 말없이 실행하는 문화인을 도우려는 취지에서 1958년부터 시상해 온 눌원(訥園)문화상이 있고 또 1971년에 제정된 이래 부산과 경남 일원에 걸쳐 향토문화 개발에 헌신적인 공헌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상해 온 향토문화사업협회가 주관하는 향토문화상 등이 있다.
경상남도 문화상은 1962년에 제정되어 81년 20회 시상까지 본상 95명 장려상 17명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수상 자격의 폭이 넓어 도내에 3년 이상 거주한 자이거나 본적을 경남에 두고 있는 자 및 타 시·도 거주자일지라도 경남의 문화발전에 기여한 자는 모두 수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역대 수상자 중 예술부문 주요 수상자를 살펴보면 이주홍(李周洪: 문학 1회), 조두남(趙斗南: 음악 2회), 박생광(朴生光: 미술 2회), 이경순(李敬純: 문학 3회), 김춘수(金春洙: 문학 4회), 정진업(鄭鎭業: 문학 6회), 강희근(姜熙根: 문학 12회), 임신행(任信行: 문학 13회) 등을 꼽을 수 있고 81년의 제20회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학술: 정좌용(鄭佐容: 경상대 농대 교수)
문학: 설창수(薛昌洙: 시인, 한국문학가협회 회장)
교육: 황창규(黃昌奎: 함안 가양 초등학교 교장)
체육: 김정태(金正泰: 체육인)
지역사회개발: 박준홍(朴準洪: 한산대첩 기념제전 부위원장)
그리고 민간단체가 만든 문화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전통 깊은 눌원(訥園)문화상은 1958년, 당사 경남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눌원 신덕균씨가 사재를 내어 제정한 것인데 매년 1∼2인의 예술인에게 시상해 오던 것을 20회부터는 폭을 넓혀 학예·행정·교육·치안·언론·체육·근로 등 7개 부문에 걸쳐 시상했다. 상금은 각 1백만 원. 지금까지 개인 50명, 단체 1개 팀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주요 수상자를 살펴보면 김봉룡(金鳳龍: 공예가 60년), 윤이상(尹伊桑: 작곡가 61년), 오제봉(吳濟峰: 서예가 63년) 이영도(시조시인 66년), 이석우(李錫雨: 화가 69년), 김정한(金廷漢: 작가 71년), 이주홍(李周洪: 작가 68년), 박문하(朴文夏: 수필가 74년), 임신행(任信行: 아동문학가 74년), 조두남(趙斗南: 작곡가 76년), 이경순(李敬純: 시인 77년)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51년, 부산 시장을 지낸 양성봉(梁聖奉)씨를 중심으로 발족된 향토문화사업협회가 제정한 향토문화상은 지역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사람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10회에 걸쳐 12명의 수상자를 냈다. 상금은 1백만 원, 수상자에는 천재동(千在東: 가면연구가), 강용권(康龍權: 민속학자), 양달석(梁達錫: 화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 분야별 예술활동의 개관
도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및 그 개황을 문학·미술·음악·연극 등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학: 타지방과 마찬가지로 이 지방의 문인들도 문인협회 지부를 구심점으로 장르별 동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인협회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곳은 마산·진주·울산·진해·충무·삼천포 등 6개의 시이다. 이 지방 문인들은 서울의 각 문예지뿐만 아니라 「문예정신」,「해조(海藻)」,「울산문학」,「창녕문학」,「마산문학」,「경남수필」,「수향(水鄕)」 등 지방 동인지를 글 밭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미술: 어느 예술 분야보다도 활발히 경남 지방의 미술계는 78년 오랜 숙원이던 경남도전(慶南道展)의 창설로 더욱 의욕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국미협·도지부 및 마산, 진주, 울산지부가 설치되어 있고 각 대학의 미술과와 각 동인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중요 동인회는 5회의 전시회를 가진 마산의 「상(象)」, 진주의 「평행회」와 「촉석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4회 째(81년 7월) 치른 경남도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 작품 수가 늘어나고 질 또한 높아지고 있다.
경남도지사를 회장으로 도내 전미술인이 참여하여 운영되고 있는 도전의 4회 째 출품작은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서예, 사진 등 6 개 부문에 5백 25점이 접수되어 대상 6, 특선 46, 입선 180의 수확을 얻었다. 서양화 부문의 김철수(金鐵秀)씨가 「레일 2.0km 지점」이라는 구상작품으로 최고상인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동양화 비구상 「태고의 여운」으로 최연현(崔演鉉)씨가 대상(도지사상)을 받았다. 그리고 조각 부문에서는 「포즈 81-1」을 출품한 서순오(徐順吾)씨가, 공예 부문에서는 「티 테이블」을 출품한 김영미(金英美)씨가, 서예 부문에서는 「오권(午卷)」을 출품한 정문장(鄭文丈)씨가, 사진 부문에서는 「불심(佛心)」을 출품한 이영기(李永基)씨가 각각 대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음악: 경남 지방의 악단은 마산을 중심으로 요란하지 않은 가운데 꾸준히 성장해 왔다. 마산 실내악단(단장 배대균, 지휘 안종배), 한국성악회 마산지부(지부장 김봉천), 마산 관악협주단(지휘 오호걸), 한국동요작곡연구회 경남지부(지부장 황덕식) 등의 활발한 연주회 및 작곡집 발간이 있었고, 원로 조두남을 비롯한 작곡가 김봉천, 바이올린의 김복현, 기악의 강정임, 강정연, 황정선, 성악에 장안례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버들합창단, 해바라기합창단, 마산 시립어린이합창단, 나래합창단 등의 합창단이 연조를 쌓아가고 있고 임기수(林基洙), 김완규(金完圭), 고태명(高泰明), 조만용(趙萬容)씨 등의 음악인이 활동하고 있는 진주에는 일요음악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연극: 각 시·군의 연극협회 지부를 중심으로 마산에 「불휘」,「불씨촌」,「흐름」,「세림기획」, 진주에 「현장」,「처용랑」,「맥」, 밀양에 「메들리」, 충무에 「벅수골」, 울산에 「출발」, 진해에 「진해극협」 등 12개 극단이 활약하고 있는 경남 지방의 연극계는 다른 지방보다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경남대, 마산대, 창원여전 등 각 대학에 연극부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어 연극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무용: 경남 무용인 합동공연을 갖는 등 대체로 꾸준히 활동을 해온 무용계는 다른 무대예술보다 경비가 많이 드는 까닭인지 작년 한해 동안은 경제 불황의 여파에 거의 숨을 죽이고 있는 실정이다. 마산의 설수석·박성희 부부의 창작 무용공연과 진주의 조은진 무용공연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진주민속보존회(회장 하병렬)가 가무(歌舞) 중심의 제례행사인 「논개별제(論介別祭)」의 재현을 시도하였고 또 전통민속무용 발표공연을 가져 중요무형문화재인 팔검무(八劍舞)를 비롯하여 지방문화재인 한랑무(閑郞舞), 학춤, 양반춤 등을 전수,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서예: 경남의 서예가는 진주의 재야중진인 정명수(鄭命壽), 김정(金正)씨를 비롯하여 김우동(金雨東), 정인지(鄭仁知), 김형환(金炯煥), 마산의 심철호(沈哲浩), 변지섭(卞志燮), 신철석(申喆錫), 양재항, 이재덕씨 등이 후학 지도와 아울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카메라가 현대 생활의 필수적인 구비품으로 되어가면서 사진 인구가 늘어 경남 지방에는 「마산 영상회」(회장 박재갑), 「한눈박이회」(회장 정원섭), 「사림회(寫林會)」(회장 신은영), 「광사회(光寫會)」(회장 이영기), 「진주 일요사진클럽」(최기용), 「진해 사진동우회」(회장 이춘모), 「충무 한려사진동호회」(회장 김병규), 「울산 예림회」(회장 서진들) 등 10여 개의 사진 서클이 형성되어 맹렬히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진작가협회 각 지부가 모두 참여하는 경남사협합동전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 각 시·군의 문화시설
마산시의 문화시설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더불어 시로 개편되어 천혜의 양항(良港)으로 발전되어 오던 마산은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자연히 경남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 50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의 수출자유지역이 설치되면서 인구 및 도시 면모의 급성장을 보여, 현재 40여만에 이르는 인구를 포용한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거기에 오는 83년으로 예정된 지척지간의 창원으로도 도청 이전을 앞두고 창원, 진해권까지를 포용한 명실상부한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담당할 꿈으로 부풀어 있다. 이러한 마산이고 보니 시민들은 행정 및 경제 등과 함께 문화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원하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경남대와 마산대를 중심으로 날로 늘어나는 대학 인구의 팽창은 자연히 문화의 수요와 창출을 동시에 욕구하여 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므로 마산 문화계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마산은 문화시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찍이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가고파」의 고장이며, 이원수(李元壽) 선생의 시의 고향이라기엔 너무나 그 문화시설이 빈약한 편이다. 그리고 무학뫼를 등지고 합포만을 품에 안고 있는 운치 있는 도시의 지형과는 달리 어디 내놓을 만한 문화재 또한 한 점 없다. 기껏해야 역사의 흉터 같은 몽고정(蒙古井) 따위를 들 수 있을까.
지방문화원 1개, 시립도서관 1개, 극장 5개, 학생과학관 1개가 문화시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마산문화원(원장 박재석(朴在奭))은 마산 유일의 위락지인 산호공원에 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과 이원수 선생의 노래비, 그리고 김수돈(金洙敦) 시비가 서 있는 그곳은 마산의 유일한 문화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지상 2층, 건평 4백여 평 규모의 문화원은 작년으로 개원 열 일곱 돌을 지냈다. 50여 평의 전시실은 미술, 서예, 사진, 시화전 등에 대관 해 오고 있는데 대관은 무료이다.
마산 시립도서관은 산호동 532-12에 위치에 있다. 대지 4백 3평에 건평 169.6평, 좌석 수 96석, 장서 8천 6백 31권에 지나지 않고 보잘 것 같은 형평. 지식 정보의 교환 및 보존의 온상이 되어야 할 도서관이 그 구실을 제대로 하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오락시설이라 할 수 있는 극장은 비교적 많은 편으로 6개, 시민, 강남, 중앙, 3·15 회관, 태양, 마산 등 여섯 개 극장에 4천 2백 27석의 좌석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듯 빈약한 시설 때문에 갈증을 허덕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몇 군데의 사설 시설들이 그나마 갈증을 덜어주고 있다.
76년 10월에 문을 연 동서(東西)화랑(대표 송인식(宋寅植)), 80년 1월에 개관한 백자(白磁)화랑(대표 서인숙(徐仁淑)), 80년 10월에 도예가 진종만(陣鐘滿)씨가 개설한 진(陣)화랑, 그리고 81년 1월에 시작한 국제(國際)화랑(대표 김상지(金相志)) 등 네 개의 화랑과 무학(舞鶴)쇼핑센터, 가야(伽倻)백화점 전시실, 그밖에 전문 소극장 「맷돌사랑(舍廊)」 등이 그것이다.
문학 부문은 비교적 마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은상(李殷相), 이원수(李元壽), 김춘수(金春洙), 이원섭(李元燮) 선생 등이 한때 지키고 빛을 내던 마산 문단은 정진업(鄭鎭業)씨를 비롯해 박재호(朴載護), 황선하(黃善河), 김철규(金哲圭), 정순영(鄭珣永), 이광석(李光碩), 오하룡(吳夏龍), 강정(姜靜), 김은숙(金銀淑), 남기태(南基泰), 오미리(吳米里) 등의 시인들과 김교한(金敎漢), 박평주(朴平周), 이우걸, 정시운(鄭時雲), 정목일(鄭目日)씨, 아동문학에 동화작가 임신행(林信行)씨 등이 활발히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협 마산지부의 활동이 또한 활발하다.
마산의 미술계 또한 활발하고 의욕적이다. 문신(文信), 최영림(崔榮林)씨 등이 활동하며 영향을 끼쳤던 마산 화단은 원로 작가인 이상갑(李相甲)을 비롯해 정상돌(鄭相乭: 미협 마산지부장), 최운(崔雲), 유시원(柳時原), 권영호(權永鎬), 최붕현(崔朋鉉), 이경석(李慶錫), 황원철(黃元喆), 심명보(沈明輔), 윤병석(尹炳錫), 김주석(金周錫), 장별철, 조현주(趙顯主), 김은희 (金恩姬)씨 등의 서양화가와 이석구(李錫九), 변상봉(卞相奉), 심재섭(沈在燮), 김대환(金大煥), 박장화(朴長和), 김영진씨 등의 동양화가와 문신(文信), 김경화(金敬華), 이경렬씨 등의 조각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밖에 도예의 진종만(陣鐘滿), 최열자, 목공예의 정은승(鄭恩承)씨의 활동도 꾸준하다.
음악계는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선생의 후진을 양성하며 향토 음악계에 더욱 살을 찌우고 있고 마산 실내악단(단장 배대균, 지휘 안종배)이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열고 또 80년 관악합주단(지휘 오호걸)이 창단 되어 금년에 세 번째의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그밖에 한국성악회 마산지부가 창립, 활동을 하고 있고 81년으로 제6회 째를 치른 「노산 가곡의 밤」(10월 31일)도 마산 음악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큰 잔치의 하나이다. 민족문화협 마산지부(지부장 조민규(趙敏奎))가 주최하고 노산 문학회가 후원하는 「노산 가곡의 밤」은 민족의 얼과 말과 글을 다듬는데 평생을 바친 노산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비록 외부인사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지만 음악 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음악인의 잔치인 것이다.
보기 드물게 다섯 개의 극단이 활약하고 있는 마산의 연극계는 서울을 제외한 어느 지방보다 활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1년 7월,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충분한 시설을 갖춘 전문 소극장 「맷돌사랑(舍廊)」을 운영하고 있는 극단 「불휘」(대표 김종석(金鍾碩))를 위시하여, 연조가 깊은 「세림기획」(대표 김일준)과 그리고 「무대예술」(대표 조강래), 「흐름」(대표 전태환), 「불씨촌」(대표 송기학) 등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경남대, 마산대, 창원여전 등 대학 연극이 활발해짐에 따라 대학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관객 동원에 밝은 전망을 갖게 되었다.
그밖에 한국사협(韓國寫協) 마산지부(지부장 남기섭(南基燮))의 활동도 활발하다. 정원섭(鄭元燮), 엄석룡(嚴石龍), 이창후(李昌厚), 김병기(金秉琪), 이봉재(李奉宰)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진주의 문화시설
서부 경남에 위치한 고도 진주는 옛 문화의 자취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흙과 베옷과 결 고운 나무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 때문이겠지만 인구 19만여 명의 안정된 진주는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서부 경남의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라는 것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먼저 진주성(晉州城)의 주장대(主將臺)인 촉석루(矗石樓)와 논개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고려 대부터 비롯된 이 고도의 역사는 외형에 드러난 것 이상을 품고 있다.
보물 2점과 진주성 및 고려고분군 등 2개소의 사적을 비롯해 진주의 자랑인 중요무형문화재 11호인 농악 12차(次)와 12호인 진주검무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행정이나 경제보다 문화 쪽이 한발 앞서 있는 도시 진주는 그러나 문화시설에 있어서는 현재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본성동 성지 내에 있는 건평 1백 50여 평 3백 40석 규모의 진주문화원, 역시 촉석루와 인접해 있는 지상 3층, 연건평 1백 73평에 일반, 학생, 아동, 참고 자료실 등을 갖추고 도내에서는 가장 많은 1만 9천 4백 66권의 장서를 가진 시립 연암(燕岩)도서관(관장 김상룡)을 먼저 들 수 있다. 이 도서관은 1968년 11월, 향사(鄕士)출신의 사업가 연암(燕岩) 구인회(具仁會: 당시 럭키그룹 회장)씨가 향토문화발전을 위해 건립하여 시에 기증한 것이다. 그리고 진주, 제일, 동명, 중앙, 강남 등 5개의 극장이 3천 2백 57석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그밖에 경남도전이나 개천예술제 등 매머드 행사가 있을 때면 경남학생체육관과 각급 학교 강당이 사용되고 있다.
1974년 12월 1일 개관한 경남학생체육관(관장 하성우)은 대지 천여 평에 지상 2층 연건평 6백 10평 규모의 시설이다. 체육행사 뿐만 아니라 경남도전 등 큰 전시회는 대개 이곳에서 열렸다.
그리고 특색 있는 문화시설로서 판문동 산 171에 위한 진주민속박물관(관장 최낙선)을 들 수 있다.
35여 년 동안 교육계에 몸을 담아 왔던 최낙선씨가 오랫동안 사학의 학습재료로 수집해 왔던 민속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 건립, 75년 5월 25일 문을 연 진주 민속박물관은 대지 4백 3평에 지상 2층, 연건평 75평의 규모, 목공예실, 농기구실, 생산실, 무실(巫室), 사우문방구실(四友文房具室), 서화실(書畵室), 무기실(武器室), 이조사랑방(李朝舍廊房), 의학도구실(醫學道具室) 등으로 분류되어, 신라, 고려, 이조시대의 조상들의 얼과 숨결이 담겨 있는 유물 1천 2백 점을 전시하고 있다.
그밖에 진주에는 두 개의 화랑이 있다. 80년 9월 5일 문을 연 가야(伽倻)화랑(대표 손강호(孫康豪), 본성동 7의 15소재)과 79년 10월 문을 연 동양(東陽)화랑(대표 김진갑(金鎭甲), 대안동 20-7 소재)이 그것.
이렇듯 현재는 문화시설이 빈약하지만 82년, 83년이 되면 진주는 경남 지방에서 가장 훌륭하고 많은 문화시설을 갖게 되고 따라서 경남 제일의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82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중인 진주국립박물관이 현재 60%의 공정을 마치고 있고,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역시 82년 상반기면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도내 문화예술인들의 숙원이던 종합예술관이 구(舊)세무서 자리에 세워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은 스위스인 토니 하우스비엘트씨가 희사한 6천 5백만 원과 국비 등 1억 2천 5백만 원을 투입, 대지 1백 93평에 현대식 2층 콘크리이트 건물로 연건평 1백 41평의 규모, 연회장, 탈의장, 분장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전수회관이 준공되면 진주검무, 한랑무, 학춤 등의 보존 및 전수작업이 보다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민들의 숙원사업이던 경남 문화예술회관이 사업비 43억 원을 투입, 진주 성지 내에 건립된다. 부지 3천 5백 21평,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2천 평 규모. 중요 시설물은 대강당 7백 50평(1천 5백 석), 소강당 3백 평(1백 50석), 전시장(미술, 시화, 사진, 조각 등) 2개 2백 50평, 연습장(무용, 음악, 합창단, 연극, 무형문화재) 5개 2백 평, 문화 학술관계 회의장 2개 1백 평, 예총 각 단체 사무실 10개 1백 평, 휴게실 50평 등이다. 83년, 이 문화예술회관이 준공되면, 전국에서 종합예술회관을 갖지 못한 유일한 도로서의 수치를 씻게 되고 따라서 지금까지 음악, 연극, 무용, 국악 등 본격적인 무대예술을 감상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도민들의 갈증을 풀어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주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문화의 큰잔치를 거시적으로 치르고 있다. 곧 우리나라 향토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가 그것이다. 1949년 설창수(薛昌洙), 이경순(李敬純), 박세제(朴世濟), 박생광(朴生光), 오제봉(吳濟峰), 이용준(李龍俊) 등 재진(在晉)문화인들이 향토문화 발전을 위해 발기하여 시작된 개천예술제는 1950년 6·25 동란, 1979년 10월의 국장 이렇게 두 번을 결제했을 뿐 1981년까지 31번째의 큰 잔치를 벌였다. 예총 진주지부가 주최하며 재진(在晉)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치른 81년의 제전에도 경남 도민은 물론 부산, 서울 등 전국의 예술인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문학, 미술, 무용, 연극, 국악, 사진 등 30개 종목의 예술경연대회에 3만 5천여 명의 예술인과 예술 지망생들이 참여 열띤 경쟁을 벌였다. 지금까지 개천예술제 백일장 입상자 가운데 현역 문인들을 꼽아보면 박재삼(朴在森), 정공채(鄭孔采), 이제하(李祭夏), 김종철(金鍾鐵), 서동훈(徐東燻) 등 70여 명에 이른다.
현금 진주에는 예총 지부를 비롯하여 문(文)협(지부장 최용호), 미(美)협(지부장 최태문), 음(音)협(지부장 임기수), 연(演)협(지부장 조한조), 무(舞)협(지부장 김정애), 국악(國樂)협(지부장 성계옥), 사(寫)협(지부장 곽수독) 등이 결성되어 있다.
진주의 문학계는 설창수, 이경순 두 원로 시인을 비롯하여 최용호(崔容鎬), 정식헌(鄭湜憲), 조인영(曺寅榮), 신찬식(申讚植) 등의 시인과 최재호(崔載浩), 박재두(朴在斗), 이명길(李命吉), 이월수(李月洙), 김정희(金貞熙), 손광세(孫廣世), 원용문(元容文), 이영성(李英成) 등의 시조시인, 김영화(金英和), 김인배(金仁培) 등의 소설가, 조평규(曺平圭), 신충해, 이수정(李壽貞) 등의 아동문학가, 박민전(朴玟鈿), 정태용(鄭泰容), 김인호(金仁湖) 등의 수필가, 그리고 한동열(韓東烈), 손정수(孫正守) 등의 극작가들이 매년 두 차례 부정기 간행물로 「문예정신」을 간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한다.
미술 분야는 양태석(梁泰奭), 최태문(崔泰汶), 이길성(李吉城), 조영제(趙榮濟), 조원섭(曺元燮), 조의제(趙醫濟) 등의 동양화가, 안재덕(安在德), 이흥규(李興圭), 강정영(姜丁永), 김철수(金鐵洙), 박광웅(朴光雄), 조구배(曺九培), 안충남(安忠南), 허기태(許基泰) 등의 서양화가, 정명수(鄭命壽), 정문장(鄭文丈), 김형환(金炯煥), 조영실(曺永實) 등의 서예가들이 경남도전 및 「평행회」,「촉석전」 등의 동인전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음악분야는 임기수(林基洙), 고태명(高泰明), 조만용(曺萬容), 김완규(金完圭), 허정상, 김송자, 유미자, 강동규씨 등이 활동하며 일요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음악 인구의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연극 분야는 「현장」(대표 조희래), 「처용랑」(대표 한동렬), 「맥」(대표 박홍두) 등 세 개의 극단을 발판으로 조한조, 박우희, 강석문, 권영녀, 권영하, 김재호, 김종태, 김종호, 방성진, 황명헌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무용 분야는 무협 진주지부 지부장 김정애(金貞愛)씨를 구심점으로 정혜윤, 이홍순, 강인자, 김두순, 김미희, 서경순, 이미정, 정영둘, 조영자, 조은진, 황진순씨 등이 발표회와 아울러 후진 양서에 힘쓰고 있다.
국악 분야는 이 고장 무형문화재 진주검무의 기능보유자 이윤례(李潤禮), 김옥주(金玉珠), 김수악(金壽岳), 이음전(李音全), 강귀례(姜貴禮), 최례분(崔禮分), 강순금(姜順今)을 비롯하여 성계옥, 오재삼, 최순금씨 등이 국악의 보존과 전수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사진 분야는 곽수돈, 최기용, 김우태, 방규택, 이재영, 김윤경, 마상철, 염명규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충무 문화시설
국립해상공원 한려수도의 미항(美港)인 충무시는 1955년 9월 통영군에서 분리, 시로 승격, 현재 인구 7만 5천여 명의 아담한 항구도시이다. 유치진(柳致眞), 유치환(柳致環), 박경리(朴景利), 전혁림(全爀林)씨 등 우리나라 희곡, 시, 소설 미술계에 각기 굵은 획을 그어놓은 예술가를 배출한 고장이지만 문화시설은 빈약하기가 다른 지방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지방문화원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충무의 문화시설이란 대지 32평, 건평 32평에 좌석 68에 장서 2천 4백 68권에 지나지 않은 충무 시립도서관(동호동 230-1)과 통영, 충무, 봉래의 3개 극장(좌석 합계 1천 3백 24석)과 개인이 설립한 전문미술관 동방(東邦)화랑(대표 이태엽(李泰燁)), 그리고 통영오광대(統營五廣大) 전수회관 밖에 꼽을 것이 없다.
충무지방에는 「수향(水鄕)수필」과 「물푸레」 등의 동인지를 꾸준히 내고 있는 문학 분야의 지방의 원로화가 전혁림씨가 지키고 있는 미술 분야의 예술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전수되고 있는 통영오광대와 승전무(勝戰舞) 등 국악 기능 보유자들의 활동이 돋보인다.
서우승, 차영환 등의 시인과 김우성, 최진기, 최중호, 설치륜, 정정대 등의 수필가, 극작가 강수성씨 등이 문학 분야에서는 활동하고 있고 하태홍, 이태규, 정종근, 서형일 등의 서양화가와 김안영(동양화가)씨 등이 미술 분야에서, 그리고 음악 분야에서는 작곡가 정관호씨가 활약하고 있다.
통영오광대 기능보유자는 오정두(吳正斗), 김삼성(金三成), 김진수(金振守), 유동주(劉東柱), 문창섭(文昌燮), 고영수(高永守)씨 등이며 승전무는 정순남(鄭順南), 이갑조(李甲祚), 주봉진(朱鳳珍)씨 등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울산·밀양 지방의 문화시설
1962년 6월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됨과 함께 시로 승격된 울산은 인구 39만 3천의 한국의 공업을 상징하는 중화학공업도시로 발전했다.
문화·예술이 발붙일 곳 없이 보이는 공업도시지만 1967년이래 해마다 6월 1일부터 3일간 문화잔치인 울산공업축제를 열어 문화예술의 향기를 퍼뜨려 왔다.
옥교동 272 소재의 울산문화원(원장 박영출), 대지 1천 2백 32평, 건평 4백 6평, 좌석 수 2백20석 장서 9천 5백 48권을 갖춘 사립의 울산도서관(달동 518번지), 천도, 태화, 시민, 울산(좌석 총계 2천 5백 90석) 등 4개의 극장, 그리고 미술전문의 영(英)화랑(대표 박영인, 한남동 3번지) 등이 문화시설의 전부다.
동부경남 문인들의 유일한 향토문예지인 「울산문학」은 한국문인협회 울산지부(지부장 조홍제)의 기관지로 81년에 6집을 내놓았다. 조홍제, 박종해, 김성춘, 김헌경, 김종경, 신필주, 홍수진, 신춘희, 박일, 김종헌, 최일성, 표삼재, 최재석, 홍일동, 심수향, 김지철, 강채송씨 등이 시 부문에서, 서상연, 양명학, 최이락, 최두영씨 등이 수필 부문에서, 정형남, 김옥곤, 김태근씨 등이 소설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동양화가 이종성, 모성수씨 등이 울산화단을 지키고 있으며, 매년 1회 이상의 공연을 갖고 있는 회원 25명의 극단 「출발」(대표 김태근)이 연극계의 명맥을 잇고 있다.
1957년이래 해마다 5월이면 향토문화제 「아랑제」가 열리는 유서 깊은 밀양은 인구 4만 6천의 비대한 읍으로 시 승격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밀양문화원(원장 조희약(曺喜榠), 밀양시 삼문동 186 소재)과 국립 밀양도서관(밀양읍 삼문동 186 소재), 남보극장(좌석 495석), 제일극장(좌석 602석) 등 2개의 극장과 81년 9월 개관한 밀양 문화회관(밀양읍 내일동 영남루 옆 소재)이 문화시설의 전부이다. 밀양문화회관은 이곳 출신 박남규(朴南奎)씨가 향토문화 발전을 위해 사재 3억여 원을 투입, 대지 3백 65평,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3백 60평의 현대식 건물로 이 지역 문화 창달의 전당이 됐다.
전설적인 인물로 전해 내려오는 아한(阿恨)의 넋을 위로하고 그 순정(純貞)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57년이래 해마다 열려 81년 24회 째를 맞았다. 그네뛰기, 농악, 제등놀이, 밀양 들놀이, 밀양 백중놀이 등 민속놀이와 백일장, 시조경창대회 등 30개 종목의 다채로운 행사가 벌여졌다.
기타지방의 문화시설
그 밖의 경남 지방의 문화시설은 진해, 삼천포, 함안, 창녕, 김해, 거제, 고성,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의령의 지방문화원과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전수회관, 그리고 진해, 의령, 거제, 남해, 창령, 양산, 함양, 합천 등의 시·군립 도서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와 시설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양산 군립 도서관을 예로 들자면 좌석 54석에 장서는 고작 4백 4권에 불과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