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현장  - 창작공연 활성화 지원작품

2. <나비의 꿈>  
장주의 철학과 백남준의 비디오타워가 뿜어내는 빛

안치운(연극평론가)

풍류극

화동 연우회의 <나비의 꿈>은 2000년 11월 21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김광림 작, 이항 연출로 공연되었다.이 공연은 풍류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극단은 “풍류란 우리나라 선비들의 음악을 말한다. 풍류극은 서양적 공연 양식인 오페라나 뮤지컬과는 음악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풍류극에서는 대사와 노래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대사 속에 노래가, 노래 속에 대사가 혼재한다. 무대 디지인도 서구적인 개념에서 탈피하여 평면적인 산수화로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평면과 입체가 혼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짧은 설명으로 풍류극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극의 장르를 정의하는 명칭을 사용할 때는 충분한 근거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장주, 꿈, 오늘

<나비의 꿈>은 장주의 고향방문으로 시작된다.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은 “길이는 자, 무게는 근, 부피는 되"와 같은 기준들로 다스려지고, 그것을 나라의 제도로 삼는다. 작가는 이것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들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대신 이상은 망량이란 인물(그림자의 신, 공기보다 가볍고 빛보다 엷은)을 통해서 드러나고, 최고의 이상은 가지 않고도 천리 밖을 보고, 보지 않고도 우주를 꿰뚫고 있는 마음의 기술을 터득한 장주라는 인물로 표현된다. 희곡의 내용이 보여주는 장주의 주장들은 무용의 유용론(쓸모없는 나무의 쓸모있음), 쓸데없는 말의 필요성이다. 그에게 현실은 꿈이고 꿈은 현실이 된다. 장주의 주장이 무대 위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은 혼돈의 신(질서, 정의에 반하는) 제강과 예술과 정치의 신 언왕과의 거리에서 구체화된다.
좥나비의 꿈좦은 장주가 겪어야 하는 아픔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것은 꿈꾸는 자가 치러내야 하는 감옥, 초월, 만물, 자연에 대한 경험과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고통의 끝에서 장주는 이런 해탈에 이르게 된다. “지혜와 용기로서 칼끝, 욕심없는 마음으로 칼날을 삼아라. 겸허함으로써 칼등을 삼고, 편안함으로써 칼자루를 삼으며, 자연의 섭리로써 칼집을 삼거라." 이것은 장주가 언왕에게 하는 말이며 동시에 작가의 핵심적인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장주 철학의 빛남과 다른 백남준의 빛남

“깨어나 보니 삶이란 한바탕 긴 꿈"이라는 말, 삶이 지루하면 이런 꿈을 꾸게 마련이다. 희곡은 <산해경>과 <장자>를 섞어 놓았으며 전체적으로는 장자의 이야기가 큰 줄거리를 차지한다. 연출은 백남준의 비디오 구조물을 무대 전면에 내세워 표현의 다양성을 꾀한다. 이 공연의 숙제는 줄거리인 장주의 해석과 거대한 무대장치인 비디오 구조물의 역학관계를 푸는 데 있다. 비디오 화면을 수없이 쌓아올린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는 두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현란한 색깔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색깔과 움직임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관객으로서는 전체를 집중해서 보기 어렵다. 화면의 크기와 집중은 화면 앞 모든 연극적 행위들을 읽는데 방해가 되고 장주의 유장한 철학과 비디오 타워의 혼성은 새롭되 위험한 시도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대부분 두 개의 이질적인 볼거리 앞에서 분열적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무대를 보다 비디오를 보았다. 그것을 따로따로 보았다. 비디오 타워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그것은 전기의 중독현상이기도 할 터이다.    
장주의 철학이 몸과 말이 뿜어내는 빛나는 성찰이라면,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는 수많은 모니터 화면에서 전기와 빛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이다.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장주의 삶과 사상은 기계적인 비디오의 화면들과 충돌한다. 장주 철학의 빛남과 다른 백남준의 빛남은, “자연과 아름다운 영혼이 불러일으킨 그런 숭고함이 아니다. 얼어붙은, 검은 우주와 같은 공간에 보석처럼, 별빛처럼 흩뿌려진 비디오 화면들의 숭고함, 무한 반사하는 레이저 광선들의 숭고함, 신비롭게 만나 상승하는 물과 빛의 숭고함은 다국적 자본과 기술의 놀라움에서 오는 숭고함인 것이다" (이경덕, 「백남준 예술의 인문적 고찰」) 연출가는 “드디어 백남준 형에게 무릎을 꿇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백남준의 비디오에 꿇는 것은 더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