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음악학계의 성장
전인평
(중앙대 교수)
)
지구촌시대라는 이름아래
서기 2000년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지구촌이라는
말이 나타내듯 2000년이 우리 혼자만 살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국악계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국악은 한국인만을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음악이 유럽인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것처럼, 한국음악이
한국인만을 위한 음악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악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음악의 하나로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2000년에 들어서면서 국악계에는 범아시아적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금년의 양상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져온 행사와는 사뭇 다르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아시아음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2000년 음악계 활동 중 아시아음악 관계 행사를 살펴보자.
왜 아시아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문화는 물과 같이 흐른다. 물이 흐르지 않고 정지해 있으면 썩듯이 문화현상
역시 흐르지 않고 정지 상태로 있으면 퇴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조선조의 멸망을 재촉하였고, 북한의 우리 식으로
산다는 주체사상이 북한 2000만 주민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외부 음악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며 자양분을
섭취한 음악은 널리 널리 확산되어 나갔다.
그러면 20세기를 여는 오늘날 왜 아시아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한국음악이 살아남으려면 아시아 음악과 공동 전선을
펴야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은 여러번 외래음악을 수용하여 왔다. 곧 고대에는 서역음악을,
중세에는 중국음악을, 근세에는 서양 음악과 접촉을 하였다. 필자는
‘문화는 종교라는 배를 타고 이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대에는
불교가, 중세에는 유교가, 근대에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외래문화를
전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음악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장구와 거문고는 중앙아시아 음악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좥삼국사기좦에 나오는 신라의 평조와 반섭조는
인도 음악 악조가 우리나라에 전해 온 것이다.
인도 장단인 딸라tala가 중국에는 판식(板式)으로, 인도네시아에는 이라마irama로,
태국에는 나탑natab으로 일본에는 효오시(拍子)로 수용되었다. 이와같이
여러 나라에서 '장단'을 수용하였지만, 유독 한국의 장단이 다양한 것은
그만큼 우리 조상들의 음악성이 높은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외래음악을 수용, 향악화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음악을 수용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은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외국인에 의한 전파
단계이다. 예를 들면 서양음악의 한국전래와 같이 서양 선교사들이 찬송가를
우리나라에 전해 준 것이 이 사례에 속한다. 둘째 단계는 한국인 자신에
의하여 외래음악을 도입하는 단계이다. 간혹 첫 단계를 생략하고 둘째
단계로 넘어오는 경우가 있다. 셋째 단계는 외래음악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음악을 창출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작곡한 노래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라는
궁중무용음악을 만들면서 외래음악인 고취악과 향악을 참조하였다. 그래서
세종이 작곡한 음악의 일부는 중국식이고, 일부는 향악식이다. 또한
조선조 말의 양금이 이 형편에 해당한다. 양금은 원래 서양에서 유행하던
악기인데, 서양 선교사가 중국에 소개하였고, 우리나라에는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중국에서 들여왔다. 이 악기는 원래 외래악기였지만, 지금은
향악기화하여 영산회상 연주에 없어서는 않되는 요긴한 국악기의 하나이다.
넷째 단계는 외래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새롭게 창출한 음악을
외국에 수출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예는 백제시대의 기악(伎樂)이 있다.
기악이란 가면을 쓰고 연행하는 것인데, 백제는 이 기악을 중국 오(吳)나라에서
들여와, 일본으로 전하였다.
이러한 외래음악 수용 단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서양음악 수용은 셋째
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외래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먼저 할 일은 자기 문화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다. 자기문화를 지나치게
비하해서도 안되고, 과대 포장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주위의 것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분명히 알 때에 외래 문화를 자주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2000년 아시아음악학의
변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전통음악계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주변국의 음악계와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이것은 한국음악은 한국음악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속의 음악 중 하나라는 자각에서 비롯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자각은
한국음악계가 우선 동북아시아 음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여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 학술회의 현황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는
3월 29일(서울대학교 문화관)과 30일(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일본의 가가쿠(雅樂)
공연과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일본의 가가쿠(雅樂)와 악기·복식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아악이란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궁중에서
행하던 의식음악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 음악의 전승이 끊어졌고
현재 남아있는 곳은 한국과 일본·베트남이다.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에는 궁중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가가쿠는 한국의 아악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내한 공연한 일본 가가쿠가이(雅樂會)는 1962년 가가쿠의 전승과 보급을
목적으로 결성한 민간 단체이다. 이러한 일본 아악회의 가가쿠 연주는
동아시아 공유 음악을 살펴보고 동아시아 공통의 음악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살피는 중요한 계기였다.
중앙대 중앙음악연구소는 5월 10일 중앙대 음대에서 ‘아시아의 음악과
문화'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날 발표한 논문은, 인도네시아
달랑과 가믈란(김영수, KBS 국제방송국), 일본 기악의 재검토(박전열,
중앙대), 부탄의 민속 음악(박환영, 중앙대), 중국 사천성 허씨촌의
민요(이소라, 문화재관리국), 세종실록 봉래의의 장단과 속도(전인평,
중앙대), 윤이상의 작곡기법과 한국전통음악의 관계성(조은숙, 독일
보훔대학), 인도 연극과 음악(허동성, 중앙대강사)의 5편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아세안-대한민국 법인기획ASEAN-ROK Corporation
Project의 일환으로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서울과 경주에서 ‘공연
예술:전통과 현대화Performing Arts:Tradition and Modernity'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는 태국·라오스 미얀마·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캄보디아·싱가폴·브루나이·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 관계자들이 모여 각국의 전통공연예술의 현황과 문제점을 점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혜숙·전인평·유영대 등의 학자가 참여하였는데,
전인평은 한국전통공연예술의 보존과 발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국전통음악학회는 중국 연변대학과 학술교류의 일환으로 8월 10일
연변대학에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학술대회는 한국 측에서 서한범·윤명원·이현주·한교경이
중국 측에서 김동설·남희철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한국국악학회는 9월 25일 충북 영동문화원에서 난계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회의에서 강영애는 ‘일본전통동요 중 자장가 고찰'을 발표하였다.
한국공연예술원은 새천년맞이 아시아 시원문화 축제의 일환으로 ‘마을굿과
가면(假面)놀이'를 9월 29일과 30일 국립극장에서 열었다. 이 행사는
9월 29일에는 학술회의와 중국 귀지 나희 공연단의 공연을 했고, 30일에는
한국과 중국의 연주단을 초청 비교 감상회를 열었다. 학술회의에서는
전인평 외 4명이 논문을 발표하였다. 전인평은 ‘동아시아 음악의 장단구조'를,
일본의 이토 요시히데는 ‘카구라(神樂)와 가면문화'를, 김선풍은 ‘동해안
별신굿과 마을굿·범굿·탈굿'을, 호주의 토니나잇Tony Knight은 ‘압오리진
종족과 호주의 공연예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은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와 함께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프라자호텔 덕수홀에서 동·서양 음악 학자가 한데 모여
‘음악의 변화하는 가치:새로운 창조성을 찾아서'라는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 음악을 비교, 연구하는 ‘동·서양 음악 문화 비교
국제 심포지엄 및 제 5회 동양 음악 국제 학술회의'였다. 이 학술회의는
동양 5개국(한국,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 서양 5개국(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에서 중진 음악 학자와 연주가 25명이
참가, 논문 발표, 토론, 강의 연주 등을 통해 동·서양 음악 문화의
이질성 가운데 숨어 있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창조성을 탐색하는 자리였다.
기조 강연과 발표·토론에는 세계 최대의 민족음악 연구 단체인 미국
민족음악학회Society for Ethnomusicology의 보니 웨이드 회장(미 버클리대
교수)을 비롯, 이병원 미 하와이대 교수, 도쿠마루 요시히코 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교수, 유슈와 홍콩중문대학 교수, 권오성 한국국악학회 이사장
등 세계 민족 음악 학계의 원로·중진과 40대 소장학자들이 참여, 동·서와
신·구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문화간 이해 증진을 위해 1999년의 동·서양 건축
문화 비교 국제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동·서 문화 비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는 1996년부터 해마다 동양 음악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 학술회의는 동서양 10개국 음악학자 25명이 한자리에
어렵게 만나 현대의 동서양 음악 동향과 미래를 예단하는 진지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동양과 서양음악의 효용성을 다루어 음악도 세계화하고
있음을 확인시킨 사람은 슈테판 하켄 베르크교수와 유 슈와교수이다.
슈테판 하켄 베르크 교수는 “현대음악의 상호작용과 새 경향은 다른
비서구의 악기들을 이용해 작품이 씌여지고 있다"며 “사전에 그
나라의 문화 배경을 먼저 알고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유슈와 교수는 “20세기 중국음악은 중국악기와 서양악기를 배합한 폭넓은
음악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 도쿠마루 요시히코는 ‘동아시아
음악에서 상호텍스트성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음악 단위를 ‘텍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해 하나의 음악 장르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중국음악
‘곡패', 한국 판소리, 베트남 민간악극 등 여러 음악을 익혀 테크닉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병원은 “한국음악에 서구의 오선보를 도입, 서양악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 된다면 앞으로 한국과 서양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동일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음악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유병은 교수는 “서양 것을 받아들여도 얼마나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보장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발표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음악이 세계화되기까지 근대음악에 어떻게 상대방의 음악
문화를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세미나도 마련됐다.
그 이론으로 리통순(영국 더램대학 교수)는 “싱가포르의 중극 거리극은
문화 민족주의에 따른 원전성의 가치에 두고 있다"고 했으며 수카
하르자나(앙상블 자카르타 지휘자)는 “근대 음악은 동양과 서양, 모던과
전통, 옛것과 새것 등 사이에 ‘낀 세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심포지엄의 마지막날에는 강의 연주회로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황병기(이화여대) 교수가 좥침향무좦, 좥비단길좦을, 일본의 예능 보유자
가문의 도키와즈 모지베 5세가 좥도키와즈 음악과 샤미센좦을 연주하였다.
이번 동서양의 음악 문화비교에서는 각 나라마다 다른 세계의 음악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장르와 경향을 추구하고 있으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민족음악의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국립국악원과 강릉문화원은 9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강릉문화원
강당에서 제5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회의의
주제는 ‘아시아의 농요(農謠)'라는 주제로 한국·중국·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
학자가 참여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행사에는 우리나라 이보형이
‘한국농요연구서설'을, 중국 조우칭칭은 ‘중국 섬서성 북부 유림 지구의
농요에 관한 고찰'을, 일본 고지마 도미꼬(小島美子)는 ‘일본의 농요와
문화'를, 베트남 토녹탄은 ‘베트남의 농요'를, 미국 앤더슨서튼은 ‘인도네시아
남술라베시 마카사라스 마을의 성악'을 각각 발표하였다.
티벳문화대제전 조직위원회는 9월 29일부터 10월 22일까지 티벳문화대제전을
고양시 꽃박람회장 세계관에서 열었다. 이 행사 중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민속공연단인 티벳전통가무단의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에는
두 가지 대조되는 지역의 가무가 공연되었다. 감정 표현이 뛰어나 봄과
같은 활력과 패기가 넘치는 티벳 동부의 가무와 옛스럽고 소박하며 농촌
문화의 향이 짙게 드러나는 남부 가무의 공연은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 중국중앙음악학원과의
교류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은
중국중앙음악학원과 8월 15일 자매결연을 하였다. 이 자매결연을 통하여
중앙대와 중앙음악학원 간의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교수와 학생 등
인적교류 및 각 학교로 학생이 유학할 경우 학점교류로 가능해 졌다.
- 전통의 수용과 발전으로서의
공연
한국공연예술원은 새천년맞이
아시아 시원문화 축제의 일환으로 ‘마을굿과 가면(假面)놀이'를 9월
29일과 30일 국립극장에서 열었다. 이 공연은 1400년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국 안휘성의 가면극 귀지나희 연주단을 초청 공연한 것이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의 동해안 별신굿 공연단을 초청하여 번갈아 연주하여
양국의 굿음악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쉬운 점은
홍보 부족으로 관객 동원에 실패하여 많은 경비를 들인 행사였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10월 11일부터 20일까지 문화광광부와 국립극장은 중국의 동방가무단(東方歌舞團)을
초청 서울·광주·제주·대전에서 순회 공연을 하였다. 이 공연은 아셈ASEM회의의
주룽지 중국 총리의 참석과 때를 맞춰 공연한 것이다. 동방가무단은
중국의 주은래 총리가 1962년 창립한 중국의 국가급 예술단이다. 중국의
각 지방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민속과 예술을 보존, 널리 보급하는
것이 이 단체의 주요 업무이다. 중국 각 성에서 뽑힌 최고의 배우들을
과학적으로 관리하여 세련되고 독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단체는
수백 개의 중국과 외국의 무용, 수천 곡의 노래 악기 연주 공목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국립극장과 ITI는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우리나라 춘향전을
중국·일본·한국이 각각 월극·가부키·창극 형식으로 공연하였다.
이번 베세토Beseto 연극제는 제3회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를 경축하는
아셈 경축공연이며 아시아의 공연예술 유산을 각 나라의 독특한 전통양식으로
공연한다는 사실 외에 중국의 월극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였다는 점이
기억할만한 일이다. 더불어 이 베세토 연극제 특별공연 춘향전은 동북아에서
어떻게 공연예술 전통을 서로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 공연이었다.
한은영(韓銀英)은 북경 중국음악학원에서 비파를 공부하고 돌아와 11월
4일(서울 국립국악원 무면당)과 11월 18일(광주 남도예술회관)에 비파독주회를
개최하였다. 한은영은 장장 8년동안이나 중국에서 비파 공부에 전념한
사람으로
우리 나라에서 맥이 끊어진 비파음악의 맥을 잇는데 일조하리라 기대한다.
국립국악원은 11월 9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아시아음악학자 전인평을
초청하여 목요상설 100회기념 특별 기획공연으로 ‘아시아음악과 한국음악의
만남'을 개최하였다. 이 연주회는 전인평 작곡의 좥타골의 노래좦·좥바이올린
산조좦·좥가곡 윤회의 고리를 끊어라좦와 베트남 호치민 음대 교수
작곡의 당짠독주곡 좥봄바람좦, 박승률 작곡의 좥삼인행좦, 조원행 작곡의
좥해금독주곡좦, 중국 연변대학의 취엔민 교수 작곡의 좥중국 얼후 독주곡좦을
해설과 함께 연주하였다.
당일 연주한 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좥타골의 노래좦는 선율은 타골 주제이지만
장단은 작곡자 자신이 새롭게 만들었다. 장구는 인도에서 시작한 악기이지만,
지금은 인도 사람도 한국의 악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외래음악을
향악화한 놀라운 조상의 지혜 덕택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외래음악을
외래음악 그대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외래음악을 소재로 발전시켜
한국음악을 살찌워야 한다. 이 곡은 타골 음악을 향악화한 것이라 하겠다.
땅짠dang tran은 베트남의 가야고이다. 좥봄바람좦은 베트남 음대 교수이며
작곡가인 구엔 반더이에게 위촉한 곡이다. 새로 작곡한 곡이기는 하지만,
베트남 전통 요소를 잘 살린 악곡이다. 좥전인평 주제의 시타르 변주곡좦은
우리나라 자장가를 인도 시타르로 연주한 즉흥변주곡이다. 한국의 산조와
인도의 라가는 놀랍도록 구조가 동일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한국음악
주제를 인도음악 형식에 얹어본 것이다.
다음에는 한국 해금과 중국 얼후, 그리고 서양 바이올린을 비교하는
음악이 계속되었다. 한국의 해금, 중국의 얼후, 유럽의 바이올린은 모두
같은 조상인 휘들이 각 국에서 각 각 다르게 발전한 악기이다. 같은
종류의 악기가 한국·중국·유럽에서 어떻게 다르게 발전하였는지 비교하며
듣는 것은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한다.
또한 이 공연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국악계에서는 보기드물게 표가
매진되어 청중이 연주홀을 가득 메웠다는 점이다. 이날 청중 대부분이
표를 사가지고 입장하였다는 것은 이제 한국에서 아시아음악을 논하여도
좋을 만큼 여건이 성숙하였음을 알 수 있는 계기였다. 더구나 청중 대부분이
젊은 신세대였다.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인 이상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메모하며 음악과 해설을 경청하는 모습에서
신세대의 새로운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금교류회는 11월 2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제3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아시아금교류회는 1993년부터 한국의 가야고·일본의 고토(琴)·중국의
꾸친(古琴)·인도의 시타르 연주자의 교류 연주회를 열어왔다. 제3회
연주회는 일본의 노사카 게이꼬를 초청하여 일본 고토 음악을 소개하고
한국 가야고와 일본 고토의 합동 연주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날 노사카
게이꼬 작곡의 금합주곡을 이성천이 편곡하여 한국 가야고를 연주한
것은 외래 음악의 향악화작업이라는 의미있는 연주곡이었다.
- 아시아음악학회의 동향
서기 2000년의 동향으로
'아시아음악학의 성장'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바로 '아시아음악학회'의
창립 때문이다. 여러 가지 활동 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학술활동이고 학술활동 중 핵심은 학회 활동이고
저널의 발행이다.
그동안 아시아음악학의 연구는 주로 유럽과 미국 학자들이 주도해 왔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레 아시아음악학 학술회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거행하고
또한 영어로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영어에 능숙한 영어권 학자들이 학술회의를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1월 베트남에서 아시아역사학회에 참가하여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아시아 여러나라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여러 가지를 논의하던
중 아시음악학 연구는 아시아음악학자들이 주도하여야 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시아음악학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그 준비를
필자에게 위임하였다.
아시아음악학회는 우선 실현 가능한 손쉬운 일부터 착수하기로 하고
우선 아시아음악학 관계 영문 저널을 내기로 합의하고, 학회지의 이름은
좥아시안 뮤직컬리지Asian Musicology좦로 정하였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연락방을 마련하고 회원을 모집하였다. 연락방 개설은
5월 27일이었으며, 현재 회원은 210명에 이른다. 아시아음악학회는 더
나아가 범아시아적으로는 저널 좥아시안 뮤직컬리지좦를 발행하고, 대내적으로는
아시아음악학 총서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총서의 제1권을 이미
발행하였다.
적극적인 아시아음악과의 교섭
금년의 아시아음악 관계 활동 중에서 자신이 직접 외국 악기를 배워서
연주한 한은영 비파 독주회와 권민의 얼후 연주회는 우리나라 아시아
음악의 수준이 이제는 수용 단계를 넘어서 향악화에 성공하여 아시아
음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이제 아시아음악학계는 인적자원도 상당수 늘어났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세계화 물결에서 한국음악이 실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한국음악이 독창적인 음악으로 살아남아
세계 음악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조상들의 이와같은 창조력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음악계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음악과 교섭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시아음악계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 활동이
가까운 장래 한국음악이 다른 나라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겨눌 수 있는
세계음악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멀리 내다본다면, 유럽음악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세계음악계에
아시아음악이 유럽음악과 나란히 병립할 수 있는 아시아 음악 창달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2000년이 한국음악부흥의 원년으로
기록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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