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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아트스타 2018 Ver.2 박경제展

  • 조회수 3,774
  • 작성자 이*원
  • 등록일 2018.04.27

봉산문화회관기획 | 전시공모 선정작가展
유리상자-아트스타 2018 ver.2
「박경제 - 345kv」

■ 전 시 명 : 유리상자-아트스타2018 ver.2 「박경제 - 345kv」展
■ 관람일정 : 2018. 3. 30(금) ~ 5. 27(일), 59일간
■ 작가와 만남 : 2018. 4. 4(수) 오후 6시
■ 시민참여 워크숍 : 2018. 5. 12(토) 오후 3시
■ 관람시간 : 09:00 ~ 22:00, 언제든지 관람 가능
■ 장  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 코디네이터 : 김동진 aurugly@naver.com
■ 기  획 : 봉산문화회관
■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500
        트위터(@bongsanart), 페이스북(bongsanart)


■ 제 목 : 영사기를 통한 상상 드로잉
■ 일 정 : 2018. 5. 12(토) 오후 3시
■ 장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 대 상 : 일반시민
■ 참가문의 : 053-661-3526
■ 내 용 : 영사기를 통해 작가의 흑백 사진을 벽에 비추어보고, 장면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 장면을 상상해서 직접 그리고 스스로 발표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유리상자-아트스타2018」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가치 있는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8년 유리상자 두 번째 전시, 전시공모 선정작 「유리상자-아트스타 2018」ver.2展은 회화를 전공한 박경제(1991년생)의 설치작업 ‘345kv’입니다. 이 전시는 세계의 현실을 향한 작가의 감수성과 기억을 기록하고 이를 선전宣傳하려는, 어쩌면 낯설기도 한 자신의 연속적인 프로젝트 실천의 어느 지점입니다. 작가는 세계 속의 현실 사건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관계하고, 그 삶의 일부가 어떻게 예술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흥미로운 해석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스며든 ‘낯선 두려움’을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 속에 담아 가시화하려는 작가의 실험적 예술설계입니다. 이 설계는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이용하던 전기의 ‘송전탑’ 설치반대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인상으로부터 시작되며, 아름답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처럼 각인되는 전기의 상징으로서 ‘붉은 빛’의 양면적 메타포로 생명체의 불안에 관한 ‘두려움’의 언어를 새롭게 구사하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대면한 어떤 ‘두려움’의 상황을 그리거나 윤곽을 구획하고 오브제를 세우는 조형 설계를 통하여 자신만의 회화적 공간을 설치합니다. 마치 주술적이거나, 장식, 마술 등의 행위를 비롯하여 선전, 기록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오래 전의 종합적인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은 작가가 새롭게 해석하여 구축하려는 ‘낯선 그리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붉은 빛’은 단순한 장식적 눈요기가 아니라 우리들 현실의 삶과 그 대응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작가는 신고리핵발전소에서 밀양, 북경남변전소를 거쳐오는 76만 5천 볼트 송전선로에서 분기해 청도군 삼평리에 세워지는 40기의 34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 중 마지막 한 기를 막기 위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전과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특히 평생 동안 땅을 일구며 자연과 이웃에 의지해 살아온 할머니들의 ‘두려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작업 행위는 삶에서의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의 기억을 새로운 ‘그리기’로 옮기는 것입니다. 작가는 150×350㎝ 크기의 송전탑 2개와 150×200㎝ 크기의 송전탑 5개를 설치하여 전선으로 연결하고 그 아래에 붉은 색 빛을 발하는 가느다란 형광등을 설치하였습니다.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반하기도하는 이 아름다운 ‘붉은 빛’은 고압선로 아래에서는 꺼져있던 형광등이 켜지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송전탑을 거친 전기를 가정으로 배분하는 변압기를 중앙에 설치하고 그 변압기 구조물 속에서 제한적인 형태로 식물이 자라도록 하여 생명체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그 회복력을 동시에 연상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습니다. 송전탑의 그림자와 겹쳐 묘하게 여린 감성을 자극하는 식물과 붉은 빛, 청도 삼평리 현장의 흙, 사건의 장면을 기록한 345장의 흑백 필름 등은 작가의 메타포에 의한 ‘그리기’ 기록과 선전을 공감하게 합니다.

눈앞에 펼쳐진 유리상자의 ‘현재’는 다름 아닌 자아와 현실 삶의 성찰을 반영하는 감성적 행위이며, 이때 작가가 다루려는 것은 편익便益과 개발 중심적인 선택에 의해 도외시되었던 생명 경외敬畏의 반성이기에 앞서 인간의 ‘삶’을 응시하고 그 속의 ‘두려움’을 공감하여 드러내려는 태도에 관한 것이고, 삶이 예술과 관계하는 지점에 대한 예지叡智적 해석에 관한 것이며, 미묘하지만 생생한 예술적 장치에 관한 진眞·선善·미美의 유효성들을 추출하려는 시도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현실reality을 스스로의 생동生動 확장의 행위로 번안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경계 없는 예술 실험의 가치를 자문하게 합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은, 밀양시의 765kv의 고압송전탑과 청도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을 지나 우리가 서 있는 이곳까지 운반된다. 전선을 따라 흐르는 수많은 이야기들, 작품은 그 중에서도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메스컴을 통해 잘 알려진 밀양시의 765kv 고압송전탑 사건보다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삼평리의 345kv 송전탑.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량의 송전탑 앞에서 작은 마을과 거주민들은 잊혀 지기 쉬운 자리에서 잊혀 지지 않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의 연속이다. 평생을 그 곳에서 보낸 할머니와, 일생을 그 들에 깊이 심어버린 할아버지, 산을 돌아 불어나오는 바람에 실린 이야기들, 귀를 기울여본다.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조금은 불편한 사실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마을을 둘러싸버린 송전탑 7기, 민가와 제일 가까운 1기만이라도 조금만 멀리 떨어트려 주길 바랐던 그들의 간절함은 당연한 듯 묵살당한 채 공사는 진행되었다. 비단 청도 삼평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긴 세월이 기억하는 연대와 투쟁, 좌절과 희망, 불안과 행복을 이 몇 개의 구조물로 이야기 하려 한다.

7개의 탑 중 2개의 큰 송전탑은 밀양의 765kv 송전탑을, 변압기를 둘러싼 5개의 송전탑은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2개의 큰 송전탑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전선은 5개의 송전탑을 둘러 결국 변압기로 모이게 된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변압기는 미시적으로는 이 도시를, 거시적으로는 전기를 사용하는 이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이 도시와 세상 속에 나무가 있다. 희망과 행복을 상징하던 행운목은, 가학적인 세상 속에서 이제는 희망을 떨구어버린 듯 기형적인 형태를 띤다. 전시장의 바닥은 345장의 흑백사진들로, 그날들의 기록으로 가득 메워진다. 빨강과 파랑이 아닌 무채색의 사진들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 까지, 아니 눈을 감은 그 어둠 속에서도 무서울 만큼 당연하게 세상을 둘러싸는 전기. 누군가에게는 편하다 못해 삶 속에 녹아버린 그 전기로 인해 또 누군가는 평생을 보낸 삶의 터전을 잃고 끝없이 병든다. 작가는 무모한 이 몇 개의 구조물로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예술세계를 오브제에 투영하기 보다는, 송전탑이라는 일상의 오브제를 투명한 유리전시장에 꽤 단순한 방식으로 가져다 놓음으로써 관객은 자신만의 시선을 통해 진정한 예술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제, 여기에 송전탑이 있다.


- 작가 박경제 -





예술의 올곧음에 관한 사례 연구

종종 겪는 일인데, 사회 현실을 주제로 한 미술 전시가 열릴 때마다 내가 관심 있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곳저곳으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올해에도 몇 건의 전시가 있었다. 정말 미안한 말인데, 대부분이 좋은 전시가 아니었다. 그 가운데 어떤 전시는 엉망이었다. 그것이 조형성을 담보로 잡은 미술 전시라고 한다면 작가가 끼어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예술과 사회의 문제를 꼭 예술가들이 발언해야 된다는 법은 없고, 때에 따라서는 사회운동가들이나 학자들 아니면 언론인들도 현실을 말과 글의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매체로 드러낼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작가 박경제의 유리상자 프로젝트, 는 상당히 괜찮은 전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가 가진 몇 가지 탁월한 점을 예전부터 인정했고, 그 반짝이는 장점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다만 그 반짝임조차 늘 그대로 밝혀져 있다면 그게 도리어 피곤함을 가져다 줄 수는 있다. 이 시각적이고 인식적인 피로감은 최근에 내가 봤던 몇몇 조악한 사회참여 미술에서 느낀 그것과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이 글이 박경제라는 신진 작가의 전시를 평면적으로 칭찬하는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의 작업 진행을 둘러싼 빛나는 광채를 요모조모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보다시피 유리상자 안에 시골의 어느 야산 지대가 옮겨져 있다. 우리 도심지 바깥 의 자연 경관 또한 인공적으로 꾸며진 자연이란 건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재현된 자연 속에는 낙엽이 쌓인 흙 위에 크고 작은 송전탑이 여러 채 서 있다. 흙바닥에는 어떻게 보면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불길한 위험의 징후를 보여주는 단서 같기도 한 붉은 막대 빛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런 것들은 무슨 의미심장한 뜻을 전달하려는 게 분명하다. 작가의 설명을 준거해서 풀자면, 큰 송전탑들은 밀양의 송전탑이고 작은 송전탑들은 청도에 있는 송전탑이다. 지금 전시가 벌어지는 대구의 이 공간에 공급되는 전기의 이동 경로는 양산에서 밀양, 청도를 거쳐 대구로 이어지는 순서다. 밀양 송전탑이 청도 송전탑보다 실재로 큰 건 아니고, 그 두 개의 탑은 두 개의 경로로 갈라져 이어지는 점, 그리고 그 사회적 순기능과 역기능을 상징한다. 나머지 작은 탑들은 그 자체가 실재 사용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상황을 은유한다. 또 다른 오브제인 변압기 설비는 고압으로 송전되는 에너지를 도시에 사는 개별 전기 소비자들이 쓸 만큼 낮추어져 세세히 분배되는 일종의 허브를 작가가 표현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여러 에너지로 바뀌어 소비되는 현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가운데 박경제가 시야를 둔 곳은 청도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송전탑 설립 반대운동의 근거지인 청도 삼평리로부터 그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알려야 할 것들을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더미로 그곳에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바닥에 깔린 흙과 무수히 흩뿌려진 사진이 그것들이다. 꼭 그렇게 거친 덩어리를 그대로 옮겨오거나 직설적인 오브제를 가져다 두어야만 했을까? 내 생각은 ‘그렇다’다. 이제 출발 단계에 있는 예술가인 그로서는 현장에서 모은 수많은 사회적 사실을 예컨대 노련한 학자나 사회운동가만큼 칼날처럼 날 세워 분석하거나 판세를 훤히 내다볼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일단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우리는 보고 있다.

최선의 방식, 다른 말로 실현 가능하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전시 구상과 배치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성취일 뿐이다. 그가 기록한 르포타쥬 형식의 사진들은 예컨대 오가와 신스케의 다큐 필름이 완성되는 과정이 보여주는 인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관객의 눈앞에 놓인 송전탑의 스케일은 일견 작가를 인지하기 좋은 시그니처가 되었지만, 이 커다란 덩치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오히려 작가의 발목을 잡을 덫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무엇보다 작가가 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식물 오브제는 그 행복이란 단어 속에 담긴 여러 뜻, 그러니까 환경 문제를 미처 각성하지 못한 단계로서의 즉자적 의식에 머무는 다수들이 전기를 통해 얻는 일상의 행복이나, 가려진 그 문제에 부딪히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얻는 연대의식, 그리고 개인의 명망보다 그곳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공간의 증인인 할머니들을 통틀어 상징하는 장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트리는 어느 면에서 작위적인 인상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다. 전체적으로 이 전시는 학부졸업전과 직후에 이어진 에서 ‘임팩트’있게 등장한 작가의 면모를 그대로 잇는 선상에서 새로움에 대한 내적 혹은 외적 압력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보다 (개념이 아닌)말과 글로 해소하려한 결과를 보여준다.

환경문제와 그에 따른 환경운동을 바라보는 사회학의 견해에서,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것들을 결정의 탓으로 돌린다. ‘왜 하필 송전탑을 그 소박한 마을에 두어야 되는가?’ 똑같은 질문을 예술가에 해볼까. ‘왜 굳이 송전탑 문제를 이 순수한 예술판에 끌어들여야 하는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정에 대한 찬반이나 평가를 두려워한다면 그들은 애당초 그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가진 맹점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에 관한 투명성은 확보되어야 한다. 청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꼴은 행정과 언론이 흑막에 가린 혐의가 크다. 그건 그런데, 예술도 열길 속까지 훤해야 하나? 작가 박경제는 매우 정직한 메신저이거나 혹은 반대로 거짓말쟁이다. 적어도 그가 기자나 관료라면 그렇다. 하지만 그는 작가이지 않나?

예술가가 쓰는 트릭, 좋게 말해서 기법 가운데 하나는 보여줄 것과 안 보여줄 것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취하는 일이다. 전부 드러낼 필요는 없다. 또 객관적일 필요도 없다. 남보다 빨리 착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발력을 가질 필요는 있다. 내가 이번 개인전 의 스펙터클의 그 다음 지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그와 같은 균형이다. 드러내고 숨기는 내용이 예를 들어 이런 것이면 좋겠다. 작가 개인이 겪은 성장기로서의 미시적 관점, 청도에서 벌어진 공적 가치의 붕괴나 새로운 희망과 같은 거시적 관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이 두 가지 역사를 겹쳐 끌어올린다면, 이 소소함이 새로운 매혹을 이끌어 낼 가능성은 크다.


- 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윤규홍 -




박경제 朴京濟 park, kyung-je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2018 glass box artstar ver.2 박경제, 봉산문화회관, 대구

단체전
2017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북성로 일대(폴락), 대구
2017 대구 아트페어 yap ‘내 침대로부터 혁명’, 엑스코, 대구
2016 거의 최초에 가까운 전시,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수상
2016 ‘거의 최초에 가까운 전시’ 연합전 특별상, 대구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