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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교수(경북 김천 대학)와 꿈의 대화-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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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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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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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8.01.31
김영식 교수와 꿈의 대화 (미술평론)
미술에 있어서만은, 김영식 교수를 대인(大人)이나 혹은 성인(聖人)으로 일컫을 수 있다,
논어 맹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장무중(臧武仲)과 같은 지혜와 맹공작(孟公綽)과 같은 청렴함과 변장자(卞莊子)와 같은 용감성과 염구(冉求)와 같은 예를 갖춘데다가, 예악(禮樂)으로써 문화적 세련을 가하면 인간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고 하였다. 김영식 교수의 인간완성은 곧 스스로의 미학적 완성이다. 그를 만나본 사람은 인간이 이렇게도 따스한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와 얘기를 진심으로 한번 해 보라. 김영식은 그의 영혼이 예술의 도(道)에 이르렀노라
욕심이 없고 영혼이 맑은 그림, 참된 수양(修養)의 그림이 김영식의 예술이다.
21C가 다가와서 세계의 미술 통로가 잡다하게 얽혀 있다. 김영식은 지금도 해외에서의 전시가 많지만 몇 년 뒤인 2010년에는 김영식의 미술이 세계에 널리 울려 퍼질 꺼라 믿는다. 김영식의 예술을 보면 왠지 꿈속을 걷는 것만 같다. 그는 그림은 평범한 대중들이 미처 깨닫지 않은 꿈과 행복 ․ 사랑 ․ 박애 ․ 희망을 선물한다. 그는 인간들이 찾고자하는 꿈의 대화를 그의 작품으로 신선하게 보여준다.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예(藝)에 입각하여 독립할 수가 있게 되었고, 사십에는 인생 문제에 대한 의혹은 없어졌다. 오십(五十)에 이르러 하늘이 내게 준 명령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육십(六十)에 경험이 많아진 내 귀는 무엇을 들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칠순에는 내가 의욕한 바대로 언동을 하여도 궤도를 벗어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고 공자의 학이 편에 소개된 글이다.
경제적으로 예에 입각하여 독립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인가. 흔히 부귀와 영화를 너무 탐해서도 예술은 자신의 영혼에서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래도 냉정하게 인간은 경제적 동물임은 사실이다. 인간이 경제적 동물임을 일찍이 깨달아 道[혹은 善]를 편 기원전 사람 공자의 수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면, 김의 자신에게 황무지나 허허벌판에 다름없는 순수미술 분야에 늦깎이 30말에 뛰어들어 40대 말이 되어 30여회의 개인전(초대전 포함)을 치른 김영식의 작품세계를 눈여겨보라.
김영식의 회화를 대하면 산사(山寺)에 온 느낌을 받는다. 정갈하고 고결하다고나 할까? 인간의 탐욕이 배제된 산촌(山村)의 사립문에 선 느낌이다. 미술의 확장이 아닐 수 없다. 청량감이 넘치는 김의 미술. 불확실한 현대에서 메마른 인간 삶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春雨]같은 넉넉함이 그의 전시장그림에서 늘 꽃이 핀다. 순수미술이 왜 아름다운가를 그의 유려한 선과 자유로운 색채가 말을 한다. 그의 미술언어는 어떠한 국가를 넘어 세계시민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의 미술은 여성스러운 데가 있다. 때로는 무지막지한 남성은 여성을 그저 폭력적이면 다 되는 걸로 알기도 한다. 남성들의 몸이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난 걸 망각하며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자체가 삶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김의 미술이 미술 하는 사람들의 모성애일지 모른다.
김의 끊임없이 쏟아놓은 작업에서는 놀라운 신선함이 언제나 배여 있다. 작품은 마치 숲속의 길처럼 가면 갈수록 풀과 나무와 흙이 뿜어내는 향기처럼 너무도 평안한 행복일 꺼다.
김의 그림을 통해 차원 높은 예술을 가까이서 평온(平溫)하게 즐길 수 있다니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영식의 예술이 워낙 편안하다, 보니 따라서(묘사:模寫) 해본 화가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김영식의 색과 선이 나올 리가 그렇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많은 화가들은 마음은 번연[만만]한데 그 길을 포기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식 학(學)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는 작품을 통해 미술인과 대중에게 되 비쳐주는 거울이다. 즉 다이아몬드의 세공처럼 인간의 가장 소중한 진선미(眞善美)를 가슴에 새겨준다. 그의 그림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이 그토록 맑고 아름답다는 걸 피부로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그의 독특한 미학은 다이아몬드와 같다. 평범한 돌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가 신(神)의 빛에 버금가는 보석이 되기까지 숫한 방법이 필요했다면 김영식의 미술 또한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영혼이 있다.
징그러움과 거대함 혹은 뻔뻔함에 때로 길들여진 현대미술을 대하는 사람들은 김영식의 고고한 그림에 어떤 말을 할까.
현대라는 괴물, 괴상망측한 미술에 놀란 사람들, 현대미술은 유희적인 철학의 꺼리를 자꾸 만들어낸다.
공자도 말했지 않은가
‘젊은 후배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장래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하리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십, 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나지 않으면 역시 두려워할 것은 없다. 대단하지 않으니까.’
지칠 줄 모르는 예술에서 그 자신만의 세계가 다시 궁금하다. 물론 미술은 자기 잘난 멋에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렵게 간 길을 포기하는 예가 허다하다. 꿈이 있지만 대부분 그냥 무너진다. 여성은 30이전에 인생의 단맛을 다른 속[영화:榮華]에서 찾게 되고, 40이 되면 작은 명예나 소비문화에 도취하여 결국 미술을 포기하는 예가 허다하다.
보통 그림이라하면 정물화, 풍경화, 누드화가 일반인에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고 네도 모르는 추상화도 많다. 김영식의 미술처럼 수준 높은 예술에 대한 이유 없는 거부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여기서 필자는 김영식의 철학적 영혼을 피력하고자 한다. 미술인이나 미술학생들은 누구나 김영식의 미술을 보는 순간 그러한 그림을 그릴 것처럼 자신 만만해하지만 꿈의 대화를 하는 그의 맑고 따스한 영혼과 철학을 누가 앞서갈 수 있으랴.
그 만큼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 꿈[夢]처럼 다가오는 반짝반짝하는 그의 미술 앞에서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낀다. 미술의 고급 독자라면 김의 미술이 정물화 ․ 풍경화 ․ 누드화 ․ 스케치를 뛰어넘는 특유의 예술혼이 세심하게 담겨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보통 미술인은 30세 혹은 30대 말에 통상 미술이 끝이 나버리고 만다. 그 이후의 삶은 흔히 울려먹는-한 때의 흉내 혹은 재탕- 것이다.
왜 미술은 40이 채 안되어 조로(早老)현상으로 소진[탈골:奪骨]하여 버리는 걸까
김영식의 작업은 어쩌면 화살처럼 빠른 것 같지만 느림의 미학이다.
김영식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인간 냄새가 난다. 불을 발견한 인간의 삶이 달라지듯, 김영식의 미술로 인하여 보고 빼기는 사물화나 기타 그림들이 의미를 조금 상실하게 되었다. 그의 그림처럼 너무 쉽고도 너무 어려운 그림은 없다. 김영식의 그림을 이해하고 나면 그의 영혼이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이며 ‘꿈의 미술’로 대중과 대화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음이 들뜬 미술인은 이유 없이 좀 콧대가 높다. 그 자신들만이 고고하고 대단한 미술을 하는 것 같지만 다 평범한 미술 잔재주로 돌아올 것이다. 미술인들은 작업에 있어서만은 얼마나 무한히 노력하지만 노력만큼 좋은 작품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미술에 대한 눈은 한껏 기교를 높게 배우지만 자신들의 상상과 철학이 터무니없이 낮다고 볼 수 있다. 김의 그림을 보면 물론, 따라서 하는 행위는 어느 선까지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가슴을 따스하게 하여 작업을 하기란 대부분 불가능 하다.
청춘은 가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는 거다. 인생에서 청춘이 없다는 것은 청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하질 않았던가. 태어나자 말자 늙는다는 것 그리고 병이 든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오늘의 김영식이 있기까지 한 시절 오직 예술에 전념하여 청춘을 불살랐다.
아라비아숫자처럼 김영식의 미술은 놀라운 발견이다. 로마에서 마저 로마숫자를 밀어 제치고 아라비아 숫자가 자리 잡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김영식의 그림은 미술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김영식의 그림은 마술처럼 신비로움이 있다.
마술(魔術)이란 게 눈속임이라 하듯이 미술 또한 더러는 테크닉의 기묘한 눈속임을 수 있다. 사람들은 세뇌되어 있고 예술에 대한 영혼을 갈고 닦기에는 자신들의 뇌가 한계성이 있다. 가령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있다. 현대 미술인들은 왜 그보다 뛰어난 절규를 그릴 수가 없을까?
현대 미술인들은 분업화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모나리자 그림도 그렇다. 뭉크의 절규는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되물음이다. 누구든지 저런 상태를 당할 수 있다,고 말이다. 모나리자의 미소 역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분업화된 현대에 있어, 미술(美術)도 당연 분업화가 되어 있다.
너무도 분업화(分業化)가 잘된 미술에서 김영식의 세계는 미술 전반에 거쳐 화화와 조각, 인테리어 ․ 목공 ․ 금속 ․ 도자 ․ 염직염색 ․ 조경 ․ 건축설계 ․ 시(詩) ․ 연극 ․ 시각 디자인 ․ 의상 ․ 의상패션 ․ 서예 등등 미술의 전 분야에 적용된다는 신기함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는 넘치면 넘치는 대로, 어떤 분야는 약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예술의 스승이 된다는 점이다. 김영식의 미술을 이해한다는 점은 참의 예술이 뭔지를 안다는 것이고 예술의 숲을 헤치고 인간의 영혼을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김영식의 메모노트(작자노트)를 보면 누구나 숙연해질 것이다. 세상에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그 존재자체를 되새김질하여 새롭게 밝히는 김영식의 예술은 결코 우연이나 심심풀이로 해보는 게 절대 아니다. 어쩌면 목숨을 걸고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예술에 목숨을 건다. 그게 쉬운 일인가?
예술에 목숨을 거는 체 하는, 많은 미술인들이 젊은 날에 하던 작업을 늙을 때까지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그런 일에 정말 목숨을 거는 것일까, 10년에도, 50년 전에도 서로 엇비슷한 그림이 거의 일반적이라면 예술에 목숨 걸었다는 건 거짓일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예술에 목숨을 걸만할 때를 얻질 못하고 늙고 만다. 김영식은 50이 되어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가서 학업을 마치고 다시 일본의 연구소에 머물다가 국내에 들어와 영남대 부산대 등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고 지금은 김천대학 교수로 있다.
김영식의 그림은 예술의 허파라고나 할까. 숲속의 산소처럼 ,여름날의 해변처럼, 메마른 한여름의 소낙비처럼, 미술을 잘 알거나 잘 이해가 안 되어도 어린 날의 수학여행처럼 상쾌함을 준다.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기교에 너무 탐닉한 어려운 미술을 한다. 물론 가시밭길을 가보는 것도, 엉뚱한 미술을 예리하게 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예술인에게 말하노니 예술도 사랑과 진실의 영혼으로 하라, 그러면 참의 예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 철학이라는 조미료가 너무 적게 들어간 미술은 예술적 영혼의 세계가 화폭에 나타나기 어렵다.
예술을 하는 님들은 인간적이다. 예술을 하게 되면 악(惡)의 기운이 거의 사라진다. 왜냐하면 정녕 예술은 인간적이지 않으면 예술 자체를 포기하게 되니까 말이다. 예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예술을 하였음은 사실이다. 예술, 그러니까. 시 ․ 연극 ․ 무용 ․ 미술은 다 예술이다. 예술에서 이름이 있건 없건 간에 예술 입문은 곧 인간 됨됨이다. 다만 허영과 사치를 제대로 버릴 줄 안다면 더욱 더 예술의 기본을 익힌 것이다. 무어랄까. 자만과 교만만 빼고 나면 미(美)와 선(善)으로 자연스레 작업하는 게 예술이다.
미술은 잘 묘사함이 가장 중요한 부위임은 아니다. 뒤샹의 변기처럼 예술은 철학적으로 전혀 엉뚱한 데 있을 수도 있다. 한때나마 예술을 하였다는 근본이 중요할 수도 있다. 예술은 절대 사치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 없이 예술의 사리(舍利)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술을 하는 자는 착한 자로 큰 죄를 짓지 않는다. 한국의 20C 말처럼 살벌한 세월도 없었고 민중미술이 발전하고 대우받는 나라도 없다. 한국에는 자그마치 열사람 중에 한사람이 예술을 한데도 5백만 명이 예술을 한다. 그들은 순결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다.
예술은 어쩌면 일장춘몽이 되는 수가 많다는 뜻이다.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하질 않았던가. 왜 인간은 나자말자 청춘도 없이 바로 늙는 것일까? 그건 늙으면 인간이 된다는 의미일까. 인간에게 참으로 어려운 숙제요 운명이다.
공자는 60살을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귀 이(耳)에 순할 순(順)자니 가슴이 순해졌다는 의미다. 예술도 남에게 부드럽게-민중 민족미술은 제외- 보여 질 때 드디어 미술 입문인 것이다.
예술은 30대에 대부분 끝이 나거나 울려 재탕한다. 즉 미술을 조금 이해되는 순간 바로 늙어 버리고 그리고 나이 들어 아무런 새로움을 증명 할 수가 없다. 대부분 늙은 미술인들이 돈과 청춘 그리고 고도의 테크닉, 고급정보를 가지고도 예술다운 미술을 못하는 것은 이미 청춘이 갔음을 의미한다. 덧없는 청춘이 가면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로병사가 아니던가.
예술은 학문이 아니다. 문학 혹은 철학과 정치학이라면 불혹이 아니라 이순이면 더 좋은 나이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미술은 이순이 넘어서는 귀인이 나오질 않았다.
김영식은 귀인이다. 미술에서 무지개를 따라가는 영원한 소년일 수 있다. 미술에서도 인덕(仁德)이 풍기는 예술이랄까.
그리고 그의 도(道)는 예술로 행하는 것이다. 흐르면서 힘을 얻는 게 도라던가. 도란 마음의 길을 바르게 가는 것이다. 어떤 길인가?
아울러 예술의 길은 참으로 멀고 험난하지만 득도(得道)를 하면 예상외로 바로 코 앞 일수도 있다.
정치의 길, 경제의 길, 문성(文星)의 길, 예지(銳智)의 길, 각 분야별로 도에는 반드시 진리가 숨어 있다. 그 진리가 빛을 보기까지 무한히 자신을 맑고 따스하게 닦지 않으면 안 됨을 돌이켜 본다. 새삼 김영식이라는 존재가 우리 곁으로 화사하게 다가온다. 아울러 그의 미술이 세계적이라는 데는 의심하지 않는다.
200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