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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소극장, 극단 <차이> < 어떤 싸움의 기록>공연보러오세요.

  • 조회수 1,691
  • 작성자 변*영
  • 등록일 2008.06.24
기획의도


『어떤 싸움의 기록』은 실험극이다. 연극실험이란 신선하거나 충격적인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실험은 연극을 하기 위한 전제다. 극단 차이는 바로 그런 연극실험을 하기위한 공연단체다. 『어떤 싸움의 기록』에서는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무대실험을 하고자 한다. 폭력은 나쁘고 비폭력은 평화로운 것인가. 폭력의 철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폭력이란 육체를 부여받은 인간에게 숙명적인 것이다. 세상을 폭력과 비폭력으로 이분법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폭력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연출의도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은 폭력을 통해 창조되기 때문이다.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에 의하면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범주는 세상을 해부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단어다. (비폭력을 얘기하고 강조하는 이들은 안전한 집무실에서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테러에도 반대하고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막연히 올바른 윤리에 대한 반대의 성찰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더미에서 정당한 폭력을 분리해내는 일이며, 권력의 폭력에 대한 억압되고 감추어진 적대성을 드러내는 일이고 분노를 공유하는 일이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 따르면 “우리는 순수함과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이다”고 말했다. 폭력은 ‘정치적 인간’으로서 우리의 숙명이다. 정치적 인간이란 인간답게 살기위한 전제다. 폭력 자체로부터 우리는 발을 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폭력을 선택하느냐이다.







공연줄거리 및 프로그램




1. 양복과 교복, 정장들




사람들은 어떻게 정장을 입게 되는가? 이 명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원칙에 길들여지고 의지하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성의 구조 안에서의 삶을 강요당한다. 강요당하면서 욕망한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강요당한 욕망을 다시 욕망해야 하는 기이한 모습이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이라는 폭력의 모순을 낳는다. 정장을 입는다는 것은 자신들이 원칙을 알고 그 원칙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충실히 드러내고자 한다. 사회와 하나가 될 때 개체들은 안전하다. 그러므로 정장들은 필사적으로 자기를 집단과 동일시하려 한다. 집단은 작게는 결혼식, 가족사진, 운동회, 면접, 크게는 학교, 회사, 국가, 민족일 수 있다. 교복은 어른-되기와 아이-되기의 혼동 속에 있다. 사회는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힘으로서 그 혼동 속에 잠재된 폭력성을 경고한다. 교복은 억압적이고 정형화된 사고와 형식, 기성의 체제에 대한 피학적인 도피 욕구를 드러낸다. 그러나 교복들은 기성의 것으로 안전하게 영입되기를 또한 갈망한다. 사회로부터의 거세불안과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집단과 동일시에 실패한 자는 공동체의 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한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교복들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2. 아버지를 닮은 모든 것




‘아버지임’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남자다.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란 처음에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파생된 개념이다. 그는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사람이다.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어머니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지배자는 자신을 특정한 어린아이의 아버지로 만든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이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어떤 남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는 그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고 벌하거나 가둘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아버지, 그는 법이며 신이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영역은 축소되고 세분되었다. 그것은 공적-사회적 존재에서 사적-사회적 존재로 제한되었다. 창립자이며 지배자였던 아버지는 이제 특정한 여자의 남자로 위축되었다. 그러나 정치와 권력은, 세상의 가치와 기성의 구조는 여전히 그 ‘아버지임’을 닮았다. 아버지를 닮은 모든 것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지니고 산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가족이다.




3. 폭력의 역사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은 폭력을 통해 창조되기 때문이다.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에 의하면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범주는 세상을 해부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단어다. (비폭력을 얘기하고 강조하는 이들은 안전한 집무실에서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테러에도 반대하고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막연히 올바른 윤리에 대한 반대의 성찰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더미에서 정당한 폭력을 분리해내는 일이며, 권력의 폭력에 대한 억압되고 감추어진 적대성을 드러내는 일이고 분노를 공유하는 일이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 따르면 “우리는 순수함과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이다”고 말했다. 폭력은 ‘정치적 인간’으로서 우리의 숙명이다. 정치적 인간이란 인간답게 살기위한 전제다. 폭력 자체로부터 우리는 발을 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폭력을 선택하느냐이다.

**공연장소: (부산) 명륜동 열린소극장 (명륜동 지하철역 맞은편)
**공연일시: 2008년 7월 1일! 27일 (평일 오후8시, 주말 오후5시)
**티켓: 일반 20,000원 청소년 15,000원 (전화예매시 20%할인 051-555-5025)

*** 기획 및 제작 - 극단 <차이>
*** 작 연출 - 구현철
*** 배우- 하현관 진선미 유재명 이효림